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 (4)
“…….”
“알겠습니다. 죄송한지만 한 30분 정도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일과가 끝나는 대로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최기석이 통화를 끊자 권일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약속 있나?”
“네. 예전에 인연을 맺었던 보호자입니다. 같이 해결할 일이 있어서요.”
“병원 환자만 맡아도 벅찰 텐데…… 이젠 치료와 상관없는 보호자까지 신경 쓰는 건가?”
“특별한 케이스입니다. 제게 큰 도움을 줄.”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권일수가 운을 뗐다.
“그건 그렇고 혹시 머리이식술에 대한 소식은 들었나?”
“머리이식이요? 혹시 샴쌍둥이의 머리 분리 수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 말 그대로 머리이식술이야.”
권일수의 말에 최기석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머리를 이식한다는 일이 정녕 가능하단 말인가.
SF 영화나 소속 속에서 나올 법한 일을 현실에서 펼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설마……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한 사람의 머리를 떼어서 다른 사람의 몸에 붙인다는 겁니까?”
“정확해.”
권일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뇌사자를 확보한 후 머리이식 수술을 받을 환자를 모집한다. 이후 뇌사자의 머리와 척수를 잘라 내고 그 자리에 지원자의 머리와 척수를 이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머리이식술이다.
“중국에서 진행 중이라는 군. 원숭이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는데 이제 사람을 대상으로 펼치는 셈이지.”
“아…….”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머리이식술이 성공할 경우 이것이 끼칠 영향은 하늘과 땅이 뒤집힐 정도로 충격적이리라.
특히 의료 윤리 측면에 큰 파장이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불로불사를 꿈꾸며 육체를 사고파는 사람들.
인간의 욕망이 뻗어나면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문제들.
이것들을 깊게 고민하자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름이 끼칩니다. 굳이 사람에게 머리이식 수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고요.”
“그 점에서는 동감이야. 하지만 의료인으로서 순수하게 결과가 궁금한 것도 사실이지. 자네는 아닌가?”
“…….”
“수술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사이에 진행한다고 하더군. 그때가 되면 모든 게 결판나겠지.”
권일수의 말이 휴게실을 무겁게 짓눌렀다.
최기석은 권일수와의 대화를 마치고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끝낸 후 향한 곳은 1층 카페.
먼저 온 제니가 창가에 앉아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반가워요. 제니.”
“닥터 최. 안녕하세요.”
제니가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제인은 좀 어때요? 화재 사건 이후로 움츠러들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은 없던가요?”
“전혀요. 여전히 왈가닥이랍니다.”
“별 탈이 없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자칫하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닥터 최가 워낙 신경을 잘 써 줬잖아요. 매일같이 영상통화도 해 주고.”
“하하하. 사실 제 공이 크긴 하죠.”
최기석이 너스레를 떨면서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솔직히 어제는 놀랐어요. 갑자기 보자고 하실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네.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죠.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유람선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수술 중 사망한 남편분의 진실을 밝혀 드리겠다고.”
“아…… 그냥 하신 말인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남편분의 일은 MHC 흉부외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제 일터에서 말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기석은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제니에게 들려주었다.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가끔씩 입술을 깨물며 천장을 올려다 볼 따름이었다.
“남편분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게 아닙니다. 의료사고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셨죠.”
“……그럴 거라 생각은 했는데.”
제니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속이 더 부글부글 끊네요. 하지만……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
“안 그래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의무기록을 복사해서 소송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변호사 쪽에서 터무니없는 의뢰비를 요구하더라고요. 거기다 차트상으로는 병원 쪽 과실이 없어서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는 말도 했고요. 정말 억울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제니가 말을 잇지 못했다.
붉게 충혈된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제니.”
최기석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남편분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테니까요.”
“네? 어떻게…….”
“우선 소송비용은 제가 전부 부담할 겁니다. 차트를 부당하게 수정한 내역도 확보했으니 반드시 집도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요.”
“저…… 정말인가요?”
“저만 믿으세요.”
최기석의 단호한 제안에 제니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억울함.
매일 피부로 느껴지는 남편의 부재, 그로 인한 공허함과 외로움.
힘들게 억눌러 왔던 것이 그의 말에 한 번에 터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쓸린 제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목 놓아 우는 것뿐이었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그녀가 운을 뗐다.
“그런데 닥터 최.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거예요? 소송비가 한두 푼도 아닐 거고 닥터 최의 병원 내 입지도 좁아지는 거 아닌가요? 저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릴까 걱정돼요.”
“제 걱정은 마세요. 대책은 전부 세워 뒀습니다.”
최기석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야사다가 전면에 나선다고 약속했으니 그의 포지션은 자연히 뒤로 빠지게 된다.
든든한 방패가 생겼다고 할까.
“그리고 왜 제니를 돕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는 게 좋겠네요. 제니를 돕는 게 저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게 무슨 뜻이죠?”
“그건 저만 간직하고 싶네요.”
최기석이 그녀를 돕는 이유.
그 하나로는 제인의 억울한 사정이 있었고 다른 하나로는 벤슨에게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벤슨으로 인해 제이미는 제때 수술 받지 못하고 고통을 받았다.
제이미가 받은 고통을 벤슨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야사다의 도움을 받는다면 MHC 내부에서 징계를 내리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법정에 서서 자존심을 구겨 봐라.
눈물을 쏟으며 거액의 위자료를 뱉어 봐라.
그것이 최기석이 꿈꾸는 진정한 복수였다.
“닥터 최. 반갑습니다.”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리니 한 남자가 씽긋 웃으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남자의 이름은 가일.
과거 MHC 신경외과에서 인연을 맺었던 환자다.
가일은 의료소송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 변호사며 그를 통해 추궁 스킬을 배웠다.
“가일. 오랜만이에요. 얼굴이 엄청 훤한데요?”
“닥터 최 이야기를 듣고 일을 줄였으니까요. 쫓기는 기분이 들지 않으니 살 맛 나더군요.”
가일이 미소 지으며 최기석의 곁에 앉았다.
“이쪽 분이 제인이시죠? 닥터 최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는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 가일입니다.”
“안녕하세요. 제니라고 해요.”
“그럼 두 분이서 이야기 잘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두 사람을 연결해 주고 병동으로 복귀했다.
람보 흉내에, 병원 내 징계에, 개인 소송까지 겪을 벤슨을 떠올리니 깨소금 맛이었다.
“닥터 최!”
병동에 도착해 스테이션을 지나는데 한 간호사가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이라도…….”
“헤드 치프가 환자 입원 시켰는데 지금 1인실에 입원했어요.”
“외래 진료 시간, 끝나지 않았나요?”
“환자가 지인이라서 특별 진료를 봐주셨나 봐요. 확인해 보시라고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그길로 해당 환자의 병실을 찾았다.
한 중년 남성이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주치의 기석 최라고 합니다.”
“말론입니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가래 끊는 소리가 겹쳐졌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진단명에 특발성 폐섬유증과 고혈압이 나타났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당연히 특발성 폐섬유증.
특발성 폐섬유증은 원인 모를 이유로 폐포에 염증세포들이 침투하고 이로 인해 폐가 딱딱해지는 질환이다.
이 질환을 앓을 경우 폐기능은 점차 떨어지며 결국 몇 년 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헤드 치프의 새로운 과업 임무가 생기겠구나.
최기석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다른 건 모르겠고 숨 쉬는 게 많이 불편하군요. 호흡이 이렇게 힘든 건지 요즘에야 알았습니다.”
말론의 말에 최기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를 대할 때는 항상 말조심을 해야 한다.
힘내라는 응원조차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는 이에게는 응원조차 가혹하게 들릴 수 있다.
“청진을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최기석은 말론의 환자복 상의를 들추고 청진을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 수포음이 또렷하게 들렸으며 우지직하는 괴음까지 섞였다.
청진을 끝낸 후 최기석은 말론의 손가락 끝이 뭉뚝한 것을 발견했다.
산소가 부족하여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이 뭉뚝해지는 곤붕지.
특발성 폐섬유증이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앞으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말론이 물끄러미 최기석을 응시했다.
“내일부터 정밀 검사에 들어갈 거고 당분간은 약물치료에 집중할 겁니다. 치료 방법은…….”
“치료 방법은?”
“야사다 치프께 들었겠지만 아마 폐이식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말론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뭐.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소리군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의사들이야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죠. 하여간 잘 알았습니다. 혼자 있고 싶군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말론과 헤어진 후 착잡한 마음으로 병동 복도를 걸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만은, 환자 중에서도 중증 환자를 대할 때면 가슴이 유독 더 쓰라렸다.
희망을 포기한 눈빛.
절망감이 녹아든 냉소적인 말투.
이런 것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닥터 최!”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이 그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에단.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든 거 아닙니까?”
“유람선 파견도 갔다 온 데다가 복잡한 일도 계속 생겨서요.”
“이해합니다. 장난이에요.”
“그나저나 축하드려요. 드라마 시청률이 고공행진이던데요? 에단이 연기 못한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고요.”
“안 그래도 요즘은 늘 싱글벙글이죠.”
에단이 씽긋 웃었다.
그는 최기석과 두 주간 밀착 동행하면서 최기석의 말투와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이를 바탕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고 말이다.
“이게 다 닥터 최와 라빈 덕분입니다. 두 사람 덕분에 저는 새로운 연기 인생을 맞았어요.”
“저야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요. 연기력을 키우고 싶었던 에단의 열정이 이 결과를 만든 겁니다.”
“우와. 이 대사 좋은데요? 오늘 당장 써먹을 수 있겠어요.”
“네?”
“환자가 고마워하면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거죠. 환자 분을 치료한 건 제가 아니라 병을 이겨 내고자 했던 환자분의 마음입니다. 이런 식으로 고쳐 써도 되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그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네요.”
최기석이 턱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대단해요. 에단이 의사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게 피부로 느껴져요.”
“암 그래야 진짜 배우죠.”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에단이 운을 뗐다.
“닥터 최. 저랑 잠깐 촬영장으로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