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원 병원 (6)
나흘 뒤 아침.
최기석은 차를 타고 일산으로 이동 중이었다.
오늘은 대망의 슈리텔 촬영이 있는 날, 운전대를 잡은 손에 괜스레 힘이 들어갔다.
‘잘할 수 있을까?’
그가 원했던 것은 점심 마당이나 내 가족 주치의처럼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형태라면 사람들의 주의를 훨씬 잘 끌 자신이 있었다.
강의라면 카리스마 스탯의 영향을 받을 테니까 말이다.
다만 실시간으로 접속자의 채팅과 부딪쳐야 하는 슈리텔은 그의 힘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슈리텔 출연을 허락한 이유.
그것은 슈리텔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슈리텔로 조명 받은 전문가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외식사업 전문가 박종원은 슈리텔 출연 후 더욱 친근한 이미지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밖에 헤어 디자이너 차홍연, 종이접기 선생님 김병인 등도 라이징 스타가 되었다.
“여보. 긴장했어?”
“조금.”
“나 우리 여보가 긴장하는 거 처음 봐.”
정설화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심장이식 때도 긴장을 모르던 사람이 웬일이야?”
“차라리 방송국보다 수술실이 더 편할 것 같아. 지금은.”
“귀여워.”
평소 긴장을 모르던 그의 모습을 보며 정설화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최기석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히 슈리텔 출연을 결심했다. 방송을 잘 이끌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를 돕겠다는 마음이 컸기에 큰 부담이 없었다.
“오늘 출연자는 알아?”
정설화가 화제를 돌렸다.
“으음…… 정규직인 김구린 씨하고 슈퍼 비너스라는 걸그룹 멤버 두 명, 축구선수 이찬수 씨,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분이 나온다는 데?”
“걸그룹 멤버면 우리 여보 또 눈 돌아가겠네.”
“절대 그럴 일 없어.”
“왜? 직캠 챙겨 보는 러블리 걸즈가 아니라서?”
정설화의 비수가 폐부를 찔렀지만 최기석은 당혹감을 감추며 머리를 굴렸다.
동물적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할 경우 하루 종일 볶일 거라는 것을.
“까짓 거 러블리 걸즈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 설화 따라가려면 백 년은 멀었지.”
“에이, 거짓말.”
“진짜라니까. 러블리 걸즈를 한 트럭 갖다 줘도 난 우리 여보밖에 없어. 사랑해.”
“……응. 나도.”
발그레한 얼굴의 정설화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여기 호수 공원 있잖아. 녹화 끝나고 거기나 걸을까?”
“호수공원? 어차피 거기서 거기 아니야?”
“일산 호수공원 몰라? 여기는 다른 호수공원이랑 달라. 엄청 넓어. 그리고 근처에 라페스타라고 쇼핑몰 있는데 거기도 가 볼만하데.”
차가 신호에 멈췄을 때 최기석이 정설화를 응시했다.
“솔직히 말해. 나 도와주러 온 거 아니지. 끝나고 놀 생각으로 왔지?”
“그…… 글쎄?”
최기석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정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알콩달콩 대화 속에 도착한 방송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대기실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늘어서 있었다.
[하트 최, 하트 정]
[최기석 흉부외과 선생님, 정설화 심장내과 선생님 대기실.]
문에 걸린 인쇄물을 확인하자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두 사람은 인쇄물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담당 PD가 와서 오늘의 방송진행 과정에 대해 설명했고 그 뒤를 슈리텔의 터줏대감 김구린이 이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김구린이 살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네, 반갑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슈리텔에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긴장 많이 되시죠?”
“말도 마세요.”
“긴장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편하게 하세요. 지식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이다 싶은 마음으로 즐기면 그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으시네요? 트리플 보드를 획득하셨다고 해서 나이 지긋한 남성분을 생각했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군요. 메이죠 클리닉에는 조기진급 시스템이 있어서 비교적 빨리 수련을 마쳤습니다.”
“오호라. 미국 병원은 조기 진급 시스템도 있나보죠?”
흥미를 드러내는 김구린을 보며 최기석은 속으로 웃었다. 그가 이 정보로 다른 사람에게 잘난 척할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 메이죠에만 있는 시스템이죠.”
“그것 참 신기하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김구린이 운을 뗐다.
“그게 선생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제가 요즘에 가슴이 아파서 그런데 병원에 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진찰을 받아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아픈 건 거의 한 달이 다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가슴을 꽉 쥐어짜는 것처럼 아프더군요.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플 때도 있고요. 기분 탓인지 숨 쉬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증상은 언제 가장 심하죠?”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크게 아픕니다. 다른 때는 그나마 참을 만한 수준이고요.”
최기석은 김구린과 문진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파악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진단명을 확인했다.
‘그랬던 건가?’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불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김구린은 공황장애에 걸렸다.
공황장애에 걸렸을 경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급작스레 불안감이 몰려오며 동시에 흉통, 호흡곤란, 현기증 등의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그 증상이 심혈관계 질환이나 호흡기 계통의 질환과 유사하기에 해당 환자는 흉부외과나 심장내과, 호흡기내과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제 생각에 흉부외과 쪽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 힘든데요?”
“네.”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몸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간과하기 쉬운 요소가 스트레스죠. 혹시 최근에 견디기 힘든 일을 경험하고 계신 건 아닙니까?”
“…….”
“스트레스는 다양한 증상을 유발합니다. 소화불량이 생길 수도 있고 두통이 생길 수도 있고 김구린 씨가 말한 심장이나 호흡기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게 제 마음의 문제라는 뜻입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아…….”
최기석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김구린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미소를 머금었던 얼굴이 절망감에 젖어 들었다.
표정 변화가 마치 가면극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극적이었다.
“안 그래도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골머리를 썩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확실하게 느껴지는 게 있군요.”
“…….”
“그럼 저는 흉부외과가 아니라 정신과로 가야하는 거겠죠?”
“네. 우리나라는 유독 신경정신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은데 전혀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게 몸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도 있는 법 아니겠어요? 정신과에 간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방송이 끝나는 대로 꼭 정신과에 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답은 이미 김구린 씨가 가지고 계셨어요. 저는 조금 거들었을 뿐입니다.”
김구린이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기석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리텔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그럼 지금부터 슈리텔의 열 번째 경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유린의 우렁찬 외침이 퍼졌다.
출연자들은 손을 모아 파이팅을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최기석은 정설화와 방으로 들어가 대본을 재점검했다.
이미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했지만 방송시간이 다가오자 괜히 긴장됐다. 그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정면에 늘어선 카메라들인데 카메라를 의식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경직된 행동이 나왔다.
“명찰 삐뚤어졌다.”
곁에 앉은 정설화가 그의 명찰을 매만져 주었다.
“고마워. 근데 우리 여보는 긴장 안 되나 봐?”
“난 별로.”
“부럽다.”
짧은 대화 후 PD가 두 사람에게 눈치를 주었다.
“지금부터 생방송 시작합니다. 준비해 주세요. 하나, 둘, 셋!”
말이 끝나기 무섭게 채팅창으로 시청자들이 유입되었다.
다양한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채팅이 시작되면서 최기석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래서 채팅창 읽는 것을 포기하고 소개부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원병원 흉부외과에서 과장직을 맡고 있는 최기석입니다.”
“저는 세원병원 심장내과 교수 정설화예요.”
“저희 둘 다 심장 분야를 전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닉네임을 하트 최, 하트 정으로 만들어봤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어떤 것 같아요?”
[슈리텔 빠돌이: 벌써부터 핵노잼의 기운이 풍긴다. ㅋㅋㅋㅋ]
[정글 이즈리언: 작명센스가 일차원적이네. 의사들은 원래 이럼?]
[어머니는 살아계심: 흉부외과 캐안습, 지못미 ㅠㅠ]
최기석은 채팅창을 한 번 훑어보고 설명을 이어 갔다.
딱히 채팅을 받아쳐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전반전 콘텐츠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여러 가지 심혈관 질환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대한 예방법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
“여러분. 세계 사망원인 중 1위가 무슨 질환인지 아십니까?”
“바로 심혈관 질환이에요.”
정설화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암이라 불리는 악성종양이 사망원인 1위고 심혈관 질환이 2위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심혈관 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뜻이죠.”
[마음의 양식: 사망원인 2위가 심혈관 질환인데 흉부외과 대접은 왜 그 모양임?]
“기석아. 이거.”
정설화가 속삭이며 채팅창을 가리켰지만 채팅이 워낙 빨리 올라가서 해당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안 보이는데?”
“흉부외과가 왜 그렇게 천대 받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어.”
“후반전에 이야기할 거니까 일단 넘어가자.”
최기석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심혈관 질환에 대한 지식 전달에 나섰다. 심혈관 질환의 주요 질병인 고혈압, 허혈성 심질환, 관상동맥 질환 등을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예방법을 덧붙였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내용을 전달하자.
이를 목표로 했기에 전문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알기 쉬운 말로 풀었다.
[아직도 2G폰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IGI 김유전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할배국밥집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방송을 시작한지 고작 이십 분, 방에 있던 시청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망하겠어.’
정설화는 최기석을 힐끔 바라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시청자와 소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로지 자신이 준비해 온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간혹 댓글을 읽었지만 본인의 정보와 관련된 질문뿐이었다.
더욱 큰 문제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조차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관상동맥 질환을 예방하려면…….”
“여보. 잠깐만.”
정설화가 최기석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왜?”
“이대로 가다간 방송 망하겠어. 개인기라도 해 봐.”
“뜬금없이 개인기를? 그리고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개인기가 어디 있어?”
“다들 여보가 재미없다고 하잖아. 노잼 흉부외과 의사래.”
“심혈관 질환으로 어떻게 사람을 웃겨?”
“최소한 설명이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동맥경화랑 부정맥이 어떻게 재미있을 수 있냐는 말이지. 맹구 흉내라도 내면서 할까?”
[당구장엔 짜장면: 역시 불구경 다음은 싸움 구경이지.]
[지금 PC방입니다: 두 분 혹시 부부 사이세요?]
[칼카나마철: 개인기 재미있으면 후반전까지 달립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잠들었던 채팅창이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