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20화 (319/407)

진격의 레지던트 (3)

지하 1층은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으며 주변에서 몰려드는 열기로 몸이 뜨거웠다.

쏴아아아아아.

천장에 스프링클러가 애처롭게 물줄기를 뿌렸지만 그것은 가뭄이 든 논에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야 문제없지.’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음에도 최기석의 멘탈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그에게는 불사신 칼라일이라는 희대의 사기 아이템이 있었다.

칼라일이 있는 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다.

[불사신 칼라일]

- 죽는다고? 내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설령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이 몸은 항상 그 자리, 그곳에 있다.

- 이모탈 효과: 아이템을 장착하면 죽음의 위기를 한 차례 피할 수 있습니다. 재해나 외부적인 사건, 사고에 적용되며 질병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화재 역시 이모탈 효과에 포함된다.

주변의 만류에도 화재현장에 뛰어든 이유.

그것은 바로 칼라일의 존재 때문이다.

최기석은 최대한 몸을 낮춘 채 젖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전진해 나갔다.

화재에서 나오는 가스는 일산화탄소 종류.

이것들은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몸을 낮추면 질식의 위험을 덜 수 있다.

‘젠장! 시간이 없는데.’

초조한 마음과 달리 전진하는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아직 어린 제니가 이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쩌면 벌써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최기석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객실 복도를 통과해 나갔다. 그러던 중 연기가 흔들리면서 문 옆에 붙은 110번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방의 구조를 생각하면 120번 객실은 바로 옆 통로 끝에 위치하리라.

“혹시 탈출하지 못한 분 계십니까?”

최기석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120번 객실로 이동했다.

혹시라도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같이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불길이 타오르는 소리에 묻혀서 공허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쿵! 쿵! 쿵!

“제인. 선생님이야. 안에 있니?”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불길한 마음에 손잡이를 돌렸지만 손잡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안에서 문을 잠근 모양이다.

[폭군의 강림을 사용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근력과 민첩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한 최기석은 허리를 펴고 서서 문과 적당한 거리를 벌렸다.

문을 부수는 도어 브리칭이 필요한 순간.

한 걸음 두 걸음, 스텝을 밟다가 온몸의 무게를 실은 발차기로 문을 걷어찼다.

퍼어어어억.

그의 일격에 문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한 번 더!’

최기석은 같은 방법으로, 같은 자리를 발로 걷어찼다.

빠아아아악! 쿠우우웅!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거목이 넘어가듯 문이 뒤로 넘어갔다.

문이 잠겨 있었지만 객실 내부는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틈으로 유독가스가 새어 잿빛 연기가 방 안을 메웠다.

“제…… 쿨럭쿨럭.”

최기석은 기침하며 몸을 휘청거렸다.

문을 부수는 도중 호흡을 잘못해서 유독가스를 일부 들이키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다면 제인은 죽을지 모른다.

자신이야 칼라일이 있어서 구조대원에게 구조를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제인! 제인!”

최기석은 다시 몸을 낮추고 객실 내부를 돌아다녔다.

시꺼먼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는 통에 여기저기 부딪치고 난리가 아니었지만 꾹 참아 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끼이이익 하는 문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화장실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제인이 보였다.

제인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최기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몽롱한 것을 보면 가스를 흡입한 모습이다.

“제인!”

최기석은 제인에게 다가가 젖은 손수건으로 아이의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제인과 몸을 낮춘 채 객실을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다행이야.’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떠오르는 제인의 정보.

제인은 약간의 호흡곤란만 앓고 있을 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선생님이 왔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알았지?”

최기석의 말에 제인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재개된 화재 탈출.

이동하는 도중 최기석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갔다.

제인에게 젖은 손수건을 주면서 유독가스를 대신 마시게 된 것이다. 가스로 정신이 몽롱해졌지만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깨웠다.

여기서 걸음을 멈추면 제인이 위험하다.

제니를 볼 면목도 없었다.

툭!

복도를 반쯤 통과했을 때 발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한 거구의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뒤늦게 탈출을 시도하던 중 가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남자를 살피자 상태가 응급으로 나타났다.

두고 가면 이 사람은 죽는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서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하필이면…….’

남자는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라서 업고 가기에도 안고 가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폭군의 강림이 있기에 힘적인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똑바로 서 있을 경우 유독가스를 대량으로 마시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남자를 모른 척하고 제인만 구조해서 탈출해야 하는 걸까.

둘 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쿨럭. 쿨럭.”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제인이 기침을 토해 냈다.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로 손수건의 물기가 어느새 말라 버렸다.

시간이 없다.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두 사람 다 죽는다.

“제인. 이 아저씨 배 위에 누워.”

최기석의 말에 제인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반응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제인을 남자의 배 위에 눕힌 최기석.

그는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 마신 후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그리고 남자의 팔을 잡아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폭군의 강림으로 증폭된 민첩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후아아아아아!”

입구를 빠져나온 최기석이 숨을 몰아쉬었고 주변에 있던 승객과 스태프들은 그를 보며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닥터 최.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

최기석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제인! 무사했구나?”

제인을 발견한 제니가 한걸음에 달려와 제인을 품에 끌어안았다.

“제…… 제인은 위독하지 않습니다…… 잘 쉬면…… 괜찮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흐흐흐흑.”

제니가 흐느끼며 눈물을 터뜨렸다.

그사이 방화복을 입은 구조대원들이 소방 호스와 소화기를 들고 화재현장으로 출동했다.

“미스터 최. 괜찮아요?”

레온이 최기석에게 다가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지금 최기석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본래 새하얗던 가운은 재와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물들었다.

앞머리는 젖은 미역처럼 늘어졌고 표정은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힘이 없었다.

“이야기 다 들었어요. 바보같이.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괘…… 괜찮아요. 다 할 만해서 한 거니까.”

최기석은 힘겨운 미소를 보이며 스스로에게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몸에 뿜어지는 초록빛 광채.

광채가 사라지자 유독가스로 인한 현기증과 구토 증상이 한결 가라앉았다.

제인은 구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레온. 구급함 챙겨 주실래요?”

“처치는 다른 스태프한테 맡겨요. 응급의학과 선생님도 있으니까.”

“흉부외과 환자는 흉부외과에서 봐야죠.”

“진짜. 못 말린다니까.”

최기석은 레온에게 구급함을 받아서 제인과 함께 구출한 남자 곁에 자리 잡았다.

남자는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한 호흡곤란, 팔에 2도 화상, 기흉을 앓고 있었다.

화재현장에서 탈출했을 뿐, 응급상황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레온. 환자 입 좀 벌려 주실래요?”

“알았어요.”

최기석은 레온의 도움을 받아 기도를 막고 있는 말린 혀를 풀어 주었다.

의식불명 환자의 기도폐쇄 원인 중 대다수는 바로 말린 혀 때문이다.

뚜두두두둑.

기도확보 후 환자에게 기관을 삽관하고 100퍼센트 산소를 공급했다. 이후 환자의 화상 부위에 아이스 팩을 댄 후, 구급함을 이용해 환자의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만들었다.

이어지는 흉강천자.

최기석은 레온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앉혔다. 그리고 천자할 부위를 소독하고 주사기를 손에 들었다.

푸우우우욱!

바늘이 거침없이 피부를 꿰뚫었다.

그가 주사기를 당기자 노란빛을 띤 삼출액이 주사기 몸통에 차올랐다.

‘아직 모자란 게 있어?’

처치를 끝낸 최기석은 환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음에도 환자의 상태는 여전히 불량이다.

대체 왜?

이상하다 싶어서 환자에게 재차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러자 전에는 없던 기관지염과 기관지 수축이 드러났다.

유독가스 흡입으로 생긴 질환이다.

“레온! 여기 두통환자 있는데도 여기 환자 좀 봐 주세요.”

“가 보세요. 레온. 이 환자는 제가 케어할 테니까.”

“미안해요.”

레온이 자리를 떠난 후 최기석은 흉부외과 간호사 실비아와 함께 환자를 흉부외과 처치실로 이동시켰다.

“닥터 최. 이 환자 어떻게 할까요?”

“우선 정맥 라인 잡은 후 생리식염수 연결해 주세요. 그다음 코데인하고 아트로핀 IV로 주고 마지막으로 기관지 내시경 준비요.”

“기관지 내시경은 왜요?”

실비아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유독가스 흡입이 심한 것 같아요. 기관지 세척을 하는 게 좋겠어요.”

“내시경도 쓸 줄 아세요?”

“당연하죠.”

최기석은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보냈다.

일단의 투약이 진행되면서 환자의 상태가 한 단계 내려갔다.

응급에서 불량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준비됐어요.”

“바로 시작할게요.”

최기석은 흡입제로 환자의 목 부위를 국소마취한 후 내시경을 환자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윽고 기관을 통과한 내시경이 영상을 출력했다.

“확실히 기관지가 많이 붓고 폐포가 수축됐네요.”

“생리식염수, 준비됐죠?”

“네.”

최기석은 모니터를 살피며 폐포세척술을 시행했다.

치이이이익.

내시경 기구에서 흘러나온 생리식염수가 변성이 일어난 부위가 말끔하게 씻겨 내렸다.

계속되는 꼼꼼한 세척술.

처치를 끝내고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피자 상태가 양호로 돌아왔다.

폐포세척술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다.

“고생했어요. 닥터 최. 내시경하고 폐포세척술까지 완벽했는데요?”

“실비아의 보조도 완벽했죠.”

“그런가요?”

서로를 향한 시선에 따뜻함이 깃들었다.

“다시 현장으로 가죠. 흉부외과 처치 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네. 좋아요.”

최기석이 앞장서고 그 뒤를 실비아가 따랐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사람이야.’

실비아는 최기석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메이죠 수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한 사건의 중심이었다. 놀라운 것은 최기석이 그 중심에서 항상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해 왔다는 점이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무모하게 화재현장으로 달려들었음에도 유유하게 사람들을 구해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에 이어진 환자 치료도 흠잡을 데 없었고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수련의는 없을 듯싶었다.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닥터 최는.’

실비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현장으로 이동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