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12화 (311/407)

배움에는 끝이 없다 (1)

수술실.

폐암 수술을 앞둔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스태프는 다음과 같았다.

집도의 야사다, 제1보조 최기석, 제2보조 마릴린, 제3보조 칸.

"마지막 브리핑 해 봐."

"네."

야사다의 말에 마릴린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환자의 이름은 케인. 올해 60세의 남자 환자입니다. 기침과 객혈 현상으로 외래 방문하였고 흉부 CT 결과 폐 우하엽에 종괴가 발견되었습니다."

"……."

"입원 후 실시한 정밀 정사에서 TNM 분류 3기 A를 진단받았습니다. 오늘 수술에서 개흉술을 이용해 암세포가 위치한 폐엽 및 림프절, 종격동을 제거하고 흉막유착술을 펼칠 예정입니다."

마릴린의 브리핑에 야사다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있는 사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최기석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말해 봐."

"환자 나이를 생각하면 흉강경 수술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개흉술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패션에 트렌드가 있듯 수술에도 트렌드가 있다.

폐암 수술의 경우 최근 흉강경이나 로봇 수술로 진행하는 추세다. 이 두 수술은 개흉술에 비해 환자의 통증감소 및 회복에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환자 가족이 수술비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그 이유면 충분한가?"

"……네."

야사다의 즉답에 최기석이 짧게 대답했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치료 효과만큼 중요한 것이 환자 주머니 사정이라는 사실을.

"슬슬 들어가자고."

야사다가 포비돈이 뭍은 솔로 손과 팔을 문지르자 다른 스태프들도 일제히 스크럽에 나섰다.

벅. 벅. 벅. 벅.

최기석은 스크럽하며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사실 폐암 수술 스크럽은 오늘 처음 하는 건 아니었다. 의진대 시절 조지환의 보조를 서던 것을 필두로 몇 번의 경험이 더 있었다.

당연히 보조를 서는 마음가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야사다는 경험차 수술 보조를 시켰겠지만 최기석은 이를 넘어서 완벽한 보조를 할 생각이었다.

띠링!

[특별 임무, '기대 그 이상을 넘어서'를 획득하셨습니다. 성공할 경우 일정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알림창을 확인한 최기석의 각오가 더욱 뜨거워졌다.

지이이이잉.

로젯문이 열리고 일제히 입장하는 스태프들.

타임아웃,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수술 도구 준비, 전신마취 등의 준비가 일사불란하게 이어졌다.

"긴장되진 않나?"

"네."

최기석의 빠른 대답에 야사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군. 그럼 혹시 오늘 자네를 수술보조로 택한 이유는 짐작하고 있나?"

"어려운 수술을 경험해 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고령인 편인 데다가 암 조직의 크기 전이 범위도 상당하니까요."

"정답이야. 환자의 암 조직은 우측 폐 중엽과 하엽에 걸쳐 있어. 특이한 케이스지. 수술 중반부쯤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말을 마친 야사다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걸렸다.

지금의 최기석은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에 보고에 스태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MHC 흉부외과 헤드 치프 야사다.

환자에게는 존경받는 폐식도외과의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한없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펠로우 2년 차조차 그와 수술을 하면 잔소리와 욕을 듣기 일쑤였다.

"지금부터 TNM 분류 3기 A 환자에 대한 폐엽 절제술을 시작한다."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야사다의 목소리.

제2보조 마릴린은 기다렸다는 듯 환자의 등과 갈비뼈 부근을 소독했다.

심장외과가 전흉골 절개술을 선호한다면 폐식도 외과는 후측방 개흉술을 선호한다.

그래서 환자는 현재 옆을 보고 누웠다.

"메스."

야사다가 건네받은 메스로 환자를 피부를 절개했다.

이에 환자의 등 상단 부위부터 갈비뼈 부위까지 옆으로 누운 U자 형태의 커브가 생겼다.

"리트랙터(견인기)."

"네."

제3보조 칸과 인턴이 절개 부위에 견인기를 착용하고 옆으로 벌렸다. 피부가 차차 옆으로 벌어지면서 수술 부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최기석은 완전히 드러난 폐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흡연을 오랫동안 한 환자라서 그럴까.

크고 새까만 반점 같은 것들이 폐를 휘감았으며 폐 중엽과 우엽에 걸쳐서 울퉁불퉁한 암 조직이 위치했다.

"폐암의 원인은 대부분 흡연이야. 담배의 유독물질이 폐에 고스란히 남거든. 뭐, 담배마저도 못 피면 이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 이겨 낼까 싶지만……."

"……."

"수술실에서 이런 폐를 보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는 싹 달아나기 마련이지. 어떤가?"

"헤드 치프 말씀이 맞습니다. 담배는 가능하면 처음부터 배우지 않는 게 좋다고 들었는데, 입에 댈 기회가 없었던 게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운, 앞으로도 지켜가는 게 좋아."

야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육안으로 암을 확인한다. 어떻게 보면 수술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니 다들 정신 바짝 차리도록."

"네!"

호쾌한 대답과 함께 스태프 전원이 암 조직을 살폈다.

수술 전 검사 결과와 수술 중 수술 부위 확인.

때때로 이 두 가지 결과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있다.

검사 결과만 맹신해서는 수술 후, 환자에게 불의의 후유증이 찾아올 수 있었다.

'어디 볼까?'

최기석은 용의 눈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번갈아 사용하여 폐를 살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서 손으로 폐를 만져 보기도 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폐의 물컹한 감촉.

그 속에서 단단하게 잡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환자의 폐를 괴롭히고 있는 암 조직이다.

이윽고 암 조직 주변을 만져 보던 최기석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암 조직을 따라가던 손이 문득 좌심실까지 닿았던 것이다.

"헤드 치프. 혹시 이 환자는……."

"드디어 눈치챘군."

야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 조직은 폐 중엽와 하엽뿐만 아니라 인접한 좌심방에도 붙어 있다."

"좌심방에 암 조직이라니……."

최기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환자의 심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묻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 봐. 보조할 때야 집도의를 따라가면 되지만 집도의가 되면 스태프들을 이끌어야 해. 선장이 배를 제대로 몰지 못하면 물론 그 배는 침몰하겠지. 너희들도 다 마찬가지야."

야사다가 스태프들을 훑으며 말했다.

무거운 침묵이 찾아온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암 조직이 좌심방에 전이된 특이 케이스지만 수술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지?"

"근치적 절제술, 다시 말해서 종양을 둘러싼 림프절과 병소를 전부 제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암 조직이 전이된 좌심질도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과격한 방법 아닌가? 항암치료를 비롯해서 다양한 치료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말이야."

"이 환자는 수술이 가능해서 수술대에 누워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항암 치료가 아닌 절제술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절제술이 가능하다면 당연히 근치적 절제술을 해야죠."

"눈치 한번 빠르군. 곰 같은 스승하고는 차원이 다른 걸?"

야사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미스터 최의 말이 정답이다. 수술이 가능한 환자에게는 근치적 절제술을 하는 게 원칙이다. 설령 전이범위가 우리들의 예상 범위 밖이라도 해도 말이야."

"……."

"다들 오늘 경험을 뼛속 깊이 새겨두도록."

"알겠습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스태프들의 대답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교육 시간을 너무 오래 가졌군. 자 그럼 본격적인 폐엽 절제술을 시작해 볼까?"

메스를 건네받은 야사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에 최기석은 긴장감을 일깨우며 양손에 포셉을 쥐었다. 오늘 목표는 특이한 폐암 케이스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보조를 하는 것이다.

야사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 주리라.

딸칵! 딸칵!

최기석은 폐동맥과 폐정맥의 길이를 가늠한 후 혈관겸자로 혈관을 묶었다.

혈관을 절단할 경우 생기는 출혈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의 처치에 야사다가 눈썹을 치켜뜨더니 폐동맥과 폐정맥을 차례대로 잘랐다.

이어서 암 조직과 인접한 기관지마저 잘라 냈다.

폐엽 절제술을 위한 사전작업은 이것으로 종료.

최기석은 기다렸다는 듯 전기 소작기를 손에 들고 좌심실과 폐 중엽과 하엽 부분을 얕고 광범위하게 지졌다.

본인의 감각으로 절제부위를 표시한 것이다.

'이 녀석 봐라?'

야샤다는 그의 행동을 보며 혀를 찼다.

그가 예상한 절제범위와 최기석이 표시한 절제범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만큼 최기석의 감이 좋다는 뜻이다.

스으으으윽.

야사다는 표시선을 따라 메스를 움직였다. 메스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으며 손떨림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감한 절제는 좌심방을 절제할 때 더욱 빛이 났다.

인공심폐기를 사용한 상태가 아니라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암 조직이 붙은 좌심방 일부를 떼어 냈다.

텅!

곡반으로 떨어지는 폐엽.

암 조직과 해로운 물질에 찌든 폐는 마치 흉측한 괴물 같았다.

"이건 바이옵시(조직검사). 나머지 림프절 절제하고 좌심방 절제 부위를 마무리한다."

"네!"

야사다의 지휘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최기석은 수술이 시작한 이래로 계속해서 날 선 보조를 보였다.

혈관을 잡아 주는 일, 처치 중 발생하는 돌발적인 출혈 부위를 컨트롤하는 일, 기타 석션과 생리식염수 세척 등등.

야사다의 지시가 없음에도 의중을 먼저 읽고 행동하는 놀라운 솜씨를 보였다. 그로 인해 보통 서너 시간가량 걸리는 수술이 1시간 반 만에 결승점을 향하고 있었다.

띠리리리링!

갑자기 울리는 전화 소리에 스태프의 시선이 대부분 그쪽으로 향했다.

야사다와 최기석은 제외하고 말이다.

"네. 여보세요."

[…….]

"아. 그게 지금 수술 중이라서…… 알겠습니다. 일단 말씀드려 볼게요."

통화를 끝낸 인턴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쭈뼛거리는 몸짓을 보면 뭔가 사건이 터진 듯 보였다.

"무슨 일이에요?"

"그게…… 일반외과에서 응급 콜이 왔는데 환자가 충수 절제술 도중에 갑자기 객혈을 했다고 합니다. 객혈한 한 후에 바이탈은 정상수치보다 한참 밑이고요. 급히 와 줄 수 없냐고 해서……."

"수술 중이니까 병동에 연락해서 다른 써전 붙이라고 해."

야사다가 대화에 껴들었다.

"그게 VIP 환자라서 야사다 치프가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사정을 하는 터라……."

"골치 아프게 됐군."

야사다가 얼굴을 구기며 수술 도구를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지. 핵심적인 처치는 끝났으니까 수술 부위만 닫으면 된다. 이 정도는 너도 할 수 있겠지?"

"네!"

그의 시선을 받은 마릴린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최는 나와 함께 일반외과로 간다."

"알겠습니다."

야사다가 앞장서서 로젯을 나왔고 그 뒤를 최기석이 따랐다.

충수 절제술 도중에 발생한 갑작스러운 객혈.

대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런 의문이 최기석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두 사람은 재차 스크럽을 마친 후 일반외과 스태프가 수술 중인 J로젯을 찾았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야사다의 시선이 텅 빈 수술대에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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