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29화 (328/407)

숨 가쁜 일정 (6)

“한 번 더!”

“Charge!”

“Clear!”

쿵!

전류가 연달아 환자를 강타했음에도 심전도 그래프는 요지부동이었다.

퍽! 퍽! 퍽! 퍽!

최기석이 흉부압박에 나섰다.

갈비뼈가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강력한 압박.

환자의 몸이 제세동기를 사용했을 때처럼 위태롭게 튀어 올랐다.

‘위험해.’

최기석은 자신의 환자와 찰스, 응급의학의가 CPR 중인 환자를 훑어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도착 시 사망환자라서 그럴까.

바이탈이 복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에피네프린 2분마다 계속 투여해 줘. 산소 농도도 지금보다 더 올려 주고.”

“네!”

최기석을 돕던 인턴이 씩씩하게 외쳤다.

지옥 같은 CPR이 이어졌다.

세 명의 환자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CPR로 응급실 분위기는 금방 터져 버릴 폭탄 같았다.

스태프들 대부분은 제 할 일을 하면서도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는 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는 이미 짙은 절망감과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도착 시 사망환자의 회생률은 20퍼센트를 넘지 못한다.

병원 도착 전까지 이미 911대원들이 심폐소생을 진행하지 않았던가.

병원에서 CPR을 한다고 해서 환자의 생명이 갑자기 살아나는 케이스는 드물었다.

뚝. 뚝. 뚝.

최기석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땀방울에 눈이 쓰라렸지만 최기석은 이를 악물고 심폐소생술을 이어 갔다.

이 환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한마디 하면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은 편치 못하다.

무릇 의사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환자가 자신의 손에서 떠나는 것을.

“미스터 최. 더는 힘들 것 같은데?”

“벌써 20분째예요. 이젠 가망이 없어요. 심폐소생술도 약물 투여도 할 만큼 했어요.”

CPR을 진행하던 찰스와 응급의학의가 한마디씩 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최기석처럼 엉망이었으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조금 더 노력해 봐요.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러요.”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다시 CPR에 나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사람도 그를 따랐다.

최기석의 눈빛과 말투에서 느껴지는 집념이 두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갑자기 한 노인이 난입해서 최기석의 곁에 섰다.

“우리 가족들이 대체 왜…….”

“보호자십니까?”

“네. 환자들은 내 아들과 손주들이에요.”

“죄송하지만 사정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처치가 더 중요합니다.”

인턴이 보호자로 보이는 인물을 진정시키며 침상과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보호자가 참석한 가운데 계속되는 CPR.

휘이이이잉.

최기석은 자신이 맡은 환자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생명의 은인 칭호, 부활 효과가 발동합니다.]

[부활: 처치 시 20퍼센트의 확률로 사망에 이른 환자가 일시적으로 되살아납니다.]

“선생님! 방금 심전도가 희미하게 움직였습니다.”

“좋았어. 계속 가자.”

최기석은 인턴의 도움을 받아 심폐소생술에 박차를 가했다.

꺼져 있던 촛불에 희미하게나마 피어난 불씨.

부활 효과가 남아 있을 때 이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환자들이 응급실에 도착한 지 사십 분이 되었다.

응급실의 상황은 어느 정도 종료되었다.

도착 시 사망으로 실려 온 세 명의 환자.

그중 한 명은 간신히 생환에 성공했고 나머지 두 명은 목숨을 잃었다. 긴 처치 끝에 환자가 사망하면서 응급실의 분위기는 먹구름처럼 어두웠다.

“바보 같은 자식들. 대체 왜! 왜!”

보호자 로버트가 사망한 아들과 손주의 곁에서 목 놓아 울었다. 노인의 통곡은 비수가 되어서 응급실에 근무하는 스태프들의 가슴을 찔렀다.

최기석은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그저 노인 곁에 머물렀다.

이 세상의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자 삶의 전부다.

로버트를 보고 있으면 그 문구의 의미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최기석은 찰스와 의국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넋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타다다다닥.

고요한 의국을 깨우는 키보드 소리, 찰스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찰스와 응급의학의가 맡았던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잠깐 와 볼래?”

찰스가 손짓하며 모니터를 가리켰고 최기석의 그의 곁에 서서 차트를 훑었다.

응급실 기록지에 사건 당시의 세부적인 상황이 적혀 있었다.

911 대원들이 작성해서 넘긴 것들이다.

최초 대원들이 출동했을 때 연탄가스가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고 한다.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황이었고 말이다.

더불어 탁자 위에 수면제 한 통과 유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유서에는 청년들의 아버지가 삶을 비관하여 아들들과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이 적혔다.

“씁쓸하네.”

최기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절망에 빠진 가장이 본인과 자식들의 목숨을 함께 끊는 경우는 종종 벌어진다. 뉴스에서나 접할 사건을 직접 경험하니 마음이 더 아팠다.

“찰스, 미안한데 딱 삼십 분만 환자 좀 봐줄래? 나 잠깐 가 볼 데가 있어서.”

“보호자한테 가려고?”

“맞아.”

“난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하고 와.”

최기석은 찰스에게 감사 표시를 하고 영안실로 내려갔다.

어둡고 스산한 복도를 지나 도착한 영안실 내 대기실.

아들과 손주를 잃어버린 로버트가 고개를 떨어트린 채 돌처럼 굳어 있었다.

“아까 응급실에서 뵀던 기석 최라고 합니다.”

최기석의 말에 로버트가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초점을 잃은 두 눈이 공허해 보였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로버트의 소중한 가족을 지키지 못해서…….”

“됐어요. 병원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로버트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병원에서 어떤 처치를 받았는지는 이미 상세하게 들었어요. 누군가를 원망한다고 하면 그 대상은…… 신밖에 없겠죠.”

“…….”

“그런데 선생님.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최기석은 갑자기 가운을 붙잡는 로버트의 손길에서 강력한 힘을 느꼈다.

지금까지 한 번 더 느끼지 못했던 에너지를 말이다.

거기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발견했다.

“아까 전에 경찰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쪽에서는 우리 아들이 손주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후 자살 기도를 했다고 주장하더군요. 방 안에 남긴 유서, 그리고 전 아내에게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는 게 증거라면서요.”

“로버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군요.”

최기석이 먼저 그의 의중을 찔렀다.

“내 말이 바로 그거예요! 잭에게 자살충동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어요. 잭은 어렸을 때부터 예민하고 사회생활을 어려워했던 아이니까요.”

“…….”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날 녀석은 아니에요. 적어도…… 적어도 자식들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을 거란 말입니다. 전 아들이 결백하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타살이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잭을 나만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은 없어요. 확실합니다. 그런데 경찰은 내 말을 믿어 주지 않더군요.”

로버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아들의 누명을 벗길 만한 방법 말입니다.”

띠링!

[특별한 임무, ‘억울한 죽음’ 임무가 생성되었습니다. 잭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낼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고 턱을 쓸어내렸다.

로버트의 시점에서 생각하면 이번 사건은 확실히 의심스럽다.

잭의 자살충동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계략을 꾸몄다고 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손이 닿는 최대한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닥터 최. 내 아들과 손주들을 이렇게……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로버트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최기석이 그의 손을 잡았다.

쭈글쭈글한 손에서 믿기 힘든 온기가 전해졌다.

그날 오전, 의국.

최기석은 트레이닝 룸에 입장한 후 연달아 스승의 신수술 연습에 나섰다.

기존에 스승이 전수한 수술법과 샬롯의 수술법.

두 가지의 중간지대를 찾기 위함이었다.

우선 스승이 원하는 수술 범위를 설정한 후 샬롯의 변칙적인 수술법을 적용시켜 보았다.

결론은 대실패.

수술 범위가 넓어지면 샬롯의 토탈케어는 오히려 스승의 수술법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두 번째 집도 시에는 스승의 수술법으로 절반을 진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샬롯의 수술법을 따랐다. 하지만 이 역시 신통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어울리지 않는 두 과일이 섞인 주스를 마신 느낌이랄까.

수술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예감이 맞았다는 듯 수술 후 종합 랭크도 F등급이 나왔고 말이다.

“휴우…….”

트레이닝 룸에서 나온 최기석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차라리 샬롯의 수술법을 무시하고 기존 스승의 방법을 따라가는 게 옳은 걸까.

그저 제3의 길이 있는데 찾지를 못한 걸까.

오만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최기석은 기분전환을 위해 휴게실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시고 병실을 돌았다.

인수인계 시간이 삼십 분 앞으로 다가왔다.

그 전에 환자들을 점검하고 싶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켈리의 병실.

최기석은 처치 도구를 챙긴 후 에어샤워를 마치고 격리실로 들어갔다.

켈리는 아기천사처럼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지금 모습만 본다면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스으으으윽.

수술용 장갑을 끼고 수술 부위를 소독했다.

이후 최기석은 켈리의 가슴에 부착된 견인기에 손을 얹고서 나사를 풀었다.

끼리리릭 하는 경쾌한 쇳소리.

견인기의 눈금을 확인한 그는 견인기를 좌우로 1밀리미터씩 늘렸다. 갑작스런 자극에 켈리가 몸을 들썩거렸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졌다.

방금 전의 처치로 켈리의 흉곽은 12밀리미터로 늘어났다.

이런 식이라면 목표인 28밀리미터도 멀지 않았다.

벤슨의 람보 쇼가 차근차근 진행 중이라고 해야 할까.

최기석은 처치를 끝내고 외과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그가 두 번째로 찾은 인물은 빅터.

빅터는 도착 시 사망(D.O.A)으로 도착한 잭 일가의 유일한 생존자다.

현재 그는 에크모에 의지한 채 간신히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새벽에 한 차례 활력징후가 떨어졌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최기석은 빅터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의식을 회복한 그가 제 집에서 벌어진 일을 깨달으면 어떤 그림이 펼쳐질까.

그 상상만으로 눈앞이 아찔했다.

이어지는 라운딩.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핀 후 의국으로 돌아왔다.

출근한 동료들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것으로 당직의의 임무는 종료.

그는 기숙사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차에 올라탔다.

부르르릉.

배기음과 함께 자동차가 가뿐하게 MHC를 벗어났다.

세계 최초의 트리플보드 흉부외과의 올리버.

오늘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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