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85화 (384/407)

매듭 (7)

회진을 마친 김한철과 신지훈은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두 사람의 화두는 단연 오늘 부임한 최기석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진짜.”

탁!

김한철이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았다.

“띠동갑인 녀석이 흉부외과 과장이 됐잖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교수님이 참으셔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현재 유일한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잖아요.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조지환 병원장님이 그 친구를 꽂았다는데요?”

“뭐. 조지환 병원장님이?”

김한철의 눈썹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네. 병원장님이 공공연히 그렇게 말씀하고 다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최 과장에게 손대지 말라는 뜻으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병원장님이 대체 왜…….”

김한철은 과거 조지환 밑에서 수련을 했으며 그의 정치적인 수완에 크게 탄복했다.

조지환은 윗사람에게는 쓸개라도 빼줄 것처럼 굴었으며 아랫사람에게는 태산처럼 엄격했다. 누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인지 칼처럼 골라내기도 했다.

한때는 그가 의사보다 정치인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조지환은 변했다.

정확히 말하면 병원장이 된 후부터 예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병원 내 정치관계보다는 환자를 챙기는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만약 조지환이 변심하지 않았다면 흉부외과 과장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을 텐데…….

김한철은 유배당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세원 병원에서 승진하는 건 포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지환 병원장님이 최 과장을 봐준다면 승산이 없습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만들어야지. 자네도 알 거야,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다는 말.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깎아내리는 건 오히려 쉬워.”

잠시 대화가 끊긴 동안 신지훈이 운을 뗐다.

“교수님. 제가 사실 교수님을 좋아하고 많이 따르지만…… 꼭 그러셔야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최 과장 좋은 사람입니다. 환자를 생각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의사에요. 어리다고 깎아내릴 친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가 분쟁지역인 남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한다는 게 솔직히 말이 됩니까?”

“자네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군.”

“제 말은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김한철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침묵이 감도는 회의실.

최기석은 맞은편에 앉은 레지던트들과 인턴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실력은 둘째치고 체력이 말이 아니었다.

치프의 체력이 4로 가장 높았고 나머지는 2에서 3을 벗어나지 못했다.

저 수준이라면 간신히 비몽사몽한 상태를 넘어선 수준.

난이도 높은 술기를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물며 이곳보다 인원이 1.5배 많았던 의진대 흉부외과에서도 늘 피곤을 달고 살았는데 여기 있는 후배들이 어떤 심정으로 일하고 있을지 십분 이해가 갔다.

“다들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었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레지던트들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네가 막내지? 이름이?”

“심용준입니다.”

“중국집에 전화해서 짜장면 시켜. 오늘은 한 끼 든든하게 먹고 시작하자.”

“아…… 알겠습니다.”

심용준이 주문을 하는 사이 레지던트들은 여전히 최기석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과장이라는 직책과 더불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짜장면 먹어 본 지 오래 됐지?”

“아, 네.”

“나 수련할 때도 그랬거든. 한 번은 뭣도 모르고 짜장면을 시켰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 응급수술 들어가면 면이 다 불어 버리니까 면 종류를 주문하는 건 금기잖아?”

최기석은 옛일을 생각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내가 수련하면서 느낀 거지만 흉부외과 근무는 너무 혹독해. 잠은 늘 부족하고 응급환자는 계속 오지, 사람이 없어서 오프도 제대로 못 챙기지. 지옥도 이런 지옥이 따로 없다니까.”

“…….”

“그런 의미에서 우리 병동의 대들보인 너희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시켜 주고 싶다.”

입원환자들을 관리하는 건 팔 할이 레지던트의 몫이다.

교수나 펠로우들은 외래진료와 수술을 하느라 병동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레지던트들의 컨디션이나 나쁘면 병동 환자의 관리 수준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혹시 근무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둔 거 있어?”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조금 그렇지만 솔직히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치프 레지던트 이다니엘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애초에 우리 과에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다른 과는 인턴을 열 명씩 받기도 하는데 우리는 지금 용준이 한 명밖에 없습니다. 레지던트 1년 차는 아예 없어서 2년 차인 해철이가 고생하고 있고요.”

“…….”

“저희를 신경 써 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이다니엘이 고개를 숙인 채 말끝을 흐렸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충분히 전해졌다.

“아무래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겠지. 이놈의 흉부외과는 언제쯤 사람들로 득실거릴 건지…….”

최기석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건데 내가 일주일에 두 번 당직을 서 줄게. 그 정도만 해도 너희들 오프는 충분히 챙길 수 있을 거다.”

“과…… 과장님이 당직을요?”

이다니엘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과장이 레지던트들을 대신해서 야간당직을 선다?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해가 며칠 연속으로 서쪽에서 뜬다면 혹시 모를까.

“안 됩니다. 과장님이 당직을 설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그, 그게…….”

최기석의 역질문에 그가 당황한 듯 볼을 긁적거렸다.

“과장님이시니까요. 과장님이 레지던트가 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은 의사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만…….”

“월요일하고 수요일 당직은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까 근무표 새로 짜. 이건 명령이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레지던트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짜장면이 도착했다.

최기석은 짜장면을 먹으면서 레지던트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처음에는 그의 눈치를 봤지만 한 젓가락을 들고 나니 게 눈 감추듯이 그릇을 비워 나갔다.

돌을 씹어 먹어도 되는 건 성장기의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흉부외과 레지던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때쯤 이다니엘이 운을 뗐다.

“과장님은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 뭐랄까? 권위의식이 없으신 것 같고 저희를 진심으로 챙겨 주시려고 한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다니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사들의 위계질서는 군인만큼이나 뚜렷하다. 레지던트 연차는 말할 것도 없었고 직책이 펠로우나 교수급으로 올라갈수록 신적인 존재가 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배가 후배를 폭행하기까지 할까.

그런데 최기석은 과장에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레지던트들을 푸근하게 대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사건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 파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는 근본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야. 직책이 있다고는 해도 다 동료라고 볼 수 있지.”

“…….”

“그렇다고 나랑 너무 맞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의 농담에 레지던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병원, 우리 과를 바꾸는 건 나와 너희들이 함께해야만 가능해. 그러니까 다 같이 잘해 보자.”

최기석은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스킬을 사용했다.

[격려를 사용하셨습니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체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휘이이잉.

그의 몸에서 뿜어진 빛이 레지던트들의 휘감으면서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근무 투입.”

“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집무실에서 등받이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외래진료가 없었기에 당장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트레이닝 룸에 접속해 수술 연습을 하고 흉부외과를 발전시킬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인원 부족이 제일 큰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톡. 톡. 톡.

미간을 찌푸리며 펜 끝으로 테이블을 건드렸다.

갖은 상념 속에 빠졌던 그는 곧 집무실을 나와 의국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과장님.”

레지던트 2년 차 심용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뭐해?”

“차트 입력 중입니다.”

최기석은 뒤에서 심용준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환자는 확장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었는데 며칠 뒤 호프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스승 송명진과 라이브 수술을 한 후 호프 수술은 흉부외과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는데 지금은 호프 수술을 하지 않는 흉부외과가 없을 정도였다.

띠리리리링.

갑자기 전화가 울렸고 통화하는 심용준의 얼굴에 심상치 않은 기색이 서렸다.

“응급실? 뭐래?”

“그게…… 질소과자를 먹은 아이가 방금 막 실려 왔다고 합니다. 과자를 먹던 중 질소까지 삼켰는데 하필이면 그 질소가 목에 걸렸나 봅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이 하임리히법으로 질소는 빼냈는데 식도 손상이 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내려갈…….”

“내가 갈 테니까 넌 네 일 봐.”

최기석은 심용준의 말을 끊고 문 앞에 섰다.

“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시키는 대로 해. 책임은 내가 져.”

의국을 벗어난 그는 신속하게 응급실로 내려갔다.

“질소과자로 질식했다는 환자 어디 있어요?”

“저, 저쪽에 있습니다. 따라오세요.”

응급의학과 인턴이 그를 발견하고 놀란 토끼눈을 했다.

흉부외과 과장이 응급실로 내려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선생님. 우리 아이 좀 살려 주세요.”

그가 환자가 누운 침상 옆에 서자 보호자가 그의 가운을 붙잡았다.

“보호자분 진정하세요.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최기석은 보호자를 안정시키고 아이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3/10

주 증상: 발열 / 저혈량성 쇼크

아픈 부위: 식도 / 기관지 / 위 / 종격동

진단명: 식도천공 / 패혈증 / 종격동염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가족력: 부(夫) 폐암 사망

주의 요소: 없음

질소과자가 목에 걸렸을 때 식도천공이 발생한 듯싶었다.

식도천공의 경우 골든타임이 넘어가면 사망률이 5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현 상황을 감안하면 환자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과장님. 환자 혈압 90/60 mmHg, 맥박은 130회로 빈맥 소견 있으며 호흡수는 15회, 체온은 37도입니다. 흉부 엑스레이 및 식도 조영술 결과 식도천공이 의심됩니다.”

“의심이 되는 게 아니라 식도천공이야.”

인턴의 보고를 들은 그는 환자에게 기관삽관 후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말을 이었다.

“수술방 잡아. 당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