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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63화 (362/407)

오베이드 호스피탈 (3)

“혹시 스태프 중에 환자와 같은 혈액형인 사람 없어요?”

“확인해 볼게요.”

“최대한 빨리 구해 주세요. 더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우린 먼저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아브나가 떠난 후 뒤늦게 도착한 마취의가 손목을 부분마취 했고 최기석과 정설화는 모니터 앞에서 손목 엑스레이 사진을 살폈다.

환자에게는 두 발의 총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손목 바깥쪽 부분의 관통상이고 다른 하나는 총알이 손목 중앙에서 살짝 비껴 나간 부분에 박혀 있었다.

“…….”

“…….”

깊어지는 침묵.

영상을 살피던 정설화와 아무 말 못하고 최기석의 눈치만 보았다.

환자 상태가 만만치 않았다.

최기석이 트리플 보드의 흉부외과의라고 해도 총상 부위는 손목이다.

그의 전쟁터인 심장이 아닌 셈이다.

더군다나 이만한 수준의 총상이라면 정형외과와 성형외과 의사가 동시에 수술을 해도 힘에 부칠 것 같았다.

부족한 스태프와 열악한 수술 환경.

그 속에서 최기석은 얼마나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기대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마취 끝났습니다.”

“설화야. 시작하자.”

“응.”

정설화가 환자의 손목을 감던 붕대를 풀자 가느다란 팔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손목이 대조를 이루었는데 그 모습이 꼭 낙타의 혹을 연상시켰다.

“메스.”

최기석은 정설화에게 건네받은 메스로 두 군데의 상처를 절개했다.

절개창이 생기기 무섭게 철철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샛노란 고름.

정설화는 주사기에 생리식염수를 담은 후 이를 상처 부위에 쏘았다. 생리식염수의 수압으로 상처 주변에 있던 이물질들이 일부 씻겨 나갔다.

“역시 우리 설화네. 든든해.”

“칫. 내과의라고 무시하면 안 돼. 나도 웬만한 처치는 다 한다고.”

그녀의 서포트에 든든함을 느끼며 최기석은 고름 주머니가 생긴 부위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그 상태에서 주사기를 서서히 당기자 주사기 몸통에 끈쩍한 고름이 차올랐다.

총상 주변부의 감염이 생각보다 심했기에 배농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텅!

배농을 끝낸 주사기들을 곡반에 내려놓았다.

각 주사기들은 몸통 가득히 고름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런 주사기의 숫자가 무려 네 개나 되었다.

지이이잉.

때마침 문이 열리고 아브나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닥터 최. 수혈할 수 있는 피를 한 팩밖에 못 구했어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고생 많았어요. 지금 바로 환자에게 블러드 팩 달아 줄래요?”

최기석은 작업 중인 아브나를 보며 새로이 각오를 다졌다.

사실 MHC에서 근무할 때는 혈액이 모자라서 수술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아무리 혈액이 희귀해도 미리 준비하면 보통 구할 수 있었으며 여차하면 셀 세이버(출혈로 발생한 환자의 피를 걸러서 다시 환자 본인에게 제공하는 장치)를 이용하면 됐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바람조차 사치임을 깨달았다.

항상 최악을 가정하고 최선의 처치를 해야 한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에서의 수술 방식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배농이 끝났으니 탄부터 제거하죠.”

최기석은 포셉을 손에 쥐고 손목에 박힌 탄을 내려다보았다.

총알은 손목을 거의 관통하기 직전에 멈췄는데 그 주변이 새까맣게 그을렸다. 손목뼈는 유리조각처럼 바스러졌으며 혈관과 힘줄도 찢겨져 있었다.

치료가 환상적으로 끝난다고 한들 재활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해 보는 데까지 해 보는 수밖에.’

최기석은 포셉으로 탄의 끝 부분을 잡은 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손목에 박힌 탄이 줄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맹렬히 저항했다.

포셉으로 쥔 탄을 살살 회전시키며 당기자 꿈쩍도 하지 않았던 탄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몇 분간의 실랑이.

기어이 탄을 제거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변연절제술에 나섰다.

변연절제술이란 감염 조직 또는 죽은 조직이 있는 부위를 제거하여 이차 감염을 막는 처치로 오늘 처치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치이이이익.

아브나가 생리 식염수로 총알이 있던 자리를 소독했으며 정설화는 흡입기로 바스러진 뼛조각들을 흡인했다.

변연절제술을 위한 전 처치가 끝난 후, 최기석은 메스로 상처 주변 조직을 절제해 나갔다.

절제를 하는 내내 그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했다.

총탄이 훑고 간 자리는 폐허 그 자체였다.

손목 인대와 힘줄과 근육 등등.

탄이 스친 곳의 부위 중 정상적인 장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

게다가 변연절제술은 건강한 조직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절제를 시도하는데, 아무리 주변 조직을 잘라 내도 건강한 조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중에는 처치를 하는지, 숨바꼭질을 하는지 모를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아…… 이제 됐어요.”

최기석은 변연절제술을 마치고 처치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새까맣게 죽었던 조직들을 걷어 내자 연분홍빛을 띤 조직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봉합 준비할까요?”

“잠시만요.”

아브나의 말에 최기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수술 과정은 양호였지만 반대로 수술 경과는 불량이다.

총상으로 손목이 워낙 상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환자는 영영 한쪽 손목을 잃고 만다.

“닥터 최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어떻게 해서든 환자의 손목을 살리고 싶겠죠.”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아브나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 병원에서 접합 수술은 불가능해요. 정확히 말하면 이 근방에서 접합 수술이 가능한 병원 자체가 없어요. 수도에 가면 가능하기는 한데…… 수도에 도착하는 순간 골든타임은 끝날 거예요.”

“@!#[email protected]$”

잠자코 있던 환자가 뭐라고 말을 했다.

그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자신의 손목을 응시했다가 다시 최기석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안다는 것처럼.

“환자가 뭐라고 하는 거죠?”

“혹시 앞으로 영영 손목을 못 쓰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된대요. 제발 손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최기석은 절망에 빠진 환자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몸뚱이 그 자체가 재산인 이 땅에서 한쪽 손을 영영 쓸 수 없다는 건 재앙과 같았다.

그걸 알면서도 이대로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옥죄어 왔다.

“봉합 준비할 게요.”

“아니요. 우리끼리 접합 수술을 해 보죠.”

“닥터 최. 불가능해요!”

아브나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우리 병원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요. 인공혈관이나 힘줄도 없고 미세 현미경도 없어요. 닥터 최가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고 해도 기본적인 환경은 받쳐 줘야 수술을 하죠.”

“근처에 적십자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잠자코 있던 정설화가 입을 열었다.

“네. 두 시간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그쪽도 우리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에요. 접합 수술까지는…….”

“제가 그쪽에 연락해 볼게요. 수술 환경이 어느 정도 된다면 환자를 이송해서 우리가 그쪽에서 수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닥터 정. 당신까지 왜 그래요?”

아브나가 세상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저도 기석이처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싶어요. 거기서도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요.”

“고마워, 설화야.”

“난 나가서 연락해 볼게.”

정설화가 나가면서 수술실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환자의 손목을 살리기 위해 생각에 잠긴 최기석.

그의 무모한 행동이 못마땅한 아브나.

본인 손목과 자식 걱정에 발을 동동 구르는 환자.

세 사람은 각자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적십자와 연락을 끝낸 정설화가 수술실로 복귀했다.

“기석아. 그쪽에서 수술실 빌려줄 수 있데. 손목 재건하는데 필요한 인공조직도 제공할 수 있지만…… 인공뼈는 없다고 했어.”

“그거면 됐어. 가자.”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자의 손목 절개창 위에 생리식염수로 적신 거즈를 덮은 후 그 위에 다시 붕대와 부목을 대었다.

접합 수술을 마음먹은 이상 절개창을 봉합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무모해요, 닥터 최.”

“그렇게 보일 거라는 거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도전해 봐야죠. 내가 환자라면 의사가 나를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아브나는 활활 타오르는 최기석을 눈빛을 확인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최기석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기에.

“알겠어요. 그럼 환자에게는 뭐라고 설명할까요?”

“손목을 살리기 위해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하겠다고 전해 주세요.”

“네.”

환자와 수술실을 나서는데 때마침 병원장 네이마르를 마주쳤다. 사정을 설명하자 네이마르는 흔쾌히 최기석 대신 당직을 서겠다고 나섰다.

“부탁해요, 닥터 최.”

네이마르가 최기석을 손을 부드럽게 감쌌고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나레카가 운전하는 구급차가 오베이드 호스피탈을 빠져나갔다.

밤 10시가 넘은 도로는 칠흑처럼 어두웠다.

반짝이는 것이라고는 달빛과 별빛이 전부였다.

험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앰뷸런스는 종종 크게 흔들렸고 후방에 탄 환자와 스태프들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적십자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최기석의 머릿속에는 온통 수술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손목재건술이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어차피 외과의 영역은 하나로 통하지 않는가.

째고 자르고 붙이고.

그 원칙을 지키며 수술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의진대 수련 시절 접합 수술 보조를 선 경험도 있었고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베이드 호스피탈 스태프들을 태운 구급차가 마침내 적십자 병원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이 환자와 응급실로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일행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일반외과의 클래드입니다.”

“반갑습니다. 기석 최입니다.”

“수술실은 이미 잡아 놨고 B 로젯에서 진행하시면 됩니다. 필요한 인공조직은 냉장실에 보관되어 있고요.”

“감사합니다. 오늘의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하하하. 저도 의사입니다.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고귀한 마음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클래드는 앞장서서 최기석 일행에게 수술실을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참관용 수술실에서 일행들이 수술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팔짱을 낀 그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동행한 여의사에게 전화상으로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었을 때 환자의 손목을 되살리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힘들다고 판단했다.

설령 수부외과 의사가 있다고 이 자리에 있다고 한들 손목재건술은 불가능하리라.

수술이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미세 현미경이다.

미세 현미경이 있어야 0.1밀리미터가량 되는 신경을 확인하고 봉합할 수 있었다.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은 무의미할 따름이었다.

‘인공조직편이 있다 뿐이지 우리 병원도 미세 현미경은 없는데…….’

클래드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그럼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건 집도의가 현재 세계 유일무이한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인 최기석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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