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78화 (377/407)

소중한 추억 (6)

“진료는 내가 볼 테니까 쉬고 있어.”

정설화가 바두를 마주 보고 문진에 나섰다.

그동안 최기석은 귀를 쫑긋 세우는 동시에 처음 보는 질환을 검색했다.

“동생이 정확히 어떻게 아픈 거니?”

“오늘 오후에 갑자기 숨을 못 쉬는 것 같았어요. 막 켁켁거리면서 몸부림을 쳤어요. 가끔 이러는데 오늘은 정말 동생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

그녀는 바두의 동생 타노의 바이탈을 살핀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체온, 혈압, 맥박, 호흡이 전부 정상이었다.

증상이 있어났을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도 특이점은 없었다. 바두가 거짓말을 할리는 없었지만 죽을 만한 위기를 넘긴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적어도 지금의 타노는 완벽히 건강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 검사와 소변 검사를 진행했지만 역시 문제는 없었다.

“바두.”

“네. 선생님.”

“선생님이 봤을 때는 지금 동생은 아무 문제가 없어. 내 생각에 숨이 막혔던 건 음식을 잘못 먹은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럴 리가 없어요. 아침부터 설사하는 바람에 죽만 먹었는걸요?”

“죽만 먹었다라…….”

바두의 말에 정설화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졌다.

숨이 막힌다는 것은 보통 호흡기나 소화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인데…….

알레르기가 없고 잘못 먹은 음식도 없다면 대체 왜 숨이 막혔을까.

“하지만 증상이 없는 타노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단다. 그건 바두도 이해할 수 있지?”

“……네.”

바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진료실의 침묵이 깊어지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선생님이 물어볼 게 한 가지 있는데. 혹시 낮에 타노가 발작하기 전에 울지 않았니?”

“어…… 그게…… 맞아요! 넘어져서 아프다고 심하게 울었어요. 근데 그걸 선생님이 어떻게 아세요?”

“답은 잠깐 미루고 질문을 더 해 볼게. 동생이 지금처럼 발작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

“네. 어렸을 때는 되게 심했는데 요즘은 그래도 많이 줄었어요.”

“역시. 설화야 잠깐 이것 좀 볼래?”

“응.”

최기석이 가리킨 모니터를 살펴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

선천성 희귀 질환 중 하나로 울거나 웃으면 사망하는 걸로 알려진 질병이다. 정확히 말하면 감정 변화로 인한 신체적 변화로 기도가 막혀서 사망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질환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로써 치료법 또한 전무했다.

“여보 생각은 어때?”

“으음…… 자세한 건 검사를 더 해 봐야겠지만 맞는 것 같아.”

정설화는 검색 결과와 타노를 번갈아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난히 작은 머리와 짧은 팔 다리.

채혈을 진행하던 당시 보여 주던 의연한 모습과 다소 둔한 행동들.

거기에 최기석이 알아낸 발작 전 상황까지.

타노는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타노가 올해 3세이라고 했지?”

“네. 선생님.”

“역전의 용사구나. 지금까지 정말 힘냈어.”

최기석이 타노가 앓고 있는 질병을 설명하자 바두의 눈이 당장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특히 불치병이라는 대목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도…… 동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큰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지. 지금까지는 기도가 막혔을 때 잘 넘어갔지만 앞으로도 그러라는 보장은 없어.”

“여기서는 공짜로 치료해 주지만 다른 병원은 아니잖아요.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은데…….”

“그건 걱정 마.”

최기석이 바두를 안심시키며 말을 이었다.

“너희 가족만 허락한다면 선생님이 동생을 메이죠 병원으로 보내 줄게. 메이죠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병원이야. 거기서 동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면 좋겠다.”

“…….”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하는 말인데, 가능하면 너도 동생이랑 미국으로 넘어 가.”

“저는 왜요?”

“의사가 꿈이라고 했잖아. 힘들기는 하겠지만 미국에서 공부하는 편이 더 꿈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야. 그 편이 동생한테도 좋을 거고.”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생의 진료 및 치료비는 메이죠에서 전액 지원할 거라는 것과 바두의 미국 교육비와 생활비는 최기석이 돕는다는 것이었다.

“네 생각은 어때?”

“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가 선생님께 그런 도움을 받아도 되는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는데, 너라면 충분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의사가 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너를 믿으면 아무 문제 없어.”

“…….”

“우선 동생은 입원시키고 상태를 보자. 너는 돌아가서 부모님께 내 제안에 대해 설명 드리렴. 결론이 나면 알려 주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바두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고 최기석은 직접 타노의 입원절차를 밟아 병동에 올려 보냈다.

타노가 울거나 웃지 않게 조심해 달라는 당부를 남기면서.

“저 아이가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인지 어떻게 알았어?”

그가 진료실로 복귀하자 정설화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으음……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흉부 파트랑 전혀 관련 없는 희귀질환인데? 게다가 난 이런 질병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어.”

“내가 심심할 때마다 희귀질환이 뭐가 있나 검색하는데 마침 저 아이 케이스가 딱 들어맞더라고. 솔직히 운이 좋았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설명할 수 없기에 대충 둘러대는 최기석, 하지만 정설화는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평소 그가 보여 준 놀라운 능력을 떠올리며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 여긴 것이다.

“그럼 우리 하던 거나 마저…….”

정설화에게 입술을 내밀던 그의 몸이 흠칫 굳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들릴 듯 말 듯 희미한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낯익은 소리의 정체는 바로 앰뷸런스 소리!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진료실을 나와 병원 앞에 섰다.

적십자 병원 구급차가 무서운 속도로 병원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윽고 귀가 따갑게 울리던 앰뷸런스 소리가 그쳤다.

동시에 트렁크가 열리며 들것에 실린 환자와 동행한 의사가 내렸다.

“환자는요?”

“상태가 위급합니다. 당장 수술해야 해요.”

“설화야. 수술실 잡아 줄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응.”

최기석은 동행한 의사와 들것을 밀며 이동했다. 그러면서 일단 육안으로 환자를 살폈다.

환자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으며 의식이 없었다.

자상 입은 부위는 붕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피로 흠뻑 젖은 걸 보면 상태가 심상치 않은 듯 했다.

체력: 2/10

주 증상: 흉통 / 출혈 / 의식소실 / 객혈

아픈 부위: 기관지 / 심장

진단명: 흉부 외상 / 기관지 손상 / 심장 손상 / 기흉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없음

가족력: 고혈압 / 당뇨

주의 요소: Near D.O.A(병원 도착 시 사망)

주의 요소에 떠오른 Near D.O.A를 확인한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본래라면 적십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다.

그런데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먼 길을 후송 왔으니 상태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쪽 스태프가 부족한데 수술, 도와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비록 흉부외과 전공은 아니지만 저는 대장관 외과 파트를 맡고 있어요.”

“잘됐네요.”

두 사람이 치료방향을 설정하며 이동하는 가운데 뒤늦게 나타난 정설화가 비보를 전했다.

“기석아. 지금 수술실 못 쓴데.”

“왜?”

“산모가 응급분만에 들어가서 병원장님이 수술 중이야.”

그녀의 말에 적십자 병원 의사 에비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에 가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일념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설마 수술실이 한 곳밖에 없습니까?”

“……네. 환자 감시 장치가 있는 곳은 거기밖에 없어요.”

정설화의 대답에 에비앙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무거운 침묵 속에 최기석이 들것의 방향을 돌렸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설화야 수술실에 연락해서 처치 도구 좀 챙겨 줘.”

“어…… 어떻게 하려고?”

“수술은 앰뷸런스에서 할게. 에비앙, 앰뷸런스 후방에 환자 감시 장치 달려 있죠?”

“그건 그렇지만…… 감염의 위험이 있는 데다가…… 자리도 너무 좁고…… 시야 확보도 제대로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해야죠. 힘들게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겁니까?”

“…….”

“빨리 갑시다. 한시가 급해요.”

에비앙이 망설이자 최기석이 혼자 들것을 밀며 앰뷸런스로 향했다.

‘수술실에서 해도 모자랄 수술을 앰뷸런스 안에서 쭈그리고 진행하겠다는 건가?’

뒤늦게 최기석을 쫓던 에비앙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환자를 살리려 하는 그의 의지는 존경할 만하지만 수술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

제아무리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라고 해도 기본적인 조건은 갖춰져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에비앙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최기석의 수술 준비를 도왔다.

잠시 후 정설화가 처치 도구를 넉넉히 챙겨 왔으며 환자 감시 장치 연결도 끝났다.

수술실이 아닌 앰뷸런스 후방에서 진행하는 흉부외과 집도의 막이 오른 것이다.

두 사람은 서둘러 처치 도구를 풀어놓으며 환자를 더 편안한 자리로 옮겼다.

더불어 마스크와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고 환자에게 블러드 팩과 수액을 달았다.

이것으로 수술 준비 끝!

“확실히 불편하긴 하네요.”

최기석은 상처를 감싼 붕대를 가위로 자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천장에 달린 등은 그럭저럭 밝았지만 몸을 조금이라도 환자 쪽으로 내밀면 그림자가 생겼다.

“그래서 제가 힘들 거라고 말했잖아요.”

“에비앙. 투덜대지만 말고 생각을 바꿔 봐요.”

“이 상황에서요? 어떻게요?”

최기석의 말에 에비앙이 혀를 찼다.

“만약 프랑스에서 수술을 잘못해서 환자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소송을 당하겠죠.”

“여기서는요?”

“뭐. 최소한 소송 당할 리는 없을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최기석이 수술 전 처치를 하며 말을 이었다.

“환자를 부주의하게 보라는 말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소송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료실력을 쌓을 수 있어요. 내 말이 틀립니까?”

“…….”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곳은 외과의에게 솜씨를 향상시킬 수 있는 수련의 장이 될 수도 있고, 집도 환경이 열약한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걸 결정하는 건 나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에요. 전부 에비앙의 몫이라는 겁니다. 에비앙은 둘 중에 어떤 쪽이 마음에 드나요?”

폐부를 찌르는 말에 에비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최기석은 전혀 생각지 못한 시점을 제안했고 그것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매력적이군요.”

“저도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의 가슴에 난 자상을 가리켰고 상태의 심각성을 확인한 에비앙은 입술을 깨물었다.

과연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질문했지만 좀처럼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우리 둘이라면 반드시 환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 날 믿어요.”

최기석이 에비앙의 속내를 읽은 것처럼 말하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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