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돌파 (6)
"선배, 농담이죠?"
"지금이 농담할 상황이니?"
최기석의 되물음에 이영호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스스로 집도할 생각은 잠깐 해 보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앞서 나갔다는 생각에 금세 접어 버렸다. 간단한 흉부외과 수술 정도는 해 봤지만, 횡격막 재건술까지는 아직 해 본 적이 없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너를 못 믿겠으면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최기석이 이영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저기요. 교수님이나 과장님께 다시 전화해 봐요. 집도할 사람이 없으니까 영호의 집도를 허락해 줄 수 있냐고?"
"치프, 그래도 될까요?"
인턴의 시선에 이영호가 한참 뜸을 들였다.
"최 선배 말대로 해."
"알겠습니다."
"휴우……. 이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영호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집도의로서의 책임감, 수술 결과와 환자 경과를 스스로 안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돌덩이처럼 가슴을 눌렀다.
"저는 선배 같은 슈퍼 닥터가 아니에요. 레지던트 1년 차에 관상동맥 우회술을 하는 괴물이 아니라고요."
"굳이 나와 비교하면서 너를 깎지 마. 너만 한 실력을 갖춘 외과의도 손에 꼽혀. 그리고 아까 전에도 했던 말인데."
최기석은 심호흡하고 스킬을 연달아 사용했다.
[내가 너를 인정했어. 그거면 이미 집도할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정언명령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특수효과 용기가 환자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용기: 응급 상황에서도 능력치가 감소하지 않으며 위기극복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격려를 사용하셨습니다.]
[격려를 받은 대상의 감정이 밝아집니다. 면역력, 저항력, 재생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휘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쏟아진 빛이 이영호를 감싸자 이영호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까짓거 해 볼게요. 어차피 배워야 할 일이기도 하고."
"그래. 할 수 있어. 내가 지켜봐 줄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치프! 교수님이 치프가 집도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오케이. 수술실로 가자."
이영호와 인턴이 환자가 누운 침상을 끌고 수술실로 이동했고 최기석은 참관실에 자리 잡았다.
환자의 경과를 생각한다면 흉강경 수술이 더 좋지만, 지금의 이영호에게 VATS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괜히 내가 다 떨리네.'
최기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영호가 수술을 잘 끝낼 거라 믿었지만 수술 중에는 어떤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몰랐다.
부디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이영호가 성장하기를 바랄 수밖에…….
'아자! 아자! 이영호 파이팅!'
이영호는 스스로에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몇 번의 집도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는 항상 수술을 지도하는 펠로우가 곁에 있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오늘에야말로 진짜 집도를 하는 셈이다.
"치프. 환자 감시 장치 연결했고 전신마취도 끝났습니다."
레지던트 3년 차이자 제2보조를 맡은 강형석의 말에 이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T.
A 환자에 대한 횡격막 복원술을 시작한다."
"네!"
인턴이 씩씩하게 대답하고 수술 부위를 소독한 후 방포를 덮었다.
스으으으윽.
이영호는 소독간호사에 메스를 건네받아 환자의 목젖부터 명치 부위까지를 내리그었다.
거침없는 손놀림.
메스를 쥔 이영호의 손은 한 번도 떨리지 않았으며 잘린 피부 단면은 자를 대고 자른 것처럼 깔끔했다.
"치프. 긴장 안 돼요?"
"왜?"
"처음 하는 수술인데 절개가 너무 깔끔해서요."
"집도의가 불안해하는 수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잖아. 긴장 같은 건 개나 줘 버려."
"멋있어. 역시 괜히 치프가 아니라니까. 인턴. 스페튤라(폐 견인기)."
"네!"
제2보조와 인턴이 절개부위를 옆으로 넓히면서 시야가 확보되었다.
이영호는 루뻬(수술안경)를 착용한 채 수술 부위를 꼼꼼하게 살폈다.
검사 결과대로 4번부터 7번까지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또한, 외상으로 횡격막이 너덜너덜하게 찢겼으며 그 틈 사이로 탈장된 간이 우측 폐와 달라붙어 있었다.
환자를 방치했다면 감염을 비롯해 각종 후유증이 발생했으리라.
"우선 갈비뼈부터 손보자."
이영호는 포셉을 이용해 날카롭게 튀어나온 갈비뼈들을 원위치시켰다. 혹시나 환자가 호흡할 때 갈비뼈가 폐를 찌르지 않게 만들기 우해서.
"유착제 붙이고 정리 끝냈습니다."
"다음은 달라붙은 폐와 간을 떼어 준다. 보비(전기 소작기)."
이영호는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유착 부위에 전기 소작기를 갖다 댔다.
치이이이익.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소작기를 한 부위에 한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조직이 탈 수 있었지만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영호의 처치는 차분하고 단단했다.
'치프가 원래 이 정도였나?'
강형석은 유착 부위를 생리식염수로 씻어 준 후 이영호를 응시했다.
이영호는 누가 뭐래도 의진대 흉부외과의 차기 에이스다.
레지던트 1년 차부터 치프가 된 지금까지 쉬는 시간 없이 수련에 매진했으며 일찍부터 세이버 팀에 들어가 고난도 수술을 거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영호라도 이번 수술은 무리라고 강형석은 생각했다. 응급환자를 상대로, 그것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수술을 집도하다니…….
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그런데 우려와 달리 이영호는 완벽한 처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를 열심히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던 건 완벽한 오판이었다.
지금의 이영호는 태산처럼 커 보였다.
도저히 넘볼 수 없었다.
"영호야. 이제 횡격막 재건하고 주름 성형술이다. 지금처럼만 하면 돼."
최기석이 마이크를 통해 한마디 했고 이영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2-0 Prolene."
끼기기긱.
이영호는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형편없이 찢긴 횡격막을 내려다보았다. 최기석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한없이 편해졌다.
휘리리리릭.
횡격막과 횡격막 신경이 있는 부위에 연속 봉합이 펼쳐졌다.
매듭을 짓지 않고 한 번에 수술 부위를 꿰매는 연속 봉합.
단순 단속 봉합에 비해 난이도가 높지만 이영호는 자동차가 질주하듯 수술 부위를 수평으로 꿰매나갔다.
횡격막에 가해지는 압력은 적당했고 결찰 부위의 간경은 일정했다.
봉합에 집중하면서 이영호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찰칵!
경쾌한 가위 소리와 함께 일차 봉합이 끝났다.
이영호는 기세를 몰아서 단순 단속 봉합으로 나머지 부분을 보완하고 주름 성형술까지 펼쳤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난 수술.
짝. 짝. 짝.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영호의 집도 성공이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송명진이 자신을 보며 뿌듯해하던 이유를 지금은 알았다.
* * *
수술이 끝난 후 최기석은 이영호와 휴게실로 이동했다.
"고생했다. 거 봐.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지."
"다 선배가 응원해 준 덕분이죠. 이상하게 수술이 끝나니까 손이 떨리네."
이영호가 피식 웃으며 벌벌 떠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에이, 거짓말. 선배는 안 그랬을 것 같은데요?"
"흠흠. 솔직히 말하면 안 그러긴 했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응급 수술이 끝나면서 한층 대화에 여유가 감돌았다.
"그건 그렇고 선배도 슬슬 가 봐야죠?"
"어디를?"
"사랑하는 피앙세가 있는 곳으로요."
"이놈 봐라. 치프가 되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네."
최기석이 이영호의 이마에 꿀밤을 매기자 이영호가 울상을 지었다.
"칫. 제 말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저도 제가 겉절이라는 거 잘 알아요. 설화 쌤 보기 전에 잠깐 만나는 느낌이랄까?"
"말을 못 하면 밉지라도 않지. 이러다가 한국에 돌아오면 나까지 먹어 버리겠다?"
"안 돼요. 선배를 먹으면 백 퍼센트 체할 거예요."
"네네. 알겠습니다. 응급수술하느라 고생했고 심포지엄 때 다시 보자."
"네. 정말 감사했어요, 선배."
최기석은 이영호와 대화를 끝내고 순환기내과 병동을 찾았다.
똑. 똑. 똑.
의국에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석아!"
정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품에 안겼고 최기석은 웃으며 정설화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의국에 단둘이 있었기에 가벼운 스킨십은 문제 될 게 없었다.
"우리 설화. 잘 지냈어?"
"아니. 전혀. 네가 곁에 없는데 어떻게 잘 지내."
"사실 나도 잘 못 지냈어. 다크서클 보여?"
최기석의 너스레에 정설화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격렬한 포옹이 끝낸 후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맞았다.
"흉부외과 사람들하고 인사는 했어?"
"영호만 잠깐 봤어. 다들 심포지엄 준비 때문에 바쁜 것 같더라."
"하긴 세계 각지에 있는 흉부외과 써전들이 한자리에 모이니까 신경 쓸 게 많겠지."
"설화는 요즘 바쁘지?"
"응. 피곤해 죽겠어. 레지던트가 끝나면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더라. 솔직히 편하기는 레지던트 때가 더 편했어. 외래 진료 장난 아니거든."
정설화는 사 년간의 레지던트 수련과정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었다.
지금은 펠로우 과정을 밟는 중이고 말이다.
"나도 MHC에서 외래 진료해 봤잖아. 스트레스 대박이던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얼굴이 자주 뒤집혀."
정설화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 요즘 흉통이 있는데 진료 좀 봐줄 수 있어?"
"흉통?"
정설화가 얼굴을 찌푸리며 거리를 좁혔다.
최기석이 심장이식을 받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빨리 말해 봐! 가슴이 어떻게 아픈데?"
"날카로운 송곳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아. 특히 잠자기 전에 심해."
"잠깐만."
정설화는 청진기로 최기석의 심음과 폐음을 청취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MHC에서 검사는 받아 봤어?"
"아니. 수련 중인데 아프다는 말은 함부로 못 하지."
"그럼 일단 심전도랑 엑스레이 촬영만 해 보자. 검사결과를 봐야 할 것 같아."
"어허. 우리 설화 전문의가 됐는데 이렇게 진료를 못 보나?"
최기석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도 내가 아픈 이유를 모르겠어?"
"……."
"내가 아픈 건 상사병 때문이잖아. 설화랑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더니 가슴이 쓰린 거라고."
"아. 뭐야! 바보! 걱정했잖아."
정설화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며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진짠데? 나는 설화를 못 봐서 가슴이 너무 아픈데."
"심각하게 말하니까 깜빡 속았잖아."
"그러니까 심각하대두?"
최기석이 연신 뻔뻔하게 나오자 정설화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아픈 건 어떻게 치료해 줄까?"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법을 물어보면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
정설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최기석의 머리를 감싸 쥐고 품에 안았다.
얼굴에 전해지는 보드라운 감촉.
"지금은 어때?"
"안 돼. 이걸로는 부족해."
"욕심도 많으셔라. 있다가 집중치료실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겠는걸?"
"기대해도 돼?"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정설화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최기석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