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 (6)
최기석은 메스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 부위를 도려냈다.
텅!
해당 부위가 곡반에 떨어지면서 맑은 소리를 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잘라 낸 부위의 단면은 자로 잰 것처럼 반듯했다.
수술의 백미는 지금부터!
인공혈관과 조직들을 어떻게 이어 주느냐에 따라 수술의 난이도와 시간이 결정된다.
심장을 내려다보던 최기석은 별안간 입체화 모드를 사용했다.
[입체화 모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시야가 다 드러나지 않는 사물을 선택하면 재구성에 들어갑니다. 레벨이 증가할수록 재구성 영상의 세밀도가 증사합니다.]
[입체화 모드 대상으로 심장을 선택하셨습니다.]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변하는 시야.
모눈종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처럼 가로줄과 세로줄이 어지럽게 엉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입체화 모드가 빛을 발하면서 잘려나간 심장 부위에 원래 모습이 겹쳐졌다.
“인공혈관과 인공조직 준비.”
최기석은 가상의 스태프에게 필요한 처치 도구를 받아 이를 뚝딱뚝딱 조립해 나갔다.
지금 그는 완벽한 심장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잘려 나간 부위를 재창조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긴 시간 동안 닦아 온 봉합 솜씨가 빛을 발하면서 심장의 나머지 부위가 만들어져 갔다.
혹여 모양이 이상해질까 연신 작업 중인 인공심장을 입체화 모드로 구성된 곳에 맞추어 보았다.
튀어나온 곳이 있으면 깎아 냈다.
모자란 곳이 있으면 새로 붙였다.
인공혈관과 조직으로 새 심장 부위를 만드는 그의 모습은 흡사 조각가 같았다.
“휴우…….”
한숨 쉬며 수술 도구를 놓았다.
천신만고의 작업 끝에 잘려 나간 심장의 남은 부분을 재탄생시켰다.
해당 부분을 심장에 맞추자 퍼즐조각처럼 딱 들어맞았다.
순간 짜릿한 쾌감이 온 몸을 훑었다.
더불어 수술을 완성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들이 소설 속 페이지처럼 머리를 스쳤다.
해냈다.
드디어 해냈다.
이 방법이라면 문제없이 스승의 신수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역시 발상의 전환이 문제였어.’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수술의 핵심은 단순하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의 일부를 잘라 내고 그 부위에 인공혈관과 인공조직을 봉합하여 심장의 기능을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
그것은 이번 수술에서 사용하는 것은 생체조직이 아니라 인공조직이라는 점이다.
공여자에게 받은 신체조직은 함부로 그 모양을 변형시키기 어렸다.
변형 과정에서 조직 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기에.
반면 인공혈관과 조직은 비교적 구하기 쉽고 간편하게 변형이 가능했다.
최기석이 포인트를 둔 곳은 후자다.
인공조직으로 봉합한다면 굳이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써전이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수술처럼 3D 프린팅을 이용하면 어떨까.
미리 만들어 놓은 심장에 잘려진 부위만 연결시키면 수술 시간도 난이도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봉합을 시작한다.”
최기석은 직접 제작한 심장 모형을 환자의 심장에 연결한 후 봉합에 나섰다.
0.3밀리미터 크기의 혈관과 연역한 조직 연결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이겨 냈다.
그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심장병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에는 털끝만큼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찰칵!
가위 소리와 함께 봉합사가 끊어졌다.
최기석은 생리식염수로 문합 부위 누수를 확인하고 수술 부위를 닫았다.
[스승의 신수술이 종료되었습니다. 환자가 사망하였습니다. 최종랭크는 C입니다.]
알림이 울리며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가상의 환자가 죽었지만 최기석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눈에 찬 결의는 더욱 더 확고해졌다.
수술 도중 입체화 모드로 인공심장을 만드느라 긴 시간을 허비했다.
그것만 아니었더라도 환자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최기석은 간식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트레이닝 룸에 접속했다.
저 하늘의 별처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중요한 순간이면 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던 스승의 신수술.
그것이 이제 코앞까지 왔다.
* * *
다음 날.
오전 회의와 회진이 끝난 후 최기석은 병동을 돌며 자신의 환자를 살폈다.
“CAP(한 의사가 맡는 최대 환자 수)이 꽉 찼네.”
혼자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제의 환자를 많이 관리하고 있었기에 새로운 환자를 받을 여유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거기다 어제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를 받으면서 마침내 CAP이 절정에 달했다.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환자를 빨리 퇴원시키는 게 좋지만 환자를 생각하면 그게 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갖가지 생각 속에 소아 흉부외과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최기석은 스테이션에서 처치도구를 챙기고 에어샤워를 마친 후 격리실로 들어갔다.
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켈리는 세상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견인기를 조종하고 넓어진 흉곽을 살폈다.
수술 후 넓어진 흉곽은 대략 18밀리미터.
목표인 28밀리미터에 절반을 조금 넘는 수치다.
지금까지 감염증을 비롯한 후유증을 앓지 않았던 만큼 앞으로도 큰 탈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남은 일이라면 벤슨의 람보 흉내뿐이라고 할까.
최기석은 이어서 동료들과 함께 CABG 수술을 했던 환자를 살피고 한 격리실 앞에 섰다.
격리실에는 한 남자가 사지를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빅터다.
“미스터 최. 먼저 와 있었네요.”
때마침 정신과 전문의 루시가 그의 곁에 서서 말을 걸었다.
“자기 환자가 자살시도를 하고 결박당하니까 신경 쓰이죠?”
“네.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서요.”
“어제 오늘 상태를 보니까 다행히 처음보다는 많이 진정된 것 같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미스터 최가 보기에 환자의 호흡기 문제는 어때요?”
“흉부외과에서 치료할 단계는 끝났습니다. 에크모를 제거한 후에는 특별히 처치해 줄 것도 없고요.”
“그럼 환자, 정신과로 전원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최기석은 주변을 훑은 후 자신의 생각을 루시에게 전했고 루시는 침음성을 흘리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루시의 이마에 드리운 주름이 깊어갔다.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설마 그렇게까지…….”
“영화나 소설은 현실의 잔혹함을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도해 볼 필요는 있어요.”
“흐음…… 나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닌데…… 좋아요. 한번 해 봅시다. 상담 시간은 일과 끝날 때쯤으로 잡죠.”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환자 상담은 제가 해도 될까요?”
“미스터 최가요?”
루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단은 제 환자고 제가 환자를 맡았을 당시 자살시도를 했으니까요. 치료가 아니라 잠깐의 상담 정도라면 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제 상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루시가 언제든지 끊어도 되고요.”
“뭐. 그런 조건이라면 나쁘지 않네요.”
“고마워요, 루시.”
최기석은 루시와 대화를 마치고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특발성 폐섬유증과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라훌의 병실을 차례대로 찾았다.
“닥터 최. 어제 저녁에 이상한 부부가 찾아왔어요.”
산제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자기도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이를 잠깐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라훌을 말없이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가 버렸어요. 원래 이런 경우도 있나요?”
“거의 없는 일이죠. 짐작되는 일은 한 가지 있지만…….”
“그게 뭡니까?”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말을 마친 최기석이 라훌을 살폈다.
라훌의 심실보조장치 자극점이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그 말인 즉 아이의 상태가 악화일로에 빠지고 있다는 뜻이다.
“닥터 최. 우리 라훌은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산제이의 곁에 있던 라이가 울분을 터뜨렸다.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만 믿고 인도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예전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잖아요. 매일 죽어 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제 심정이 어떤지 짐작이 가세요?”
“여보. 그건 닥터 최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만해요.”
“하지만…….”
라이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계속했다.
“이렇게라도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속이 뒤집힐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요.”
“라훌이 건강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고려해 봤지만 역시 심장이식 외에는 답이 없었습니다. 피치 못하게 기다림이 길어진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됐습니다. 미스터 최가 잘못이 없다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요. 아내가 요즘 예민해서 그러는 거니까 부디 이해해 주세요.”
산제이가 중재에 나서면서 라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최기석은 부부에게 인사하고 병실을 떠났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잠시 시간을 내서 2층 회의실을 찾았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몇 대의 카메라와 방송국 사람들이 보였다. 야사다가 말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곳이 바로 이곳 회의실이었다.
“혹시 닥터 최?”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ABD 방송국 리포터 바네사라고 해요.”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업무 중인데 괜히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덕분에 쉴 틈을 벌었네요. 감사의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랍니다.”
그의 농담에 바네사가 환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생각보다 유쾌하신 분이네요. 보통 의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권위적인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데.”
“의사도 사람이니까요. 사람들이 가지각색인 만큼 의사들도 가지각색이죠.”
“준비되셨으면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최기석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바네사와 마주앉았다.
“안녕하세요. ‘이 의사가 궁금하다’의 진행을 맡은 바네사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MHC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자 레지던트 1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흉부외과의 기석 최입니다. 시청자들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MHC 흉부외과 레지던트에서 수련 중인 기석 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앞서 그동안 닥터 최의 발자취를 확인해 봤는데요, 아주 어마어마하던 걸요?”
바네사가 준비한 자료를 훑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메이죠에서 수련 당시 자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자살환자를 막았고, 총기 사건에 휘말린 데다가, 샴쌍둥이 라이브 수술에 제1보조로 들어가고, MHC에 와서는 코드 블루 당시 응급실을 컨트롤하고, 유람선에서 화재가 났을 때는…….”
바네사는 그의 업적(?)을 설명하는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겪었던 일이 그만큼 화려했기에.
“다른 의사들이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일들을 몇 번이나 경험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이 상당히 긍정적이시네요.”
“재수나 운이 없었다고 말하긴 뭐하고 이런 식으로 의미 부여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요.”
최기석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렇게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최기석이 흉부외과를 택하게 된 이유, 한국 수련과정과 미국 수련과정의 차이, 흉부외과의라서 느끼는 애환 등등.
갖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도둑맞은 것처럼 지나갔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 주세요.”
“제 가족과 스승 송명진 진료부원장님, 그 밖에 주변에 있는 모든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저 혼자서는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
“설화야 사랑해.”
최기석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