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05화 (304/407)

챌린지 (1)

최기석은 메스에서 손을 놓고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케빈의 양쪽 늑간에 생긴 2센티미터의 절개창.

이 창을 통해서 너스바를 삽입하고 고정하는 것이 수술의 핵심이다.

삽입된 너스바는 오목하게 들어간 흉곽을 올려 주고 이를 통해 기형적인 흉곽은 점차 제 모습을 되찾는다.

더불어 오늘 수술이 끝나면 케빈은 이 년 후에 너스바 제거 수술을 다시 받는다.

'나만 믿어.'

최기석의 눈빛에서 날카로운 빛이 뿜어졌다.

훗날 다시 만날 케빈이 웃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너스바 주세요."

"네!"

최기석의 지시에 인턴이 너스바를 건넸고 최기석은 너스바를 손에 쥐고 절개창을 응시했다.

금속이 주는 차가운 촉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부터 이 야만스럽게 생긴 쇳덩이를 케빈의 가슴속에 넣어야 한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씩이나.

"뭐해? 긴장했어?"

"그럴 리가요. 잠깐 시뮬레이션하고 있었습니다."

최기석은 여유롭게 대답하며 너스바를 절개창으로 밀어 넣었다.

자칫 잘못하면 너스바로 인해 흉강 내 장기가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

최기석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차분히 진행되는 작업 속에서 그의 손은 손톱만큼의 미동도 없었다.

마치 로봇 팔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 세심한 처치에 스태프들은 귀신에게 홀린 듯 빠져들었다.

단순하지만 지루하고, 세밀한 손놀림이 필요한 게 너스바 삽입이 아닌가.

그런데 신입인 최기석이 이를 흔들림 없이 해내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휴우…… 끝났습니다."

최기석이 삽입한 너스바가 반대편 절개창까지 도달했다.

"이어서 너스바로 움푹 파인 흉골을 들어 올리고 고정판으로 고정하겠습니다."

"오케이."

로버트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최기석은 로버트와 너스바를 대각선으로 눕히고 갈비뼈에 고정판을 만들어 너스바를 고정시켰다.

"미스터 최. 이거 너무 헐렁한 거 아니야?"

제레미가 너스바를 살피던 중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완벽한 고정은 안 돼. 흉골이 움직이면 너스바도 따라서 움직이거든.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물론. 훌륭해."

최기석의 시선을 받은 로버트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계속되는 두 번째 너스바 삽입.

최기석은 두 번째 너스바를 절개창으로 밀어 넣은 후 첫 번째 너스바와 대각선이 되도록 교차시켰다.

흉골을 들어 올리는 너스바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작업이다.

이후 로버트와 힘을 합쳐서 너스바 위치를 잡고 다시 고정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절개창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순간 로젯의 분위기는 빙판처럼 얼어붙었다.

처치 중에 발생하는 일반적인 출혈이 아님을 모두가 직감한 것이다.

치이이이익.

제레미와 인턴이 피를 흡입하면서 수술 부위가 다시 드러났다.

출혈 부위는 두 곳.

한 곳은 고정판 설치 작업을 하면서 뒤늦게 생긴 출혈이고 다른 출혈 장소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너스바 상단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위치다.

"인턴은 헤파린(항응고제) 투여하고 블러드 팩 달아. 제레미는 클램프(혈관겸자)로 고정판 쪽 혈관 잡아 주고. 너스바 위쪽 출혈 부위 계속 석션해 줘."

최기석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바빠졌다.

"젠장! 왜 이런 일이!"

로버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수술 부위를 응시했다.

너스바 수술을 수차례 목격하고 직접 집도까지 해 본 그였다. 하지만 이런 출혈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었다.

멈출 줄 모르는 출혈량에 덜컥 겁이 났다.

"안 되겠다. 수술은 여기서 중지야."

로버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카타리나 교수님 호출할 테니까 너희는 일단 보이는 데만 막고 있어."

"치프. 제가 조금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확인? 지금이 그런 한가한 소리 할 때야? 네가 집도하는 거라 책임감 느끼는 건 아는데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라고. 이러다 환자 죽어!"

"미스터 최. 치프 말이 맞아. 고집 피우지 마."

제레미까지 나서서 로버트의 편을 들었다.

그럼에도 최기석의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응급상황이 벌어져도 별 상관없다는 것처럼.

"5분만 주세요. 그 안에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치프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하아…… 모르겠다. 알아서 해 봐."

로버트가 졌다는 듯 휘휘 고개를 저었고 최기석은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을 상급자에게 맡기는 것.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상급자에게 맡기는 것.

이 두 가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가 막연한 추측이라면 후자는 냉철한 분석이다.

최기석이 택한 것은 후자.

다른 사람 눈에는 제힘으로 수술을 끝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저 객관적으로 출혈 부위를 찾아보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로버트가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지극히 드물지만 너스바 수술 도중 대동맥 파열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만약 이번 케이스가 대동맥 파열이라면 여기 있는 스태프의 힘만으로 막는 건 불가능했다.

로버트의 말대로 카타리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침착하자. 침착하면 돼.'

최기석은 용의 눈 입체화 모드로 수술 부위를 재구성했다.

휘이이이잉.

그의 눈에만 보이는 광채가 로젯 위로 떠올라 날실과 씨실처럼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현란한 작업이 끝나자 케빈의 흉강 내 모습이 3D 모형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는 3D 영상을 살피던 중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두 번째 출혈점은 우심방이다.

너스바를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도중 너스바 끝이 우심방에 찢어진 상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치프. 출혈점 찾았습니다!"

"찾았다고? 벌써?"

"네. 대동맥이 아니라 우심방 벽면에 상처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하늘이 도왔죠. 대동맥 파열이 아니니 우리끼리 출혈을 잡을 수 있습니다. 소독간호사, 내시경 도구 좀 챙겨 주세요. 지금부터 우심방 문합에 들어갑니다."

"네."

끼기기긱.

최기석은 내시경 도구와 연결한 니들홀더를 절개창으로 삽입했다.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는 법.

케빈의 흉부 장기가 다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니들홀더를 우심방에 위치시켰다.

외과 로테이션 기간과 흉부외과에서 직접 시도한 VATS 경험으로 그의 봉합은 날개 달린 듯 진행되었다.

뒤늦게 이성을 차린 로버트의 보조 역시 단단히 한몫 거들었다.

그렇게 우심방 봉합이 끝나자 시냇물처럼 흐르듯 핏줄기가 뚝 끊겼다.

"제레미, 고정판 쪽 출혈은?"

"이제 끝난 것 같아. 클램프 제거해 볼게."

딸칵.

봉인되었던 혈관겸자가 풀렸다.

다행히 우려했던 출혈은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출혈을 성공적으로 막아 낸 셈이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출혈이 없으니 2차 너스바 고정술 계속하겠습니다."

"네!"

인턴의 씩씩한 대답과 함께 재개된 너스바 수술.

수술은 두 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갑작스러운 출혈로 공황상태에 빠졌던 것이 한여름 꿈이었던 것처럼.

최기석은 케빈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해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폐동맥 협착증 수술에 이은 두 번째 집도 역시 대성공이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한마디씩 하며 로젯을 벗어나는 스태프들.

로버트는 앞장서서 걷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이게 1년 차 레지던트라고?

* * *

너스바 수술을 끝낸 최기석은 제레미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로버트와 인턴은 처리할 일이 있다며 곧바로 병동으로 올라갔다.

"다들 미스터 최, 미스터 최 하는 이유를 알겠네."

제레미가 운을 뗐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지? 난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될 거야."

출혈을 발견한 순간 제레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었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출혈이었다.

더군다나 한 부위는 출혈이 일어난 위치조차 정확히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최기석은 침착하게 출혈 부위를 찾아 봉합을 성공시켰다.

치프 레지던트인 로버트조차 허둥거렸는데 말이다.

"내 생각이지만 처치만큼 마음을 단련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집도의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수술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니까."

"강심장이라서 부럽다. 혹시 심장이식 수술을 받으면 그렇게 되나?"

"그건 아닐걸?"

최기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번 수술에 가장 큰 수훈장은 얼어붙은 심장이다.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 덕분에 평정심을 유지했고 입체화 모드로 출혈부위를 찾으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그를 만들어 주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된 스킬을 두 가지 꼽으라면 아마 히포크라테스의 눈과 얼어붙은 심장이 아닐까.

사랑해요. 히포크라테스의 눈.

사랑해요. 얼어붙은 심장.

"슬슬 일어날까?"

"그래."

두 사람은 휴게실을 벗어나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드르르르륵.

의국에 들어가자 처음 보는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의사 가운을 걸쳤으며 사원증 목걸이를 걸었다.

최기석과 제레미는 남자를 응시하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바라봤다.

저 사람 누구야?

두 사람의 눈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어. 왔어? 기석 최랑 제레미 맞지?"

남자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이번에 MHC로 발령받은 미구엘이라고 한다. 참고로 펠로우 1년 차야."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의 인사를 받은 미구엘이 만족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얼어 있지 말고 어서 앉아."

"네."

두 사람이 미구엘 맞은편에 앉았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선생님은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메이죠에서는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본원에는 없었고 계속 캘리포니아 브랜치에 있었지. 너희 팀에 있던 중국인이 제임스 홉킨스로 날랐다며? 그래서 대타로 들어왔다."

"아, 네."

최기석은 속내를 숨기며 대답했다.

어째서 펠로우가 신입 레지던트 수련을 돕게 됐을까.

그런 의문으로 미구엘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써봤는데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왔으니까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레지던트 2년 차랑 펠로우 1년 차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

미구엘이 우쭐대며 말을 이었다.

"엠마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너스바 수술 끝내고 오는 길이겠네?"

"맞습니다."

"나도 너처럼 레지 1년 차일 때 오목가슴 환자를 받았는데 수술 기회를 안 주시더라. 뭐. 당시는 MHC 같은 시스템이 없어서 이해는 한다만……."

"……."

"수술은 껌이었지?"

"딱히 씹을 건 없었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미구엘의 눈썹이 솟아올랐다.

"요놈 봐라. 솜털도 안 마른 레지던트가 하늘 같은 펠로우와 농담 따먹기를 하네."

"……."

"미스터 최. 왜 말이 없어?"

"딱히 할 말을 못 찾았습니다."

"말하는 게 숨바꼭질이야? 찾고 못 찾을 게 어디 있어? 그냥 죄송하다고 하면 되지?"

"죄송하지만 선생님께 사과할 정도로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야. 팀 CPR 완전 막장이네. 선임자를 완전히 개똥 취급하잖아."

미구엘의 거친 언사로 최기석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오자마자 군기 잡으려는 그의 행동을 곱게 봐주려야 곱게 봐줄 수 없었다.

"제레미. 넌 왜 가만히 있어?"

"네? 저 말씀입니까?"

"동기가 선임자에게 대들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지. 왜 멍청하게 가만히 있냐고."

"그건……."

제레미가 우물쭈물 거리자 미구엘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너도 미스터 최랑 한통속이구나. 답답하다, 답답해."

미구엘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두 사람을 갈구기 시작했다.

잠깐 참으면 끝나겠지 싶었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미구엘의 정신 공격은 무려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띠링!

[불편한 가시 디버프에 걸렸습니다.]

[불편한 가시: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200퍼센트 상승합니다. 스트레스가 상승할 경우 체력 및 처치, 환자 관리 능력이 감소합니다. 디버프 지속시간은 일주일이며 중첩될 경우 모든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최대 10중첩이 쌓일 경우 퇴직 욕구가 발생합니다.]

[현재 중첩수(1/10)]

알림을 확인한 최기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설명대로 짜증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설교와 잔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카타리나가 나타났다.

"여기 있었어?"

"아, 네. 교수님. 팀원들하고 이야기 좀 하고 있었습니다."

미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교수님 지도를 받아서 그런지 다들 똑똑하고 좋은 친구들 같습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할 말 있으니까 연구실로 가자."

"네. 그럼 있다가 보자고."

미구엘이 두 사람에게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의국을 떠났다.

"아니, 뭐 저런 게 다 있지?"

감정표현이 박한 제레미가 얼굴을 구겼다.

"살다 살다 저런 인간은 또 처음 보네."

"그러게. 갑자기 미스터 왕이 보고 싶어질 정도인걸?"

"생각할수록 열 받게 하네. 진짜!"

두 사람은 미구엘을 씹으며 각자 처방을 입력했다.

타다다다닥.

거친 키보드 소리와 제레미의 짜증 섞인 혼잣말이 계속 들려왔다.

미구엘로 인해 제레미가 제대로 뿔이 난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불편한 가시 디버프가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최기석은 상태창을 띄우며 긴급 처방에 나섰다.

지금 필요한 건 모다?

따라라따라, 귀여운 따라라따라, 병원 속 따라라따라, 토끼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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