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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317화 (316/407)

배움에는 끝이 없다 (6)

"세…… 섹스요?"

그의 말에 질문한 청중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운동 대신 섹스를 하라니…….

파격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섹스는 침대 위의 스포츠입니다. 섹스를 하면 힘들고 땀이 난다는 게 바로 그 증거죠. 더불어 섹스를 하면 옥시토닌과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긍정적인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신체 면역력도 향상되고요."

최기석은 사과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젤리의 효과로 자신의 입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젤리에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은 몰랐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정 운동할 여유가 안 된다면 섹스를 하세요. 섹스도 운동입니다."

"와하하하하."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

청중들이 박장대소하며 연회장의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지금까지 흉부외과 수련의 기석 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마무리 인사를 하며 단상을 내려왔다.

마치 줄행랑을 치듯이.

* * *

강연이 끝나고 저녁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최기석은 처치실에 틀어박혀서 혼자서 속을 앓고 있었다.

[여러분, 섹스를 하세요!]

청중들에게 자신 있게 외쳤던 한마디가 연신 머리에 맴돌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우개로 아까 했던 말을 말끔히 지워 버리고 싶었다.

가장 큰 걱정은 동료 스태프들이 그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저 소문이 널리 퍼지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똑. 똑. 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네. 들어오세요."

"미스터 최. 뭐해요?"

레온이 빙긋 웃으며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어요."

"혹시 아까 전에 했던 말 때문에 그래요? 신경 쓰지 말아요. 미스터 최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요. 섹스가 건강에 좋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그건 그렇고 전 이제 깨달았네요. 미스터 최가 심장이식을 받고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온 이유를."

"레온! 놀리지 마세요."

"미안. 미안해요."

사과를 하는 레온의 표정에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건 그렇고 부병원장님이 미스터 최를 찾아요. VIP와 합석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대요?"

"……네. 가 볼게요."

최기석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진료실을 벗어났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숨겨진 임무, '유람선의 저주'를 획득하셨습니다. 유람선에 벌어지는 세 가지 임무를 해결할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단 하나의 임무라도 완수하지 못하면 보상은 사라집니다.]

[임무 1: 망령의 저주(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3시간 이내에 해결)]

[임무 2: 고자의 저주(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4시간 이내에 해결)]

[임무 3: 리베라맨의 저주(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12시간 이내에 해결)]

알림을 확인한 최기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임무는 처음 보는 형태였다.

세 가지 임무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점.

임무별로 해결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

임무의 구체적인 목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했다.

'여기서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뜻이군.'

최기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3층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파커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캐주얼 양복을 입은 한 중년 남성과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왔나?"

"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강연 준비하느라 고생했는데 VVIP와 저녁이라도 같이 들자고. 튜터. 이쪽은 기석 최입니다. 흉부외과 수련 중인 레지던트예요. 미스터 최, 이쪽 분은 튜터 사의 CEO 튜터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튜터와 악수를 나눈 최기석이 자리에 앉았다.

그는 레스토랑 내부를 훑는 척하며 튜터를 관찰했다.

튜터.

그는 미국 최고의 의약품 스캔들 중 하나인 다라프레이트 사건의 주모자다.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레이트의 판권을 구입한 후 기존에 13달러 가량하던 치료제 가격을 736달러로 올렸다.

무려 56배에 가까운 폭리를 취한 것이다.

동기 찰스는 그런 튜터의 만행에 분노해 이를 갈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강연은 잘 들었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 주셨더군요. 특히 마지막 섹스 예찬론은 인상 깊었습니다."

"……잘 들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암. 미스터 최의 강연은 다시 생각해도 훌륭했죠. 앞으로 강연할 일이 있으면 미스터 최에게 한 번 더 부탁해야겠는걸?"

"MHC에는 저보다 훌륭한 분이 한 트럭이지 않습니까? 저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듣던 대로 겸손하군요."

튜터가 그윽한 눈동자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사실 이 자리를 만든 건 접니다. 제가 부병원장님께 미스터 최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를 보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까?

"네. 매스컴을 통해 드러난 미스터 최의 모습과 실제 모습을 비교해 보고 싶었습니다. 매스컴이라는 녀석은 종종 사실을 부풀리거든요."

"실물로 보니 어떻습니까? 그렇게 뚱뚱하지는 않죠?"

최기석의 농담에 튜터가 미소를 터뜨렸다.

"네. 굳이 따지자면 마른 편인 것 같군요. 침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겁니까?"

"흠흠…… 그 이야기는 그만 잊어 주시죠."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게 저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군요. 그럼 이제 주선자는 빠지겠습니다. 좋은 이야기들 나누세요."

파커가 자리에서 일어나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깨에 가해지는 압력.

그것이 알아서 처신 잘하라는 의미임을 최기석은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이어지는 튜터와의 대화.

최기석은 튜터에게 제약회사에 대한 궁금증을, 튜터는 의사 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의학과 의약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이야기는 술술 풀렸다.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최기석은 튜터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러자 한 가지 병명과 빨간색 글씨로 쓰인 주의사항이 확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 사람이?'

불연듯 한 가지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새롭게 받은 임무와 임무 완수 시간, 튜터가 앓고 있는 질환.

가정은 이 세 가지 사실을 한 번에 꿰뚫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놀랍니까?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니요. 그냥."

최기석은 스푼을 만지작거리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요새 말 못할 고민이 있습니까?"

"그래 보여요?"

튜터의 입가에 착잡한 미소가 감돌았다.

"네. 있어 보입니다. 그것도 보통 고민이 아닌 것 같군요. 튜터의 마음을 갉아먹는 아주 심각한 고민인 것 같습니다."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설마 제가 그걸 털어놓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죠?"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최기석이 역질문을 던졌다.

"유람선 위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검진 중입니다. 마음의 병을 발견하는 것도 검진의 일부라 볼 수 있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오늘 처음 본 사이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웃기는 군요."

"바꿔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이기에 오히려 속 털어놓는 게 편한 거 아닐까요? 지인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까요."

"궤변이군요."

"의사로서 충고를 한 것뿐입니다."

최기석은 추궁 스킬을 사용하고 튜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죠. 고민을 가진 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제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타입이 아닙니다.]

"잠깐만요. 고민을 가진 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물론이죠. 제 말이 틀립니까?]

튜터가 별 싱거운 사람 다 봤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최기석은 침묵을 지키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핵심 포인트를 잘못 찌른 모양이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고민을 타인과 나누는 게 어째서 불필요한 일이라는 거죠?"

[불필요한 일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그게 내 스타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튜터의 철통 방어에 대화가 재차 끊겼다.

띠링!

[상대방이 마음의 벽을 형성하였습니다.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추론이 필요합니다. 결정적인 추론에 3회 실패할 경우 상대방과 일주일간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비비안 때와 똑같은 알림.

최기석은 고민 끝에 충격요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튜터. 혹시 자살 여행이라는 이야기 들어봤나요?"

"……."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여행하다가 마지막에 목숨을 끊는 걸 말하죠. 혹시 이번 크루즈 검진이 튜터에게 자살 여행 아닙니까?"

최기석의 말에 튜터가 몸을 움찔거렸다.

작은 신호였지만 확실을 얻기엔 충분했다.

[자…… 자살 여행이라니……. 불쾌한 단어군요. 내가 부족한 게 뭐가 있어서 자살을 한단 말입니까?]

튜터의 목청이 올라갔다.

"그건 제가 아니라 튜터가 더 잘 알겠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군요. 나는 모릅니다. 내가 자살하고 싶어 하는 이유 따위는.]

"그럼 제가 직접 말씀드리죠."

최기석은 심호흡하고 말을 계속했다.

"튜터는 에이즈 치료제 가격을 수십 배로 올려서 엄청난 이득을 얻었어요. 그런데 반대로 잃은 것도 존재하죠."

[…….]

"그건 바로 평판입니다. 그 사건으로 미국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1위로 뽑히지 않았습니까? 타인의 미움을 견디는 건 정말 힘든 일이죠. 스스로 타인에게 미움을 샀든지, 아니든지 간에 말입니다."

최기석의 지적에 튜터가 딱딱딱 이를 부딪쳤다.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게 두렵죠? 그래서 목숨을 끊을 극단적인 생각을 했고요."

[하아…… 솔직히 난 모르겠어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난 단지 시장 경제를 따랐을 뿐인데.]

튜터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머리에 손을 얹었다.

띠링!

[상대가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지금부터 상대의 속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시장 경제요?"

"그래요. 난 단지 약값을 올렸을 뿐이에요. 돈이 있는 사람은 약을 사면 되고 돈이 없으면 약을 구입 못하는 거죠. 거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 약이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모릅니까?"

"세상에…… 내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살아야 하나요? 식사를 하면서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미안해하기라도 한다는 뜻입니까?"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왜곡하지 마세요."

최기석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세요. 당신이 폭리를 취했을 경우 에이즈 환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

"아마도 그 고통은 당신의 고통에 몇 십 배는 될 겁니다."

"미스터 최가 아무리 말해도 나는 모르겠군요. 타인의 고통 같은 건.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튜터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사실 제게 해결책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아주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죠. 약값을 내리세요."

"결국 남의 고통에 공감하라는 겁니까?"

"아니요. 튜터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약값을 올리고 미국에서 제일 혐오스런 인간이 되었잖아요. 그 타이틀을 조금이나마 덜어 내려면 약값을 내려야죠."

"나를 위하는 길이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은 왕창 벌고 남의 욕은 먹기 싫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에요. 둘 다 하려니까 마음에 병이 생기는 겁니다."

최기석이 따끔한 지적을 이어 갔다.

"이 기회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하세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흐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군요.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최기석은 멀어지는 튜터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이 아픈 것처럼 다른 사람도 아플 수 있다는 걸 왜 알지 못할까.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 가는 세상이 서글펐다.

'일단 한 건 해결이고.'

그는 상태창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망자의 저주 임무가 완수되었다.

예상대로 튜터의 자살을 막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다.

임무 완수 메시지를 통해 튜터가 배에서 자살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예측 가능했다.

"꺄아아아악!"

갑자기 터진 여성의 비명.

최기석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유람선의 저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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