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4)
수술용 참관실.
송명진과 야사다, 권일수가 모처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금 진행하는 노우드 수술이 MHC에서 집도하는 최기석의 마지막 수술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이 노우드 수술이라……. 권 교수님께서 생각이 많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좋은 추억이 있는 수술은 아니죠.”
송명진의 말에 권일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의진대 시절 프로젝트 수술로 노우드 수술을 선택했으며 그 결과 장혁필에게 과장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금도 당시만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따끔따끔 아팠다.
“오늘 수술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노우드 케이스 중에서도 난이도가 최상급입니다. 최 선생이라고 해도 결코 쉽지 않겠죠.”
“그럼 닥터 권이 집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잠자코 있던 야사다가 대화에 껴들었다.
“헤드 치프. 최 선생은 일 년 전에 저를 뛰어넘었습니다. 수술 성공률이 높은 건 내가 아니라 최 선생이에요.”
“벌써 그 정도입니까?”
야샤다의 눈썹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소아흉부외과 수련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닐 텐데…… 고작 사 년 만에 닥터 권을 뛰어넘다니요.”
“저도 안 믿깁니다.”
권일수의 시선이 집도 중인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일반 흉부외과보다 더 섬세한 솜씨가 요구되는 소아흉부외과 파트.
최기석은 이를 어렵지 않게 소화해 냈다.
그의 습득력은 스펀지에 버금갔는데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지식을 응용하는 능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권일수가 반평생 수련해서 얻은 결과물을 최기석은 고작 사 년 만에 초월해 버린 것이다.
“흠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도 상황은 같습니다.”
“…….”
“미스터 최의 폐식도 수술은 나를 뛰어넘었어요. 한 번은 궁금해서 미스터 최가 집도한 환자들의 차트를 살펴봤는데…… 수술 시간이나 경과 면에서 나보다 뛰어나더군요.”
“내가 말했죠? 최 선생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송명진이 야사다와 권일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별안간 NSF는 왜 지원한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건 이해를 할 수 있겠는데.”
“수술이 끝나면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까요.”
송명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초롱초롱한 여섯 개의 눈동자가 모니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 *
“이제 어떻게 할까요?”
“우선 기형이 발생한 상행대동맥부터 복원시킨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혈관겸자로 대동맥과 주폐동맥 위쪽 혈관을 묶어 주었다.
출혈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기본적인 처치를 마친 후 그는 수술 부위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환자의 상행대동맥은 무척 가늘었다.
다소 과장을 보태면 실 줄기 같다고 해야 할까.
대동맥이란 온 몸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들이 갈라지는 장소인데 이곳 상단부에 문제가 생겼으니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혈관이 가는 것은 소아라서 혈관 성장이 끝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발육부전성 좌심 징후군의 영향이 더 클 것으로 보였다.
“메스.”
최기석은 메스로 상행대동맥 인근에 위치한 주폐동맥의 외곽 부위를 세로로 갈랐다. 그러자 해당 혈관이 오징어 찢기듯이 갈라졌다.
치이이이익.
혈관 일부가 찢어지면서 출혈이 발생하자 제1보조와 제2보조가 석션에 나섰다.
혈관겸자로 출혈을 예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부터 본 게임이야.”
“네!”
“5-0 prolene.”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잘라 낸 폐동맥편을 가느다란 상행대동맥에 문합해 주었다.
폐동맥편으로 상행대동맥의 크기를 키워서 상행대동맥의 기능을 정상화 시키는 작업이다.
상이한 혈관을 문합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정교한 손놀림과 예술적인 디자인 감각이 동시에 요구되는 처치였기에. 하지만 최기석은 혈관을 한 번 대어 본 것만으로 수술 방향을 정했다.
그냥 보였다.
아니면 문합 방법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까.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수술이 하고 싶어서 안달 난 것처럼 정보를 쏟아 냈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최기석은 단순 단속 봉합법으로 잘라 낸 주폐동맥 일부와 상행대동맥을 단단히 연결했다.
“기욤, 혈류 테스트 해 볼래?”
“아, 네.”
그의 처치를 멍하니 보고 있던 기욤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테스트에 나섰다.
상행대동맥을 성형하면서 우심실의 혈류가 상행대동맥과 관상동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노우드 수술의 첫 단계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음은 폐동맥 교정이다.”
최기석은 주폐동맥의 양쪽 끝을 분리시킨 후 그 자리에 고어텍스 튜브를 연결시켰다.
방금 전 주폐동맥의 일부를 분리하여 상행대동맥에 합쳐 주었는데 그로 인해 폐동맥 혈류에 문제가 생길 것을 예방해 주는 처치였다.
누가 뭐래도 심장은 피가 흐르는 통로이자 장(場)이 아닌가.
심장 및 주변 부위에 피가 잘 통하도록 하는 것이 심장 수술의 요체다.
이어지는 노우드 수술.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최기석은 척척 수술을 진행해 나갔다.
심방중격 결손이 있는 부위를 제거하여 우심방의 혈관 흐름을 정상으로 되돌렸으며, 대동맥과 대동맥 판막의 협착 및 폐쇄, 삼첨판의 문제까지 일사천리로 해결했다.
그렇게 노우드 수술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우와. 아직 세 시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기욤은 수술 시간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노우드 수술의 일반적인 수술 시간은 여섯 시간에서 일곱 시간이거늘, 최기석은 이를 절반으로 단축하는 신기를 보여 주었다.
“시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수술 정확도지.”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뭐하지만 최 교수님의 집도는 흠잡을 때가 없었습니다.”
제1보조의 말에 최기석은 침묵을 지켰다.
마치 아직 싸울 상대가 남았다는 것처럼.
“미스터 최. 환자 체온이 38도까지 올라갔어요. 호흡수와 맥박도 점점 증가하고 있고요.”
“…….”
“좀 전까지는 바이탈이 잡혔는데 지금은 속수무책이에요.”
마취의 루이스의 보고로 로젯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스태프들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환자 감시 장치가 얄미운 소리를 냈다.
“교수님. 뭐라고 말씀해 주세요. 이대로라면 환자는 죽습니다.”
잠자코 있던 제1보조가 기어이 입을 열었다.
아무 처치도 없이 환자만 내려다보고 있는 최기석이 답답했던 것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고 하는 처치는 아무 의미가 없어.”
“…….”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발을 동동 구르는 다른 스태프들과 달리 최기석은 차분하게 수술 부위를 응시했다. 루이스에게 바이탈을 조금만 더 유지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윽고 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용의 눈 3단계 입체화 모드를 사용하셨습니다. 입체화 모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시야가 다 드러나지 않는 사물을 선택하면 재구성에 들어갑니다. 레벨이 증가할수록 재구성 영상의 세밀도가 증사합니다.]
[입체화 대상으로 심장과 주 폐동맥, 상행대동맥을 선택하셨습니다. 입체화를 시작합니다.]
스킬을 사용하자 모눈종이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시야에 가로줄과 세로줄이 나타났다. 더불어 수술 부위 위로 3D로 재구성 된 수술 시야가 떠올랐다.
“조나단. 주폐동맥의 왼쪽 분지를 들어 볼래?”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지시에 제1보조 조나단이 포셉으로 혈관을 살짝 집어 올렸다.
“....”
“....”
단순한 행동이었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혈관의 하단 부분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수술 도중 일어난 혈관의 괴사, 뜻밖의 사실이 도끼처럼 스태프들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혈관이 괴사하면서 패혈성 쇼크가 나타난 거야. 환자의 바이탈이 정상일 리 없지.”
“…….”
“지금부터 괴사한 조직을 잘라 내고 그 자리를 인공혈관으로 대체한다.”
방관자처럼 보였던 최기석이지만 막상 처치 방향을 정하자 번개 같은 속도를 뽐냈다. 괴사한 조직을 잘라 내고 봉합하는데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루이스, 바이탈은 어때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숨을 죽인 채 오매불망 환자 감시 장치만 바라봤다. 끔찍한 기다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이탈이 점점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닫아도 문제없겠어. 수술, 마무리한다.”
그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인공심폐기를 이탈시켰다.
수술 성공률 30퍼센트.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소아흉부외과의조차 기피하는 노우드 수술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다들 고생했다.”
최기석은 끝까지 힘을 내준 스태프들 다독이며 로젯을 벗어났다.
그런데 후련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자신의 알 수 없는 속내를 궁금해 하면서.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세 명의 스승, 송명진과 야사다와 권일수와 함께 뉴욕 중심부에 있는 선술집을 찾았다. 평소에도 종종 식사는 같이했지만 다 같이 술판을 벌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적당한 술이 들어가면서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
“최 선생. 아주 훌륭했어.”
곁에 앉은 권일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설마 혈관이 괴사한 걸 잡아 낼 줄이야. 한참 동안 환자만 보고 있길래 패닉에 빠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군.”
“제가 당황하면 환자와 스태프들이 기댈 곳이 없어지잖아요. 보기와는 달리 정신은 바짝 차리고 있었습니다.”
“난 처음부터 최 선생을 믿었어요.”
송명진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환자가 위험해 빠졌을 때 최 선생이 보이는 특유의 눈빛이 있거든요. 그 눈빛이 보였으니까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요. MHC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니까 겸손해하지 말고 실컷 즐기라고요.”
송명진의 너스레에 최기석은 기어코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그가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비단 게임 능력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세 사람의 스승에게도 있었다. 이들은 그를 애정으로 지켜봐 주었으며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전수하기 위해 힘써 주었다.
그 은혜는 평생을 두고 갚아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나저나 내일 떠난다니 아쉽군.”
야사다가 술잔을 흔들다가 말을 계속했다.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는 건가?”
“네. 수련은 미국해서 다 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항상 한국이 있었습니다. 한국 흉부외과는 모든 의사들이 기피하는 불모지고 저는 그 불모지를 개척해 보고 싶습니다.”
“그럼 NSF는 왜 지원했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NSF 활동을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흐음…… 위험할 것 같은데. 지역은 결정 났고?”
“네.”
야사다의 물음에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파견 나갈 지역을 설명했다.
“3개월 단기 미션이라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단기 미션이라니 마음이 놓이긴 하네요. 뭐, 새로운 환경에서 의료 활동을 하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 겁니다.”
송명진이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장기여 박사님이나 이태식 신부님 같이 훌륭한 분들이 계셨고 세계적으로 노먼배쑨 같은 위인들도 있었고. 최 선생이 노력한다면 분명 그곳에서 그분들의 마음을 배울 수 있을 겁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술잔이 오고가면서 대화가 깊어졌다.
술자리는 자정쯤에 끝났으며 세 스승은 송명진의 집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작별인사 후 최기석은 세 스승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세 분의 가르침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