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7)
최기석은 책상에 있던 설압자를 찾아서 산모의 입에 물렸다.
혀 깨무는 것을 방지하고 기도를 확보하기 위한 처치였다.
응급처치를 끝낸 그는 신중하게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했다.
전자간증 환자 중 일부는 응급분만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한다. 발작이 소강상태로 보인다고 한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닥터 최. 다행히 병실이…….”
진료실에 들어온 아브나가 환자를 발견하고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발작이 일어나서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다행히 바이탈은 정상 수준이네요.”
“더 필요한 건 없나요?”
“기왕 이렇게 된 거 빨리 입원부터 시키죠. 병실로 보내기 전 생리식염수에 황산마그네슘 믹스해서 달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브나의 신속한 행동으로 환자는 무사히 병실로 이동했고 최기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실 T.O가 있었나요? 어제 봤을 때는 한 자리도 없을 것 같았는데.”
“밤사이에 환자 한 명이 사망했거든요. 그리고 만약 자리가 없다고 하면 우격다짐으로 만들었겠죠.”
“환자들이 반발하지는 않아요?”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베이드 호스피탈의 입원실은 지나치게 북적거렸다. 한 병실에 일곱 명이 입원 중인데다가 보호자들까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입원 생활의 질은 당연히 밑바닥이고 말이다.
“다들 이해할 수밖에요. 그걸 용인해야 자신이 같은 처지에 놓였을 때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받아 줄 테니까요.”
“씁쓸한 진실이네요.”
“안타까운 진실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읽어 냈다.
“그나저나 산모 환자가 너무 많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흉부외과 말고 산부인과 전공으로 할 걸 그랬어요.”
“당분간은 어쩔 수 없으니 닥터 최가 이해하세요.”
아브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단에서는 2월에서 3월 사이에 각 부족마다 커다란 축제를 벌인다. 축제 과정에서 보낸 뜨거운 결실(?)로 인해 이 시기가 되면 임산부 환자가 줄을 선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월드컵 베이비가 있었던 것을 떠올린 최기석은 수단의 상황에 십분 공감했다.
축제가 주는 기이한 열기는 남녀를 뜨겁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다음 환자 들여보낼게요.”
“네. 그러세요.”
이윽고 노크 소리와 함께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이번 환자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임산부였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나요?”
“특별히 아픈 데는 없고요. 저번에 검사 받은 결과를 들으러 왔습니다.”
“성함은요?”
“에르반이요.”
환자의 이름을 적자 모니터 속 차트가 좌르륵 펼쳐졌다.
차트를 훑는 그의 얼굴은 이내 형용할 수 없는 빛을 띠어 갔다.
숨이 탁 막히고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차트에서 눈을 떼고 에르반을 응시하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흉부외과 교수에 오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케이스를 경험했다지만 이곳 수단에서 겪는 케이스는 매번 그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돌아 버리겠군.’
감정표현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기어이 입술을 깨물며 이마 위에 손을 얹었다.
“환자분.”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분은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그의 말에 산모가 눈을 치켜뜨고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에이즈가 어떤 질병인지 아는 눈치였다.
“제가…… 왜…… 에이즈에 걸린 거죠?”
“아무리 의사라도 발병 원인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에이즈 감염자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
“지금 상황이 두렵고 당황스러울 거라는 건 알지만 그럴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해요.”
최기석은 그녀를 안심시키며 몇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하나는 아이의 출산에 관련된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에르반의 에이즈 치료와 관련된 방향이었다.
에르반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고개를 끄덕인다든가, 대답을 한다든다 하는 반응이 없어서 말을 제대로 듣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물론 말을 하는 그의 속내도 편치만은 않았다.
비록 근본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환자의 가슴을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기에.
“저……. 지금…… 당장은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
“우선 집에 갔다가 나중에 결정하고 돌아와도 되는 거죠?”
“네. 편한 대로 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르반이 도망치듯 진료실을 떠났다.
“이런 케이스 생각보다 많아요. 앞으로 적응하셔야 될 거에요.”
“케이스가 많다면 매뉴얼도 있는 거죠?”
“네.”
아브나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하지만 낙태를 권유하는 편입니다. 물론 우리 오베이드 호스피탈이 직접 낙태를 처치하지는 않지만요.”
“산모와 태아의 수직적 감염은 약물 치료로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어요.”
“그래도 100퍼센트는 아니잖아요?”
그녀의 지적에 최기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임산부고, 출산할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를 앓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니 입을 열기 조심스러웠다.
“결정하기 힘든 문제군요.”
“네. 임신 중절은 특히나 그렇죠. 수단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뚜렷한 해법이 없는 몇 안 되는 문제니까요.”
“의료윤리라는 게 참…….”
최기석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 후로 진료가 이어졌지만 어쩐 일인지 에이즈 확진 소식을 듣던 에르반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과 정설화, 나레카가 병원 주차장에 서 있었다.
“준비됐어요?”
“네.”
“그럼 출발합시다.”
세 사람을 태운 지프차가 오베이드 호스피탈을 떠났다.
병원 스태프들은 정기적으로 마을을 돌며 예방접종과 순회 진료에 나선다.
그동안은 인원 부족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최기석과 정설화가 합류하면서 순회 진료가 다시 시작되었다.
“첫 진료를 해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확실히 병원 진료와는 하늘과 땅 차이네요.”
나레카의 질문에 정설화가 최기석의 손을 꼭 잡고 말을 이었다.
“찾아오는 환자들도 다르고 질병도 완전히 달라요. 순회 진료 직전에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 환자를 받았는데 가슴뼈가 훤히 다 보였어요. 육안으로 갈비뼈를 하나하나 다 셀 수 있을 정도였죠.”
“…….”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아이에게 생기가 없었다는 점이에요. 아직 자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인생을 포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기석아, 혹시 진료 본 환자 중에 웃는 환자 있었어?”
“아니.”
최기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안 건데, 여기서는 아이가 태어나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는다면서요?”
“네. 맞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요. 아이들은 출생 후 최소 일 년이 지나야 이름이 생깁니다.”
“신생아 초진 환자 받았을 때 이름을 직접 지어 줬는데 그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이 아이는 축복을 받으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 환자들은 단순히 아파서 진료를 받는 게 아닙니다.”
나레카가 운을 뗐다.
“살아남기 위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병원을 찾는 거죠.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잘사는 나라 환자들과는 다르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희미하게 떨리는 정설화의 목소리, 최기석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사실 그도 정설화와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꿈을 꾸기 힘든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곳은 꿈을 꾸기는커녕 살아남기조차 힘든 곳이었다.
이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 될 수 있겠지만, 이들의 상황은 삶의 밑바닥에 이유 없이 던져졌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걸 아는데도 미션을 계속하실 겁니까?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편할 텐데요.”
“의사가 있는 곳에 환자가 있는 게 아니라 환자가 있는 곳에 의사가 있는 겁니다. 세상 어디라도 환자가 있으면 치료할 뿐입니다.”
최기석은 나레카의 도발 섞인 질문을 받아쳤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닥터 최가 아무리 잘난 의사라고 한들, 이곳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바꿀 순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죠.”
“생각보다 마음이 넓은 분이군요. 안심입니다. 간혹 병원을 진흙탕으로 만드는 의사들이 있는데 그런 과는 아닌 것 같아서요.”
“무슨 뜻입니까?”
“알기 싫어도 조만간 알게 될 겁니다.”
나레카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지프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키리마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키리마는 70가구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로 가옥은 TV에서 흔히 봤던 움막집 형태였다.
삐리리리~
기이한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한 남자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남자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었으며 남자의 피리 소리에 맞춰 커다란 뱀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곳이 미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피부를 찔러 왔다.
“촌장님 집으로 가시죠.”
“네.”
최기석과 정설화는 처치 도구를 챙겨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응접실에 자리 잡은 세 사람이 진료 준비를 하는 가운데 환자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두 사람은 나레카의 통역에 도움 받으며 결핵 예방 접종에 나섰다.
선진국에서 바라보는 결핵은 저 밑바닥에 있는 질병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충분히 저승사자로 변해서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었다.
과거 불주사라고 불렸던 결핵 예방 접종을 끝낸 최기석과 정설화는 그 자리에서 순회 진료를 시작했다.
그동안 순회 진료가 없어서 그런지 대기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집 바깥까지 이어졌다.
환자들의 주된 질병은 설사병, 영양실조, 콜레라 등등으로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질병들이었다.
“기석아, 왜 그래?”
“이 환자 좀 이상해서.”
최기석은 코앞에서 큰 눈을 끔뻑거리고 있는 환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핏 증상을 들었을 때는 감기 같은데 환자의 양쪽 눈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여기는 왜 그런 거죠?”
“벌레에 물렸습니다.”
그의 질문에 환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하며 팔뚝의 상처를 벅벅 긁었다.
이질감을 느낀 그는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진단명에 떠오른 것은 샤가스 병이다.
샤가스 병.
이것은 기생충에 감염되는 질환으로 감기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방치할 경우 각종 심장 질환을 유발할 수 있었다.
다행히 환자는 샤가스 병이 만성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설화야. 약통에 benznidazole 있어?”
“응. 넉넉하게 챙겨 왔어.”
“우선 열흘 치만 챙겨 드려. 아무래도 샤가스 병 같아.”
정설화는 기생충 약을 챙겨서 환자에게 내밀었지만 환자는 손을 저으며 완강하게 약을 거부했다. 그리고 통역하는 나레카를 향해 뭐라 뭐라 소리 지르며 검지로 약통 하나를 가리켰다.
“뭐라고 하는 거죠?”
“그게…….”
나레카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여기 있는 빨갛고 큰 약을 달라는데요? 그게 더 효과가 좋아 보인다고요.”
“이 흰 약이 꼭 필요하다고 환자분에게 전해 주세요.”
“저번에 흰 약을 먹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고 하는 군요. 반면 옆집 사람은 빨간 약을 먹고 단번에 나았다고 하고요.”
나레카의 말에 최기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약 색깔과 크기로 효과를 판단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