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93화 (392/407)

유명세 (2)

슈리텔의 후반전 막이 올랐다.

방송 출연자는 총 5인으로 전반전과 같았다.

의식을 차린 김구린은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후반전에 나섰다.

불편한 게 없으니 방송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후반전이 시작하기 전 그는 제작진을 차근차근 설득하고 최기석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몇 십 년 동안 방송을 하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은 여러모로 선생님께 신세를 지는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방송을 계속하는 건 무리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요?”

“불편한 것쯤은 감수해야죠. 이게 제 일인데.”

김구린이 걱정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그와 이별했고, 최기석은 그가 방송을 생각하는 프로 방송인이라는 것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그날의 컨디션과는 상관없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마치는 것.

그게 진정한 프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후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채팅창에 들어오시는 분이 아까보다 많네요. 하늘색 곰돌이 님, 밥 먹을 땐 불티슈 님…….”

아이디를 읽던 정설화는 이내 지친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방에 들어오는 사람이 전반전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그런데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까까머리신부님: 아까 김구린 님은 어떻게 되신 건가요ㅠㅠ]

[칼카나마아철: 하트 최가 응급처치 한 거 맞죠? 허세만 부리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여름의 밧데리: 방송 끊겼을 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세요.]

말해도 좋다는 PD의 싸인에 정설화가 운을 뗐다.

“김구린 씨가 전반전 말미에 떡을 먹다가 기도에 걸린 건 아시죠? 그래서 하트 최가 하임리히법으로 기도를 개방하고 인공호흡을 했어요. 지금은 방송을 다시 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회복되었고요.”

“…….”

“이런 상황은 여러분 주변에서도 쉽게 생길 수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하임리히법을 배워 볼까요?”

“좋아. 시작해 볼까?”

최기석이 정설화의 사인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자 할래? 처치할래?”

“으음……. 내가 환자 할게.”

“오케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설화의 등 뒤로 돌아갔다.

[믹스커피 최고: 웬만한 남자들은 하임리히법 다 할 줄 알 듯. 군대에서 배우는데.]

[탑 배인충: 그냥 뒤로 돌아가서 배만 올려 주면 되는 거 아님????]

[내마음속에삭제: 오. 나도 하트 정한테 하임리히법 하고 싶다.]

“방금 펼친 건 일반적인 하임리히법입니다.”

최기석은 하임리히법의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외는 있는 법이죠. 임산부나 고도비만인 사람에게 기도 폐쇄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똑같이 배를 밀어 줄까요?”

“글쎄요. 그거 정말 궁금한 걸요?”

정설화의 어색한 연기톤에 최기석이 웃음을 터뜨렸다.

“로봇이 말하는 줄 알았네.”

“여…… 연출이잖아.”

“그냥 그렇다고.”

최기석은 정설화의 복부에 두른 손을 그녀의 가슴께까지 올렸다.

임산부나 고도 비만자에게는 복부 압박이 효과적이지 않다.

따라서 가슴을 압박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더불어 소아에게 기도폐색이 왔을 때 하는 응급처치법도 알려 주었다.

“어느새 후반전이 이십 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요. 슬슬 마지막 컨텐츠를 진행할까 합니다. 두구두구두구.”

정설화가 입으로 소리를 내자 채팅창에서 귀엽다는 글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현재 방송의 지분율을 따지자면 최기석이 20퍼센트, 정설화가 80퍼센트였다.

“그것은 바로…….”

“심장마비입니다!”

최기석이 쿵짝을 맞춰 껴들었다.

“요즘 들어 심장마비로 돌연사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늘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심장마비에 대한 공포심은 더욱 커졌죠.”

“그래서 후반전 마지막 컨텐츠는 심장마비로 선택했습니다.”

[옐로우아이드 커피: 밤중에 가슴 욱씬거리면 레알 무서움. 혼자 살아서 병원 데려갈 사람도 없는데.]

[스몰마켓: 지인 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이 있어요. 완전 건강한 분이었는데 깜놀함.]

“우선 심장마비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심장마비란 흉통 호흡장애등의 증상이 나타난 후 한 시간 이내에 심장질환 원인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뜻하며 그 원인으로는 협심증, 급성 심근경색…….”

“잠깐만요. 하트 최 선생님.”

정설화가 설명을 자르고 들어왔다.

“방송 중에 진지 드시면 안 된다고 했어요? 안 했어요?”

“그래도 기본 정의랑 개념 정도는 알아야…….”

“그건 시청자들도 검색하면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제일 중요한 정보만 전달해야죠.”

정설화가 똑 부러지게 설명권을 가로챘다.

“저는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하는 몇 가지만 설명해 드릴게요. 나머지는 부차적인 거라서 덜 중요하니까요.”

설명이 이어졌다.

첫째, 심장마비의 골든타임은 4분.

4분 이내에 심장을 살리지 못 할 경우 심정지로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며, 이것이 뇌사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심장마비 환자들은 대부분 며칠에서 몇 개월 전 흉통과 호흡곤란, 두근거림 등의 증상을 느낀다. 위와 같은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경우 반드시 병원을 찾을 것.

셋째, 본인 또는 주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할 것.

[철인18호: 심장마비 증상이 왔을 때 심호흡을 하고 크게 기침하면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맞는 건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철인 18호 님.”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최기석이 번개처럼 치고 나갔다.

하트 정의 압도적인 지분율과 맞서기 위해서는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게 최선이었다.

“한때 방금 말씀하신 대처법이 떠돌아다닌 적이 있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설명 드릴게요.”

정설화가 씽긋 웃으며 그의 순서를 서리해 갔고 최기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정설화 아니 하트 최, 당신이 어째서…….

“이 괴담의 근본적인 원리는 기침을 하면 심장이 쥐어짜지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장마비를 기침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가 심장마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

“누군지 몰라도 이 괴담을 만든 분은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아요. 이런 논리라면 누구나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요. 한 쪽 다리가 물에 빠지기 전에 다른 다리로 물 위를 걷는 방식을 반복하면 되니까…….”

그녀가 말을 마치기 전에 최기석이 끼어들었다.

“기침을 하면 흉강의 압력이 높아지며 뇌 안의 혈압을 일시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그게 심정지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증상을 느끼자마자 119에 신고하는 겁니다. 아셨죠?”

심장마비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실습시간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CPR을 배워 볼 텐데요. 실습을 도와줄 샌드백 PD님, 이쪽으로 와 주세요.”

“아, 네.”

샌드백 PD가 최기석 옆에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제가 인형에 CPR을 펼칠 건데요. 잘 보고 따라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막이 오른 CPR.

최기석은 정석적인 방법으로 인형에게 흉부압박을 하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의료종사자가 아닐 경우 인공호흡은 생략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어서 제세동기 사용법을 알려 주는 것으로 CPR 교육이 끝났다.

“그럼 저는 흉부압박만 하면 되는 거죠?”

“그게 좋겠네요. 그래야 더 실전 같을 테니까.”

“시작할게요.”

샌드백 PD가 검지로 안경을 올린 후 인형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최기석이 가르쳐 준 대로 인형의 가슴에 깍지 낀 손을 올려놓았다.

“팔은 직각으로 펴세요. 안 그러면 제대로 압박이 안 됩니다.”

“아, 네.”

샌드백 PD가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그는 마치 심장마비 환자를 코앞에 둔 것처럼 열심히 압박에 나섰다. 과연 열심의 아이콘이라는 별칭은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열심이긴 한데 조금 이상하다?”

“뭐가?”

“자세히 봐 봐.”

최기석의 지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설화.

그녀는 곧 샌드백 PD의 압박법의 문제를 눈치채고 얼굴을 붉혔다. 거기에 시청자들의 채팅이 더해져 스튜디오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올때메론바: 샌드백 PD 미쳤다. 오늘도 한 건 하네. ㅋㅋㅋㅋ. 이거 실화냐?]

[뉴욕우유: 신개념 흉부압박인 듯. 발정난 개가 모티브냐?]

[강무진의노룩패스: 딸폐소생술 ㅇㅈ? ㅇㅈ?]

채팅창에 떠오른 딸폐소생술이라는 단어에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최기석과 정설화는 물론이요, 촬영 스태프들까지 배를 잡고 웃었다.

정작 당사자인 샌드백 PD만 구슬땀을 흘리며 흉부압박을 할 뿐이었다.

“PD님. 이제 됐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았죠?”

샌드백 PD가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을 뽐냈다.

“열정점수는 100점인데 실습점수는 10점만 드릴게요.”

“왜…… 왜요?”

“제가 다시 시범을 보여 줄 테니까 뭐가 잘못됐는지 맞춰 보세요.”

최기석이 재차 흉부압박 시범을 보였지만 샌드백 PD는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꼬……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나도 분량 뽑아야지.”

정설화의 걱정을 만류한 그는 세계를 구하기 직전인 영웅처럼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망가질지라도 정설화에게 뺏긴 방송 분량을 되찾고 싶었다.

퍽! 퍽! 퍽! 퍽!

최기석이 샌드백 PD 스타일로 흉부압박을 하자 스튜디오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어졌다.

모두가 끓어오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는데 샌드백 PD만이 부끄러운 듯 최기석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랬다.

최기석은 가슴을 전혀 압박하지 않은 채 오로지 허리만 위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발정난 강아지를 연상케 했다.

사람들이 왜 자신의 흉부압박을 보고 웃었는지.

딸폐소생술(?)이라는 굴욕적인 이름을 붙여 줬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PD님,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겠죠?”

“……네.”

샌드백 PD가 고개를 숙인 채 개미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샌드백 PD와 함께한 심장마비 처치 실습이 끝났다.

정신없이 달려온 슈리텔도 이제 종착역에 다다랐다.

“지금부터 슈리텔의 열 번째 경연의 순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유린의 말에 최기석과 정설화는 귀를 쫑긋 세웠다.

후반전 중간 순위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가지 않았던가.

잘하면 최상위권도 노려볼 만했다.

“가장 먼저 5위를 발표하겠습니다. 5위는 내 꿈은 축구왕 사커맨님. 사커맨님이 5위를 차치하셨습니다. 이어서 4위를 발표하겠습니다. 4위는 패션 홍님. 축하드립니다.”

이어진 3위를 확인한 순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3위는 슈퍼 비너스.

인기절정의 걸그룹 멤버를 두 사람이 제친 것이다.

“슈리텔 열 번째 경연, 그 대망의 1위는…… 축하드립니다. 하트 최, 하트 정님.”

서유린의 발표에 최기석과 정설화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꼴찌나 면하자는 마음으로 방송에 임했건만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저절로 어깨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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