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3)
수술대에 누워 있는 프레시 카데바를 중심으로 스태프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카데바 실습의 집도의는 최기석.
제1보조는 송명진, 제2보조는 레지던트 잭슨, 제3보조는 인턴이 맡았다.
추가로 소독간호사 한 명이 더 붙었으며 인공심폐기사는 없었다. 실전 같은 연습을 한다고 해도 시체의 심장에 인공심폐기를 달 순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만이군.’
수술대 앞에 선 송명진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설레는 기분은 꼭 몇십 년 전 레지던트 수련 시절, 첫 수술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다.
메스를 놓은 지 어느덧 2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끔씩 외래진료만 보며 단 한 번도 메스를 쥔 적이 없었다.
익숙했던 전쟁터가 지금은 한없이 낯설기만 했다.
송명진은 수술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최기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인간을 초월한 성장력을 보여 주고 있는 최기석.
과연 그는 이번 수술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호기심이 갈수록 몸집을 불려 나갔다.
“교수님.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지금부터 프레시 카데바를 이용한 심근병증과 심부전증에 대한 신수술을 시작합니다. 실전이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진행해 주세요.”
최기석의 당부와 함께 수술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스으으으윽.
잭슨이 환자의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자 최기석이 메스를 들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정중골 개흉술이 진행되었다.
절개창이 벌어지고 전기톱이 웅웅거리며 복숭아씨를 닮은 흉골이 갈라졌다.
이후 절개창에 견인기를 고정시킨 후 좌우로 벌려 시야를 확보하는 것으로 수술 준비가 끝났다.
“인공심폐기는 연결한 것으로 가정하고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술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CABG(관상동맥 우회술).
최기석은 트레이닝 룸에서 단련한 실력을 뽐내며 일사천리로 수술을 진행했다.
내흉동맥 박리, 대동맥 및 협착 부위에 펼쳐지는 end-to-end anastomosis(양 끝 문합), Y graft 등등.
수술 숙련도는 웬만한 펠로우 뺨칠 만큼 뛰어났다.
비록 수술 대상이 프레시 카데바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다른 스태프들이 최기석의 집도 실력에 감탄하는 동안, 최기석은 스승의 깔끔한 보조에 감탄했다.
집도의가 되어 수술하면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진다.
수술 중 필요한 시야 확보 및 석션이나 수술 부위 고정 등의 불편한 점을 말하며 과정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승이 보조하니 굳이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알아서 먹고 싶은 반찬을 떠먹여 준다고 해야 할까.
보조 수준이 독심술사급이었다.
‘클래스는 어디 안 가는 구나.’
최기석이 CABG를 무사히 완성시키자 로젯에 침묵이 감돌았다.
더불어 모두 스태프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진짜 게임은 지금부터군요. 최 선생이 과연 신수술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한 걸요?”
“저도 입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습니다.”
너스레를 떨던 최기석은 그동안 스승의 신수술을 익히기 위해 고민했던 과정을 털어놓았다.
의진대 심포지엄에서 만난 샬롯에게 도움을 받은 일.
그녀의 수술법은 획기적이었지만 수술 범위가 스승의 목표에 미치지 못했던 점 등등.
송명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그가 신수술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에.
자신의 몫을 대신해 준 최기석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겁니다.”
최기석은 냉동고로 이동해 미리 만들어 둔 인공혈관과 조직편을 꺼냈다.
“이건 뭡니까?”
“사전에 제작한 이식편입니다. 스승님의 수술 역시 넓은 테두리에서 보면 이식 수술로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굳이 수술 도중에 모든 혈관과 조직을 연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미리 이식편을 만들고 중요 부위만 연결해 준다면 수술 시간과 난이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
최기석의 설명이 벼락처럼 머리를 때렸다.
놀란 송명진은 입을 벌린 채 침음성만 흘렸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써전은 수술실에서 모든 절차를 끝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닐까 싶었다.
“맞는 말입니다. 이 방법이라면 승산이 있겠군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 인사는 내가 해야죠. 그건 그렇고 수술법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뭡니까?”
“얼마 전 권 교수님의 쥰 증후군 수술 보조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최기석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보통 쥰 증후군은 갈비뼈를 잘라서 늘려 주는 수술법을 택하는데 권 교수님은 견인기로 환자의 흉곽을 늘려 주었습니다.”
“…….”
“그걸 지켜보고서 기존의 발상을 뒤집어 봤습니다.”
“흐음…… 그랬군요. 어쨌든 수술을 계속해 볼까요?”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메스를 쥐었다.
스으으으윽.
날카로운 전기 칼날은 스승이 원하는 부위를 잘라 냈다. 심장이 꼭 두부처럼 잘려 나갔으며 절단면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텅!
제 기능을 못한다고 가정한 부위가 잘려 나가자 송명진이 사전에 준비한 이식편을 심장에 위치시켰다.
절단면과 이식편의 아귀가 착 들어맞았다.
“지금부터 이식편을 문합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눈을 빛내며 주요 혈관 및 심장과 이식편이 맞닿는 부분을 꿰매 나갔다.
스승의 빈틈없는 보조로 인해 문합에 가속도가 붙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태프들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꼿꼿하게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심근병증과 심부전증에 대한 부분 이식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물론 카데바라서 경과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과정에 실수는 없었고 외견으로 살핀 문합 부위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교수님. 이번 수술…… 어떻게 보셨습니까?”
최기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송명진을 응시했고 송명진은 가만히 있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최고입니다. 당장 실용화해도 문제없겠어요.”
송명진의 칭찬에 최기석은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스승의 인정을 받았다.
이번 수술로 그에게 받은 하늘 같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까부터 말했잖아요. 감사할 사람은 나라고.”
“그래도…….”
“빨리 뒷정리 끝내고 이번 수술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죠.”
송명진의 말에 최기석은 서둘러 카데바 정리를 마치고 로젯을 떠났다.
이윽고 최기석과 송명진이 휴게실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세 시간 넘는 수술을 뛰었음에도 두 사람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에너지가 넘친다는 듯 왕성한 대화를 이어 갔다.
“최 선생.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송명진이 손을 뻗어 최기석의 손을 감싸 쥐었다.
스승의 쪼글쪼글한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스승이 고된 세월의 풍파에 찌든 노인으로 보였다.
스승은 한국 흉부외과의 위대한 별이지만 동시에 나이 육십 줄을 바라보는 한 남자였기에.
사람이 다 의사는 아니지만, 모든 의사는 다 사람이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제가 아무리 고생을 했다한들 처음 신수술을 개발하신 교수님만큼 힘들었겠습니까? 저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얹었을 뿐입니다.”
“최 선생, 그거 알아요? 수저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거?”
“듣고 보니…… 교수님 말씀도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나는 최 선생이 자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송명진이 빙긋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조만간 케이스 환자 확보하고 라이브 시연하죠. 그래야 심근병증과 심부전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덜 테니까.”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기석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신수술을 완성한 후 쭉 시연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그러던 중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고 말이다.
“그게 뭐죠?”
“신수술의 라이브 시연은 교수님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기석의 폭탄선언에 송명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연은 최 선생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유는요?”
“제가 언론에 많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아직 레지던트 1년 차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새로운 수술을 완성했다며 시연에 나선다면 다른 흉부외과의들이 이 수술을 받아들일지 의문입니다.”
“…….”
“즉 교수님 정도 되는 분이 수술을 발표하고 시연해야 파급력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리 말아요. 최 선생이 레지던트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MHC에서 최 선생을 단순히 레지던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건 최 선생도 잘 알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MHC 안에서의 일입니다. 세계 각지에 있는 써전들은 저를 모릅니다. 반면, 송 교수님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죠.”
“그거야 그렇지만…….”
“저는 신수술법이 빛을 보려면 교수님께서 라이브 시연을 하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기석의 확고한 말투에 송명진이 턱을 쓸어내렸다.
무거운 침묵 속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송명진이다.
“최 선생, 라이브 시연에서 중요한 건 수술 자체의 완성도와 써전의 솜씨예요. 수술의 완성도는 이미 내가 검증했고, 수술을 잘 소화할 수 있다면 설령 인턴이라도 라이브 시연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원론적인 부분에서는 교수님 말씀이 백 퍼센트 맞습니다만…… 현실이 꼭 원론적으로 돌아가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
“누가 어떤 수술을 펼치느냐, 저는 사람들이 그걸 더 궁금해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 중에서도 스타가 있다는 건 교수님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송명진은 최기석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한국 흉부외과의 스타로 지내온 것을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세를 탄 최기석이 말을 계속했다.
“사실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수님이 현장을 떠나 치료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계신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교수님께서 메스를 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번 수술에 완벽한 매듭이 지어집니다.”
“휴우…….”
송명진은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놓인 캔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면서 약간의 현기증이 나타났다.
이런 식의 전개를 원한 건 아니었거늘.
“최 선생이 뜻이 정 그렇다면…… 이번 수술 라이브 시연은 내가 하겠어요.”
“정말이십니까?”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죠. 그리고 애초에 신수술을 떠올린 게 나잖아요. 결자해지라고 내가 묶은 매듭은 내가 풀겠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교수님.”
송명진은 계속해서 최기석과 수술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도를 결정해서 그런 걸까.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 * *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송명진은 진료부원장 업무를 처리하면서 남은 시간에는 수술 감각을 익히는 데 힘썼다. 모처럼 도축장을 찾아서 소의 심장을 얻고, 이를 수련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잠들어 있던 써전의 뜨거운 피가 들끓고 있었다.
송명진은 밤낮을 잊은 채 수련에 몰두했다.
그러는 사이 운 좋게 케이스 환자가 입원했고 수술 날짜까지 확정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가운데.
마침내 신수술의 라이브 시연을 펼치는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