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무엇도 (5)
최기석과 나레카는 어두운 동굴 속을 걷고 있었다.
총으로 무장한 병사가 그들 앞뒤로 눈을 새파랗게 떴기에 도망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닥터 최. 이 녀석들 정체를 알 것 같아요.”
그의 곁에 선 나레카가 귓속말을 건넸다.
“얼마 전 회의 기억나죠?”
“네.”
“그때 말한 알디 패거리일 겁니다.”
[병원과 세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미치광이가 무장 세력을 모으는 중입니다. 우두머리의 이름은 알디예요. 자신을 불사의 존재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믿으면 누구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사람들을 꼬드기고 있죠.]
최기석은 뒤늦게 네이마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병사가 선지자를 보자고 했던 것을 떠올리면 충분히 일리가 있는 추측이었다.
알디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슨 생각으로 스스로를 신으로 포장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까.
그의 마음속에서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윽고 동굴 헤매던 일행이 바깥으로 나왔다.
동굴 바깥에는 촌락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텐트에 모여서 생활했으며 부녀자와 아이들, 노인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이들은 방탄조끼와 총을 소지하고 있는 젊은 청년층이었다.
청년들은 부리부리한 눈매로 촌락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으며 일부는 어디서 훈련 중인지 우렁찬 기합소리를 뿜어냈다.
이곳은 일반적인 마을이 아님은 초등학생이라도 눈치챌 수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커다란 천막 안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무릎 꿇어.”
“…….”
“뭐해! 꿇으라고!”
병사들이 두 사람을 거칠게 몰아붙였기에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었다.
“데리고 왔나?”
“네. 선지자님.”
굵은 목소리와 함께 한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성은 소파에 앉아서 무릎을 꿇은 최기석과 나레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까맣게 탔으며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다.
얼굴에는 인생에 불만이 있는 듯한 기색이 역력하게 뿜어졌으며 그의 열 손가락에는 해골을 형상화한 반지가 껴져 있었다.
더욱 살벌한 것은 그가 착용한 총알로 만든 목걸이인데, ‘너 사람 죽일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당연하지’라고 말하고 목걸이에 있는 탄으로 총을 장전해 누군가를 죽여 버릴 것만 같았다.
“반갑군. 난 선지자 알디라고 한다.”
“NSF 소속 기석 최입니다.”
최기석은 나레카의 통역을 빌어 그와 소개를 주고받았다.
“듣자하니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흉부외과 의사라면서?”
“그랬었죠. 하지만 지금은 의료봉사 활동에 나선 한 명의 의사일 뿐입니다.”
“쯧쯧. 좋은 나라에서 의사생활 했으면 세상 편했을 텐데. 스스로 고생문을 열었군.”
“잘 먹고 잘사는 게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닙니다. 나는 그저 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하고 싶을 따름이에요.”
“잘났군, 잘났어. 하지만 말이야 내 입장에선 그런 말도 배부른 소리로 들려. 이 땅에서는 남을 도와줄 여유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거든.”
그의 말에 곁에 있던 수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디가 나름 농담을 던졌던 모양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당돌한 질문이군. 대답은 간단하다.”
최기석의 질문에 알디가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당연히 돈 때문이지. 너희들은 돈이 돼. 납치해서 협상금을 요구하면 보통 열에 한 번은 돈을 보내기 마련이거든. 그 돈을 우리가 소중하게 쓰는 거다.”
“…….”
“고맙게도 이번에는 금덩어리가 넝쿨째 들어왔어. 세계적인 흉부외과의가 인질이라면 한몫 두둑하게 챙길 수 있겠지.”
“모든 게 당신 뜻대로 풀릴 거라 생각합니까?”
“딱히 안 될 이유도 없어 보이는군.”
알디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손가락을 딱 튕기자 병사 한 명이 알디의 곁에 서서 무릎 꿇은 두 사람의 사진을 찍었다.
“으음…… 덜 불쌍해 보이는데? 연출이 필요하겠어.”
“네. 선지자님.”
병사들이 다가와 두 사람을 포승줄로 묶었다. 그리고 둘의 등을 발로 밟아서 억지로 몸을 구부리게 만들었다.
“얼굴에 흙 좀 묻혀 주고 고개 바짝 들게 해.”
알디의 지시하에 두 번째 사진 촬영이 끝났고 결과물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이만하면 됐다. 편지에 사진을 동봉해서 NSF 쪽으로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잠자코 있던 나레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NSF에서 보석금을 준다면 너희들을 순순히 풀어줄 것이다. 만약에 보석금을 주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그래도 돌려보내 줄 거야. 단 살아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
나레카를 능욕한 알디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고 그의 부하들도 그를 따라서 웃었다.
“너는 왜 웃는 거지? 이 상황이 즐거운가?”
알디가 웃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전 최기석이 자신을 향해 야릇한 미소를 보냈다. 인질로 잡힌 의사가 어쩔 줄 몰라서 벌벌 떠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뭔가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잘못 봤습니다.”
“하긴 착각이겠지. 총 앞에선 의사고 대통령이고 아무 소용없으니까.”
“떠나기 전에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좋아. 특별히 허락한다.”
“당신은 이태식 신부님의 치료를 받은 적이 없습니까?”
그의 질문에 알디의 눈동자가 짧은 순간 요동쳤다.
“그리운 이름이군. 물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총상을 입었을 때 찾아갔는데 무상으로 수술을 해주시고 며칠 몇 날 밤 나를 돌봐주셨지. 넌 어떻게 이태식 신부님을 알지?”
“이태식 신부님이 살던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신부님의 고향사람이라…….”
알디가 텐트 천장을 올려다보며 턱을 쓸어내렸다.
그의 태도 변화에 통역하던 나레카는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이태식 신부님 이야기를 듣고 알디가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대로 해피엔딩이 찾아올지도 몰랐기에 두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나레카의 시선은 온통 알디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신부님의 평가는 어떻지?”
“모두가 인정하는 위인입니다.”
“그래. 신부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었어. 우리들을 아랫것으로 여기는 봉사단체 사람들과는 근본부터 달랐지. 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리워지는군.”
“…….”
“하지만 신부님을 존경하는 것과 너희들의 처우는 아무 상관없다. 신부님을 팔아서 이 순간을 넘겨 보려고 했다면 큰 착각이야.”
알디가 차갑게 웃었다.
“끌고 가.”
“네!”
지시를 받은 병사들에게 이끌려 두 사람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다.
“아. 거의 다 왔는데. 닥터 최, 너무 아까워요.”
나레카가 발을 동동 굴렀다.
조금만 더 감성을 건드렸다면 알디가 석방을 명령하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자꾸 들었다.
“탈출하려고 신부님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에요.”
“그럼요?”
“궁금했어요. 신부님이 이런 사람들까지 치료했는지가요.”
“생각해 보니까 차라리 그때 치료를 못 받고 죽어 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럼 이런 일도 없었잖아요.”
나레카가 콧김을 뿜어내며 씩씩거렸지만 최기석은 담담하게 운을 뗐다.
“나레카. 너무 걱정하지 마요.”
“지금 걱정 안 하게 생겼습니까? 사람을 밥 먹듯이 죽이는 미치광이 소굴에 잡혀왔다고요. 저 인간, 돈을 못 받으면 분명 우리를 죽일 거라고요!”
“한국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
“전 찾았습니다. 솟아날 구멍.”
“하. 닥터 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게 제 매력인걸요.”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다음 식사시간이 오면 식사 주는 병사를 잠깐만 잡아 주세요.”
“이유가 뭡니까?”
“그건요…….”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과 나레카는 어두운 동굴에 꼼짝없이 갇힌 채 시간을 죽였다.
‘하…… 미치겠네. 정말.’
나레카는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답답했다.
공간이 좁았던 데다가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어둡기 까지 했다.
숨 쉬는 것 말고 다른 할 일이 전무했다.
감옥에 가도 대우가 이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최기석과 말동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는 가만히 누워서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손을 움직였다.
손놀림은 의외로 정교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고 한 그마저 미쳐 버린 걸까.
그런 생각에 절망감이 사지를 휘감았다.
캄캄한 동굴 속에 있다 보니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십 분이 한 시간 같았고 한 시간이 하루 같았다.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최기석도 수술 놀이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이다.”
병사가 창살 하단부 틈 사이로 식판을 내밀었다.
저녁 식사는 냉기를 폴폴 흘리는 죽과 사막처럼 건조한 빵 몇 조각이었다.
“이봐요. 한 가지 물읍시다.”
“뭐지?”
나레카의 질문에 돌아가던 병사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혹시 가족 중에 아픈 사람 없어요? 여기 있는 닥터 최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흉부외과의사라고요. 환자가 있으면 데리고 와서 진찰 받아요.”
“그래도 되는 건가?”
“안 될 이유가 없잖아요. 기회가 있을 때 이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나레카의 말에 넘어간 병사는 곧 열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복귀했다.
“아이가 며칠 전부터 절뚝거리면서 제대로 걷지를 못해.”
“여기가 아파요.”
아이가 손가락으로 검지발가락 부근을 가리키자 병사가 플래시로 아이의 발을 비췄다.
“내성발톱이네요. 염증까지 생겼는데요? 어때?”
“아파요!”
최기석이 발톱을 누르자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이에 병사가 신경질을 내며 최기석에게 총구를 겨눴다.
“지금 뭐하는 거야? 죽고 싶어!”
“상태를 확인한 겁니다. 발톱을 잘라 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메스와 소독약이 있습니까?”
“……잠깐 기다려 봐.”
얼마 후 복귀한 병사가 창살 틈으로 쌈지와 작은 거즈통, 포피돈 소독액이 담긴 통을 내밀었다.
처치 도구를 확인하던 최기석은 쌈지에 새겨진 적십자 로고를 발견했다. 적십자 의사도 여기에 잡혀왔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과연 그는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갔을까.
아니면…….
‘바보같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잡생각을 몰아냈다. 그리고 아이에게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한 후 처치 도구를 바닥에 풀어놓았다.
“허튼 짓 할 생각 마.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손을 댔다가 벌집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제 살 깎아먹는 짓은 안할 테니 걱정 말아요. 넌 이름이 뭐니?”
“자부디요.”
“지금 네 발톱이 살 안쪽으로 파고들었어. 균이 들어가서 염증도 생겼고. 그래서 아저씨가 살에 파고든 발톱을 잘라 낼 거야. 조금 아플 수도 있는데 잘 참을 수 있지?”
그의 설명에 자부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처치할 부위를 소독하고 염증이 생긴 곳에 메스를 댔다.
고름집이 갈라지면서 누런 고름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이어지는 내성발톱 수술은 식은 죽 먹기였다.
켈리를 이용해 살에 파고든 발톱을 살살 건드리다가 단번에 뽑아 버렸다. 본래 마취가 필요한 처치지만 페인킬러가 역할을 대신하면서 순조롭게 끝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물이 안 닿게 조심해야 한다. 알았지?”
발가락에 거즈를 감는 것으로 처치 종료.
아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병사와 감옥을 떠났다.
“그런데 닥터 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왜 이 막돼먹은 놈들을 왜 치료해 주는 거죠?”
“의사의 일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겁니다. 여기서도 제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참 대단하네요.”
나레카가 칭찬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언제쯤 나가게 될까요? NSF에서 협상을 제대로 했으면 좋으련만…….”
“곧 나가게 될 겁니다. NSF의 도움 없이 우리 발로.”
나레카를 향한 최기석의 눈동자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