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27화 (326/407)

숨 가쁜 일정 (4)

“목이 너무 아파요.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숨 쉬는 것도 너무 힘들어요.”

“내시경 검사 결과, 홍합 껍데기가 식도에 박혀 있는 걸로 나왔습니다. 식사 후 바로 응급실을 찾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환자가 휘휘 고개를 저었다.

“홍합요리는 한 나흘 전에 먹은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체했나 싶었는데 갈수록 통증이 심해져서……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식도에 박힌 홍합을 제거하겠습니다.”

“서…… 설마 수술 받는 건가요?”

환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근처에 있던 보호자가 덩달아 몸을 들썩거렸다.

“네.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식도 손상도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골든타임이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환자분은 골든타임인 24시간을 넘어 버렸습니다.”

“…….”

“식도에 상당한 염증도 생겼고요. 식도에 박힌 홍합을 제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시경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적인 절개를 하는 것인…….”

“선생님. 내시경으로 해 주세요!”

환자가 다급하게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칼을 대는 건 무서워요. 안 아픈 처치로 해 주세요.”

“골든타임이 지나서 내시경은 무리입니다. 내시경을 사용했다간 오히려 염증 부위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럼 저는…….”

“네. 수술적인 절개로 홍합을 제거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내시경을 사용하더라도 상처가 안 생길 수 있잖아요.”

“선생님. 저도 남편이 내시경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잠자코 있던 보호자가 환자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최기석은 환자와 보호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환자와 보호자가 특정한 처치를 고집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더불어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의사 머리 꼭대기 위에 있으려는 사람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흔들려선 안 된다.

그들의 말은 귀 기울여 듣되 처치에 대해서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홍합은 수술적인 방법으로 제거하겠습니다. 인턴, 수술 동의서 출력해 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환자와 보호자들이 원하는데 내시경이 더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 그게 무슨 문제입니까?”

“선생님. 내시경으로 해 주세요.”

인턴의 말에 환자가 얼씨구나 하며 치고 들어왔고 거기에 보호자가 가세했다.

“환자분. 지금 병원에 왜 오셨습니까?”

“그걸 몰라서 묻는 겁니까? 당연히 아파서 왔죠.”

“그 말인즉 자기 몸을 자기가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됐으니까 병원에 온 거 아닙니까?”

최기석의 지적에 환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는 환자분보다 환자의 몸을 더 잘 압니다. 적어도 이번 질병에 관해서는요. 장담하건데 지금은 내시경보다 수술적 처치가 환자분의 경과에 더 도움이 됩니다.”

“…….”

“고집은 꺾어 두시고 제 말을 따라주세요.”

최기석의 말에 환자와 보호자의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두 사람은 한참 눈빛 교환을 하더니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따르겠어요.”

“우리 남편 잘 부탁드려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수술적 처치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 없으니까요.”

최기석은 흉부외과로 전화해서 당직 인턴을 부르고 수술방을 잡았다.

“와우. 선생님, 대단하세요.”

동의서를 출력한 인턴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처치의 선택권이 있으면 보통 환자나 보호자 뜻대로 진행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카리스마 있게 밀어붙이는 레지 선생님은 처음 봤어요.”

“그랬어?”

최기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 생각은 그래. 판단은 의사가 하고 환자는 그 의사를 믿는 게 맞다고. 단 여기에는 딱 하나 조건이 붙어.”

“조건이요?”

“그건 바로…… 의사가 환자를 진심으로 위해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환자를 위한 처치가 이뤄질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환자는 늘 비싼 처치나, 의사한테 편한 처치만 받잖아?”

“으음…… 듣고 보니 선생님 말도 일리가 있네요.”

인턴이 턱을 쓸어내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요,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요. 나를 진료해 주는 사람이 좋은 의사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죠?”

“그건 의사들이 노력해야 할 부분일 거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들이 많아지면 의사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쉽지 않겠네요.”

“동감이다.”

최기석은 인턴과 대화를 마치고 수술실로 올라갔다.

미리 잡아놓은 A 로젯 앞에 흉부외과 당직 인턴인 마크가 서 있었다.

“차트 보고 왔지?”

“네. 두 번, 세 번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저랑 선생님 둘이서 정말 괜찮을까요?”

“걱정 마. 별일 없을 테니까.”

최기석은 격려 스킬을 쓰며 마크를 안정시켰다.

사실 식도 절개술이 그리 만만한 수술은 아니다.

레지던트 1년 차가 혼자서 할 만한 수술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수술을 무사히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동안 본인의 역량에 부치는 수술을 숱하게 겪어 왔다.

그것들에 비해 식도 절개술은 오히려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응급실에서 환자가 올라왔다.

벅. 벅. 벅. 벅.

두 사람은 스크럽을 끝내고 환자와 로젯으로 들어갔다.

이번 수술의 스태프는 최기석과 마크, 소독간호사 메이로 다른 때와 달리 조촐했다.

스태프를 많이 호출하면 그만큼 호출당한 스태프들이 고생하는 법.

최기석이 이를 알고 최대한 배려했다.

“역시 소문난 환타답네요. 밤 9시에 식도 절개술 환자를 받을 줄이야.”

“그게 제 매력이잖아요?”

“하여간 닥터 최는 못 말려. 며느리도 못 말려.”

메이의 농담에 최기석과 마크가 웃음꽃을 피웠다.

이윽고 끝난 수술 준비.

최기석은 집도의 자리에 서서 목을 뚜두둑 꺾었다.

“지금부터 식도에 걸린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식도 절개술을 실시합니다.”

그의 말에 마크가 환자의 목과 가슴 부위를 소독하고 방포로 덮었다.

“메스.”

메이에게 건네받은 메스로 환자의 목 아래부터 명치까지를 내리그었다.

피부가 종잇장처럼 연약하게 갈라졌다.

최기석은 마크와 함께 절개 부위에 견인기를 고정시키고 좌우로 벌렸다.

절개창이 벌어지면서 수술 부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수술 부위인 식도.

식도는 인두와 위장 사이에 위치한 기관으로 음식물을 위로 넘겨주며 음식물의 역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경우 상부식도에 홍합이 박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선생님. 홍합 껍데기가 안 보이는데요?”

“안 보이면 보이게 만들어야지.”

최기석은 포셉을 이용해 기관지를 살짝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기관지에 뒤에 숨었던 홍합 껍데기가 수줍은 모습을 드러냈다.

식도에 박힌 홍합 껍데기의 크기는 대략 2.5센티미터.

주변부에는 빨간 염증 반응이 보였다.

“이런 걸 나흘 동안 달고 살았다니 끔찍하네요.”

인턴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메이 역시 공감한다는 듯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스.”

최기석은 이물질이 박힌 부분을 중심으로 8센티미터의 절개창을 냈다. 절개창을 내지 않고 무턱대고 이물질을 뽑아내려고 할 경우 이차적인 식도 손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절개창을 낸 최기석은 포셉으로 홍합 껍데기를 잡았다.

이를 살짝 잡아당겼지만 홍합의 저항은 의외로 거셌다.

마치 줄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팽팽하게 그의 힘을 받아 냈다.

‘네가 그래 봤자 홍합이지.’

최기석은 홍합을 조심스럽게 좌우로 흔들며 공간을 확보한 후 적당한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텅!

홍합 껍데기가 곡반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이걸로 핵심적인 처치는 끝!

“선생님. 걱정했던 것보다 수술이 쉬운 것 같아요. 이제 와서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하지만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까? 사람 잡는데 의사만큼 좋은 직업도 없어.”

“솔직히 절개창 내고 홍합만 빼고 다시 꿰매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말로는 쉽지.”

최기석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내가 식도 절개하는 거 봤어?”

“네. 그냥 쓱 그어 버리신 거 아니에요?”

“아니. 우선 식도 절개를 할 때는 식도근육의 결을 맞춰야 돼. 거기다가 식도 절개 방향 선택도 중요하지. 절개 방향에는 크게 전방부(11-1시 방향), 후방부(5-7시 방향), 소만부(3시 방향)가 있어.”

“…….”

“그럼 여기서 다시 퀴즈. 나는 왜 후방부를 절개했을까?”

최기석의 질문에 마크는 말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그의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아무 것도 몰라요~ 정말 아무 것도 몰라요~

“위식도 판(Angle of His)이 8시 방향에 있어. 이 방향을 피해야만 위식도에 역류가 생기는 걸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지. 한 가지 더 말해 줄까?”

최기석이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절개는 방향만큼이나 깊이도 중요해. 식도의 전층을 절개할 건지 일부만 절개할 건지 판단해야 한다고. 이래도 내가 그냥 쓱 그어 버린 것 같니?”

“……잘못했습니다.”

마크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겉으로 볼 때 최기석의 처치는 대단한 게 없었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 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해부학 지식들이 잠들어 있었다.

써전이 괜히 써전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널 혼내려고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야. 다만 처치를 할 때는 그 처치를 왜 하는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자. 그럼 계속 가 볼까? 4-0 vicryl.”

최기석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절개 부위를 봉합 해나갔다.

경쾌한 손놀림으로 펼쳐지는 단순 연속 봉합.

더불어 위식도 역류를 막기 위한 위저부 주름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식도 절개술의 막이 내렸다.

“마크도 메이도 고생했어요. 흉부 절개창도 후딱 봉합하고 커피나 한잔하죠.”

“저…… 저기 선생님! 중요한 걸 빠트린 것 같습니다.”

마크의 외침에 최기석과 메이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소리야. 수술 다 끝났는데?”

“수술이 끝났으면 봉합 부위에 누출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데 그게 빠졌습니다.”

“……제법인걸?”

마크의 지적을 기다리고 있던 최기석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수 확인을 잊어버릴 그가 아니었다.

마크가 어떤 마음으로 보조 중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마지막 절차를 일부러 넘겼다.

“네 말이 맞아. 수술만큼 중요한 게 바로 수술이 잘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지. 수술 후 후유증으로 합병증을 앓거나 사망하는 환자가 부지기수거든.”

“…….”

“마냥 멍 때리고 있진 않았나 봐?”

“저, 저도 수술 스태프입니다. 옆에서 잔심부름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 마음가짐, 메스를 잡을 때까지 간직하라고.”

딸칵!

최기석은 겸자로 식도 하단부를 묶은 후 식도를 생리식염수에 잠기게 했다. 그 상태에서 식도 내부로 공기를 주입하여 공기누출이 있는지 살폈다.

물론 누수는 없었다.

누수를 확인한 최기석은 정중 개흉술로 벌어진 절개창을 꿰매며 수술을 마무리 지었다.

레지던트 1년 차가 오직 인턴과 소독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식도 절개술을 무사히 끝냈다는, 남들이 믿기 힘든 업적을 세우면서 말이다.

이윽고 세 사람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로젯을 떠났다.

‘나도 닥터 최 같은 써전이 되고 싶어.’

환자 침상을 끌며 이동하던 마크는 앞서가는 최기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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