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무엇도 (3)
“아브나가 왔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들어오세요.”
최기석이 너스레를 떨자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그가 가리킨 의자에 앉아서 운을 뗐다.
“제가 요즘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요. 미열이 있고 요즘 자꾸 잠이 오는 게 혹시…….”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진단명이 떠오른 순간 피부에 닭살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아올랐다.
하필이면 왜 아브나에게 이런 악몽이 찾아온단 말인가.
“아브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는 거 같은데…… 맞죠?”
“……네.”
“당장 검사부터 하죠. 설화는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최기석은 아브나와 진료실로 내려가 그녀의 피를 뽑고 혈액 검사를 했다.
동시에 척수천자를 통해 척수액 샘플을 얻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그녀의 병을 아는 최기석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고, 아브나는 본인의 질병이 그것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최기석은 모니터에 떠오른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역시 그런 건가요?”
“……네. 아브나는 수면병에 걸렸습니다.”
수면병.
이는 체체파리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으로 중추신경계를 공격하여 심각한 신경 질환을 일으킨다.
수면병 1기의 경우 치료가 쉽지만 진단이 어려운데 아브나는 수면병 2기다.
2기는 1기와는 반대로 치료는 어렵고 진단이 쉽다.
수면병이 2기로 넘어가면 컨디션이 떨어지며 중추신경이 망가지며 잠이 많아지는데, 요즘 들어 아브나가 피곤한 모습을 보이며 자주 졸았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병원장님께는 제가 말할 테니까 당장 입원해요. 그 몸으로는 근무 못 서요.”
“제가 없으면 닥터 최가 힘들 텐데…….”
“괜찮아요. 어차피 고생하려고 NSF 온 건데요. 그리고 지금은 내 걱정이 아니라 아브나 자신을 걱정해야 할 때예요.”
최기석은 그녀를 격려하며 처방 약품을 훑던 중 미간을 찌푸렸다.
“수면병 치료제가 멜라소프로밖에 없어요?”
“국가에서 지정한 수면병 치료제가 멜라소프로라서요.”
“맙소사.”
그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멜라소프로는 수면병 치료제의 한 종류로 이를 환자에게 투여시 심한 통증과 뇌손상의 위험이 있었다.
독성 또한 강력한 편인데 이 약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오히려 환자가 사망한 케이스도 제법 보고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병원에 수면병 환자가 오면 계속 멜라소프로로 치료했다는 뜻이에요?”
“맞아요. 그래서 경과가 썩 좋지 못했어요. 정부야 멜라소프로가 가장 저렴하니까 공식치료제로 결정했겠지만요.”
“국민을 싼 값으로 후려치겠다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네요. 제 입장에선.”
최기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수면병 치료제들을 검색했다.
수면병 치료제가 멜라소프로밖에 없을 리는 만무했기에.
타다다닥.
대화가 끊긴 가운데 키보드 치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검색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났고 결국 그는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이거 진짜예요?”
그가 가리킨 자료를 보고 아브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너무한 것 아닙니까?”
“그게 현실인걸요.”
“후아……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네요.”
최기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수면병 치료제는 멜라소프로와 DFMO가 있었다. 그중에서 DFMO는 멜라소프로보다 부작용이 적은 수면병 치료제로 각광을 받았고 말이다.
여기서 끔찍한 것은 이제는 DFMO가 사장된 약제라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각 정부가 수면병 공식 치료제로 멜라소프로를 택한 데다가 DFMO의 수익성이 너무 낮다는 판단에서 제약회사는 DFMO 생산을 끊어 버렸다.
그 말인즉 현재 수면병 치료제가 멜라소프로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저는 아브나에게 멜라소프로 투여 못 합니다.”
“하지만 다른 치료제가 없잖아요. 심지어 적십자 병원에서도 멜라소프로를 쓰는 걸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죠. 우선 아브나는 당장 입원부터 해요. 뒤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네.”
최기석은 아브나를 입원 조치하고 진료실에 남았다.
이 불합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거세지는 빗줄기 속에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
* * *
다음 날 오전.
영원히 쏟아질 것만 같던 빗줄기가 멈췄다.
최기석은 오전 진료를 보기 전 병원장 네이마르의 진료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미스터 최. 무슨 일인가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앉아요.”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물끄러미 서로를 응시했다.
“어제 제 담당 간호사 아브나가 몸이 안 좋다고 기숙사로 찾아왔습니다. 증상이 이상하다 싶어서 진료와 검사를 해보니 수면병 진단이 나왔습니다.”
“수면병이요?”
네이마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네. 오더를 내리던 중 치료제를 살펴보니 멜라소프로밖에 없더군요. 우리 병원에서 다른 수면병 치료제를 구할 방법이 없습니까?”
“없어요.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
“제약회사에서 DFMO 생산을 중단한 마당에 다른 치료제가 있을 턱이 없죠. 더군다나 수면병 환자의 대다수가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돈도 없고 의료 환경도 열약한 사람들이죠. DFMO로 한 번 미끄러진 이상 제약회사는 다시는 수면병 치료제를 만들지 않을 겁니다.”
그의 답변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지만 냉정한 현실에 재차 부딪치자 오기가 생겼다.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환자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치료제가 버젓이 국가 공식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제게 한 가지 묘안이 있습니다. 제약회사가 다시 DFMO를 생산하게 하는 방법을요.”
“저, 정말입니까?”
“네.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병원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에 네이마르가 귀를 쫑긋 세웠다.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라는 후광 때문인지 그의 계획이 꽤나 달콤하게 들렸다.
이만하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었다.
“좋아요. 닥터 최 생각대로 진행해 봐요. 나는 물심양면으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겠습니다.”
병원장과 대화를 끝낸 그는 2층 입원실을 찾았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간호사에서 환자로 변한 아브나가 있는 병실이었다. 수액을 맞은 채 곤히 잠든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시큰 아팠다.
제대로 된 치료제만 있다면 어제부터 치료에 들어갔을 텐데.
경과 걱정 없이 몇 주 후에 아픈 몸을 훌훌 털어 버렸을 텐데.
열약한 의료환경이 사람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
최기석은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터벅터벅.
병실을 떠난 그는 진료실로 복귀해 오전 진료를 준비했다.
통역이 없으면 진료가 불가능한 탓에 오프였던 현지 간호사가 아브나의 대타로 나섰다.
“미안해요, 에피아.”
“닥터 최가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걸요.”
대타로 온 에피아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보다 아브나를 잘 돌봐 주세요. 가족들을 일찍 병으로 잃고 환자만 보면서 살아온 친구예요. 그런 아브나가 허무하게 떠나 버린다면 인생이 너무 가엾잖아요.”
“아브나는 반드시 건강하게 돌아올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시작된 진료.
몇 달 전 있었던 축제의 여파로 환자의 30퍼센트가 여전히 임산부였다.
산과 공부에 집중했던 최기석은 예전보다 능숙하게 산과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었다.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최기석은 벽시계를 힐끔거렸다.
네이마르에게 부탁해 오늘은 특별히 오전 진료만 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에는 적십자 병원으로 이동해 수면병 치료제를 위한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똑. 똑. 똑.
나갈 채비를 하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환자 한 명이 들어왔다. 남자는 20대쯤으로 보였으며 한쪽 자리를 절뚝거리며 진료의자에 앉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허벅지가 너무 아파요. 걷기가 힘들어요.”
“바지 잠깐 벗어 볼래요?”
최기석은 환부인 왼쪽 허벅지를 확인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허벅지에 검붉은 빛을 띤 커다란 반점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코를 찌르는 악취와 고름이 흘러내렸다.
굳이 피부과 전공이 아니라도 그의 질환이 심상치 않음을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슴처럼 순박한 눈망울로 묻는 환자 아리프를 보며 최기석은 쓴 웃음을 지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가스 괴저라는 진단명이 떠올랐다.
가스 괴저.
외상으로 생긴 상처에 가스를 만드는 세균 클로스트리다 박테리아가 감염된 질환이다.
가스 괴저에 걸리면 상처에서 유해한 독소가 생성되는데 이로 인해 전신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이 올 수 있었다.
“아리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최기석이 가스 괴저에 대해 설명하자 에피아가 통역에 나섰고 이를 듣는 아리프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연신 어깨만 으쓱거렸다.
“어려운 이야기라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된다는 소리죠?”
“그게…….”
그의 순수한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입이 얼어붙었다.
자신이 그를 아프게 한 것도 아닌데 괜한 자책감마저 밀려왔다.
앞으로 자신이 할 말의 여파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다리를 절단해야 합니다.”
“저, 절단이요? 안 돼요!”
아리프의 언성이 올라갔다.
“어떻게 한쪽 다리 없이 살아요. 나 이제 스무 살밖에 안 됐어요. 선생님, 살려 주세요.”
“…….”
“제발…… 살려 주세요.”
아리프는 절뚝거리며 다가와 가운을 붙잡았다.
하얗고 커다란 눈이 어느새 눈물로 젖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요. 내가 아니라 그 어떤 의사가 와도 같은 대답을 할 겁니다.”
“…….”
“그리고 절단도 서둘러야 해요. 지금 아리프의 체온은 정상이 아니에요. 허벅지 상처에서 생긴 감염이 전신으로 퍼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
충격을 받은 아리프가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자, 최기석은 무릎을 꿇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너무 잔인한 말이라는 건 알지만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요.”
“…….”
“그리고 지금 절단하지 않으면 다리를 잃는 게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최기석의 거듭되는 설득에 결국 아리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수술을 마음먹으면서 수술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리프는 수술대에 누워서 대기했으며 최기석과 제1보조 할렌트, 마취의, 소독간호사 각자 자리를 잡고 수술 계획을 논의했다.
“혹시 미스터 최는 절단 수술 처음인가요?”
“네.”
“환자에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담담하게 해 버려요. 여기는 지뢰 밟아서 발목 절단하는 환자도 부지기수예요. 환자 하나하나 신경 쓰다간 미스터 최의 정신이 버티질 못할 겁니다.”
마취의가 한마디 조언하고 전신마취에 나섰다. 이에 겁에 질려 있던 아리프가 거짓말처럼 잠이 들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다시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보지 못하리라.
“절단 수술 시작합니다.”
최기석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은 후 엉덩이 하단부를 펜으로 그었다.
절단 부위를 미리 표시한 것이다.
스으으으윽.
메스로 괴저 부위를 절개하고 근육과 혈관을 분리했으며 출혈을 막기 위해 혈관겸자로 혈관을 잡았다. 그러자 할렌트가 뼈를 절단하는 톱을 건넸다.
“내가 할까요?”
망설이는 그를 보며 할렌트가 물었다.
“제 환자니까…… 제가 할게요.”
최기석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톱을 손에 들었다.
뿌드드득. 뿌드드득.
그의 손놀림에 뼈가 썰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