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4)
"선생님. 저 무서워요."
실비가 겁먹은 표정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혹시라도 수술이 잘못돼서 저나 아이에게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실비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수술을 이겨 내야 배 속의 아이가 앞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최기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했다.
오늘 진행하는 전신마취는 태아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 수술 절차와 필요성에 대해서 말이다.
동의서를 받을 때 충분히 설명했지만 짜증 내지 않고 차분하게 실비를 설득했다.
수술대에 누우면 천하의 영웅이라도 겁먹기 마련이다.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안정이 됐어요."
"실비가 그만큼 마음이 큰 사람이라는 증거죠. 실비와 아이, 둘 다 건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물론입니다."
최기석의 눈짓에 카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를 안정시켰으니 처치를 진행하자는 뜻이다.
이윽고 환자 감시 장치 연결, 환자 체위 선정, 수술 도구 준비 등이 차례대로 이어졌다.
"긴장할 필요 없어."
카타리나가 최기석의 표정을 읽고 운을 뗐다.
"처치가 손을 많이 타지만 시간은 30분 정도면 끝나."
"생각보다 빠르네요."
"동맥 라인으로 카테터를 삽입하는 게 아니니까. 미스터 최는 초음파 시야 확인해 주고 미구엘은 처치 도구 제때 챙겨서 건네줘."
"네!"
"알겠습니다."
시원한 대답과 함께 태아 풍선확장술의 첫걸음이 시작됐다.
최기석은 실비의 부풀어 오른 배를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이에 카타리나가 카테터를 들고 몸을 숙였다.
일반적인 풍선확장술은 카테터가 대퇴동맥을 통해 심혈관으로 이동하지만 오늘은 과정이 달랐다.
카테터는 산모의 배를 통과하여 곧바로 태아의 심장으로 들어간다.
수술의 위험성은 일반 풍선확장술보다 몇 배 이상 높았다.
푸우우욱.
카테터가 산모의 배를 찔렀다.
최기석은 용의 눈으로 수술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초음파의 시야를 잡아 주었다.
초음파상으로 카테터가 산모의 복부를 통과한 것이 확인되었다.
"교수님. 아이가 꿈틀거리는데요. 처치 계속해도 될까요?"
"잠깐만 더 지켜보자. 전신마취는 제대로 끝났으니까."
카타리나의 말대로 태아의 움직임이 금방 멈췄다.
"양수가 움직이면서 아이가 같이 움직일 때가 있거든. 명심해 둬."
"알겠습니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카타리나라고 해야 할까. 엠마의 롤 모델답게 말과 행동, 판단이 믿음직스러웠다.
"초음파 시야 좀 더 좁히자. 이제 태아에게 카테터 삽입할 거야."
카타리나의 지시에 최기석이 초음파 시야를 조절했다.
의진대에 있었던 시절 초음파 검사 연수를 받았던 그다. 영상 다루는 솜씨는 전문의 뺨치는 수준이다.
그의 거침없는 시야 조절에 카타리나가 눈을 치켜떴다.
'이러다 펠로우 전에 따라 잡힐지 모르겠는 걸?'
카타리나는 속으로 혼잣말 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뛰어넘을지 모르는 의사를 지켜보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힘들 수 있었다.
최기석의 놀라운 성장력과 때때로 보여 주는 초월적인 처치.
이것을 보면 자괴감을 피하기 힘들기에.
하지만 카타리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최기석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았다.
이 천재적인 써전은 과연 얼마나 빨리,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 것인가.
오히려 이를 곁에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야 잘 잡았어. 계속 갈게."
카타리나는 길게 심호흡하고 카테터를 산모의 배 속 깊숙한 곳으로 찔러 넣었다.
탯줄을 피한 카테터가 태아 심장 부근에 위치하자 카타리나가 잠시 손을 멈췄다.
단 한 번에 태아의 흉부와 심장을 파고 들어야한다.
카테터 삽입에 실패한다면 태아에게 후유증을 남길 수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분위기가 감도는 처치실.
처치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스태프들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
이윽고 멈췄던 카타리나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짧고 빠른 움직임.
스으으으윽.
카테터가 태아의 가슴을 지나서 좌심실 내부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초음파를 통해 쿵쿵쿵 뛰는 심장 속에 들어간 카테터의 모습을 똑똑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성공했습니다."
"당연히 성공해야지."
카타리나가 빙긋 웃으며 카테터를 대동맥과 연결시켰다.
이어지는 풍선확장술.
기압을 조정하자 대동맥판막에 위치한 풍선이 차차 몸을 부풀렸다.
그렇게 태아 풍선확장술은 무난하게 종료되는 듯 보였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전자음에 최기석이 환자 감시 장치로 시선을 돌렸다.
환자의 호흡이 절벽처럼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혈압은 수축기 80mmHg, 이완기 60mmHg으로 저혈압을 보였으며 맥박은 오히려 빨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악화되는 산모의 상태.
불안정하게 떨리던 심전도 그래프는 어느새 움직임을 멈췄다.
심정지가 찾아온 것이다.
'이런!'
최기석은 실비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패혈성 쇼크로 인한 심정지가 찾아왔다.
수술을 받기 전 봉와직염 치료를 받았는데 그것이 수술 중 패혈증 쇼크로 번진 듯했다.
"교수님. 풍선확장술은 아직입니까?"
"아직 조정이 필요해."
카타리나가 초초한 듯 이를 딱딱딱 부딪쳤으며 미구엘은 무엇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갑작스런 응급상황으로 처치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교수님께서는 풍선확장술을 마무리 지어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을 하는 최기석의 두 눈에서 광채가 쏟아졌다.
[반드시 살린다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각성 CPR 버프 중 하위 모드 임산부 CPR을 택하셨습니다.]
임산부에게 CPR을 한 적은 없었지만 스킬의 도움을 받자 각종 정보가 머릿속에 쏟아졌다.
최기석은 우선 로젯 문 옆에 있는 전화기로 산부인과에 응급 콜을 날렸다.
그리고 번개처럼 수술대로 복귀했다.
"소독간호사 선생님. 환자 체위 변경합니다. 수술대를 대각선으로 30도 틀어주세요. 미구엘 선생님은 켈로민 IV로 주입해 주시고 제세동기 준비해 주세요."
"네? 체위 변경은 갑자기 왜……."
"산모가 똑바로 누웠을 때 흉부압박을 하면 자궁이 하대정맥과 대동맥을 압박합니다.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어요."
"네!"
"알았어."
산모의 체위를 바꾼 최기석은 산모에게 기관삽관을 하고 산소호흡기를 달았다.
이어지는 흉부압박.
퍽! 퍽! 퍽! 퍽!
최기석이 산모의 가슴을 누를 때마다 산모의 몸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그럼에도 카타리나는 한마디 불평 없이 풍선확장술을 마무리 지었다.
응급상황에서 그녀의 노련함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IV 약물 투입하고 제세동기 준비 끝냈다. 그런데……."
미구엘이 더듬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산모한테 제세동기를 써도 되는 거야? 태아에게 영향이 갈 것 같은데."
"산모가 살아야 태아가 살아요."
최기석은 제세동기의 한쪽 패들에 젤리를 바른 후 다른 한쪽의 패들에 비벼 묻혔다.
"다들 물러나세요. 200J!"
충전량을 200J로 맞추고 충전버튼을 누르자 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삐삐 하는 전자음이 울렸다.
"Charge!"
"Clear!"
쿵!
전류가 흐르면서 산모의 몸이 펄떡거렸다.
그럼에도 심전도 모니터는 묵묵부답이었다.
"200J!"
"Charge!"
"Clear!"
쿵!
제세동기를 연달아 사용했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흉부압박과 제세동기를 번갈아 사용했다.
약속했다.
실비와 아이 모두 건강하게 해 주겠다고.
그 약속을 이리 허무하게 저버릴 수 없었다.
"풍선확장술 끝났어. 산부인과는 연락했니?"
"하아…… 하아…… 지금 오고 있을 겁니다."
최기석이 대답하기 무섭게 산부인과 의사 몇몇이 로젯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에 카타리나가 현재 상황을 짤막하게 요약하여 들려주었다.
"심정지가 5분 이상 지속됐다면 이 자리에서 제왕절개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산모가 임신 24주 이상이니 문제가 될 건 없겠죠. 그리고 자궁에서 태어가 빠져나오면 산모의 혈액순환이 더욱 완만해집니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이 CPR을 하는 동안 제왕절개 수술이 준비되었다.
전원이 응급상황을 이해한 만큼 동작이 번개처럼 빨랐다.
"지금부터 제왕절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흉부압박은 계속하되 제세동기는 사용은 멈춰 주세요."
"네."
"메스."
산부인과 써전이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산모의 배를 갈랐다.
스으으으윽.
복부가 갈라지면서 나타나는 복벽.
써전은 산부인과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복벽을 벌리고 자궁벽을 갈라냈다.
이어서 태아를 감싸고 있는 양막을 제거한 후 아이를 천천히 배 속에서 꺼냈다.
찰칵!
탯줄이 잘리면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산부인과 스태프들은 아이의 코와 입속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등을 가볍게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이가 몸을 꿈틀거리다가 우렁찬 울음을 뽑아냈다.
"으아아앙! 으아아앙!"
아이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스태프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실비. 보여요? 당신의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어요. 이제 당신 차례예요. 제발 힘내요.'
최기석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흉부압박을 하는 사이 산부인과 써전들은 탯줄과 양막 찌꺼기를 제거하고 자궁수축을 확인했다.
띠이이이. 띠이이이.
"심전도가 다시 움직입니다!"
미구엘이 목소리를 높이며 검지로 환자 감시 장치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요지부동이던 심전도 그래프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CPR과 복부봉합이 함께 진행되는 가운데 들려온 희소식.
얼마 후 산모의 바이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응급상황이 있었음에도 산모와 태아의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처치가 끝난 후 실비와 태아는 나란히 산부인과로 이동했다.
풍선확장술이 무사히 끝 난 상황.
이제 흉부외과의 역할은 없었다.
지이이이잉.
로젯을 나서는 흉부외과 스태프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만약 처치가 잘못됐다면 산모와 아이를 둘 다 잃는 대형사고가 벌어질 뻔했다.
"고생했어. 미스터 최. 이번에도 최고였다고."
카타리나가 최기석을 응시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무사히 태아 풍선확장술을 마친 최기석은 미구엘과 휴게실로 이동했다. 카타리나는 곧바로 다음 수술이 있어서 수술실에 남았다.
띠링!
[숨겨진 임무, '산모와 태아를 살려라'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킬북을 제공합니다.]
[랜덤 스킬북: 그동안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확인한 스킬들 중 한 가지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은 보상을 확인하고도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CPR에 심력을 쏟아서 그런지 좋은 아이템을 얻었음에도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너 나를 아주 똥으로 봤더라?"
맞은편에 앉은 미구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시죠?"
"네가 내 지시를 따라야 맞는 거 아니냐? 왜 내가 네 지시를 따라야 하는 거냐고."
미구엘이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연차가 높은 본인이 최기석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 게 기분 나빴던 모양이다.
응급상황에서는 정신이 없어서 말을 따랐지만 지금 돌이키니 그때의 모습이 마땅치 않았으리라.
최기석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랜덤 스킬북을 사용했다.
띠링!
[랜덤 스킬북을 사용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불편한 가시 디버프 스킬을 얻으셨습니다.]
상태창을 확인한 최기석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동안 확인한 좋은 스킬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인간의 악질적인 스킬을 배우고 말았다.
'잠깐만…….'
스킬을 살피던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이이제이라는 옛 말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불편한 가시 디버프 스킬이 나쁜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기석은 불편한 가시 디버프를 쓰고 미구엘을 응시했다.
"선생님. 말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선생님이 제게 지시를 내렸으면 제가 따랐겠죠. 하지만 선생님은 발만 동동 구르고 아무 것도 못하셨잖아요. 제 말이 틀립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때는……."
"변명하지 마세요. CPR도 제가 다 했어요. 선생님은 뒷짐 지고 구경만 했다고요. 심지어 CPR을 도와줄까라는 말도 한마디 안 했고요."
"……."
"선생님이 저한테 그런 말 할 처지입니까?"
최기석의 팩트 폭격에 미구엘이 입을 다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문득 살펴본 그의 상태창에 특이한 정보가 떠올랐다.
[상대에게 불편한 가시 디버프를 걸었습니다.]
[불편한 가시: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스트레스가 상승할 경우 체력 및 처치, 환자 관리 능력이 감소합니다. 디버프 지속시간은 일주일이며 중첩될 경우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최대 10중첩이 쌓일 경우 퇴직 욕구가 발생합니다.]
[현재 중첩수(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