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이드 호스피탈 (6)
부우우웅.
물품 후송차량이 흙먼지를 날리며 병원 앞에 섰다.
“닥터 최.”
차에서 내린 나레카는 막 치료급식센터를 나오고 있는 최기석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별일 없었죠?”
“오전에 말했던 습격 건 때문에 그렇습니까? 제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저는 여기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위험한 길은 알아서 피해 오니까요.”
“…….”
“그건 그렇고 부탁한 물건은 챙겨 왔습니다.”
나레카가 후송차량에서 작은 박스를 챙겨와 그에게 내밀었다.
“최상급은 아니지만 나름 쓸 만할 겁니다.”
“이렇게 빨리 챙겨 주실 줄은 몰랐는데…… 고마워요.”
“우리를 위해 애써 주는데 고마운 건 오히려 저죠.”
최기석은 나레카와 조금 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기숙사를 찾았다. 정규 진료시간은 이미 끝났고 어제 당직을 섰기에 추가 근무를 할 필요도 없었다.
백 퍼센트 자유시간만 남았다고 할까.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거칠게 상자를 뜯었다. 그러자 흑표범처럼 멋진 기운을 뿜어내는 카메라와 소형 거치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카메라를 훑던 그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막상 카메라는 받았는데 사용법을 몰랐다.
버튼이 여러 개 있는데 뭘 눌러야하는지, 동영상을 찍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깜깜하기만 했다.
의료에 관련된 일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그였다.
벌컥.
때마침 문이 열리고 정설화가 들어왔다.
“웬 카메라야?”
“동영상 찍어서 뉴튜브 좀 시작해 보려고.”
“뉴튜브?”
그의 곁에 앉은 정설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의료봉사만 해도 벅차거늘 갑자기 뉴튜브 활동은 왜 한다는 것일까.
호기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치료 외적으로 이곳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봤거든. 내 생각에는 이곳의 생생한 현장을 찍어서 뉴튜브에 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아.”
“…….”
“자원봉사자가 늘 수도 있고 후원자가 늘 수도 있지. 우리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상황이 그리 심각한지 몰랐잖아.”
“그건 그래.”
정설화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아프리카 후진국에 의료복지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의사가 되기 전부터 들어왔다.
영양실조, 에이즈, 각종 전염병 등등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소문을 듣는 것과 현장에서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일단 내 계획은 매일 테마를 정해서 짧은 동영상을 올리는 거야. 예를 들어 입원실의 실태를 보여 줄 수도 있고 특정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묶어서 보여 줄 수도 있지.”
“난 찬성. 혹시 도와줄 건 없어?”
“역시 우리 여보라니까.”
최기석은 웃으며 카메라를 내밀었다.
“동영상 촬영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라. 이거 버튼이 많아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카메라 쓸 줄 몰라?”
정설화의 지적에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수련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에 치이다 보니까. 흠흠.”
“장난이야. 이게 우리 여보 매력인 걸.”
정설화는 차분하게 동영상 촬영법을 알려 주었고 최기석은 이를 유심히 기억했다.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 볼까?”
그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사전에 준비한 대로 뉴튜브 계정을 만들었다.
뉴튜버 이름은 영문으로 기석 최.
계정에 연결된 사진은 트리플 보드를 달성했을 무렵 송명진과 야사다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으로 택했고 계정의 테마는 기석 최의 수단 다이어리였다.
다소 오글거리는 테마였지만 그 이상 좋은 제목은 찾기 힘들었다.
“이거 기분이 묘하네. 의사가 아니라 갑자기 뉴튜버가 된 기분인데?”
“이제 뉴튜버 맞잖아.”
정설화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흉부외과의인 여보는 세계가 알아줘도 뉴튜브에서는 다를걸? 뉴튜브는 피 튀는 레드 오션이야.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뭐.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동영상을 보게 만들겠어.”
최기석은 의지를 활활 태우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우선 카메라 감독님하고 촬영 가야지. 영상이 나와야 편집을 하든지 업로드를 하든지 할 테니까.”
“…….”
“그건 그렇고 카메라 감독님이 엄청 미인인 걸?”
그의 말을 찰떡같이 이해한 정설화가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 그러면 그 감독님 질투한다.”
“그래도 참아야 돼. 그분이 미래의 내 마누라거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기숙사를 나와 2층 입원실로 향했다. 그리고 현지인 간호사에게 동영상 촬영 목적을 설명하며 통역을 부탁했다.
더불어 촬영할 입원실의 환자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간호사와 환자들이 흔쾌히 허락하면서 동영상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최기석은 입원실의 열약한 환경을 소개하며 및 입원한 환자들의 병명을 차근차근 영어로 설명했다.
더불어 동의를 얻은 환자와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환자는 총 두 명.
한 명은 최근 지뢰를 밟아서 다리를 절단한 환자였고 다른 한 명은 괴사성 근막염에 걸린 환자였다.
인터뷰하는 내내 최기석은 담담했다.
환자들의 딱한 처치를 과정하지 않았고 나중에 동영상을 보게 될 구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제3자의 눈으로 이곳의 현실을 보여 주려 했다.
그가 올린 동영상은 영화가 아니었기에 따라서 연출도 필요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촬영을 끝낸 두 사람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최기석은 동영상을 노트북으로 옮기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세심하게 살폈다.
본인과 인터뷰를 허락해 준 환자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카메라 워크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만하면 아마추어 수준도 못 되는 개인 소장용 동영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첫 동영상 촬영이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별로네.”
그의 곁에서 동영상을 지켜보던 정설화가 한마디 했다.
“그러게. 솔직히 좀 허접하다. 아무래도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
“도움? 아는 뉴튜버 있어?”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탁은 해봐야지.”
최기석은 다이아 버튼을 가진 뉴튜브 계정에 들어가 댓글을 남겼다.
* * *
다음 날 아침.
산부인과 수술 서적을 읽던 최기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만히 창가에 서서 추적추적 비 내리는 하늘을 응시했다.
수단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비라서 그럴까.
괜히 가슴 한구석이 감성으로 젖었다.
‘수단에서도 유비무환(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이 통할지 모르겠네.’
최기석은 정설화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을 나와 입원실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복도 중앙에 있는 병실로 아이샤가 입원해 있었다.
아이샤는 이틀 전 전자간증 진단을 받았으며 진료 도중 발작을 일으킨 환자였다.
어제는 약물로 바이탈 관리를 했고 오늘은 그녀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펼치는 날이었다.
최기석이 직접 말이다.
스승이 개발한 호프 수술, OPCAB(무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에 비하면 제왕절개 수술의 난이도는 한참 낮다.
그럼에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은 환자가 산모라는 점이다.
산모에게는 보통 환자보다 더욱더 섬세한 처치가 필요하다.
신체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기석은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샤를 지켜보며 밤새 공부한 산과 수술 내용을 되짚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NSF 단기 미션의 세 번째 정규진료 시간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료를 시작한 지 십 분이 지났음에도 환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아브나. 환자 없어요?”
최기석은 진료실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네. 원래 비오는 날은 환자가 거의 없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한 거 아닌가요?”
진료대기석을 살핀 그는 혀를 내둘렀다.
최기석뿐 아니라 다른 의사들의 진료대기석 역시 환자가 없었다.
말 그대로 텅텅 빈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유비무환이었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려면 보통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해요.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기죠.”
“그렇군요.”
“모처럼 푹 쉬세요. 계속 고생하셨는데.”
아브나와 대화를 마친 그는 산과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노크 소리와 함께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보호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아이가 열이 심합니다.”
최기석은 아브나의 통역을 듣고서 아이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손이 이마에 닿자마자 후끈한 기운이 퍼졌다.
체온계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고열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바이탈을 확인하는 동안 아이는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했고 보호자는 그런 아이를 지탱해 주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잠깐 옷 좀 올려보겠습니다.”
아이의 상의를 들춘 최기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이 가슴을 중심으로 주변부가 새빨간 반점에 잠식당해 있었다. 이렇게 뚜렷한 증상이라면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는 홍역을 앓고 있다.
홍역.
예방접종을 철저히 하는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질병이지만 수단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 가는 질환이다.
“당장 입원해야겠습니다.”
“그…… 그냥 감기 아닌가요.”
보호자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감기가 아니라 홍역입니다. 홍역에는 특별한 치료제가 없기 때문에 수액요법을 실시하고 충분히 쉬도록 해야 합니다.”
“…….”
“아브나, 혹시 모르니까 아이한테 혈액 검사 해주세요. 그리고 혹시 격리실 있나요?”
“엄밀히 따지면 격리실은 아니지만 격리실처럼 사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럼 아이 그쪽으로 보내고 Human immune globulin 준비해 주세요.”
“네. 알았어요.”
피 검사가 끝난 후 최기석은 환자인 하시시를 데리고 간이 격리실을 찾았다. 간이 격리실은 창고로 쓰던 곳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으로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의 열약한 환경이 새삼 가슴을 찔러 왔다.
수액과 주사 처치를 하는 동안 하시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보통 이 나이 때 아이들은 주사가 두려워서 몸부림을 칠 법도 하건만, 하시시는 그저 생기 없는 눈동자로 그가 처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폐인킬러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통증을 7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단순 통증 경감이기에 증상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사용 가능 횟수 1일 5회입니다.(1/5)]
스킬을 사용하자 하시시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아이는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최기석을 올려다보았다.
“…….”
“…….”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한 눈빛에는 따스함이 묻어났다.
처치를 끝낸 그는 진료실로 돌아가 시간을 보냈다.
과연 수단의 유비무환은 환타 칭호보다 강력했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다 되어 감에도 홍역환자인 하시시 한 명을 받은 게 전부였다.
오늘만큼은 여유롭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을 듯싶었다.
똑. 똑. 똑.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노크 소리와 함께 임산부 환자와 아브나가 진료실을 들어왔다.
낯익은 환자를 보며 최기석은 마른 침을 삼켰다.
에이즈에 걸린 산모 에르반.
그녀가 다시 진료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