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31화 (330/407)

전화위복 (2)

띵동!

[누구세요?]

“MHC 흉부외과의 기석 최라고 합니다. 오늘 올리버 씨를 뵙기로 했는데요.”

[아. 들어오세요.]

대답과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그를 맞아 준 것은 덩치 큰 말라뮤트다.

말라뮤트는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근처를 맴돌며 꼬리를 흔들었다.

“반가워요. 미스터 최. 저는 애니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올리버 씨는 잠깐 병원에 가셨는데 금방 오실 거예요. 그동안 응접실에서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양 않을게요.”

최기석은 애니를 따라 응접실로 이동하며 집 안을 훑었다.

세계 최초의 트리플 보드 써전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눈에 띄는 것이라고는 벽면에 걸린 가지각색의 풍경화 정도였다.

“신기하네요.”

애니가 최기석과 말라뮤트를 번갈아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무슨 뜻입니까?”

“케인이 원래 심하게 낯을 가리거든요. 낮선 사람이 오면 짖기부터 하는데 미스터 최에게는 그러질 않네요.”

“하하하. 케인이 그런 녀석이었나요?”

최기석은 여전히 곁에서 맴도는 말라뮤트 케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메이죠 수련 시절 응급실에서 강아지에게 CPR을 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동물과 친밀도를 높이는 칭호를 얻었는데 그 효과가 오랜만에 발휘되는 듯싶었다.

“홍차 좋아하시나요?”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뭐든지 좋아요.”

최기석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애니가 내준 차를 마시며 시간을 죽이던 도중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인 올리버가 돌아왔다.

“반갑습니다, 올리버.”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그나저나 집주인이 손님의 마중을 받다니 별일인 걸요?”

올리버가 씽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올리버는 올해로 65세가 된 여성이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으며 얼굴과 목에는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알려 주는 주름들이 자리 잡았다.

인상은 옆집 아주머니처럼 푸근하고 따뜻해서 거리낌 없이 고민 상담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나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셔서.”

“옛날 사진을 봤을 테니 그럴 만하죠. 젊었을 때는 나도 샤프한 도시 여성이었는데.”

“기석 최는 방금 도착해서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올리버 씨 차도 준비해 드릴게요.”

“고마워요, 애니.”

이윽고 최기석과 올리버가 응접실에 자리 잡았다.

두 사람은 마치 탐색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미스터 최는 눈이 참 곱네요.”

올리버가 운을 뗐다.

“투명한 눈 속에 뜨거운 심지가 보여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칭찬 감사합니다.”

“느낀 그대로 말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눈빛을 앞으로 계속 유지하는 거죠. 정신이 혼탁해지면 눈도 흐릿해지기 마련이에요.”

“의외로 동양적인 이야기를 하시네요.”

“좋아하거든요, 동양사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아니에요. 원래 인생은 흘러가는 구름 같은 거 아니겠어요?”

올리버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고 최기석은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의사가 아니라 현자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매트릭스에 나오는 오라클 같았다.

잠시 대화가 중단된 사이 그는 올리버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4/10

진단력: 4/10

외과적 처치: 4/13

내과적 처치: 3/10

평판: 3

정치력: 4

카리스마: 3

그녀의 스탯은 일반적인 MHC 스태프보다 한참 아래였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났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몇 가지 쓸 만한 스킬을 제법 소유하고 있었다.

그중 한 가지가 바로 영혼의 제단 패시브.

그로 인해 올리버의 외과적 처치 스탯 최대치는 10이 아닌 13이 되었다.

처음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써전을 만난 것이다.

“미스터 최 이야기는 야사다에게 많이 들었어요. 트리플 보드를 목표로 수련 중이라면서요?”

“네. 아직 갈 길이 멀고 배울 것도 많습니다. 이제 갓 흉부외과 수련을 시작했으니까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그랬으니까. 나중 생각을 하면 까마득하죠?”

“죽을 맛입니다.”

최기석은 농담을 건네며 화제를 돌렸다.

“올리버 씨가 흉부외과 써전의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들을 수 있을까요?”

“기대하는 것처럼 대단한 건 없을 텐데…….”

올리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님이 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심장이식이 보편적이지 않았거든요.”

“…….”

“흉부외과 써전을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죠. 비록 내 어머니는 구하지 못했지만 세상의 다른 어머니들을 구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럼 미스터 최는 왜 흉부외과를 택했죠?”

“저 역시 심부전증을 앓았고 의사고시 전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서 의사 생활 중이라고요?”

올리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가능한가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었습니다.”

“와우. 대단해요. 미스터 최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안 그래도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출발점은 나나 미스터 최나 비슷한 셈이네요. 돈을 보고 시작하지 않았으니까.”

한차례 대화가 끝나고 찾아온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최기석이다.

“제가 올리버를 찾은 건 트리플보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올리버가 남다른 성취를 했다는 건 그만큼 올리버에게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죠.”

“남다른 무언가라…….”

올리버가 천장을 응시하며 턱을 쓸어내렸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건 목표 그 자체예요.”

“목표 그 자체요?”

“그래요. 당장 주변을 둘러보세요. 후배나 동기, 선배들 중에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를 목표로 삼은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

최기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펠로우가 되어 한 가지 전공을 파고드는 것조차 벅찬 게 흉부외과의다.

그로 인해 보통 심장외과, 폐식도외과, 거기에 소아 파트, 이 세 가지를 다 아우를 생각은 하지 못한다.

아니 엄두조차 낼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하리라.

“난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목표를 이루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목표를 가져야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죠.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 최는 이미 합격이에요.”

“…….”

“다만 미스터 최의 길은 나에 비해 가시밭길일 거예요.”

올리브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의사 생활을 할 때는 아직 수술이 발전하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수술 도구도 다양하지 않았고요. 어떻게 보면 트리플 보드를 따기 수월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죠?”

“시대가 변했다고 올리버의 업적이 바래는 건 아닙니다. 그때는 그때의 고난이 있고 지금은 지금의 고난이 있는 법이죠.”

최기석의 당찬 대답에 올리버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요. 그런데 미스터 최, 꼭 트리플 보드를 목표로 해야 하나요?”

“…….”

“트리블 보드는 너무 힘든 길이에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죠. 다른 사람들보다 세 배 이상 스스로를 괴롭혀야 한다고요. 그런데도 트리플 보드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네. 있습니다.”

최기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 수단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EOB 평가 때문에 수술을 고의적으로 미루는 케이스도 경험했고요.”

“…….”

“그런 의사들과 맞서려면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만약 제가 흉부외과의 모든 수술을 집도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의사가 제게 장난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비록 힘든 여정이 될지라도 저는 트리플 보드를 달성하고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될 겁니다.”

그의 당당한 선언과 함께 응접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올리버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참 만에 운을 뗐다.

“솔직히 멋있네요. 젊은 써전의 패기가 느껴져요.”

“…….”

“미스터 최 같은 써전이 많으면 환자들이 더 행복해질 텐데…….”

올리버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아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스터 최를 응원하는 것뿐이네요. 힘내요. 내 목숨이 닿을 때까지 당신의 꿈을 지켜봐 줄게요.”

“감사합니다, 올리버.”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눈빛에 따스함이 깃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숨겨진 임무, 진심에서 진심으로 그 다섯 번째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올리버의 스킬이 무작위로 주어집니다.]

NEW [영혼의 제단, 패시브]

- 더 높은 곳을 향해서. 그곳에 닿을 때까지 나의 날갯짓은 멈추지 않는다.

- 체력과 외과적 처치의 최대치가 1단계 상승합니다.

- 고유효과 열정: 수련기간에 비례하여 처치 정확도와 처치 속도, 위기 대처능력 등의 스탯 최대치가 상승합니다.

최기석은 아이템을 확인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영혼의 제단 패시브로 외과적 처치와 체력의 최대치가 나란히 12가 되었다. 그 말인즉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바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종종 찾아봬도 될까요?”

“물론이에요.”

최기석은 올리버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저택을 떠났다.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트리플 보드를 향한 꿈.

그것이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MHC에 도착한 최기석이 차에서 내렸다.

“으라차차!”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켰다.

긴 시간 운전을 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했다.

팀 CPR의 승모판막 치환술이 당장 내일로 다가왔다.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는 기숙사에서 쉬는 게 최선이지만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최기석은 발길을 돌려 본관 신경외과를 찾았다.

“미스터 최. 여기는 웬일이에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신경외과 당직의 미셸이 말을 걸었다.

“레온하고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레온은 기숙사에서 쉬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할 말이 있으면 뒤로 미루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며칠 전 당직 서다가 T.A 환자를 받았거든요. 특이하게 부모는 무사한데 아이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어요. 오늘 오전에 그 아이한테 뇌사 판정을 내렸는데, 그 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구나.”

“미스터 최도 그 환자 알아요?”

“레온하고 같이 당직을 선 게 저에요.”

“어쨌든 당분간 레온을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과잉기억 증후군 때문에 더 힘들 텐데.”

“그래야겠죠. 혹시 뇌사 판정 받은 환자는 어디 있나요?”

“저기요.”

미셸이 검지로 복도 끝에 있는 병실을 가리켰다.

최기석은 그녀와 헤어져 병실 문 앞에 섰다.

뇌사 판정을 받은 아이의 이름은 제라드.

올해로 여섯 살이다.

제라드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의 곁에는 침울한 표정의 부부가 있었다.

최기석은 제라드에게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심부전증으로 고통 받는 라훌의 모습이 제라드와 겹쳐 보였다.

병실 앞을 서성거리던 그는 이내 신경외과 병동을 떠났다.

도저히 그 말을 입에서 꺼낼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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