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는 끝이 없다 (2)
"오셨군요."
일반외과 집도의 에드워드가 다가와 말을 이었다.
"객혈의 원인을 찾기 위해 급하게 검사를 보냈습니다. 흉부 엑스레이와 조영술 검사인데…… 그 정도면 문제점이 뭔지 알 수 있겠죠?"
"그만하면 됐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사실 야사다 치프를 호출할 생각은 없는데 환자가 보통 환자가 아니다 보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환자는 다 똑같은 환자입니다. VIP 환자라고 해서 목숨이 더 소중한 건 아니란 말입니다."
"……."
"그리고 흉부외과의 스태프들은 우수합니다. 굳이 수술 중인 제가 아니어도 이 환자를 볼 수 있는 의사들은 많아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워드가 민망하다는 듯 야사다의 시선을 피했다.
'역시.'
최기석은 야사다의 강단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이다 한 캔을 한 번에 비운 것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야사다가 대신 해 주었다.
아무리 돌이켜 봐도 이번 건은 일반외과에서 과한 호출을 한 게 맞았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리고 환자와 스태프가 로젯으로 들어왔다.
"검사는 끝났어?"
"네. 영상의학과에 응급판독을 부탁했으니 바로 결과가 떠 있을 겁니다."
"같이 보시죠."
에드워드의 말에 스태프들이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이윽고 검사 결과가 모니터에 떠올랐고 스태프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에드워드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야사다 치프. 이게 어떤 게 된 거죠? 분명 수술 중에 환자가 심한 객혈을 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올 리 없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야사다가 미간을 좁히며 결과를 살폈고 최기석 역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놀랍게도 영상의학과의 판독에 태클 걸 부분이 없었다.
객혈만 했을 뿐 환자는 정상인 것이다.
최기석은 이상하다 싶어서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러자 진단명이 떡하니 떠올라 있었다.
이럴 경우 두 가지 경우를 의심해볼 수 있었다.
하나는 검사 자체가 아예 잘못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상의학과의 판독이 잘못된 것이다.
써전이 수술 중에 종종 실수하는 것처럼 다른 파트 스태프도 실수를 할 수 있었다.
최기석은 시선을 거두고 야사다를 바라보았다.
과연 야사다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환자, 수술하죠."
"수술이요? 영상의학과에서는 별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굳이 수술까지 필요할까요?"
"네. 필요합니다."
"이유가 대체……."
"이 환자 식도천공을 앓고 있습니다."
야사다의 말에 로젯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식도천공.
말 그래도 식도에 구멍이 생기는 질환이다.
식도는 구조상 각종 균과 소화요소의 진입이 쉬우며 이로 인해 식도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종격동염, 패혈증 등에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었다.
후유증의 정도는 시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식도천공이 발생하고 이틀만 지나도 환자의 사망률은 60퍼센트까지 올라간다.
"식도 내시경을 받은 적도 없고 특별한 외적인 충격도 없으니 자연성 천공이 생겼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영상의학과에서도 잡아내지 못한 걸……."
"여기를 잘 보세요."
야사다의 검지가 모니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쪽에 음영이 있죠?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수준이지만 환자가 객혈했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야사다 치프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보조할 인턴 한 명만 남겨두고 나머지 스태프들은 다 나가 주시죠."
"알겠습니다. 수술 동의서는 저희 쪽에서 받아 놓겠습니다."
야사다의 깔끔한 교통정리로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소독간호사가 수술 도구를 준비하는 사이, 최기석과 야사다가 환자 옆에 자리를 잡았다.
"헤드 치프. 정말 대단하세요."
"뭐가?"
"영상의학과에서 흘려 넘긴 식도천공을 잡아내실 줄 몰랐습니다."
최기석은 아직도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이야 히포크라테스의 눈이 있으니 환자를 꿰뚫어 볼 수 있지만 야사다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특별한 능력이 없음에도 진단명을 정확하게 알아챘다.
만약 야사다가 아닌 다른 흉부외과 스태프가 이 자리에 왔다면 어땠을까.
판독 결과를 믿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까.
야사다가 폐식도 파트에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사실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의사는 항상 날카로운 감을 유지해야 해. 정신과 마음이 둔해지면 오늘 같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지. 자네도 명심해 둬."
"가슴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대답은 잘하는 군."
야사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최기석의 씩씩한 대답 속에 수술 준비가 끝났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수술복이 넘쳐나는 걸? 폐암 수술에 식도천공 수술까지 하다니."
"제가 원래 수술복이 넘쳐납니다. 크루즈 파견 전에 예방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 크루즈 안에서도 사건이 터질 것 같은데?"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수술 준비가 끝났다.
이에 화기애애하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두 눈에서는 광채가 쏟아지며 화기애애했던 대화가 단칼에 끊겼다.
"지금부터 자연성 식도천공에 대한 내시경 금속클립술을 실시한다."
야사다의 말에 최기석은 환자의 목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이에 야사다가 환자의 입속으로 카메라가 달린 가이드 포트를 밀어 넣었다.
쑤우우우욱.
식도에 자리를 잡은 가이드 포트가 환자의 식도 내부를 훤히 비추었다.
야사다의 판단은 정확했다.
경부 식도에 아주 작은 크기의 천공이 존재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를 내버려 두면 각종 감염증으로 환자는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리라.
"17번 클립."
야사다가 간호사에게 받은 클립을 내시경 도구에 연결한 후 이를 다시 환자의 식도에 투입했다.
그동안 최기석은 수술 시야 확보에 나섰다.
야사다는 수술만큼이나 클립 결찰도 능숙하게 진행했다. 본래 클립 결찰이 내과적인 처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딸칵!
클립이 천공 부위를 잡아 주면서 미세하게 흐르던 소화액 누출이 멈췄다.
"미스터 최. 시야를 조금 더 내려 봐. 종격동과 늑막까지 살핀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이 가이드 포터를 내리자 염증과 농이 흐르는 종격동이 발견되었다.
역시 야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배농술은 직접해 보겠나?"
"네.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해 보고 싶습니다."
최기석은 내시경 도구를 추가로 투입해서 염증이 있는 종격동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도구 끝에 달린 메스로 염증 부위를 가볍게 쨌다.
종격동 표면이 찢어지면서 누런 고름이 흘렀다.
적당한 힘을 주며 내시경 도구로 고름을 짜내는 최기석.
처음 해 보는 처치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고름은 이만하면 다 뺀 것 같군."
"헤드 치프, 처치를 한 가지 더 하고 싶습니다."
"……설마 그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야사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최기석은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치이이이익.
그는 생리식염수의 압력과 세기를 조절한 후 농양이 생긴 종격동에 쏘았다. 피부 압박을 충분히 해도 농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최기석이 모니터 영상을 살피며 말했고 야사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내시경 도구를 제거하며 수술이 완료되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피자 경과가 양호로 돌아왔다.
응급 식도천공 환자 처치는 대성공이다.
띠링!
[숨은 임무, '식도질환 보조에 성공하라'를 마치셨습니다. 보상으로 신규 수술 마스터리가 생성되었습니다.]
[식도 수술 기본 마스터리(1/1): 이 마스터리를 획득한 경우 외과 및 내과 식도 처치 숙련도가 30퍼센트 증가합니다.]
알림을 확인한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로젯을 나왔다.
* * *
흉부외과 헤드 치프 집무실.
응급수술을 마친 야사다와 최기석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폐암 환자 소식은 들었나?"
"네. 마릴린이 마무리를 잘 지었다고 합니다. 차트를 확인해 봤더니 바이탈도 정상이었습니다."
"다행이군. 일반외과 환자를 봐주다가 우리 환자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그것도 웃겼을 테니까."
야사다가 웃으며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고 최기석은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이례적으로 야사다와 두 번 연속으로 수술을 뛰었다.
그동안 야사다는 명성에 걸맞은 솜씨를 뽐냈다.
폐식도 파트의 일인자라는 수식어는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환자를 꿰뚫어 보는 눈과 깔끔하고 정확한 처치는 지금 생각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덕분에 그를 따라가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되새겼다.
"헤드 치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헤드 치프가 어떤 분에게 트레이닝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혼자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오신 겁니까?"
"미스터 최를 알고 지낸 지 꽤 지났는데…… 이건 처음 듣는 질문이군."
야사다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쓸어내렸다.
"세상에 그 누구도 혼자서 설 수는 없는 법. 나 역시 훌륭한 분의 가르침을 받았지."
"……."
"혹시 닥터 올리버에 대해서 알고 있나?"
"아니요. 죄송하지만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하군. 미스터 최가 의대에 들어가기도 전에 은퇴한 분이니까."
"올리버라는 분은 어떤 분입니까?"
"흐음…… 자네 목표가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였지?"
"네. 의대에 들어갈 때부터 변하지 않는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올리버는 아마 자네의 꿈과 가장 가까운 써전일 거야. 그분은 심장외과, 폐식도외과, 소아심장외과 파트를 전부 섭렵했지. 흉부외과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운 분이랄까."
"아…… 그런 분이 이미 계셨습니까? 저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올리버는 자신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었어. 그래서 매스컴도 상대적으로 덜 탔지."
야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분께서는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가장 중요시했어. 올리버는 흉부외과 과장이었을 때도 인턴처럼 바쁘게 움직였는데…… 지금에서야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알았지."
"……."
"더 대단한 건 앞서 말한 것처럼 흉부외과의 모든 파트를 마스터했다는 점이야.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랄 판에 트리플 보드를 완성하다니. 참 나."
"헤드 치프께서도 마음만 먹었다면 가능하지 않으셨을까요?"
"아니. 난 안 돼."
야사다의 약한 소리에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하의 야사다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단 말인가.
"어설프게라면 몰라도 올리버처럼 완벽하게 트리플 보드를 익히는 건 불가능해. 그건 초인적인 재능과 초인적인 노력을 타고나야 하거든."
"……."
"자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닥터 송이 더블 보드라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겠지?"
야사다의 말대로다.
스승 송명진은 심장외과와 폐식도 외과의 실력자지만 소아심장 파트에는 손을 대지 못했다.
트리플 보드 획득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올리버 이후로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가 끊긴 이유를 알겠나?"
"……네. 저는 그저 노력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목표를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이 시대에 트리플 보드가 탄생한다면 그건 미스터 최, 자네일 테니까."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야.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더 높이 날아서 더 먼 곳을 볼 수 있는 법이지."
대화가 잠시 끊기면서 집무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알림이 뇌리를 스쳤다.
띠링!
[장기 임무, '트리플 보드를 향해서'가 형성되었습니다. 심장외과, 폐식도외과, 소아 폐식도 및 심장외과 펠로우 과정을 전부 수료하십시오. 임무 완수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연계 임무, 올리버를 찾아서가 형성되었습니다. 올리버와 만나서 트리플 보드에 대한 단서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