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1)
붕대를 잘라 내자 드러나는 환자의 가슴.
환자는 총 세 군데의 자상(날카로운 물건에 찔려 생기는 상처)이 있었는데 심장 가까운 곳에 각각 하나씩, 그와 조금 떨어진 우측 폐 부위에 자상이 존재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지?’
에비앙은 상처를 내려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골든타임은 이미 물 건너갔다.
제아무리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라도 환자를 살릴 방법은 없는 듯했다.
그나마 수술 환경이라도 받쳐 준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출혈이 여전하네요. 최대한 빨리 개흉술을 펼쳐야겠어요. 에비앙은 소독부터 서둘러 주세요.”
“아, 네.”
에비앙이 자상 부위와 그 인근을 넓게 소독하는 동안, 최기석은 수술 과정을 꼼꼼 되짚었다.
적십자 병원에서 챙겨 온 블러드 팩은 고작 세 개.
환자의 체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2단계.
아직 마음을 다잡지 못한 대장관 외과 전공 에비앙의 보조.
이 모든 것을 감안해서 가능한 빠르고 효율적인 수술을 할 필요가 있었다.
타다다다닥.
뒤늦게 집도 소식을 들은 마취의가 필요한 약물과 도구를 챙겨 와 전신 마취에 나섰다.
그는 마취를 하는 도중에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환자의 심각한 상태.
수술실이 아닌 앰뷸런스 후방에서 집도한다는 사실을 크게 우려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취는 끝났습니다만…… 미스터 최, 정말 괜찮겠어요?”
“저는 괜찮은데 환자가 안 괜찮을까 봐 걱정이네요.”
최기석은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마취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만 돌아가서 쉬세요.”
“네? 진심입니까? 바이탈 관리는 누가 하고요?”
“제가 수술하면서 확인할게요. 사람이 많으면 움직이기 힘들어서요. 공간이 협소하다는 건 충분히 공감하시죠?”
최기석의 말에 마취의는 앰뷸런스를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건투를 빌겠어요.”
마취의가 떠난 후 최기석은 심호흡을 한 뒤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길어진 수술 준비시간.
이를 보충하려면 더욱더 분발해야 하리라.
그런데 메스를 손에 들려고 하는 찰나,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기석아!
정설화가 가운을 휘날리며 헐레벌떡 구급차로 달려왔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런 게 아니라 도와주고 싶어서.”
“당직이잖아. 진료실에서 환자 보라니까.”
“없는 환자를 어떻게 진찰해. 여기서 수술을 돕다가 환자가 오면 그때 돌아갈게.”
그녀는 야무지게 수술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구급차 바깥에서 수술을 도울 준비를 했다.
최기석을 응시하는 두 눈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알았어. 그럼 소독간호사 역할을 대신해 줄래?”
“응.”
“지금부터 흉부외상 환자에 대한 좌심방 및 우심방 재건술, 혈흉 처치를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최기석은 에비앙이 건넨 메스로 환자의 목 위쪽부터 명치까지를 세로로 내리그었다.
스으으윽. 철컥!
절개창을 낸 그는 에비앙과 힘을 합쳐 수술 부위에 견인기를 장착했다. 고정시킨 견인기를 좌우로 당기자 피부가 벌어지며 흉골이 드러났다.
“설화야 견인기 계속 벌려 줘. 피가 튈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지이이잉.
최기석은 전기톱으로 복숭아 모양의 흉골을 반으로 쪼갰다.
‘젠장!’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시간소모가 컸다.
바짝 붙어서 어시스트하는 에비앙과 접촉사고가 날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흉골이 갈라지면서 대망의 가슴이 드러났다.
자상으로 인한 상처로 폐부와 심낭 인근이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치이이익.
에비앙의 석션으로 피가 줄어들자 수술 시야가 조금씩 맑아졌다. 최기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물론 손상된 부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용의 눈 줌인 모드를 사용한 그의 눈은 이내 독수리처럼 매섭게 빛났다.
“설화야. 모스키토(혈관겸자).”
“알았어.”
딸칵!
최기석은 파열된 우심방 부위의 혈관을 혈관겸자로 단단하게 틀어 잠갔다.
그러자 출혈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직 출혈 부위가 남았죠?”
“네. 좌심방 쪽인 것 같은데. 잘 안 보이네요.”
최기석은 포셉으로 심장을 살짝살짝 움직이면서 출혈부위 찾기에 나섰다. 그러던 중 좌심방 하단부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자. 모스키토.”
“오케이.”
최기석은 혈관겸자로 다시 한 번 혈관을 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출혈이 완벽하게 멎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덜 잠근 것처럼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입술을 깨문 그는 과감하게 심장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직 출혈이 잡히지 않은 좌심방 파열 부위를 손으로 직접 압박했다.
때로는 혈관겸자보다 손으로 직접 압박하는 편이 출혈을 막는데 더 좋았다.
“…….”
“…….”
침묵 속에 모두의 시선이 최기석의 손끝에 모아졌다.
출혈을 막지 못하면 환자의 미래는 없었다.
적십자 병원에서 챙겨온 혈액에도 한계가 있었기에.
“휴우…… 됐다.”
최기석은 압박을 중단하고 상처를 확인했다.
얄밉게 새어 나오던 핏줄기들이 드디어 활동을 멈췄다.
간신히 한시름을 덜어 낸 셈이다.
“기석아. 환자한테 Beck’s triad(경정맥 확장, 심음감소, 저혈압이 함께 나타나는 증상)가 보이는데?”
“오랫동안 처치를 못 받았던 데다가 저혈량성 쇼크가 같이 와서 그럴 거야. 우선 산소호흡기 달아 주고 에피네프린 원 앰플로 믹스해 줘.”
“알았어.”
최기석의 오더를 받은 정설화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쨍그랑.
쇳소리와 함께 수술 도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비앙이 보조하던 중 팔꿈치로 수술 도구가 들어 있던 통을 쳐 버린 것이다.
“바보같이 이런 실수를…… 미안합니다.”
“한번 바닥에 떨어진 수술 도구는 쓸 수 없습니다. 설화야 미안한데 수술실 한 번 더 갔다 와 줄래?”
“몇 번이라도 괜찮아.”
정설화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수술은 잠시 중단되었다.
날고 기는 최기석이라도 수술 도구 없이는 집도를 이어 갈 수 없었다.
“에비앙. 수술이 많이 부담되나요?”
“…….”
“정 그렇다면 에비앙이 보조를 맡아 주세요. 설화에게 퍼스트를 부탁하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미스 정은 내과의 아닙니까?”
“내과의지만 대장관이 아니라 심장내과 전공을 맡고 있기도 하죠. 손도 외과의 못지않게 잘 씁니다. 내과라고 해서 외과적 처치를 전혀 안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의 제안에 에비앙이 침묵을 지켰다.
외과의가 내과의에게 보조 자리를 양보한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걸렸던 것일까.
“……그쪽이 더 편하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설화가 숨을 헐떡이며 앰뷸런스로 복귀했다.
“중앙 공급실 간호사가 말하는데 수술 도구는 이게 마지막이래. 나머지는 소독 중이라고 했어.”
“이거면 충분해. 그건 그렇고 설화야 네가 퍼스트로 올라와. 에비앙보다 너랑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에비앙. 정말 괜찮겠어요?”
정설화의 질문에 에비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꾼 상태로 수술이 재개되었다.
“솔직히 에비앙 지켜보느라 죽는 줄 알았어. 갓난아기를 물가에 내놓은 것 같았다니까.”
은밀하게 한국말을 한 정설화가 흉관을 건넸다.
최기석이 다음에 할 처치를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네?”
“바보. 그걸 이제 알았어? 애인이라고 너무 편애하지 마. 부려 먹을 때는 부려 먹으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흉관을 삽입하여 심낭에 고인 피를 빼냈다.
콸. 콸. 콸.
피가 배액통으로 흘러들면서 폭포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심방 문합술.
최기석은 4-0 prolene를 이용해 파열된 좌심방을 봉합에 나섰다. 좁은 공간에서 불편한 자세로 집도를 함에도 그의 솜씨는 빛이 났다.
봉합사가 상처에 주는 압력은 적절했으며 매듭도 깔끔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거기에는 정설화의 도움도 컸다.
정설화는 포셉으로 상처 부위를 단단하게 잡아 주었으며 최기석이 움직이기 쉽도록 필요한 공간을 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술 부위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 깊게 행동했다.
앞선 에비앙의 보조가 10점 만점에 5점이라면 그녀의 보조는 10점 만점에 10점짜리였다.
그녀의 빈틈없는 보조로 집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대단해.’
어시스트를 하던 에비앙은 수술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설화가 퍼스트를 맡으면서 최기석의 집도는 물 만난 고기처럼 흐름을 탔다.
퍼스트의 역량에 따라 집도의 솜씨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에비앙은 그것을 처음 깨달았다.
더불어 자신이 그동안 최기석의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심방 문합 종료. 다음은 좌심방 문합입니다. 니들홀더 줄까요?”
에비앙의 말에 정설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니들홀더 대신 스테이플러 주세요. 이 부위는 봉합사로 꿰맬 수 없는 부위에요. 스태플러로 찍어 버리는 게 훨씬 나아요.”
“……아. 네.”
그녀는 에비앙이 건넨 스테이플러와 좌심방의 자상 부위를 딱딱 찍어 버렸다. 이후 생리식염수로 누수를 확인했지만 봉합은 깔끔했다.
이어지는 처치.
최기석과 정설화는 심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상처를 소독하고 골절이 발생한 늑골을 고정시켰다.
“역시 우리 여보네. 척척이야.”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건 그렇고 이제 수술 부위 덮을까?”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았어.”
“자상으로 심장 손상이 발생한 환자잖아. 흉관 삽입하고 상처 봉합하면 끝난 거 아니야?”
“미스 정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실시한 흉부 엑스레이와 초음파상에서도 심장 손상 외에 다른 질환은 발견하지 못했어요.”
에비앙이 정설화의 편을 들었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에 오기 전 다른 의사들과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심장에 발생한 외상만 막을 수 있다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흉부외상의 경우 항상 TBI(Traumatic Bronchial Injury, 외상성 기관지 손상)를 생각해야 돼.”
“TBI?”
“그래. TBI를 방치하면 수술 후에 긴장성 기흉이나 다른 치명적인 질환이 따라와. 설령 검사결과에 이상이 없었더라도 개흉을 했으면 반드시 확인해야 해.”
최기석은 용의 눈 줌 인 모드로 기관지를 살폈다.
얼마 후 그의 검지가 환자의 우측 기관지를 가리켰다.
“여기 봐.”
“정말이네? 기관지가 잘려있어.”
“참고로 TBI는 좌측보다 우측 기관지에 더 자주 발생해. 우측 기관지가 좌측 기관지보다 짧은데다가 덜 보호 받는 위치에 있거든.”
“그렇구나.”
“씨저. 4-0 prolene.”
최기석은 너덜너덜한 기관지 한쪽 면을 잘라내고 봉합사로 끊어진 기관지의 양쪽을 문합했다.
“환자 바이탈은 어때요?”
“정상보다 조금 낮지만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회복에만 힘쓰면 될 것 같아요.”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수술 부위 덮죠.”
최기석은 미소 지으며 집도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