유명세 (4)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최기석은 정설화와 소아병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침에 마주친 김태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우와! 하트 정이다!”
김태환은 정설화를 보고 연예인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방방 뛰었다.
자신을 마주쳤을 때와는 180도 다른 반응.
최기석은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 태환이 의사 선생님이 될 거라면서?”
정설화가 사인을 해 주며 말했다.
“그 전에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절대로 부모님 속 썩이면 안 된다? 약속할 수 있지?”
“네!”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김태환이 주인을 만난 강아지 마냥 들뜬 모습을 보였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병동을 떠나는 두 사람.
먼저 입을 연 것은 정설화였다.
“여보. 그 소식 들었어?”
“뭔데?”
“아까 뉴스 나왔는데. 정주 의료원 폐업시키기로 했대.”
정주 의료원은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공공병원으로 해당 도지사가 강제적으로 폐업을 추진하던 상황이었다. 폐업 여부를 들고 사측과 도지사 측의 갈등이 극명했는데 결국 도지사가 파워게임에서 이긴 듯했다.
“나라 꼴 잘 돌아간다. 대체 왜 쓸데없이 공공병원을 날려 버리는지.”
“거기 젊은 선생. 정주 의료원 이야기하는 건가?”
최기석의 혼잣말을 들은 근처 나이 든 환자가 말을 걸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선생이 정주 의료원 폐업을 나쁜 쪽으로 보는 것 같아서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환자가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었다.
“정주 의료원 때문에 해당 도에 재정 적자가 말이 아니야. 도 재정을 파탄 내 가면서까지 공공병원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그뿐만이 아니야. 지금 파업에 나선 노조는 강성귀족노조라고.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드는 족속들이라는 뜻이지. 이제 이번 의료원 폐어업의 참 의미를 알겠나?”
환자의 말에 최기석은 코웃음을 쳤다.
다른 의사였다면 헛헛하게 웃어 넘겼을지 모르지만 이 환자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는 이번 파업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정보를 가졌다.
“정주 의료원은 영리 병원이 아닌 공공병원입니다. 적자가 나는 건 당연한 귀결이에요.”
“적자가 당연하다고?”
“네. 다른 병원과 달리 과잉진료와 검사를 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진료비도 낮습니다. 그 밖에 돈이 안 되는 필수 진료과목도 유지하고 있죠. 공.공.병.원.이니까요. 애초에 공공병원에서 수익성을 운운하는 게 난센스라는 말입니다.”
최기석이 ‘공공병원’에 힘을 주었다.
“도의 재정 적자를 운운하셨는데 해당 도의 1년 재정이 15조입니다. 정주 의료원으로 발생하는 적자는 30억에서 60억 정도고요. 자, 말씀해 보시죠. 정주 의료원 때문에 도가 휘청거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그게 말이야. 뉴스에서는…….”
“뉴스에서 하는 말이 다 옳은 건 아니죠. 뉴스마다 사실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르고요.”
그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노조에 관한 환자분의 생각과 저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군요. 강성귀족노조요? 정주 의료원 노조들의 임금과 파업일수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계십니까?”
“…….”
최기석의 지적에 환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정주 의료원의 재정적자 이유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확장 이전한 것과 저수가의 문제가 가장 큽니다. 지금 환자분이 이야기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거죠. 더 하실 말씀 있습니까?”
“뭐, 딱히.”
환자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자리를 떠났다.
터벅. 터벅.
최기석은 정설화에 헤어져 수술실로 이동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공공병원 제도가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OECD국의 공공병원 비중이 70퍼센트에 달하는 반면 한국은 5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서울병원 등의 대학병원이 포함되어서 사람들의 접근성이 높지 않았다.
그래서 최기석은 정주 의료원의 폐업이 아쉬웠다.
삼정서울병원 원격진료를 허락할 시간에 공공병원이나 더 지을 것이지.
“과장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표정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그냥 생각이 많아서.”
수술실에 들어가자 이다니엘이 말을 걸었고 최기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브리핑 시작하자.”
“네! 환자의 이름은 박점례, 올해로 60세입니다. 심장초음파 결과 구혈률 50퍼센트, 좌심실 벽 두께 12밀리미터, 구심성 비대 소견이 나타났습니다.”
“…….”
“더불어 심장 외벽과 후벽의 운동이 감소한 것으로 대동맥협착증 진단을 받았고 TAVI(무봉합 대동맥판막 치환술) 수술 예정입니다.”
레지던트 3년 차 이재훈이 똑 부러지게 브리핑을 마쳤다.
“잘했어.”
최기석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너희들이 TAVI를 할 경우는 없을 거야. 원래는 내과 영역의 처치잖아. 지금이야 우리 병원 내과에서 TAVI 숙련자가 없어서 내가 하지만.”
“…….”
“그래도 잘 봐 둬. 내과에서 TAVI 수술을 할 때 흉부외과의가 동행하는 케이스가 많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벅. 벅. 벅. 벅.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스크럽에 나섰다. 포비돈이 묻은 솔로 거품을 내 가며 손가락과 손목, 팔을 씻는 가운데 곁에 있는 이다니엘이 말을 걸었다.
“과장님. 어제 슈리텔 잘 봤습니다.”
“너도 봤어?”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는 못보고 하이라이트 영상이라고 해야 하나? 짧은 영상을 몇 개 봤습니다. 정 교수님하고 알콩달콩 보기 좋으시던 걸요?”
“재밌게 봤다니 다행이네. 그건 그렇고…….”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보기에도 내가 설명충이었니?”
“조, 조금?”
이다니엘의 반응에 최기석은 그저 한숨만 쉬었다.
다음번에 출연하면 진행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지이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각자 자리에 잡았다.
타임아웃,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수술도구 준비, 전신마취 등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어졌다.
과정을 지켜보던 최기석의 시선이 문득 참관용 수술실로 향했다.
조교수 신지훈이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교수의 사주라도 받고 참관에 나선 것일까.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과장님. 수술 준비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대동맥판막 협착증에 대한 TAVI 수술을 시작한다. 경식도 초음파 준비.”
“알겠습니다.”
그의 지시에 이다니엘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환자에게 기관삽관 하고 초음파관을 환자의 목 뒤로 천천히 넘겼다. 동시에 모니터로 뚫어져라 응시하며 관을 고정시킬 위치를 찾았다.
이는 앞으로 시행하는 TAVI 수술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처치였다.
“이쯤이면 될까요? 시야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잘했어.”
최기석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대동맥륜 크키가 25밀리미터 정도 되니까 재훈이는 미리 대체 판막 세팅해 놔.”
“판막 종류는 풍선확장형으로 할까요? 아니면 자가팽창형으로 할까요?”
“풍선으로. 다니엘은 대퇴동맥 확보하자.”
“네.”
분주한 준비 끝에 마침내 최기석의 손에 카테터가 들렸다.
그런데 카테터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이재훈!”
그의 갑작스런 호통에 스태프들이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그동안 최기석이 수술실에서 보여 준 천사 같은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다들 겁먹은 표정으로 눈치 보기 바빴다.
“네. 과장님. 뭔가 문제라도…….”
“당연히 문제가 있으니까 불렀지.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그, 그게.”
이재훈은 말을 더듬거리며 자신이 한 행동을 되짚었다.
수술 과정이 굼뜬 것도 아니었고 수술기구를 오염시킬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수백 번 굴려 봐도 잘못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니엘. 너는?”
최기석의 시선을 받은 이다니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술 준비 과정이 완벽하지 않았던가.
이재훈이 혼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다들 모르는 것 같군. 문제는 이거다.”
최기석이 검지로 카테터 삽입기를 가리켰다.
“이건 얼마 전 제조결함으로 리콜 결정이 난 카리트 메디컬의 카테터 삽입기야. 팁 부분이 외피에서 벗어나 혈관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문제가 발견됐지.”
“아…….”
“수술 준비라는 건 필요한 도구만 갖춰 놓는 게 아니야. 그 도구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포함된 거라고. 이런 제품을 써서 환자에게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할래?”
“죄송합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앞으로 수술도구까지 완벽하게 확인해. 중앙공급실에 연락해서 이 제품 전부 교체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조심하겠습니다.”
꾸짖음을 끝낸 최기석이 손수 카테터 삽입기를 교체하는 동안 이다니엘은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설마 최기석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줄은 몰랐다.
보통 써전들은 스태프들이 준비한 도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편이다.
수술이란 게 워낙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다보니 그 외적인 부분은 스태프들에게 일임하기 때문이다.
‘와우. 수술도구로 혼나는 건 난생처음이네.’
이다니엘은 이재훈과 같이 혼났음에도 오히려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다.
이런 최기석의 밑에서 열심히 수련한다면 자신도 멋진 흉부외과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닙니다. 그냥 과장님이 존경스러워서…….”
“존경씩이나.”
최기석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동맥판막과 스텐트가 부착된 카테터를 다시 손에 쥐었다.
스으으윽.
대퇴동맥을 타고 심장혈관으로 이동하는 카테터.
처치를 하는 최기석의 눈은 초음파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며 손놀림은 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잘못해서 카테터가 혈관을 찌르거나 애먼 곳으로 이동할 경우 수술은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스텐트가 대동맥 판막륜에 위치했다.
“다니엘.”
“네!”
최기석의 부름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이다니엘이 풍선을 확장시켰다.
모니터와 대동맥 내압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잠시 후 풍선이 부풀어 오르면서 스텐트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대동맥 판막륜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기존 판막륜을 스텐트에 포함된 인공판막이 대체했다.
“자리 잘 잡았다. 지혈하고 카테터 삽입기 제거한다.”
치이이이익.
최기석은 미리 부착해 둔 지혈기구로 판막륜 인근의 피를 흡입했다. 더불어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대동맥 파열 또는 스텐트 이탈 등의 후유증 여부를 살폈다.
경과가 양호로 뜨는 걸 보면 TAVI는 성공적이다.
스으으으윽.
제 역할을 끝낸 카테터 삽입기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이어진 관상동맥 조영술의 결과, 심장의 최고 압력이 30mm Hg에서 2mm Hg로 감소했다.
‘꼬투리 잡을 때가 없군.’
참관실에서 TAVI를 지켜보던 신지훈이 혀를 찼다.
대학병원에서조차 간신히 백 번째 케이스를 채운, 아직 널리 퍼지지 않은 내과적 처치인 TAVI 수술.
그것을 흉부외과의인 최기석이 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