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34화 (333/407)

전화위복 (5)

“환자 체온,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맥박은 분당 160회, 수축기 혈압은 100mmHg, 확장기 혈압은 30mmHg이에요.”

마취의의 보고로 수술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되던 수술에 갑자기 등장한 암초.

최기석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환자 감시 장치와 환자를 번갈아 응시했다.

“우리가 실수라도 한 거 있나?”

“그럴 리가요. 지금까지 아무 문제도 없었다고요.”

찰스의 말에 엠마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오늘 수술은 예전부터 시뮬레이션한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바이탈만 보면 전형적인 출혈 소견 아닌가?”

“맞아.”

제레미의 말에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좌심실을 살폈다.

수술 부위 출혈은 없었기에 시선을 조금 더 위쪽으로 두었다.

상단부에도 문제가 없어서 좌심실을 살피던 중 마침내 출혈 부위를 발견했다.

좌심실 벽에 작은 스크래치가 있었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스멀스멀 흐르는 중이다.

“뜬금없이 왜 좌심실 파열이래?”

“우선 처치부터 하자. 3-0 Prolene.”

최기석은 니들홀더로 봉합사를 조인 후 파열이 생긴 좌심실을 꿰맸다.

단순 단속 봉합이 쾌속으로 펼쳐졌다.

“…….”

“…….”

봉합이 끝났음에도 수술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매듭은 깔끔하게 지었지만 그 틈 사이로 계속해서 피가 흘렀다.

멈추지 않는 출혈에 스태프들이 돌처럼 굳었다.

제레미는 도움을 요청하듯 수술용 참관실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네요. 봉합을 잘 끝냈는데도 출혈이 계속되다니…….”

“어떻게 할래? 참관실에 콜 할까?”

“아니. 잠시만 시간을 줘. 엠마는 고인 피 석션해 주고 찰스는 블러드 팩 갈아 줘.”

최기석은 단호하게 지시를 내리고 출혈 부위를 노려보았다.

출혈을 막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은 출혈 부위 상단부를 직접 압박하는 방법과 해당 부위를 꿰매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지금같이 파열로 생긴 출혈에는 후자를 택하는 것이 정석이고 말이다.

‘방법이 있어. 분명.’

최기석의 머리가 고속으로 회전했다.

오늘은 팀 CPR 스태프들이 홀로서기를 하는 날이 아닌가.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 의미는 흐려진다.

‘생각을 해. 생각을.’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쥐어짰다.

“미스터 최. 고집 부릴 때가 아닌 것 같아. 환자 바이탈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나도 알아. 하지만…….”

“애초에 우리끼리 해결하기엔 케이스가 너무 어려웠어. 도움을 청하더라도 카타리나 교수님은 충분히 이해해 주실 거야.”

“안 돼. 난 반대야.”

찰스가 제레미의 의견에 선을 그었다.

“여기까지 와서 도움을 받을 순 없어. 어떻게 해서든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해.”

“환자가 위급해. 고집 피울 때가 아니라고.”

“그래서 하는 말이잖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야. 난 이제 수술을 못하겠어요. 누가 나 대신 이 환자를 수술해 주세요. 나중에 그딴 소리 하는 의사가 되고 싶은 거야?”

“내 말 곡해하지 마.”

“곡해? 진심이 들켜서 뜨끔한 거겠지.”

“지금 말 다했어?”

찰스와 제레미가 으르렁거리면서 로젯 분위기가 한층 험악해졌다.

‘크크크크. 그러면 그렇지.’

수술을 지켜보던 벤슨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동안 수술이 너무 순탄했다고 생각했다.

팀 CPR의 케이스 난이도는 팀 하트비트에 비해 세 배는 더 높았다. 한마디로 레지던트 1년차가 처리 할 수준을 까마득하게 넘은 것이다.

지금까지 탈이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한편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과 팀 스태프 간의 갈등을 두고 참관실에서도 말이 많아졌다.

수술 중인 레지던트들을 도와야 하는지, 아닌지로 의견이 갈리고 말았다.

벤슨의 입장에서는 깨소금 같은 상황이었다.

‘예상 외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이대로 출혈을 잡지 못해 환자가 죽는다.

거기에 충격으로 최기석과 팀 CPR 인원들의 멘탈이 부서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환상적인 그림이 만들어진다.

딱. 딱. 딱.

이상한 소리가 들려 옆을 보니 카타리나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써전들이 의도적으로 피하는 행동.

이를 한다는 것은 그녀의 초조함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카타리나. 사실 제자들을 싫어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뜻이죠?”

“제자들을 싫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환자를 첫 케이스로 던져 주겠어요.”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카타리나를 보며 벤슨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헤드 치프. 제가 수술실로 가 보겠습니다.”

결국 카타리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헛소리하지 말고 앉아 있어. 이건 팀 CPR의 수술이지, 네 수술이 아니야.”

“그럼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대로 가다간 환자도 잃고 제 팀원들도 잃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헤드 치프!”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이건 명령이야. 저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우리가 나서면 안 돼.”

야사다의 단호한 말투에 카타리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카타리나.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진료부원장님.”

“최 선생은 결코 여기서 물러설 사람이 아닙니다. 최 선생의 눈을 보세요.”

송명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눈을요?”

“그래요. 저 눈빛이 환자를 포기한 눈빛입니까?”

“…….”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반드시 생깁니다. 오늘 좋은 걸 배우게 될 거예요.”

송명진의 잔잔한 목소리에 카타리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각 로젯은 여전히 화약고 같았다.

환자의 출혈은 여전했으며 스태프 간의 대립은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잠깐만!”

최기석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이 출혈.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어.”

“무슨 수로?”

“지금부터 보여 줄게.”

최기석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스승에게 손을 벌리려는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나던 찰나.

기적처럼 해결법이 머리를 스쳤다.

[특수효과 혜안(慧眼): 30퍼센트의 확률로 응급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해결방법의 구체적인 방법과 다양성은 그동안 읽은 논문에 비례합니다. 발동 횟수는 일일 1회입니다.]

심장의 지휘자 스킬의 혜안 효과가 제때에 발동된 것이다.

“다들 다시 자리 잡아. 빨리!”

그의 호통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정리되었다.

“메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를 이용해 심막을 잘라 냈다.

이에 심막이 2x2 거즈 사이즈로 재탄생했다.

“미스터 최, 설마…….”

“맞아요. 출혈 부위를 밀봉해 버릴 겁니다. 고정 잘해 주세요.”

“네!”

엠마가 포셉으로 심막 거즈를 잡아 출혈 부위에 갖다 댔고 최기석은 심막 거즈의 바깥 부분을 연속 봉합으로 꿰맸다.

“찰스. 접착제.”

“오케이.”

찰스에게 받은 접착제를 봉합 부위에 발랐다. 그리고 젤이 발려진 폼으로 그 위를 덮었다.

그것도 삼중으로.

응급처치가 끝난 후 스태프들의 시선이 봉합 부위에 고정되었다.

과연 최기석의 기지는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발버둥에 불과할 것인가.

잠시 후에 그 결과 드러나리라.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꾸역꾸역 피를 쏟아 냈던 좌심실 파열 부위가 잠잠해진 것이다.

“와우. 진짜 출혈이 멎었어!”

“성공이에요!”

찰스와 엠마가 기쁨의 비명을 질렀지만 최기석은 담담하게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출혈을 막았다고 수술이 끝난 건 아니다.

갈 길은 아직 멀었다.

“들뜬 건 알지만 마음을 가라앉혀요. 치환술 계속 진행합니다.”

최기석은 판막륜에 고정된 봉합사와 기계판막을 연결하는 작업에 나섰다.

뜻하지 않은 출혈로 시간을 뺏겼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봉합 속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정확하게.

잘 벼려진 집중력과 손놀림이 폭발하면서 기계판막 연결술은 10분 만에 끝났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판막을 건드려 보고 식염수를 이용해 역류가 발생하는지 살폈다.

다행히 기계판막은 튼튼하게 혈액을 막아 주고 있었다.

“이걸로 큰 고비는 넘겼고. 삼첨판막 성형술은 엠마가 해 볼래요?”

“제…… 제가요?”

최기석의 깜짝 제안에 엠마가 말을 더듬거렸다.

“엠마가 매일 시간 내서 수술 연습했던 거 알아요. 만약 내게 문제가 있으면 대타로 뛰려고 했던 거 맞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데…….”

“아흑! 갑자기 팔이 너무 아파. 수술을 못하겠어. 어…… 어떻게 하지?”

최기석의 발연기에 찰스가 박장대소했다.

“야. 너무 티 나게 아파하는 거 아니냐?”

“…….”

“뭐. 그건 그렇고 저도 삼첨판막 성형술은 엠마가 했으면 좋겠어요. 기석이한테 가려서 그렇지 엠마도 어디 가서 꿇리진 않잖아요. MHC로 올 때 차석까지 했는데.”

“그건 그렇지만…….”

“할 수 있어요. 우린 다 엠마를 믿으니까.”

최기석의 말에 엠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들 믿어 준다면 해 볼게요. 멋지게 성공해 볼게요.”

“그래야 엠마답죠.”

잠자코 있던 제레미가 한마디 보탰다.

이윽고 최기석과 엠마가 자리를 바꾼 채 삼첨판막 성형술이 진행되었다.

엠마는 메스를 손에 쥐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집도의 자리가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남달랐다.

갑자기 어깨에 철근이 내려앉은 것 같았고 팔도 무거워졌다.

‘연습 때처럼만 하자. 연습 때처럼만.’

각오를 다진 그녀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메스.”

엠마는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우심방과 우심실 사이의 골짜기를 내리 그었다. 절개창을 살짝 벌리자 두꺼워진 삼첨판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첨판막의 상태는 승모판막에 비해 양호했다.

승모판막이 전반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삼첨판막은 부분적인 문제가 있었다.

“판막엽이 살짝 벌어져 있네요. 판막륜만 고쳐 주면 될 것 같은데요?”

“동감이에요.”

최기석의 말에 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판막륜.”

그녀는 인공판막륜을 기존 판막륜 위에 덮은 후 그 위에 봉합을 시도했다.

이렇게 하면 인공판막륜이 헐거워진 판막륜을 조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혈액이 역류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대단해.’

엠마는 인공판막륜을 꿰매면서 최기석의 보조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는 포셉으로 인공판막륜을 지그시 눌렀는데 손톱만큼의 미동도 없었다.

그로 인해 모형을 봉합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감탄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석션과 봉합사를 정리해 주어 봉합 외에는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더 빨리해 보자.’

엠마는 최기석의 물 샐 틈 없는 보조를 믿으며 봉합에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인공판막륜 수술은 삼십 분 만에 종료됐다.

그녀 역시 최기석 못지않은 가능성을 뽐낸 셈이다.

드르르륵.

인공심폐기가 이탈되고 확인한 활력징후는 정상.

우여곡절 끝에 팀 CPR의 첫 번째 수술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환자와 로젯을 나온 네 사람.

그들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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