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 (2)
“환자는 5세 여아 리아입니다. 몇 개월 전 가와사키병으로 본원 심장내과에서 입원치료 받았습니다. 이후 외래에서 상태를 팔로우 도중 실시한 초음파 검사에서 좌관상동맥과 우관상동맥에 3센티미터의 동맥류를 발견하였습니다.”
찰스가 똑 부러지게 브리핑을 이어 갔다.
브리핑에 워낙 각이 잡혀 있어서 차트를 직접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쉽지 않겠어.’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가와사키병.
이 질환은 소아에게 발생하는 원인불명의 급성 혈관염이다.
증상이 상당 부분 감기와 겹치기에 부모들은 이를 감기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아의 경우 이미 입원해서 2주간 면역 글로블린과 아스피린 치료를 받았다.
그럼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오늘의 수술은 CABG(관상동맥 우회술).
협착이 생긴 관상동맥을 조정하고 새로운 혈관을 이어 주는 수술이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훌륭하군.”
권일수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찰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스태프들을 훑었다.
“사실 여러분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환자를 살피던 중 집도 방향을 조금 비틀어 봤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기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집도 방향을 비튼다니…….
그동안 수련을 많이 해 왔지만 이런 표현은 처음 들었다.
환자를 중시하는 권일수가 갑자기 수술을 취소할 리는 없을 텐데, 숨은 뜻이 궁금해졌다.
“처음 수술을 결정할 때부터 무엇이 환자를 위한 건지 고민해 왔지. 자네들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어제까지도 밤을 설쳤다고.”
“…….”
“결론부터 말하지. 오늘 수술은 OPCAB으로 진행한다.”
권일수의 폭탄선언에 스태프들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OPCAB(무 인공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
관상동맥 우회술을 펼치되 인공심폐기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교수님. 소아에게 OPCAB를 진행하시겠다는 말입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권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이라면 환자 상태를 봐서 OPCAB을 진행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리아는 아직 어립니다. 수술 난이도가 껑충 뛰어오를 겁니다.”
“중요한 건 난이도가 아니라 환자의 경과지.”
권일수가 딱 잘라 말했다.
“우선 리아의 현 상태는 OPCAB을 감당하기에 충분해.”
“…….”
“또한 다들 알다시피 가와사키병은 급성 혈관염이지. 혹시 여기에 인공심폐기의 부작용이 전신 염증반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 있나?”
권일수의 질문에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침묵을 지켰다.
그의 말에 무언의 동의를 보낸 셈이다.
그렇지만 혈관염 환자에게 혈관에 부담을 줄 수 있는 CABG를 진행한다는 건 썩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술은 OPCAB으로 진행한다. 보호자와 이미 대화를 끝냈고 동의서도 받아 놨어. 우리가 할 일은 환자를 무사히 치료하는 것뿐이야.”
“네!”
“알겠습니다.”
스태프들의 씩씩한 대답에 권일수가 미소를 되찾았다.
벅. 벅. 벅. 벅.
스태프들이 일제히 포비돈이 묻은 솔로 손과 팔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크럽을 하던 최기석의 시선이 문득 권일수에게 머물렀다.
그의 과감한 결정이 놀라웠다.
이미 정한 수술법을 수술 직전에 바꿀 줄이야.
이것은 권일수가 그만큼 환자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최후에 최후까지 환자를 생각하고 계셨구나.’
최기석은 권일수를 통해 새로움 깨달음을 얻었다.
“대단하시네. 벤슨 교수님이면 절대 이럴 일 없을 텐데.”
곁에서 스크럽을 하던 찰스가 말을 걸었다.
“한국에 있는 흉부외과 의사는 다 이러냐? 너나 권 교수님이나 송명진 진료부원장님도 그런 과잖아.”
“한국이라고 다를 게 있는 것 같아?”
“…….”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착한 미국 사람 있고 나쁜 미국 사람 있는 것처럼.”
“그럼 우리 병원에 있는 한국 의사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뜻이 맞는 사람들이 운 좋게 잘 뭉친 거랄까?”
최기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지이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안으로 들어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수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이거 곤란한데요? 말도 없이 갑자기 수술 방법을 바꾸다니.”
마취의 루이스가 권일수를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루이스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스태프들에게도 수술 직전에 통보를 했으니까.”
“뭐. 그렇다면 할 말이 없군요. 소아 OPCAB이면 마취도 힘들고 바이탈 관리도 쉽지 않을 텐데…….”
“평범한 마취의라면 그랬겠죠.”
“이거 좋아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걸요? 칭찬 받은 건 좋은데 덕분에 짐이 늘었으니까요. 하여튼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권일수는 커튼 뒤로 향하는 루이스를 지켜보았다.
이번 수술을 OPCAB으로 선회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루이스다.
루이스는 메이죠에서 근무하던 마취의로 마취의 중에서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다.
만약 그가 이번 수술을 돕지 않았다면?
아마 OPCAB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수술이 어려워서 애를 먹는 건 써전만이 아니다.
바이탈을 관리하는 마취의의 역량도 중요해진다.
다만 마취의는 커튼 뒤에 가려져 그 중요성마저 다소 가려지는 경향이 있을 뿐.
“평균동맥압 100mmHg, 심박동수는 100회입니다. 마취 유도 들어갑니다. midazolam 2mg, sufentanil 2μg/kg 정맥주사 합니다.”
“…….”
“마취 유도 끝났습니다.”
루이스의 보고에 권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젯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권일수가 OPCAB을 결정하면서 수술 난이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스태프 중 누구라도 방심한다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술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꿀꺽.
권일수를 제외한 스태프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부터 가와사키병으로 발생한 양측 관상동맥 협착에 대한 OPCAB을 실시한다.”
권일수의 말에 찰스가 환자 가슴을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이어지는 정중흉골절개.
리아의 여린 피부가 갈라지고 절개창에 견인기가 부착되었다.
제레미와 인턴이 견인기를 좌우로 당기자 절개창이 늘어나면서 수술 시야가 넓어졌다.
그 상태에서 폐를 옆으로 젖히자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쿵.
박동하는 리아의 심장.
오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리아의 심장은 쉼 없이 뛸 것이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써전들을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이에 비해 협착이 심합니다. 게다가 좌우측에 다 협착이 있다니…….”
“쉽지 않을 싸움이 될 거다.”
최기석과 권일수가 협착 부위를 내려다보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협착 부위는 좌측 앞내림 동맥과 우측 휘몰이 동맥.
이곳에 협착이 생기면서 심장의 일부가 혈액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션트.”
최기석은 작은 침을 받아서 협착 부위에 밀어 넣었다.
수술하는 동안 혈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래프트(혈관 채취)는 어느 부위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내 의견보다는 자네 의견을 먼저 듣고 싶군.”
“제 생각에는…….”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내유동맥과 요골동맥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유동맥은 가장 무난한 선택인데 이걸 좌측 협착 부위에 문합해 주고 요골동맥은 우측 협착 부위에 문합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와 같군.”
권일수의 눈이 빙긋 웃었다.
“그럼 잠깐 자리를 바꾸지. 최 선생은 찰스 위치에 서서 요골동맥 그래프트를 진행해. 찰스는 내가 내유동맥 그래프트 하는 걸 도와주고.”
“알겠습니다.”
동시에 시작된 두 사람의 그래프트.
최기석은 알렌 테스트로 왼쪽 요골동맥의 상태를 살폈다.
리아가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왼쪽 팔에서 혈관을 채취할 생각이었다.
“문제없어 보이는데?”
“내 생각도 그래.”
제레미의 말에 최기석이 한마디 덧붙였다.
테스트가 끝난 환자의 손이 붉게 물들었다.
요골동맥 순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신호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메스로 환자의 왼쪽 손목을 긋고 요골동맥 채취에 나섰다. 채취한 동맥을 관상동맥에 바로 연결하는 만큼 절단면을 깔끔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신중하게 메스를 움직였다.
“휴우…….”
채취한 혈관을 곡반에 내려놓고 권일수를 응시했다.
권일수는 아직 그래프트 작업 중이었다.
내유동맥은 흉곽에 위치하며 갈비 연골과 근막 속에 숨어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어렵지 않게 혈관을 떼어 냈겠지만 지금은 OPCAB 중이다.
즉 환자의 심장이 박동하는 상태에서 심장 인근의 혈관을 떼어 낸다는 뜻.
당연히 그래프트 난이도가 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찰스. 집중해!”
“죄…… 죄송합니다.”
찰스가 포셉으로 잡고 있었던 혈관을 실수로 놓쳤다.
덕분에 내유동맥이 다시 연골과 근막 속으로 숨어 버리고 말았다.
“안되겠어. 최 선생, 다시 퍼스트로 올라 와.”
“네.”
최기석은 찰스와 자리를 바꿔 제1보조 위치에 섰다.
그의 흔들림 없는 손놀림에 권일수가 순식간에 내유동맥 박리를 끝마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박리가 끝나자 찰스가 풀 죽은 얼굴로 운을 뗐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예정대로 CABG를 했으면 이런 실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
“써전은 언제 어떤 환자를 맞닥뜨리게 될 줄 모르는 법.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 그러니 그때를 위해서라도 평소에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해. 알겠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최기석은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이상하네. 뭐지?’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환자는 저혈압과 체온저하 증상을 보였다. 그래서 이를 권일수에게 어떤 타이밍에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잠깐 사이에 환자의 바이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할까.
“그럼 수술을 계속하지.”
권일수의 말과 함께 수술이 재개되었다.
‘제법인데?’
루이스의 시선이 커튼 틈 사이로 보이는 최기석에게 고정됐다.
보통 써전들은 환자의 바이탈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써전의 일은 수술이고 바이탈 체크는 마취의의 역할이었기에.
써전이 바이탈에 신경 쓸 때는 오로지 바이탈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그럼에도 최기석은 수술 내내 환자 감시 장치를 살피며 환자의 바이탈을 유심히 살폈다.
그만큼 수술을 넓게 본다는 의미다.
최기석이 왜 늘 화제의 중심에 있는지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애초에 레지던트 1년 차가 OPCAB에 퍼스트로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루이스는 어리둥절해하는 최기석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저혈압이 발생해서 노르에피네프린의 투여 속도를 조절하고 수액 가온장치로 저체온을 잡았다.
물론 최기석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겠지만.
‘이번 수술. 생각보다 쉽게 끝날지도…….’
루이스는 환자 감시 장치를 살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