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끝, 또 하나의 시작 (6)
K 로젯.
카타리나는 수술 준비를 마친 채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폭우가 한바탕 쏟아지기 전의 어두운 하늘과 닮아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톡. 톡. 톡.
자신도 모르게 신발 끝으로 로젯 바닥을 찼다.
사실 권일수의 의견을 마지못해 따른 그녀였다.
일반적인 심장이식 케이스라면 반대하지 않았겠지만 공여자와 수혜자의 심장 크기 차이와 공여자에게서 발견된 심장종양이 마음에 걸렸다.
이식센터의 연락을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수술이라는 총알은 이미 환자를 향해 쏘아졌고 몇 시간 후 그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타날 것이다.
대기 중인 카타리나의 시선이 참관실로 향했다.
참관실에는 부병원장 파커 및 벤슨을 비롯해 흉부외과 스태프들, 그리고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만약 수술이 실패할 경우 참관실은 박살 날 것이다.
파커와 벤슨은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것이고 보호자들은 한바탕 눈물과 절망을 쏟아 내리라.
벌써부터 그 광경이 훤히 그려지는 것은 착각일까, 아니면 예지일까.
“옆 수술실은 어때?”
“방금 성공적으로 심장종양을 제거하고 건삭 성형술까지 끝냈다고 합니다.”
“건삭 성형술?”
카타리나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네. 심장종양으로 건삭에 약간의 변형이 나타났는데 그걸 바로잡아 줬다고 합니다.”
보고를 마친 제1보조가 카타리나의 반응을 살폈다.
그럼에도 카타리나는 아무 말 없이 환자만 내려다보았다.
“교수님. 어떻게 할까요?”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지.”
그녀의 눈빛을 받은 스태프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올 심장이식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혜자의 심장을 미리 적출할 필요가 있었다.
카타리나의 지시 속에 환부 소독과 정중흉골 절개술, 캐뉼라 연결 및 인공심폐기 연결이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이후 절개창을 넓히자 드러나는 라훌의 심장.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소아의 심장이 앳된 모습으로 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카타리나는 그 말을 속으로 읊조리며 클램프(혈관겸자)를 손에 쥐었다.
딸칵! 딸칵! 딸칵! 딸칵!
혈관겸자가 주요 혈관의 윗부분을 사정없이 조였다.
이렇게 혈관을 잡아 주지 않으면 절개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한다.
“집중해. 지금부터가 진짜야.”
“네!”
메스를 쥔 카타리나의 손이 춤추듯 움직였다.
그녀는 좌심방의 일부를 남겨 두고 상대정맥과 대동맥, 폐동맥, 하대정맥 순으로 혈관을 잘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주먹만 한 심장이 곡반에 떨어졌다.
수혜자 팀의 역할은 이걸로 끝.
공여자의 심장을 환자의 주요 혈관과 연결해 주는 것이 심장이식 수술의 꽃인데 이 일은 최기석이 속한 팀이 맡았다.
지이이잉.
때마침 로젯의 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 아이스박스가 들려 있었다.
* * *
“적출은 잘 끝냈어?”
“네. 아무 문제없습니다.”
카타리나의 질문에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뒷일은 권 교수님이랑 네게 맡길게. 난 곧바로 다른 수술에 들어가 봐야 하거든.”
“고생 많으셨습니다.”
“뭐. 진짜 고생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하게 되겠지만.”
카타리나가 말을 계속했다.
“내 생각에 이번 수술은 어려운 길을 자초한 감이 없지 않아. 그렇다고 변명이나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겠지?”
“물론입니다!”
“언제나처럼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의사는 늘 환자와 보호자 몫까지 힘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수술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면 환자와 보호자는 기댈 곳이 없어지잖아요.”
최기석의 말에 카타리나의 얼굴이 흠칫 굳었지만 그 표정은 아주 찰나에 지나갔다.
“……내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구나.”
“네?”
“아니야.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최기석을 향한 그녀의 시선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믿어 볼게. 네가 펼칠 기적을…….”
카타리나가 로젯을 떠난 후 수혜자 심장적출 스태프들과 인수인계가 이루어졌다.
수혜자 적출 팀 역시 무사히 처치를 끝냈으며 환자의 바이탈 또한 정상 수준이었다.
“또 만나네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루이스가 손을 흔들었다.
야사다와 수술을 하던 중 바이탈을 완벽하게 잡았던 천재 마취의 루이스 말이다.
“루이스 선생님이라면 이번 수술도 안심이네요.”
“설마 수술이 잘못됐을 때 내 탓을 하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전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아닙니다.”
루이스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심장이식 팀 스태프가 하나둘 제자리를 찾았다.
최기석은 아이스박스를 열고 비닐에 쌓인 심장을 꺼냈다.
이후 비닐을 벗겨 심장을 라훌의 좌심실 쪽에 맞춰 보았다.
확실히 제라드의 혈관이 크고 굵었다.
문합 과정이 골치 아플 게 불 보듯 뻔하다고 할까.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스태프의 표정 역시 그다지 밝지 않았다.
“지금부터 적출된 심장을 문합한다.”
권일수의 외침이 로젯에 퍼졌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제2보조인 줄리아가 적출된 심장을 라훌의 좌심실에 맞췄고 최기석은 양손에 포셉을 들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최기석은 눈을 빛내며 한쪽 포셉으로 라훌의 상대정맥을, 다른 포셉으로는 제라드의 상대정맥을 잡았다. 그리고 양 혈관의 끝부분을 서로 마주 닿게 만들었다.
“교수님. 혈관 크기가 맞지 않아서 틈이 생깁니다.”
“나도 보고 있어.”
권일수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났다.
피 말리는 긴장감이 흐르는 로젯, 스태프 중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최 선생. 포셉을 혈관 안쪽으로 넣어서 살짝 벌려 봐. 힘 조절을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네.”
최기석은 권일수의 지시를 따르고서 다시 양쪽 상대정맥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라훌의 혈관을 강제로 늘리면서 양쪽 혈관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았다.
“성공입니다.”
“역시 권 교수님이세요.”
스태프들이 탄성을 토해 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새로운 대안을 찾은 것 같아 보였지만 권일수는 쉽사리 문합에 나서지 못했다.
“그 상태, 계속 유지할 수 있겠어?”
“…….”
권일수의 질문에 최기석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얼굴에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이 대답을 대신했다.
최기석의 보조 솜씨가 최정상급이라고 하지만, 이번 처치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쪽 혈관을 다른 혈관의 크기에 맞춰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손의 떨림이 없어야 하는 것은 옵션이다. 도중에 계속 양손을 사용해야 하고 말이다.
“젠장. 생각했던 것보다 공여자의 혈관이 굵어. 빨리 답을 찾아야 하는데.”
권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딱딱딱 이를 부딪쳤다.
“교수님. 아무래도 방금 말씀하신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문합 부위는 0.3밀리미터 크기의 혈관이야. 자네가 흔들리면 문합 자체가 불가능하지. 최악의 경우 혈관이 망가질 수도 있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꼭 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자신감을 내비치며 상태창을 띄웠다.
[영혼의 눈물(유니크)]
-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거짓 없는 마음에서 새로운 기적이 만들어진다.
- 영혼 활성을 완료하면 특수효과 초각성을 얻습니다.
- 특수효과 초각성: 일시적으로 모든 처치 능력치 3단계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은 여섯 시간이며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에 빠집니다.
휘이이이잉.
초각성 효과를 사용하자 뱃속 깊은 곳에서 청량한 기운이 샘솟았다.
최기석은 그 기운을 받아 송명진이 제안한 방법으로 양쪽 혈관을 연결시켰다.
스킬 덕분인지 아까와는 처치가 달랐다.
양쪽 상대정맥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으며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의 신기에 권일수는 물론 스태프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처치가 이렇게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 걸까.
“교수님.”
“……좋아. 어디 해 보자고.”
권일수가 자세를 고친 후 니들홀더를 손에 쥐었다.
그렇게 첫발을 내딛은 심장이식 수술.
최기석은 패시브의 효과를 십분 활용해 혈관을 잡아 주었고, 권일수는 이를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문합을 진행했다.
혈관 크기라는 훼방꾼이 사라지면서 수술은 날개를 단 듯 가속도가 붙었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비릿한 피 냄새 속에서 처치 도구 소리만이 로젯의 정적을 깨웠다.
좌심실, 상대정맥, 대동맥, 폐동맥, 하대정맥.
주요 부위들의 문합이 끝나자 수술 시간은 어느새 다섯 시간을 훌쩍 넘겼다.
“이걸로 문합 종료다. 누수 확인.”
“네!”
권일수의 지시에 제2보조가 혈관에 생리식염수를 투입하여 누수 확인에 나섰고 스태프들은 목이 빠져라 혈관을 응시했다.
생리식염수가 통과하면서 혈관이 꿀렁꿀렁거렸다.
하지만 식염수가 새는 일은 없었다.
공여자와 수혜자의 혈관 크기가 달랐음에도 무사히 문합을 무사히 마친 것이다.
“휴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군. 최 선생, 고생했어.”
권일수가 굳었던 표정을 풀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이번 수술의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바로 최기석이다.
그가 혈관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면, 중간에 손을 떨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소아심장 수술의 대가인 자신이 보증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교수님의 판단과 침착한 처치 그리고 다른 스태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겸손한 척하기는…….”
권일수의 농담에 스태프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부터 인공심폐기를 이탈하고 혈류를 개통한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정신 바짝 차려.”
“네!”
혈류를 차단하던 혈관겸자를 풀고 인공심폐기를 이탈시키자 혈관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피가 통하고 있다는 증거다.
“심폐기 가동 시간 190분, 대동맥 차단 시간 100분, 공여심장의 허혈 시간 150분이에요. 바이탈은 아직까지 이상 없습니다.”
마취의 루이스의 보고 속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라훌의 심장에 몰렸다.
“…….”
“…….”
긴 침묵 속에 스태프들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뭔가 이상했다.
혈류가 개통되었음에도 심장이 좀처럼 뛰질 않았다.
마치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처럼.
“심전도 그래프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 맥박 점점 느려집니다.”
“교수님. 동성서맥입니다. P파가 QRSP파 앞에 나타나고 R.R인터벌이 네 칸 정도입니다.”
루이스의 말에 심전도를 확인한 최기석이 재빠르게 보고에 나섰다.
“루이스는 아트로핀 정맥으로 투입해 줘요. 최 선생은 심장에 따뜻한 생리식염수 뿌려 주고 줄리아는 패들 준비해.”
“네!”
권일수의 지시에 발 빠른 대처가 이어졌다.
그렇게 필요한 처치가 끝나자 권일수가 양손에 쥔 패들을 심장에 갖다 댔다.
패들에서 흐르는 전류에 심장이 부르르 떨렸다.
계속되는 전기 자극에 정신을 차린 건지, 심장이 조금씩 제 리듬을 찾았다.
쿵. 쿵. 쿵.
심장 리듬을 확인한 최기석은 이게 착각인가 싶어서 고개를 가로로 저은 후 다시 심장을 내려다보았다.
걱정했니? 나 괜찮은데.
심장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확실한 움직임을 보였다.
서맥이 잡히면서 심장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이에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벅찬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지금 이 순간은 그 어떤 말도 필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