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원 병원 (2)
“기관삽관 하고 리도카인 100m IV로. 바이탈은 어때?”
“심박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럼 에프네프린 원 앰플도 주고.”
최기석의 지시에 치프 레지던트인 이다니엘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사이 펠로우 이현이 로봇 수술 세팅에 나섰고 마취의와 인턴, 소독간호사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제세동기 패치는 붙였어?”
“아…… 아직 못했습니다.”
“이미 수술 부작용을 한 차례 겪은 환자야. 언제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아.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알겠습니다.”
심용준이 제세동기 패치를 가슴에 붙이고 항응고제 헤파린을 투여하는 것으로 수술 준비가 끝났다.
“지금부터 PCI 부작용으로 인한 관상동맥의 급성 박리와 관상동맥 혈전증에 대한 수술을 시작한다.”
위이이잉.
침묵을 지키던 로봇팔이 환자에게 향했다.
“현아. MIDCAB을 진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절개법이 몇 가지나 있지?”
“크게 좌전소절개, 부분 흉골절개, 흉골변절개가 있습니다.”
“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절개법은?”
그의 기습 질문에 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 환자에겐 좌전소절개가 가장 효과적이야. 내흉동맥 박리가 편하고 절개에 따른 합병증도 적거든.”
최기석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수술을 진행하며 스태프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단순히 수술을 보여 준다고 해서 아랫사람들이 모든 걸 소화하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이유.
이런 것들을 설명해 줘야 비로소 온전한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스으으윽.
대화를 하는 동안 환자의 좌측 유두 밑으로 7센티미터 가량의 횡절개창이 생겨났다.
“내시경 준비하겠습니다.”
이현이 절개창에 포트를 설치했다.
포트는 총 다섯 개로 그중 두 곳에는 카메라를 집어넣어 수술 시야를 확보하며 나머지 세 부분으로는 수술 도구가 들어가게 된다.
지이이잉.
최기석은 페달을 밟으며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로봇 수술의 경우 용의 눈의 최적화 모드가 발동하지 않는다. 본인의 눈이 아닌 카메라를 통해 수술 부위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야 확보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수술 부위를 확인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아. 션트(작은 침).”
“네.”
그의 말에 이현이 로봇팔에 션트를 연결했고 최기석은 이를 포트 안으로 밀어넣은 후 관상동맥으로 이동시켜 혈전이 생긴 부위에 위치시켰다.
션트가 삽입되면서 혈전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혈류가 흘러들었다.
‘수술 끝날 때까지만 버텨 줘.’
탁. 탁. 탁.
페달을 밟아 수술 시야를 돌리자 박리가 일어난 관상동맥이 눈에 띄었다.
관상동맥의 내막 일부가 찢어졌으며 그 틈으로 실줄기 같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긴 출혈이 혈전을 일으켜 관상동맥을 막은 듯했다.
위이이잉.
소작기가 달린 로봇팔을 포트로 집어넣은 최기석은 내막 부위를 혈관 벽에 밀착시켜 지졌다.
그러자 내막이 타면서 혈관에 찰떡처럼 달라붙었다.
소작한 내막을 살짝 건드렸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지금부터 관상동맥 우회술이다.”
최기석은 메스로 내흉동맥 박리 작업에 나섰다.
써전의 손이 아니라 로봇팔이 수술을 한다는 점.
써전의 눈이 아니라 내시경을 통해 수술 시야를 확인한다는 점.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MIDCAB과 CABG의 차이는 없었다.
‘와. 이게 꿈인가?’
이다니엘은 최기석의 처치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로봇 수술 보조를 여러 번 들어갔지만 최기석만큼 콘솔을 다루는 의사는 처음 봤다.
페달을 밟으며 최적의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요, 로봇팔을 마치 자신의 팔처럼 다루고 있었다.
한때 메카물이라고 불리는 만화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최기석은 그런 로봇만화의 주인공 같았다.
콘솔을 조종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문득 인턴 심용준과 눈을 마주쳤는데 그 역시 이다니엘과 같은 마음인 듯했다.
선배, 로봇을 이렇게도 다룰 수도 있는 건가요.
심용준의 눈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취의 선생님.”
“네.”
“내흉동맥 박리 끝났고 우회로 연결할 겁니다. 혈압이 떨어지거나 부정맥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환자 체온 컨트롤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부탁에 마취의가 환자가 누운 자리에 따뜻한 담요를 깔고 로젯의 온도를 높였다.
처치를 확인한 최기석은 메스로 환자의 심낭을 갈랐다.
이전과는 달리 신중한 손놀림.
직접 절개한다면 절개의 깊이를 손으로 느끼겠지만 로봇 수술의 경우 그럴 수가 없었다.
행동이 신중해지는 건 당연했다.
최기석은 평행 절개를 끝내고 박리한 내흉동맥과 폐쇄가 일어난 관상동맥에 우회로를 만들었다. 에틸렌 용액으로 누수를 확인했지만 봉합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수술 부위를 닫으며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환자의 상태가 양호로 돌아왔다.
MIDCAB을 택한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들 고생했다. 내려가서 커피라도 한잔하자.”
“네.”
최기석이 앞장서고 그 뒤를 스태프들이 따랐다.
‘여섯 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세 시간 만에 끝냈다고? 괴물이네, 괴물.’
로젯을 나가던 이다니엘은 벽시계를 확인하고 또 한 번 감탄했다.
* * *
식도천공과 MIDACB 수술을 무사히 끝낸 일행은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응급환자를 연달아 수술한 것치고는 스태프들의 표정은 밝았다.
최기석이 놀라운 속도로 수술을 끝냈기 때문이다.
“역시 과장님이십니다. 수술을 돕는 내내 눈이 호강한 기분입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다니엘과 이현이 동경하는 눈빛으로 최기석을 응시했지만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상대가 윗사람이 됐건, 아랫사람이 됐건 칭찬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수술에 나선 건 환자를 위해서였기에.
“잘 봤다니 다행이네. 그나저나…….”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고생 많았다. 자기 일 하느라 바빴을 텐데.”
“아닙니다. 과장님이 불러 주시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저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다니엘이 화제를 돌렸다.
“뭔데?”
“과장님께서는 대체 어떻게 수련을 하셨길래 지금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과장님처럼 되려면 혹시 저도 메이죠로 가야 하나요?”
질문하는 이다니엘의 눈이 뜨거웠다.
최기석의 수술을 지켜본 후 그는 자신도 최기석처럼 되고 싶은 욕심을 품었다.
최기석은 멋있었다.
과장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응급실을 찾아 환자를 살폈으며 믿기 힘든 실력으로 환자들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라마 속 천재 의사처럼 믿음직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야. 가뜩이나 사람이 없어서 너희들이 잡일에 치인다는 거 다 알지만 실력을 키우려면 따로 시간을 내서 수련을 해야 돼.”
“수련이요?”
“그래. 세상 사람이 다 장단점이 있는 것처럼 흉부외과의에도 장단점이 있어. 그러니까 강점은 더 키우고 단점은 보완할 필요가 있지. 우선 현이.”
최기석의 시선이 펠로우 이현에게 향했다.
“넌 우선 식도 파트 더 공부해야 돼. 너도 알 거야. 다른 대학병원이었으면 식도천공 환자를 집도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였다는 거.”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흉부외과에도 폐외과는 없어. 폐식도외과가 있을 뿐이지. 설령 폐 수술을 전문으로 한다고 해도 식도 파트에 대한 기본기는 갖춰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 혹시 지금까지 집도 몇 번이나 해 봤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아직 펠로우 수련 중이라서 교수님이 집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역시 그게 문제였구나.”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하는 내내 지켜봤는데 네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어.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으음…… 잘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야. 본인을 믿지 못하면 주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앞으로 일주일에 네 번 이상 집도 스케줄 잡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네…… 네 번씩이나요?”
“네 번씩이 아니라가 ‘네 번밖에요?’라고 하는 게 맞는 거야.”
최기석은 집도의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 그것을 이겨 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과장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설명을 들은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집도 횟수가 늘어나는 게 두렵기는 했다. 수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직접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기석이 진심으로 자신이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이 느껴져 생각을 고쳐먹었다.
누구도 이런 조언을 해 준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선임 교수는 그가 가진 지식을 야금야금 풀면서 자신을 뜻대로 부려먹으려고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거기에 휘둘릴 수는 없는 노릇.
실력을 키워서 멋진 흉부외과의로 당당하게 서고 싶었다.
“다음은 이다니엘.”
“네. 과장님.”
“네가 개선해야 할 점은…….”
최기석은 수술하면서 파악한 스태프들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거의 모든 흉부외과 수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집도할 수 있어서 스태프를 관찰할 여유까지 있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맞춤형 조언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최기석은 세 사람에 액티브 스킬 ZZUL을 사용했다. 이는 남수단에서 의료봉사 중 얻은 스킬로 후배 양성에 특화되었다.
[ZZUL Lv.1]
- 동료 스태프와의 상호작용으로 상대방의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습니다. 향상 시킬 수 있는 능력은 상태창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스탯과 마음가짐을 포함합니다.
- 본인보다 스탯이 높은 상대에게는 ZZUL이 불가능합니다.
- 최대 5명의 스태프에게 성장의 표식을 남기며 이 표식을 가진 스태프의 스탯 능력치 상승폭이 3배로 증가합니다.
- 레벨이 상승할수록 능력치 상승폭이 증가합니다.
세 사람에게 성장의 표식을 남겼으며 각각의 임무까지 전달했다.
[이현: 주 4회 집도 성공/임무 완수기간 1개월]
[이 다니엘: 봉합 연습 및 논문 독파/임무 완수기간 3개월]
[심용준: 병동 환자 관리/6년]
[해당 스태프들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경우 그들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슬슬 올라가자. 다른 사람들 바쁘겠다.”
“네.”
최기석은 병동으로 올라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스승 송명진과 야사다 밑에서 수련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직접 제자를 키우고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 * *
그날 저녁.
업무시간이 끝난 최기석은 정설화와 함께 차를 타고 퇴근 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게 피부에 확 와닿는 걸?”
“동감.”
그의 말에 정설화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시간이라 도로가 꽉 막혔다. 차가 신호에 계속 걸리면서 귀가시간이 점점 더뎌지고 있었다.
“오늘은 어땠어?”
“외래진료가 없어서 딱히 한 것도 없어. 심장내과 스태프들이랑 대화하고 남는 시간에는 책 보고. 여보는?”
“식도천공하고 MIDCAB 수술한 것 정도?”
“첫날부터 신고식이 화려하네. 세원 병원 큰일 났다. 전설의 환타가 강림했으니까 이제 응급환자로 넘쳐 날 거야.”
“부정은 못하겠네.”
최기석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