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02화 (301/407)

불가능한 것 (4)

"심장 수술이라…… 정확히 어떤 수술을 말하는 거죠?"

"확장성 심근병증 수술입니다. 보통 환자 상태를 봐서 세이버 수술이나 이식 수술을 하는데. 지금 개발 중인 수술은 심장이식술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네요."

샬롯이 눈을 빛내며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준비 중인 수술을 이 자리에서 밝히겠다는 건가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비밀에 부쳐야 할 것 같은데……. 제 어디가 그렇게 믿음직스럽던가요?"

"그런 걱정을 했으면 샬롯을 찾지도 않았을 겁니다."

"와우. 소문이 퍼질 게 걱정 안 된다는 소리인가요?"

"네."

최기석이 씽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서는 미인은 입이 무겁다는 말이 있거든요."

그의 농담에 샬롯이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건가요? 재미있네요."

"뭐. 농담 반 진담 반이죠. 샬롯은 분명 오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을 거예요."

샬롯이 성공을 중시하는 의사였다면 그는 결코 수술에 대해 상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발로 신수술을 헌납하는 꼴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환자 중심 성향의 의사들은 입이 무겁고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샬롯이 예외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제 외모를 칭찬하고 믿어 주기까지 하신다면…… 입이 간지러워도 꾹 참아야겠네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제 구체적인 수술법을 듣고 싶은데요?"

샬롯의 질문에 최기석이 설명에 들어갔다.

스승이 개발한 신수술.

그것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근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절제한 후 절제 부위에 심근과 혈관을 부분적으로 이식해 주는 일이다.

그가 설명하는 내내 샬롯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간간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연구력 9단계의 괴짜 내과의는 과연 수술을 어떻게 평가할까.

"확실히 수술에 대한 발상은 훌륭하네요. 완성할 수만 있다면 비용 절감 측면이나 환자 처치 분야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겠어요."

"그래서 진행 중이죠."

"문제는……."

샬롯이 턱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수술시간이 너무 길고 복잡하다는 거예요. 인공심폐기 사용시간이 길면 길수록 환자에게 부담이 많이 가잖아요. 설령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각종 후유증이 찾아올 수 있어요."

"……."

"같은 맥락이지만 부분 이식 파트를 소화할 수 있는 써전이 전 세계적으로 몇이나 있을까요?"

샬롯의 송곳 같은 지적에 최기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영혼의 눈물의 초각성 효과를 사용하며 분투했는데도 수술을 끝내는 게 힘들었다.

수술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아직 수술이 손에 익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난이도의 문제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미스터 최가 말한 수술법은 고전적이에요. 전적으로 써전의 스킬에만 의존하고 있어요. 수술 개발한 분이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나 보죠?"

"맞습니다.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 중 한 분이에요."

"어쩐지…… 수술을 보면 써전까지 보인다니까요?"

샬롯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신수술은 지금 이대로는 안 돼요. 수술 방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겠어요."

"제가 샬롯과 의논하고 싶은 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으음…… 당장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고……. 메일하고 연구실 연락처를 알려 드릴 테니까 정기적으로 상의해 봐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괜히 번거로운 부탁을 한 건 아닌지……."

"괜찮아요. 미인은 번거로운 일을 좋아하니까."

샬롯의 농담에 최기석이 빵 터졌다.

수술 연구를 좋아하는 괴짜 내과의라서 고지식할 줄 알았건만 뜻밖의 유쾌한 구석이 있는 샬롯이다.

"슬슬 강당으로 돌아가야겠네요. 그럼 나중에 연락해요."

"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최기석이 샬롯과 헤어진 후 동료들과 합류했다.

띠링!

[지휘의 진리 효과로 샬롯과 라포 2단계를 획득하셨습니다.]

NEW [샬롯(의료인) - 2단계: 믿음]

심포지엄의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후 일정 역시 오전처럼 참가자들의 참여가 뜨거웠다.

주제가 주어질 때마다 질문이 쏟아지는 바람에 일정이 뒤로 밀릴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일정의 백미인 세이버 수술 시연이 다가왔다.

이에 대강당에 대형 스크린이 펼쳐지고 그 위로 수술실 모습이 비쳤다.

'오랜만이네.'

최기석은 스크린을 보며 미소 지었다.

세이버 팀 동료들이 로젯에서 수술 준비 중이다. 오늘 수술의 집도의는 김태식, 제1보조는 윤지혜, 제2보조는 이영호, 제3보조는 처음 보는 써전이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팀 스탯이 전부 최대치를 달성했다.

그가 없는 삼 년간 세이버 팀은 꾸준히 활동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환자는 45세로 심근병증과 좌심실류를 앓고 있습니다. 오늘 시연하는 수술은 세이버 수술로, 관상동맥 우회술을 통해 혈류를 정상화한 후 좌심실류를 절제하고 쌈지 봉합법으로 재건할 예정입니다."

김태식의 브리핑이 회의실에 울렸다.

그는 마이크를 착용한 채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계적인 써전들이 수술을 참관하고 있음에도 떨거나 긴장하는 기색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최기석에게 얼어붙은 심장을 전수한 장본인다운 모습이다.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김태식의 말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자 감시 장치 연결, 전신마취, 수술 도구 준비 등등.

스태프들은 각기 맡은 일을 하면서 또 한 몸 같은 모습을 보였다.

팀 수술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세이버 팀을 보면 누구라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가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세이버 수술이 진행되었다.

최기석은 손에 땀을 쥐고 수술을 지켜보았다.

세이버 팀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술 중에는 그 어떤 변수가 나타날지 모른다.

더불어 존경하는 선배가 세계 써전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꼴을 보는 건 사양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세이버 수술은 무난히 진행되었다.

김태식의 깔끔한 손놀림과 스태프들의 보조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지금 승모판막을 재건하는 겁니까?"

수술을 지켜보던 한 써전이 마이크를 들고 질문에 나섰다.

"네."

"아까 브리핑에는 없던 내용인데. 승모판막 재건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심실의 부피를 줄여 혈액의 압박을 줄이기 위함입니다. 이럴 경우 수술 후 환자의 경과가 한층 좋아집니다"

김태식이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말하면서 봉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지식과 흔들림 없는 처치에 몇몇 의사들이 감탄한 기색을 드러냈다.

'역시 선배야. 대단해.'

최기석은 김태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동안 성장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더불어 자신도 김태식처럼 라이브 시연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라이브 시연을 한다는 건 그만큼 주변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뜻이기에.

띠링!

[장기 임무, '라이브 수술에 성공하라'가 생성되었습니다. 임무 완수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상태 창을 확인하면서 각오는 더욱 굳었다.

얼마 후 세이버 수술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관상동맥 우회술과 승모판막 재건술이 끝났고 좌심류 절제와 쌈지 봉합이 펼쳐졌다.

휘이이이잉.

김태식의 몸에서 최기석만 볼 수 있는 빛이 뿜어졌다. 김태식이 고유 스킬인 고속집도를 사용한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피자 그는 이미 고속집도를 마스터했다.

시간이 흘러 세이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과정은 흠잡을 데 없었으며 수술 종료시간은 평균적인 시간보다 두 배가량 빨랐다.

짝. 짝. 짝. 짝.

우레같이 쏟아지는 참가자들의 박수.

최기석은 손바닥을 힘껏 치며 그 대열에 합류했다.

* * *

다음 날 오후.

최기석은 동료들과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나왔다.

한국에서의 짧았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시원섭섭하네.'

그는 택시에 올라타는 도중에도 호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휴가가 아니라 심포지엄 스케줄로 입국했기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의대에 다니고 있는 보육원 친구 김정혁, 김태식을 비롯한 의진대 식구들과도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파커에게 받은 휴가를 써서라도 알찬 시간을 보내리라.

"교수님이 보기에 이번 심포지엄은 어땠나요?"

"이만하면 훌륭하지. 내가 참석한 심포지엄 중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한국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이라서 내심 신경 쓰였구나?"

카타리나가 웃으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네. 혹시라도 다른 써전들이 한국을 우습게 보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럴 일은 없어. 한국이 흉부외과 강국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최기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한국에는 스승 송명진을 비롯해 몇몇 걸출한 흉부외과 써전들이 있다. 써전들의 전반적인 수술 성공률이나 신수술 개발률도 높은 편이고 말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대학병원에서조차 흉부외과 지원자가 몇 년째 없는 상황.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대한민국 흉부외과의 장래는 어둡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제임스 홉킨스는 이번 심포지엄에 안 온 것 같네요."

잠자코 있던 찰스가 화제를 돌렸다.

"거기야 워낙 종잡을 수 없는 곳이잖아. 그건 그렇고 이번 주에 너희 둘 중 한 명이 파견 가야 할 것 같은데?"

"파견이요?"

카타리나의 말에 최기석과 찰스가 동시에 되물었다.

"크루즈 파견. 저번 주에 엠마가 갔으니까 이번 주 멤버를 정해야지."

"어떻게 할래?"

"내가 갈게."

최기석의 시선을 받은 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사업 때문에 괜히 할 일만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부병원장이 추진하고 이사진들이 결정한 사안인데."

"앞으로 MHC가 어떻게 굴러갈는지……."

잡담을 나누는 사이 택시가 공항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캐리어를 부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우우우우웅.

비행기가 이륙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다.

카타리나와 찰스는 두 눈을 감은 채 잠들었지만, 최기석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심장에 미약한 통증이 있었다.

육감이 보내는 불길한 신호, 기내에서 무슨 문제가 벌어질 모양이다.

"긴급 방송입니다. 탑승객 중에 의료인이 계시면 지금 신속하게 화장실 쪽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탑승객 중에 의료인이 계시면……."

안내 방송에 최기석은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앞에 한 중년 남성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으며 주변에 있는 승무원들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공항으로 다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사람 치료 가능한 사람 없어요?"

몇몇 승객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메이죠 심장 클리닉에서 근무 중인 최기석입니다."

"의사 선생님이시죠?"

"네."

최기석은 몸을 굽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환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핀 그는 승무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건하고 숟가락 좀 챙겨 주세요"

"수건하고 숟가락이요? 그건 왜……."

"빨리요!"

최기석의 호통에 한 승무원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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