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54화 (353/407)

그 후로 (6)

A 로젯 참관용 수술실.

한국에서 날아온 김태식은 주변에 앉은 써전들을 훑으며 감탄하기에 바빴다.

제임스 홉킨스 최초의 여성 흉부외과 과정 클라라.

일본에서 건너와 MHC 흉부외과 헤드 치프를 맡은 야사다.

영국 최고의 흉부외과의 제라드.

프랑스의 괴짜 심장내과의 샬롯 등등.

평생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한 써전들이 참관실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눈이 호강한다는 말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놀이공원에 처음 온 아이처럼 주변을 살피던 그는 이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신수술의 라이브 시연이 십 분 뒤로 다가왔다.

직접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괜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의진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송명진과 최기석이 수술을 하기 때문이리라.

‘기석이는 이런 곳에서 수련하고 있었구나.’

김태식은 최기석의 생존력에 박수를 치고 싶어졌다.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계적인 써전들 틈에서 기죽지 않고 수련생활을 한다는 것.

심지어 수련 중에 그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최기석은 이를 해내고 말았다.

경험이나 실력을 따지면 이제 자신이 최기석의 후배가 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선배, 이번 수술 가능할 거라고 보세요?”

곁에 앉은 정설화가 질문을 던졌다.

정설화 역시 수술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MHC를 찾았다. 아직 최기석은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지만.

“확장성 심근병증하고 심부전이라면 심장이식 말고 답이 없잖아요. 그런데 부분이식이라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너 의외로 차갑다? 네 낭군이 퍼스트라는 거 잊었어?”

“마음속으로야 당연히 기석이를 응원하죠. 하지만 상식적으로 수술을 판단하는 건 다른 영역이니까요. 아무리 송 교수님과 기석이가 뛰어난 써전이라고 해도…….”

정설화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뭐야. 이것도 결국 기석이 걱정?”

“몰라요.”

정설화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자 김태식은 배를 잡고 껄껄 웃었다. 오랫동안 지켜봤지만 두 사람은 역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자신이 없었다면 써전들을 불러서 라이브 시연을 못했을걸?”

“…….”

“지금은 믿어 보자. 송 교수님과 기석이를.”

“네.”

시선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수술 스태프가 로젯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 * *

터벅. 터벅.

최기석은 바쁜 걸음으로 수술실을 향했다.

스승의 신수술 라이브 시연이 앞으로 오 분 뒤에 있었다.

주주총회가 생각보다 길어졌던지라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걱정이 됐다.

‘생각보다 잘 끝났어.’

총회를 돌이키는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예전부터 파커를 중심으로 한 대표이사의 사업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MHC가 메이죠에서 반독립을 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메이죠 소속 병원이다. 그런데 MHC는 환자 중심이라는 메이죠의 방향에서 자꾸 이탈하려고 했다.

그 중심에는 파커 일당들이 있었고 말이다.

파커를 쳐낸 만큼 그들도 예전처럼 제멋대로 사업을 몰아붙일 수는 없으리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수술이 진행되는 A 로젯에 도착했다.

로젯 앞에는 스승 송명진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일처리가 늦어서.”

“바쁜 일이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

송명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넘겼다.

최기석은 스승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에게 수술 후 본인이 메이죠의 대주주라는 것을 밝힐 예정이었다.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수술 전에 알려 봐야 도움이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벅. 벅. 벅. 벅.

브리핑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스크럽에 나섰다.

솔을 문지르던 도중 그는 스승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근 이 년 만에 수술 나들이에 나선 스승의 표정은 평온했다.

전 세계에 흉부외과의 앞에서, 신수술을 라이브로 펼친다는 부담감은 티끌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내 걱정하는 건가요?”

송명진이 그의 시선을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교수님 걱정을 하겠습니까.”

“표정은 아니던데요?”

“…….”

“솔직히 난 이 순간이 너무 흥분돼요. 다시 메스를 쥔다는 게 이런 기분일 줄은 몰랐어요.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럼 혹시 복귀하시는 겁니까?”

“그건 조금 더 두고 봐야죠.”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크럽이 끝났다.

스태프들은 일제히 로젯에 입장해서 수술 준비에 나섰다.

참관용 수술실은 이례적으로 사람들로 붐볐는데, 스승이 신수술을 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든 써전들이다.

스승의 파급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랄까.

만약 최기석이 신수술을 발표했다면 결코 이런 그림을 만들 수 없었으리라.

“아아아. 잘 들립니까?”

마이크를 착용한 송명진이 참관용 수술실을 올려다보자 야사다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음향에 문제가 없다는 신호다.

얼마 후 수술 준비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각자의 위치에 섰다.

최기석은 제1보조였기에 송명진의 맞은편에 위치했다.

로젯에서 스승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게 얼마만인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벅찬 감정이 샘솟았다.

“MHC 진료부원장을 맡고 있는 송명진입니다.”

송명진이 수술에 앞서 참관실을 올려다보며 운을 뗐다.

“오늘 수술은 확장성 심근병증과 심부전증에 대한 심장 부분이식술입니다. 이 질환은 일반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이 아니면 완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하지만 오늘 시연하는 수술이 상용화된다면 기존에 심장이식을 기다리던 환자들의 50퍼센트 정도를 이 수술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송명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수술을 호프 수술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더불어 이 수술에 최초 계획은 제가 했지만 여기 있는 기석 최가 완성시켰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기석 최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 교수님!”

“최 선생은 가만히 있어요.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이니까.”

최기석에게 주의를 준 송명진이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호프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낭랑한 외침이 로젯에 퍼지면서 호프 수술의 라이브 시연이 개막됐다.

스으으으윽.

제2보조가 소독과 방포작업을 마치자 송명진은 메스를 손에 쥐고 환자의 목부터 명치까지를 내리그었다.

이에 최기석은 전기톱으로 흉골을 절개하고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절개창에 견인기를 맞췄다.

이윽고 견인기가 좌우로 벌어지며 수술 시야가 확보되었다.

“캐뉼러 연결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캐눌러 한쪽을 우심방에 삽입하여 정맥순환을 유도하고, 다른 캐뉼러를 하지정맥에 삽입하며 동맥 순환을 유도했다.

덜컹. 드르르륵.

펌프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인공심폐기가 작동했다.

“호프 수술은 일반 심장이식술과 동일하게 CABG부터 시작합니다. CABG는 내흉동맥을 박리하여 협착 부위에 Y 그래프트를 시행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송명진이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는 메스로 근육층을 가르면서 숨어 있는 내흉동맥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다.

몇 번의 작업 끝에 박리된 내흉동맥이 근육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최 선생. 우회로 문합을 나랑 같이 진행하죠. 내가 이식혈관을 대동맥에 연결할 테니까 최 선생이 나머지 끝을 우회로에 문합해 주세요.”

“교수님께서 시연하는 수술인데 제가 나서는 건…….”

“이번 수술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최 선생이에요. 이 자리에 있는 써전들은 다들 내로라하는 써전들이니 미리 눈도장 찍는 것도 중요해요.”

“……알겠습니다.”

송명진의 지시에 최기석은 어쩔 수 없이 이식혈관 문합에 나섰다.

우선 길게 늘어트린 혈관을 협착이 있는 부위 너머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단순 단속 문합으로 혈관을 단단하게 꿰맸다.

세계의 써전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두려움은 없었다.

CABG는 이미 숨 쉬는 것처럼 익숙했다..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문합을 함에 따라 CABG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보통 다섯 시간이 걸리는 수술이지만 두 시간 만에 종료된 것이다.

“…….”

“…….”

CABG를 마친 최기석과 송명진이 눈빛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눈은 활짝 웃고 있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은 결코 얕지 않았기에.

“지금부터 호프 수술의 백미인 심장 부분이식술을 시작하겠습니다. 본래 제 계획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근 부위를 절제하고 인공이식편과 혈관을 각각 심장과 연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수술 시간이 길고 연결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서 최 선생의 제안에 따라 수술 방법을 바꿨습니다.”

송명진은 설명하며 메스를 들었다.

이에 최기석이 전기 소작기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근 부위를 지지며 절제선을 만들었다.

스으으으윽.

송명진이 절제에 나섰다.

손놀림은 경쾌했으며 한 치의 떨림조차 없었다.

옛 솜씨를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이식편 준비해 주세요.”

송명진의 말에 소독간호사가 냉장보관하고 있던 인공심장 이식편을 꺼냈다.

“수술에 앞서 절제 부위를 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3D프린팅을 이용해 인공심장 이식편을 만들었습니다. 이럴 경우 주요 혈관과 심장의 접합부만 연결하여 수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최 선생.”

“네.”

최기석은 인공심장 이식편을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심장에 맞췄다.

순간 딱딱하게 굳어 가는 최기석의 얼굴.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어 낸 송명진은 문제점을 파악하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3D 프린팅으로 이식편을 제작하면서 이식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인공이식편이 심장 접합부에 비해 턱없이 작았다.

그래서 이 둘의 아귀가 맞지 않았다.

“인공이식편을 제작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식편이 접합부보다 작군요. 차라리 이식편이 컸다면 절제를 해서 맞출 수 있었을 텐데.”

“…….”

“그러면 수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 종료하는 겁니까?”

클라라가 얄미운 질문을 던졌고 다른 써전들은 송명진의 대답이 궁금하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송명진과 스태프들은 이 위기를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MHC 흉부외과를 너무 얕잡아보는 군요, 클라라. 최 선생도 그렇게 생각하죠?”

“물론입니다.”

최기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식편 수정에 나섰다.

트레이닝 룸에서 직접 이식편을 만들었던 그다. 접합부와 아귀를 맞추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최기석이 수정한 이식편을 심장 부위에 가져다 댔다.

이식편과 심장 접합부가 퍼즐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혹시라도 호프 수술 도중 문제가 발생하면 이런 식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일반적인 심장과 달리 인공이식편은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니까요. 답변이 됐습니까? 클라라.”

“……네.”

“그럼 수술을 계속하겠습니다.”

송명진은 최기석의 도움을 받아 이식편 문합에 나섰다.

우선 주요 혈관들을 단순 단속 봉합으로 이어 주고 그 후에 심장과 이식편의 양끝을 연속 봉합으로 처리했다.

“역시 닥터 송이야.”

“그동안 메스를 놓았던 거 맞아? 믿을 수가 없군.”

송명진의 수술을 지켜보던 써전들이 탄복하며 한마디씩 던졌다.

아시아 최고의 흉부외과의였던 그가 최기석의 보조를 만났으니 수술이 날개 달린 듯 진행되는 게 당연했지만 말이다.

“이것으로 호프 수술의 라이브 시연을 마치겠습니다.”

송명진의 말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향했다.

우려와 달리 바이탈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교수님.”

“최 선생.”

최기석과 송명진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장이식 수술을 목 놓아 기다리던 수많은 환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내리쬐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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