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64화 (363/407)

오베이드 호스피탈 (4)

“닥터 최.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요?”

“수술이요.”

아브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적십자 병원은 우리 병원보다 환경이 조금 더 좋을 뿐이에요. 인공조직은 있지만 인공뼈와 미세 현미경이 없잖아요. 이 상황에서는…….”

“아브나.”

“네.”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우리가 헛걸음한 게 아니라 걸 금방 알게 될 겁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는 않았죠?”

“현재 유일한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죠.”

“그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최기석은 잔뜩 허세를 부리며 아브나를 안정시켰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브나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권위에 기대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효과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윽고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수술 도구 세팅, 전신마취를 비롯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손목과의 사투뿐.

“설화야.”

“알았어.”

최기석의 눈빛을 읽은 정설화가 가위로 붕대를 잘랐다.

사각 사각.

붕대를 제거하자 나타난 환자의 손목은 전과 같았다.

이송 도중 감염이 생기거나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덕분에 개방성 드레싱을 잘해 놓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총상 환자의 손목재건술을 시작합니다. 니들홀더, 7-0 prolene.”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그의 시선이 수술 부위인 손목에 집중되었다. 동시에 스태프들 역시 마른침을 삼키며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수부외과 수술에 필수 요소인 미세 현미경.

그것이 없는 상황에서 최기석은 과연 어떻게 수술을 이어 갈 것인가.

모두의 이목이 쏠린 순간이었다.

‘자. 가 볼까?’

그가 용의 눈을 사용하자 자동으로 최적화된 수술 시야가 잡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총탄을 제거할 때 도움이 되는 범위였고 미세 접합을 하기에는 한참 시야가 얕았다.

“닥터 정. 혈관 보여요?”

“실눈을 뜨면 보이기는 하는데 처치까지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아브나와 정설화가 한 마디씩 주고받는 동안, 최기석은 줌 인 모드로 수술 시야를 확 당겼다. 그러자 희미하게 보이던 손목 신경들이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누군가가 손목 신경을 손에 쥐고 눈앞에 들이민 느낌이랄까.

그로 인해 탄으로 인해 훼손된 부분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반복한 끝에 미세 접합에 최적화된 시야를 만든 최기석.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의사들은 불가능한 수술일지라도 특수한 능력을 가진 그는 미세 현미경의 역할을 스킬로 대신할 수 있었다.

용의 눈 줌 인 모드로 얻은 시야는 미세 현미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기에.

더군다나 줌인과 줌 아웃의 배율을 마음먹기 따라 변경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설화야. 인공신경 준비됐어?”

“응.”

“우선 신경부터 봉합하자. 신경조직편을 이쪽에 옮긴 다음 고정시켜 줘.”

“난 잘 안 보이는데 이쯤이면 될까?”

“아니. 조금 더 오른쪽으로. 더. 더. 오케이. 딱 거기야. 잘 잡아줘.”

정설화가 훼손된 신경과 이식할 신경의 끝을 이어 주자 최기석이 니들홀더로 봉합에 나섰다.

시야는 충분히 확보했고 봉합 실력은 이미 일반 외과의들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치를 떨만한 접합 수술이지만 최기석에게는 일반적인 수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수술.

그는 0.1밀리미터 크기의 가느다란 신경을 꿰매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봉합 솜씨와 속도를 자랑했다.

매듭을 짓지 않고 부위를 꿰매는 연속 봉합법으로 첫 번째 신경을 연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삼 분.

물론 거기에는 그의 지시를 잘 따르고 흔들림 없이 신경을 잡아준 정설화의 공도 컸다.

비록 정설화는 내과의지만 의진대 시설 인턴 봉합대회에서 3등을 차지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다.

실력이 어디 안 간다는 말처럼 그녀는 탄탄한 기본기로 그가 제 실력을 뽐낼 수 있도록 도왔다.

‘뭐야. 정말이잖아.’

아브나는 수술을 지켜보며 연신 혀를 내둘렀다.

최기석은 일사천리로 주요 신경들을 연결하고 신경과 힘줄을 봉합하고 있었다.

눈을 부릅떠야 간신히 보일까 말까 한 미세한 부분을 미세 현미경도 없이 집도하다니…….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아브나. 정신 차려요. 봉합사 커팅해야죠.”

“아, 네. 미안합니다.”

찰칵!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브나가 매듭의 윗부분을 잘랐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신마취다.

그녀의 지식에 따르면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할 필요는 없었다.

수술 부위가 오로지 손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베이드 호스피탈에서 총알을 빼낼 때도 부분마취만 진행했다.

대체 최기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능하면 그의 머리 안에 들어 가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호기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접합 수술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총상으로 황폐했던 손목은 어느새 새로운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신경, 혈관, 힘줄, 관절을 전부 연결했어요. 이제 남은 건 손목뼈인데. 이걸 어쩐다?”

“뭐야. 왜 고민하는 척해.”

한숨 쉬는 최기석을 보며 정설화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전신 마취 할 때부터 다 알아 봤거든?”

“뭐가?”

“골반뼈를 깎아서 손목에 연결할 거잖아.”

“역시 설화는 못 속이겠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인공뼈가 없다고 해서 뼈이식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자가뼈이식이라는 좋은 대체 수단이 존재했다.

오는 길에 검색한 결과 손목뼈를 자가이식할 경우에는 골반뼈를 깎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스.”

최기석은 거침없이 환자의 골반 부위에 절개창을 내고 견인기로 절개창을 벌렸다.

넓어지는 수술 시야 속에 드러나는 골반.

정형외과 처치 도구를 손에 든 그는 장골 부위의 뼈를 조심스럽게 깎아 냈다.

뼈를 얼마나 깎아야 하는지, 이를 어떻게 수술 부위에 접합시켜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그에게는 입체화 모드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었다.

그래서 입체화 모드를 사용해 정상적인 손목의 형태를 허공에 띄운 후 이를 토대로 깎아야 하는 뼈의 양을 어림짐작했다.

“이쯤이면 될 것 같은데?”

“알았어. 깎은 뼈를 손목에 맞게 변형시키는 건 내가 할게. 나 정형외과에서 인턴 빡세게 했던 거 알지?”

정설화가 자신 있게 골반뼈를 다듬어 나갔고 최기석은 그녀가 완성시킨 뼛조각을 환자의 손목뼈와 조립했다.

허공에 3D 입체화 모드로 구성된 손목 영상이 떠 있었기에 조립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흡사 완성된 그림을 보고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손쉬웠다.

“플레이트랑 나사 주세요.”

“네.”

최기석은 아브나에게 받은 강철판을 손목에 대고 나사로 조였다.

재접합한 뼈를 고정시키는 작업이었다.

자가뼈이식을 끝으로 수술은 종료되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피자 경과가 보통으로 떠올랐다.

흉부외과의가 응급으로 수부외과 파트를 수술했다는 걸 감안하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이만하면 적절한 관리와 재활치료로 환자의 손목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리라.

최기석은 동료들과 후련하게 수술실을 떠났다.

* * *

적십자 병원 휴게실.

수술을 막 끝내 최기석 일행과 클래드가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요.”

클래드가 혀를 차며 말을 계속했다.

“미세 현미경도 없이 어떻게 접합 수술을 할 수 있는 거죠? 더군다나 미스터 최는 흉부외과의잖아요. 접합 수술과는 거리가 한참 멀 텐데…….”

“외과 수술의 원리는 하나입니다. 불필요한 부분은 자르고 나머지는 이어 붙이는 거죠. 그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원칙적으로 모든 수술이 가능합니다.”

“흠흠. 그건 트리플 보드를 얻은 미스터 최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글쎄요.”

“하여간 놀랐습니다. 사실 수술을 지켜보면서 반신반의했거든요. 아무래도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상황이 극한에 몰렸으니 대처법도 상식을 벗어날 수밖에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환자가 적십자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나요?”

“재활의학과가 있는 건 아닙니다만....”

클래드가 턱을 쓸어내렸다.

“정형외과 선생님이 재활치료 쪽 지식이 풍부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형외과에 입원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네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환자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은 재활 쪽으로는 거리가 멀어서요.”

“못할 것도 없죠.”

“감사합니다. 적십자에서 너그럽게 이해해 준 덕분에 수술을 무사히 끝마쳤습니다.”

최기석은 클래드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감사를 표했다.

다른 병원 스태프들에게 수술실과 처치 도구를 내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적십자 병원에서 수술 승인을 하지 않았다면 환자는 꼼짝없이 손목을 잃었으리라.

즉 관점에 따라서는 환자를 살린 건 최기석이 아니라 적십자 병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NSF와 적십자는 상부상조하는 관계 아닙니까? 게다가 양쪽 다 극한 환경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고요.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돕겠습니다.”

“말씀만으로 든든하군요.”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눈빛에 따스함이 감돌았다.

“그건 그렇고 미스 정도 정말 대단하군요.”

“제가요?”

“네. 아까 심장내과 전공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외과 수술 보조하는 솜씨가 아주 훌륭하던 걸요? 누가 보면 외과의인 줄 알겠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정설화가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 쪽에서 오베이드 호스피탈에 후송을 보내도 될까요?”

“후송이요?”

“네. 우리 병원에도 훌륭한 의사들이 많지만 가끔 감당하기 힘든 환자가 찾아오곤 합니다. 우리 손을 벗어난 환자라고 판단되면 미스터 최에게 진료를 맡기고 싶어서요.”

“사전에 연락만 주신다면 안 될 이유가 없죠.”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가 가까이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일인 줄 몰랐습니다.”

얼마 뒤 클래드와 대화를 마친 최기석과 일행들은 정형외과 병동을 찾았다.

접합 수술이 끝난 환자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함이다.

적십자 병원의 입원실은 청결하고 깔끔했다.

우선 인테리어가 보기 좋았고 뭉쳐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땀내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오베이드 호스피탈처럼 끔찍한 7인실을 운영하고 있지도 않았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병원의 형태라고 해야 할까.

드르르륵.

병실로 들어가자 팔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환자가 보였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환자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늘 수술이 얼마나 촉박하고 힘겨웠는지 그는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하지만 최기석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환자에게 보답을 받기 위해 열정을 쏟은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보답이 아니라 보람이었다.

한 사람의 육체적인 아픔을 씻어 줌과 동시에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작은 희망을 보탰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술은 대성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갈까?”

“그래.”

그는 정설화의 손을 꼭 잡고 병실을 나섰다.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지나고 단기 미션의 둘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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