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4)
터벅터벅.
팀 CPR 스태프들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들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으며 걸음걸이에는 절도가 넘쳤다.
지도교수 없이 펼치는, 오직 팀 CPR 스태프만으로 진행하는 첫 수술.
그것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이른바 홀로서기.
갓 흉부외과 전공에 발을 디딘 레지던트들에게는 다소 가혹한 일이지만 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훌륭한 써전이 되기 위해서 홀로서기는 필수조건이다.
다만 그 시기가 조금 일찍 왔다고 마음먹었다.
“닥터 최.”
수술실에 도착하자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술을 앞둔 환자 걸리버의 보호자, 안나다.
그녀는 최기석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우리 그이 잘 부탁해요. 사실 자식들 독립시키고 이제야 우리만의 인생을 살아보려 했습니다. 몇 개월 전 근교에 집도 마련했죠. 그런데 남편 없이 나 혼자 살 자신이 없어요.”
“…….”
“제발 그이를 부탁해요.”
안나의 구구절절한 말이 최기석의 어깨를 짓눌렀다.
“너무 걱정 마세요. 걸리버를 살리기 위해 여기 있는 의사들이 눈 빨개지도록 노력했습니다.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네. 믿겠습니다.”
안나가 십자가 목걸이를 두 손에 쥐고 고개를 숙였다.
보호자와 대화를 끝낸 팀 CPR 스태프들은 F 로젯 앞에 자리 잡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여기 오니까 새삼 떨리네.”
“저도요. 수술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문제없어요.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긴장한 찰스와 엠마와 달리 제레미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 들어가지 전에 마지막 브리핑 시작할까?”
“오케이.”
찰스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환자의 이름은 걸리버.
올해 60세로 MHC 외래 진료에서 실시한 검사에서 승모판 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현재 환자의 승모판은 많이 두꺼워진 상태로 석회화가 진행 중이며 혈전까지 발견됐다.
“수술 전에 심초음파 촬영한 건 어떻게 됐어?”
“같이 확인해 보자.”
찰스의 제안에 팀원들이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좌심실은 예전하고 다를 게 없는데 우심실이 좀 더 나빠졌어. A.T(혈류의 가속속도), PV(혈류의 최대속도), D.R(혈류의 감속률)이 전반적으로 떨어졌어.”
“그 뜻은…….”
엠마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향했고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하는 김에 삼첨판도 같이 손봐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랬다간 환자가 수술실에 한 번 더 들어 가야 할 테니까요.”
“우리 팀 진짜 박복한 거 아니냐?”
찰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령에 중증질환 환자를 맡은 데다가 추가 수술까지 하게 됐잖아. 다른 팀 수술이랑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일까?”
“난 몰라. 나 쳐다보…….”
최기석은 동료들이 일제히 쏟아내는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했다간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장난은 이쯤 해요. 이러다 미스터 최, 수술 전에 도망치겠어요.”
“그래요. 주치의니까 봐줘야지.”
“다들 힘내서 잘해 보죠. 파이팅 하고 들어갈까요?”
제레미의 제안에 네 사람이 손을 모았다.
우렁찬 기합과 함께 천장으로 치솟는 손.
그들의 눈에는 수술을 무사히 끝내겠다는 결의가 담겼다.
벅. 벅. 벅. 벅.
포비돈 솔로 손과 팔목을 박박 문지른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으로 들어갔다.
“나이 60세, 승모판막 치환술을 받는 걸리버 환자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걸리버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숨 푹 자고 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겁니다.”
“설마 저승에서 깨어나는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부인분과 새 저택에서 알콩달콩하게 사셔야죠.”
최기석의 말에 걸리버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네. 그 믿음,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최기석이 타임아웃을 진행하는 사이, 나머지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환자 감시 장치 및 심초음파 연결.
수술 도구 준비와 전신마취 등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오늘도 만석이네.’
최기석은 참관실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승 송명진과 야샤다, 권일수, 카타리나, 거기에 벤슨까지.
MHC 흉부외과의 주축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주눅 들기보다는 수술을 더 깔끔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언젠가는 라이브 시연도 해야 하지 않는가.
벌써부터 이 정도 관객에 긴장하면 안 될 일이다.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에 보고에 최기석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오늘의 집도의는 최기석, 제1보조는 엠마, 제2보조는 찰스, 제3보조는 제레미다.
“…….”
“…….”
계속되는 팽팽한 침묵.
이윽고 팀원들이 시선을 주고받다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다.
“지금부터 승모판 폐쇄부전증에 대한 승모판막 치환술 및 삼첨판막 성형술을 시작합니다.”
최기석의 말에 찰스가 환자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메스.”
최기석은 메스로 환자의 목 부분부터 명치까지를 내리그었다. 이에 찰스와 제레미가 절개 부위에 견인기를 끼우고 고정시켰다.
그 상태에서 견인기를 좌우로 벌리자 절개창이 늘어나면서 수술 부위가 드러났다.
쿵. 쿵. 쿵. 쿵.
폐를 옆으로 살짝 들어내자 약동하는 심장이 보였다.
이곳이 바로 흉부외과의 전쟁터다.
“대동맥 차단했어요. 심정지액 주입해 주세요.”
엠마의 지시에 제레미가 심정지액을 주입하고 찰스가 대퇴동맥과 우심방에 캐뉼러를 꼽았다. 인공심폐기를 연결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깔끔했다.
드르르륵.
기계음과 함께 인공심폐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뛰며 제 존재감을 드러내던 심장이 어느새 잠들었다.
“자, 시작해 볼까요? 메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메스를 손에 쥐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는 메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환자라도 살려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으으으윽.
날카로운 칼날이 좌심방을 갈랐다.
승모판막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좌심방을 열어야 한다.
“흐음…… 만만치 않은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노출된 좌심방을 확인한 찰스와 엠마가 한마디씩 했다.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승모판막.
판막의 협착 정도가 검사 결과에 비해 한층 더 악화되었고 혈전들이 판막 곳곳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었다.
“우선 혈전부터 제거해야겠는데요?”
“혈전용해제 투입할게요.”
엠마가 주사기에 혈전용해제를 담아 승모판막 주변에 쏘았다.
용해제가 판막 주변으로 퍼지면서 딱딱하게 굳은 혈전들이 스르르 풀렸다.
최기석은 흡입기로 혈전을 빨아들이고 그래도 제거되지 않은 혈전들은 스크래퍼(긁개)로 조심스럽게 긁어 냈다.
그렇게 수술 전 처치로만 30분이 소요되었다.
“치환술 계속 갑니다. 찰스와 제레미는 판막 치환 때 쓸 봉합사 작업해죠.”
“알았어.”
지시를 끝낸 최기석은 승모판막의 판막엽을 제거해 나갔다.
판막엽은 판막의 문짝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환자의 경우 이 문짝이 비정상적으로 좁았다.
그로 인해 혈류의 흐름이 원활치 않으면 때때로 좌심실로 내려간 피가 좌심방으로 역류하기도 했다.
최기석은 엠마의 도움을 받아 판막엽의 앞쪽 부분을 제거해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진 손놀림.
절제가 깔끔하지 못할 경우 기계판막 삽입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판막엽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수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덤이고 말이다.
‘이 정도면 할 만해.’
절제를 진행 중인 그의 눈빛이 독수리처럼 날카로워졌다.
처음에는 더뎠던 손놀림에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MHC 스태프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감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지금의 그는 처치 그 자체였다.
텅!
판막엽이 곡반으로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20여 분에 가까운 사투 끝에 두꺼워진 판막엽 제거가 끝났다.
그렇게 판막 문짝이 사라지면서 좌심방 좌심실 사이가 훤하게 비었다.
“엠마. 잘했고 잘해왔지만 지금부터 특히 더 신경 써주세요.”
“물론이죠.”
엠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찰스 봉합사 준비는?”
“이상 무.”
“판막륜 고정 작업 들어갑니다.”
최기석은 찰스가 준비한 봉합사를 판막륜 주변에 고정시켰다.
판막엽이 문짝이라면 판막륜은 문틀이다.
이 문틀을 봉합사로 단단하게 고정한 후 기계판막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 승모판막 치환술의 핵심 과정이라 볼 수 있었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쥐죽은 듯 고요한 로젯에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와 봉합사 잘리는 소리만 울렸다.
판막륜에 고정시켜야 할 봉합사의 숫자는 스무 개.
최기석은 이를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처리했다. 펠로우가 봉합하더라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릴 것을 무려 20분으로 단축한 것이다.
트레이닝 룸에서의 피나는 노력과 그동안 쌓은 스킬들.
이 두 가지가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레지던트가 저래도 되는 건가요?”
수술을 지켜보던 카타리나가 혀를 찼다.
더불어 그녀의 눈은 최기석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가 범상치 않다는 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활약할 줄은 몰랐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역시 봉합.
최기석은 일 분마다 한 매듭씩 끝내는 기염을 토했다.
“카타리나. 최 선생이 한국에서 인턴할 때 별명이 뭔지 알아요?”
송명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글쎄요.”
“바로 초(super) 인턴이었어요. 레지던트가 된 지금은 그것마저 넘어섰다고 봐야죠.”
“인턴 때부터 날아다녔군요.”
“트리플 보드를 목표로 했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잠자코 있던 야사다가 대화에 껴들었다.
숨죽인 참관이 이어지는 가운데 벤슨은 얼굴을 찌푸리며 다리를 떨었다.
‘눈꼴 시려서 못 참겠군.’
스태프들이 최기석을 치켜세우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아직 레지던트 1년 차 아닌가.
지금처럼 분수에 맞지 않는 수술을 고수한다면 조만간 날개는 꺾이리라.
“벤슨은 왜 아까부터 말이 없지?”
“미스터 최가 워낙 잘하고 있어서 딱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염탐을 할 거면 제대로 하고 가야지. 그래야 부병원장님이 좋아할 테니까.”
야사다의 지적에 벤슨은 침묵을 지켰다.
폐동맥 협착증 사건으로 마찰을 빚은 후 야사다와는 완전히 등을 졌다.
이제 그가 기댈 사람은 부병원장 파커뿐이었다.
‘애처럼 좋아하긴.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벤슨은 수술 중인 최기석에게 저주의 눈빛을 쏘았다.
“기계판막.”
최기석의 말에 소독간호사가 기계판막을 건넸다.
판막륜에 고정한 봉합사를 기계판막과 연결하면 오늘 수술은 한 고비 넘기게 된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말자고 최기석은 속으로 되뇌었다.
“엠마. 기계판막 고정해 주세요.”
“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기계판막 연결에 첫 걸음을 떼려는 순간 환자 감시 장치가 불길한 전자음을 흘렸다.
환자 감시 장치로 쏟아지는 스태프들의 시선.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