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6)
스으으윽.
가상의 스태프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현실과 트레이닝 룸에서 수없이 지켜본 장면이지만 오늘은 그 모습이 남달랐다.
수술에 대한 중압감 때문일까.
드르르르륵.
캐뉼러를 삽입하고 인공심폐기를 돌렸다.
스승이 개발한 신수술의 제2막이 오르는 순간.
최기석은 메스를 건네받아 환자의 목부터 명치까지 내리그었다. 이에 가상 스태프가 견인기로 가슴을 벌리고 폐를 살짝 옆으로 들어내며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신수술의 첫 번째 단계는 CABG(관상동맥 우회술)다.
샬롯이 변용한 수술법도 그 범주는 벗어나지 않았다.
최기석은 익숙하게 내흉동맥을 박리해서 협착이 일어난 관상동맥 하단부에 연결해주었다.
꾹. 꾹. 꾹.
용액을 주입하고 포셉으로 혈관을 눌렀지만 누수는 없었다.
완벽한 문합.
그동안 수없이 CABG를 해 왔기에 한 손으로 처치할 정도의 경지까지 올랐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그의 시선이 환자의 심장에 고정되었다.
환자의 좌실심과 우심실은 일반인에 비해 두껍고 딱딱했으며 크기도 1.5배 이상 컸다.
확장성 심근병증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후화된 심장은 혈액을 제대로 뿜어내지 못한다.
최기석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샬롯의 수술법을 떠올렸다.
그녀가 개발한 수술법은 일명 토탈케어.
절개술과 이식술과 봉합술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승의 수술이 해당 부위를 전부 절개하고 이식술과 봉합술을 펼치는데 반해서, 샬롯의 수술은 한 섹션별로 모든 과정이 이뤄진다.
스승의 수술법이 정공법이라면 샬롯의 수술에는 변칙적인 테크닉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었다.
"……."
"……."
수술이 지연되자 가상 스태프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잿빛 눈동자들은 오매불망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비(전기 소작기)."
최기석은 수술 부위를 세 군대로 나눠서 살짝 지졌다. 그러자 조직이 타면서 하얀 줄이 생겼다.
"오늘 수술은 예전과 달리 부분적으로 진행한다. 좌심실을 절제 및 봉합, 이식하고 그 후로 심장 중심, 우심실에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의 말에 가상 스태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스."
최기석은 심근병증이 심한 좌심실부터 절개에 나섰다.
그의 눈은 좌심실에 고정되었으며 손은 조심스럽게 심근을 잘라 나갔다.
절개 부위가 깔끔하지 못하면 봉합 난이도가 올라갈 뿐 아니라 경과에도 좋지 않다.
이번 수술은 하나부터 열까지 만만한 곳이 없었다.
텅!
제 기능을 못하는 심장근육이 곡반으로 떨어졌다.
최기석은 가상 스태프가 준비한 이식혈관과 심근을 받아서 해당 부위 후속처치에 나섰다.
미세한 혈관 문합과 심근조직 이식.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았지만 이를 악물고 해냈다.
자신이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심근병증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 않은가.
삐이이익! 삐이이익!
심장 중심 부근을 절제하던 중 불길한 전자음이 울렸다.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하자 바이탈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피자 진단명에 승모판막 혈전증, 증상에 복수가 떠올랐다.
좌심실의 혈액이 정체되면서 생긴 피딱지에 승모판이 막혔고 우심실 기능 저하로 복수가 찬 모양이다.
"너는 복수천자로 복수 빼 줘. 너는 람브리코(혈전용해제)랑 이노트로픽(승압제) IV로 투입하고 바이탈 케어."
최기석은 재빨리 지시를 내리고 긁개로 승모판막에 붙어 있는 혈전들을 긁어냈다. 이후 석션기를 이용해 떨어져 나온 혈전들을 흡입했다.
일련의 처치가 끝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온 바이탈.
"휴우……."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신수술을 연습한 지 어언 한 달이 지났지만 이런 돌발 상황은 처음이었다.
혹시 샬롯의 신수술의 여파인 걸까.
커져가는 의문을 밀어내고 수술을 계속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심장 중심 부분과 우심실에 대한 처치가 끝났다.
샬롯의 토탈케어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시간은 대략 10시간이고 수술 후 환자의 경과가 보통으로 올라갔다.
더불어 수술 종료 후 받은 종합 랭크는 C+.
이만하면 실제 수술 성공률은 20퍼센트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스승의 신수술 성공률이 5퍼센트라는 걸 감안하면 눈부시게 발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환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샬롯의 토탈케어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수술 범위다.
토탈케어는 스승이 원하는 수술 범위를 대폭 축소했다.
스승이 원하는 수준의 딱 절반까지라고 해야 할까.
[미안해요. 미스터 최. 내 한계는 여기까지예요. 미스터 최가 고집하는 수술 범위까지는 도저히 맞출 수 없네요.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수술 범위만큼은 더 줄이는 게 어떨까요. 저는 그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네요.]
문득 샬롯이 보낸 메일의 한 문구가 떠올랐다.
샬롯의 수술법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기존의 수술범위를 고집할 것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자신의 결정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었다.
[트레이닝이 완료되었습니다. 다시 수련하시겠습니까? 또는 트레이닝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최기석은 계속 울리는 알림을 무시하고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포셉을 든 그의 손이 수술 부위 상단을 가로로 그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 * *
몇 시간 후.
최기석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샬롯의 토탈케어 수련을 마친 후 내내 신수술을 고민했다.
샬롯의 충고는 고맙지만 수술 범위를 축소할 수는 없었다.
스승의 신수술은 심장이식의 대체재로써 의미를 가진다. 즉 범위가 줄어든 만큼 의미가 퇴색된다.
물론 샬롯의 수술법으로도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기 힘들었다.
이것은 써전의 욕심이자 한 명의 환자라 더 구제하고 싶은 열정이었다.
최기석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상태창을 띄웠다.
[해결하지 못한 특별 임무가 있습니다.]
[특별 임무: 말하지 못한 것들. 비비안이 가진 고민을 해결할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단 임무는 현 시점으로 하루 안에 해결해야 합니다.]
[임무 타이머, 0:23:00 경과 / 남은 시간 1시간]
임무창을 응시하는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비비안과 관련된 사건은 전부 끝난 듯 보였다.
비비안은 용감하게 속내를 털어놓았고 신경정신과 진료예약이 잡혀 있었다. 그녀에게 몹쓸 짓을 한 인간에게는 신고가 들어갔고 말이다.
아직까지 완수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시간밖에 안 남았네. 대체 왜……."
혼자 중얼거리던 최기석이 말끝을 흐렸다.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 * *
그날 저녁.
페인은 PC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씨발 년. 내 말이 우습게 들리나 보지? 씨발. 씨발."
그의 입에서 연신 욕지거리가 터졌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는데 집 근처에 있는 경찰을 발견했다.
그 순간 비비안이 본인을 경찰에 신고했음을 직감했다.
"조용히 둘이서 해결하면 됐잖아. 귀찮은 년이 진짜."
쾅!
키보드를 내려치자 몇몇 사람들이 그를 응시했지만 페인은 오히려 그들에게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커다란 덩치와 험상궂은 외모.
거기에 더해진 문신과 피어싱이 뿜어내는 위압감에 사람들이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했다.
페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끓는 속을 달래 보려 했다.
사실 그는 아직 비비안을 사랑했다.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약간 난폭하게 굴었던 건 사실이다. 데이트를 할 때 아주 가끔 폭력적으로 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다 비비안을 사랑해서였다.
비비안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재결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아. 씨발."
다시 한 번 터지는 욕지거리.
아이스커피를 한 번에 들이켜도 끓는 속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비비안을 다시 보는 것, 그녀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비비안은 그런 그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강제적으로 육체관계를 맺은 후에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으며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이제는 경찰에 신고하는 강수를 두었다.
"하아…… 이걸 어떻게 조지지?"
페인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비비안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행방을 물었다.
비비안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어느 병원에 입원했는지는 몰랐기에.
총 세 명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다들 모르쇠로 일관했다.
페인은 지푸라기라도 짚는 심정으로 칼리페에게 전화를 걸었다.
칼리페는 비비안의 절친 중 한 명으로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더블데이트를 즐긴 적도 있었다.
"칼리페. 나야, 페인."
"네가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전화를 해?"
"너도…… 다 아는구나."
"내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니?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칼리페의 언성이 올라갔다.
"넌 진짜 구제불능의 핵폐기물이야. 너 같은 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해. 개놈의 자식!"
"야. 적당히 해라. 입 꿰매 버리기 전에."
"무서워서 오줌 지리겠네. 하긴 네가 할 줄 아는 게 협박이랑 주먹 쓰는 거밖에 더 있겠어?"
"씨발 년이 진짜!"
"욕하지 마. 등신아. 넌 이제 끝났어. 그 잘난 입은 감방 안에서 놀리라고."
칼리페가 전화를 뚝 끊자 페인은 화를 이기지 못해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산산조각으로 깨진 액정.
더불어 그를 지탱하고 있던 한 줌의 이성마저 증발해 버렸다.
페인은 시뻘건 눈으로 비비안의 SNS 계정을 살폈다. 그러던 중 병실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도끼눈으로 사진을 살피자 침상 커버에 적힌 MHC 로고가 보였다.
드디어 알아냈다.
비비안이 입원한 병원을!
페인은 PC방을 나와서 대형마트로 이동했다. 그리고 구입한 식칼을 신문지에 싸서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비비안에게 지금까지 느낀 실망감과 수모, 치욕을 몇 배로 돌려주리라.
MHC에 도착한 폐인은 산부인과를 찾았다.
몇 주 전 그녀가 골반이 아프다고 했던 이야기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검색해 본 결과 여성이 골반염을 앓을 경우 산부인과에 입원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터벅. 터벅.
폐인은 산부인과 병실 복도를 걸으며 충혈된 눈으로 병실 명패를 살폈다.
그러던 중 복도 중앙에 위치한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여기 있었구나.'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 식칼을 만지작거리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은 3인실이었다.
창가 쪽 자리에는 이불을 뒤집어쓴 환자가 있었으며 남은 두 자리는 비어 있었다.
폐인은 이불을 뒤집어쓴 환자가 비비안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챘다. 환자 옆에 놓인 테이블에 자신이 선물한 팔찌가 놓여 있었기에.
"까꿍! 비비안. 누가 왔는지 봐."
"……."
"네가 버리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내가 왔어."
"……."
"자는 거야? 자는 척하는 거야?"
폐인의 계속된 질문에도 비비안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래. 차라리 자는 편이 낫겠다. 조용히 죽어 주렴."
폐인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간 후 식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불을 들춰 올림과 동시에 식칼을 내리찍었다.
푸우우욱.
허공을 가르는 식칼.
"뭐…… 뭐야?"
폐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침상을 내려다보았다.
이불 속에는 아무도 없었으며 베게 위에 있었던 것은 가발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드르르르륵.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한 동양인 의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어서 와. 페인.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
동양인 의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다…… 당신 누군데?"
"네 형량을 뻥튀기시켜 줄 의사 선생님이지. 지금 네 행동, 살인미수 아닌가?"
"씨발. 닥쳐! 비비안 어딨어! 비비안 내놔."
"거 어린 친구가 입이 험하네."
"개새끼가 너도 죽고 싶어?"
폐인이 위협적으로 칼을 휘둘렀지만 동양인 의사는 지루하다는 듯 하품했다.
그것이 사인이었는지 무장경찰들이 갑자기 병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상황을 직감한 페인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식칼을 쥔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분은 어디 갔나?"
동양인 의사가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가야. 한국에는 이런 말이 있어. 좆대로 살면 좆된다고. 넌 이제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