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끝, 또 하나의 시작 (5)
K 로젯 앞.
소아 심장이식 수술을 코앞에 둔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일반 수술 때와는 달리 스태프의 숫자가 두 배 가까이 되어 번잡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식 수술은 K 로젯과 I 로젯에서 동시에 진행하는데, 공여자 팀이 심장을 적출하고 수혜자 팀이 이식 수술을 각각 준비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최종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스태프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의 눈빛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반짝거렸으며 말투는 담담했다.
“수혜자의 이름은 라훌. 제임스 홉킨스 외래 진료를 통해 심부전증 확진을 받았으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원으로 전원했습니다.”
“…….”
“심장이식 대기 중 상태가 악화되어 한 달 전 심실보조장치를 착용했습니다. 심장이식 대기자 중 위험도는 1등급으로 가장 위급한 상태입니다. 다음은 공여자 제라드입니다.”
최기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여간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나라면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해.’
브리핑 중인 최기석을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시선에 감탄이 서렸다.
최기석이 뇌사자 부모를 찾아가 부탁했기 때문에 이번 심장이식 수술이 이뤄졌음을 모두가 알았다.
스태프들은 그의 무모하면서도 환자를 위한 마음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상입니다. 혹시 질문 있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타리나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최기석이 아닌 그의 곁에 선 권일수에게 고정되었다.
“권 교수님. 저는 교수님이 이번 수술을 강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라훌의 심장이식 위험도가 높은 만큼 조만간 이식센터에서 연락이 올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조금 더 미루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카타리나가 검지와 중지를 활짝 펼쳤다.
그녀의 설명에 일부 스태프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술에 위험요소 중 첫 번째는 공여자의 심장 상태다.
심장이식을 위해 정밀검사를 하던 중 제라드의 심장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물론 종양은 양성이었다.
소아심장의 양성 종양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작아지는 케이스가 많지만 이번에는 웃으며 넘겨 버릴 케이스가 아니었다.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았다.
그로 인해 종양이 좌심실의 일부 통로를 좁게 만들었다.
심장이식 전에 공여자의 심장 수술을 먼저 해야 할 판이었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심장을 수혜자에게 이식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심장도 없어요.”
권일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경우도 있고 때때로 박동이 멈춘 심장을 되살려 이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이번 수술은 문제의 여지가 없어요.”
“그러면 혈관 문합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카타리나가 다시 공세에 나섰다.
“제라드는 라훌보다 여섯 살이 많습니다. 심장과 혈관의 크기에서 큰 차이가 있죠. 혈관을 문합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혈관 문합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네.”
“잘해야죠, 잘.”
권일수의 대답에 카타리나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거렸다.
답변이 지나치게 심플하다.
이런 대답이라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할 수 있다.
“카타리나 교수를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이에요. 카타리나 교수도 알 거 아닙니까? 봉합에 왕도가 없다는 걸.”
“그건 그렇지만…….”
“이번 수술은 우리 스태프들을, 스스로를 믿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권일수가 말을 마치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알겠습니다. 교수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해 봅시다!”
그의 신호에 발맞춰 스태프들이 스크럽에 나섰다.
벅. 벅. 벅. 벅.
최기석은 솔로 손과 팔뚝을 문지르면서도 수술 과정을 복기했다.
과거 의진대에서 수련 중 심장이식 수술에 보조로 들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는 소아 수술이 아니었고 제1보조도 아니었다.
지금과는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상황에 놓인 셈이다.
“긴장했나?”
“아니요. 그런 건 없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권일수가 씽긋 미소를 지었다.
“하긴 한국에서 레지할 때부터 세이버 수술 보조에 들어갔으니 웬만한 수술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지. 강심장이 된 비결이라도 있나?”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운이라면…… 정말 엄청난 행운이군. 모든 의사들이 땅을 치고 부러워할.”
짤막한 대화 후 스태프들이 각자 흩어져 로젯에 입장했다.
최기석은 I 로젯 팀, 공여자 수술 팀인데 팀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집도의 권일수.
제1보조 최기석.
제2보조 줄리아.
제3보조 미카엘.
지이이잉.
로젯 문이 좌우로 입을 벌렸다.
수술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라서 그런지 문을 통과하는 순간 격투기 선수가 경기장 안으로 입장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관중과 피 터지는 싸움, 경기 종료 후 반드시 결정되는 승패 등등.
수술과 격투기 시합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로젯에 발을 들인 최기석은 수술 준비를 하며 틈틈이 제라드를 내려다보았다.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 비운의 소년.
그를 보고 있자니 그를 향해 눈물짓던 제라드 부부의 모습이 겹쳐졌다.
“타임아웃 끝났습니다.”
“환자 감시 장치 연결 끝났습니다.”
“인공심폐기 가동 준비 완료입니다.”
“혈압 120/70 mmHg, 심박동수 120/min으로 정상 범위입니다. 전신마취 시작하겠습니다.”
스태프들의 보고가 순풍에 돛 단 듯 이어졌다.
권일수는 참관용 수술실을 슬쩍 올려다본 후 다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지금부터 공여자의 심장종양 제거 및 심장적출을 시작한다.”
권일수의 말에 스태프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줄리아가 환자의 가슴과 복부를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이어지는 정중흉골 개흉술.
권일수가 환자의 피부를 거침없이 절개하자 줄리아와 미카엘이 절개창에 견인기를 부착하고 좌우로 늘렸다.
피부가 벌어지면서 수술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시야를 확보한 상태에서 폐를 옆으로 살짝 밀어내자 약하게 뛰고 있는 심장이 눈에 드러났다.
꿀꺽.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확실히 소아의 심장은 성인의 심장과 달랐다.
비유를 하자면 각각 앙증맞은 자두와 먹음직스러운 사과의 차이랄까.
제 손으로 폐동맥 협착증 수술을 무사히 끝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천운이 따른 듯했다.
“심정지액 투입해 주세요.”
마취의에게 시선을 거둔 최기석은 준비한 캐뉼라를 손에 쥐고 대동맥과 상대정맥, 하대정맥 순으로 삽입했다.
덜컹. 덜컹. 드르르륵.
캐뉼라 삽입이 끝나자 인공심폐기가 요란하게 움직였고 그와는 반대로 심장은 쥐 죽은 듯이 잠들었다.
“사실 공여자의 심장에 종양이 있는 케이스는 나도 처음이야.”
“교수님도 경험하지 못한 케이스가 있군요.”
“당연하지. 어찌 보면 의사의 경험은 복불복 같은 거라서 말이야. 최 선생처럼 특이한 케이스를 잔뜩 만날 수도 있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케이스만 만날 수도 있지.”
권일수는 말하면서 전기 소작기를 손에 쥐었다.
“그나마 종양이 원발성에 점액종이라서 다행이야. 아니라면 수술은 꿈도 못 꿨겠지. 그럼 시작하자고.”
수술등 빛을 반사하는 메스가 심장을 향했다.
심장종양이 위치한 장소는 심방중격으로 우심방과 좌심방을 막고 있는 벽에 작은 종양이 자리 잡았다.
치이이이익.
타는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권일수는 전기 소작기로 색종이를 오려 내듯이 종양의 주변 부위를 지졌다.
이 경우 절제와 지혈을 동시에 진행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한편, 최기석은 권일수의 수술 시야를 확보하면서 고정기로 심장이 움직이는 것을 막아 주었다.
동시에 용의 눈, 줌 인 모드로 제라드의 심장을 꼼꼼하게 살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텅!
맑은 소리와 함께 점액종이 곡반으로 떨어졌다.
“이건 바이옵시(생검) 보내고.”
“네!”
권일수의 지시를 받은 소독간호사가 검체조직을 비닐에 집어넣은 후 보관하여 순환간호사에게 넘겼다.
“교수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권일수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장종양 제거 수술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게 끝났다.
이 상황에서 대체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말해 봐.”
“제라드의 경우 종양이 우심방 쪽에 치우쳐져 있습니다. 이런 경우 종양이 삼첨판막이나 건삭에 손상을 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맞아. 하지만 제라드의 삼첨판막과 건삭은…….”
권일수가 루뻬(광학안경)을 고쳐 쓰고 고개 숙여 심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삼첨판막의 혈류 흐름은 정상이다.
역류에 이응조차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판막을 자세히 살피던 중 판막을 보조해 주는 건삭의 모양이 미묘하게 변형된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건삭 성형술을 해 주자는 뜻이지?”
“네.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기왕이면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식을 받은 심장을 다시 수술하는 경우는 없어야 하니까요.”
최기석은 똑 부러지게 제 할 말을 했다.
줌 인 모드로 권일수를 돕는 중 변형된 건삭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종양 제거가 끝난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경과를 살폈다.
수술의 경과는 보통.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뜻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수술 경과를 향상시키려면 건삭 성형술을 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야. 이거 최 선생에게 한 방 먹었는걸? 심장적출만 생각하다가 정작 중요한 걸 놓쳤어.”
“반드시 해야 하는 처치는 아니라서…….”
“무슨 소리야. 환자의 경과를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처치라도 간과할 수 없는 법이지.”
“교수님. 한 가지 더 말씀 드릴 게 있습니다만…….”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건삭 성형술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심장적출과 심장이식까지 도맡아 하실 텐데,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 있나?”
“물론입니다.”
그의 패기 넘치는 대답에 권일수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이 기회에 최 선생 솜씨 좀 볼까?”
“감사합니다.”
끼기기기긱.
감사 인사를 한 최기석은 물 만난 고기처럼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고정시켰다.
이어지는 건삭 성형술.
링이나 인공조직 등의 처치 도구 없이 함몰된 근육을 끌어올려 주변 조직에 묶어 주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다.
최기석은 눈에 불을 켜고 처치를 진행했다.
권일수가 포셉으로 근육을 당겨서 끌어올려 주면 이를 삽시간에 봉합해 버렸다. 소아심장 수술이라 어려움은 있었지만 의외로 해 볼 만한 싸움이었다.
찰칵!
청명한 가위 소리가 퍼지며 봉합사가 끊어졌다.
‘좋았어.’
최기석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수술이 끝난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경과가 양호로 변했다.
건삭 성형술을 택한 것이 옳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최 선생은 보면 볼수록 놀랍단 말이야. 혹시 레지던트의 탈을 쓴 펠로우 아닌가?”
“못 믿으시겠다면 벗겨 보시겠습니까?”
“넣어둬. 그런 악취미는 없으니까.”
권일수는 가볍게 목을 꺾으며 메스를 손에 쥐었다.
“지금부터 심장적출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