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95화 (294/407)

강행돌파 (3)

"전신 마취 끝났습니다. 수술실 입장 전 실행한 ABGA(동맥혈가스분석) 결과는 PH 7.400, PCO2 41.1mmHg, PO2 19.8mmHg, B.

E. 1.2 입니다."

"같이 시행한 심전도 및 심초음파에서는 우심실비대 소견이 나왔어요."

마취의와 엠마의 보고가 이어졌다.

"확인했습니다. 환자에게 저산소증이 보이니 산소마스크 씌우고 인공심폐기 연결해 주세요."

"네!"

최기석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가 작동하면서 스태프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폐동맥 협착증 수술에 서막이 오르는 순간.

스태프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수술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알기에 로젯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폐동맥 협착증 수술에 대한 폐동맥판막 교정술, shunt 수술, 우심실 근육제거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슥슥슥슥슥.

엠마가 환자 가슴을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으며,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아 환자의 명치부터 가슴까지를 내리그었다.

마치 북을 찢는 듯한 느낌이 손끝에 남았다.

트레이닝 룸과 실전에서 수없이 느낀 감각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그 감각이 낯설었다. 무리하게 추진한 수술이라서 자신도 모르게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

'괜찮아. 평소대로만 하면…….'

최기석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피부절개를 마쳤다.

그러자 칼과 엠마가 견인기를 사용하여 환자의 가슴을 벌렸다. 그 상태에서 폐를 살짝 옆으로 드러내자 수술 부위인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쿵. 쿵. 쿵.

성인에 비해 조금 더 앙증맞아 보이는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솔직히 겁나네요. 저걸 건드려야 된다는 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수술 원리 자체는 성인과 다르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만……."

최기석의 대답에도 칼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우선 수술 부위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죠."

"네."

"좋습니다."

최기석과 스태프들이 세심하게 수술 부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검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폐동맥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폐동맥은 온몸을 돌아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 혈액을 폐로 보내는 동맥인데, 제이미는 폐동맥이 혈관이 좁아져서 혈류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것도 좌페동맥과 우폐동맥 양쪽 모두 말이다.

"미스터 최. 어떻게 할 거야?"

"비대해진 우심실부터 제거하겠습니다. 이후 차례대로 폐동맥 판막 교정, shunt 수술 진행할 게요."

"그래. 잘해 보자고."

로버트의 씩씩한 목소리에 로젯의 분위기가 밝아졌다.

"메스."

최기석은 차분하게 우심실을 절제해 나갔다.

폐동맥 혈류가 원활하지 않은 관계로 생긴 압력차로 제이미의 우심실은 상당한 두꺼워져 있었기에.

수술이 시작되면서 로젯이 고요해졌다.

수술 도구들이 내는 소리와 인공심폐기 소리만이 이따금 정적을 깨트릴 따름이다.

'좋아. 왔다!'

우심실을 절제하던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살짝 몽롱한 이 느낌은 바로 물아일체의 징조다.

수술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해당 수술의 집도의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다.

물아일체의 대상은 클라라.

악녀라는 평이 자자하지만 그녀의 실력만큼은 알짜배기 아닌가.

지금 최기석의 손끝에서 클라라의 깔끔한 처치가 살아나고 있었다.

텅!

얼마 후 곡반 위로 두꺼워진 우심실이 떨어졌다.

최기석은 클라라처럼 빈틈없이 처치를 끝냈다.

"기대 이상인데?"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요. 계속해서 폐동맥판막 교정하겠습니다."

"치환술로 갈 거야? 아니면 성형술?"

"당연히 성형술로 가야죠."

그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치환술을 하면 환자가 와파린(항응고제)을 먹어야 하잖아요. 더군다나 성인이 될 때쯤에 또 수술을 받아야 하고요."

"그래도 이건 치환술을 해야 되지 않나?"

폐동맥판막을 내려다보는 로버트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어때?"

"저도 치환술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2보조인 칼은 로버트의 의견에 찬성했고 엠마는 기권표를 던졌다.

"동료들 입장은 내 쪽으로 기우는데?"

로버트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향했다.

"그래도 성형술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환자의 앞길을 생각한다면 힘든 길이라도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힘이 있나? 집도의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미스터 최 뜻대로 하세요."

"두 사람 다 고맙습니다. 5-0 Prolene."

최기석은 감사를 표하고 니들홀더를 손에 쥐었다.

끼기기기긱.

자신감 있게 판막륜 재건에 나섰다.

판막륜은 일종의 문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이미의 판막륜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혈류가 흐를 때마다 판막륜이 힘없이 너덜거렸다.

이러니 압력차가 생길 수밖에…….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메스로 판막륜의 일부를 제거한 후 특수 제작된 링을 씌워서 고정시켰다. 포셉으로 재건된 링을 건드리자 단단함이 느껴졌다.

혈류를 견딜 만한 충분한 힘을 갖춘 것이다.

이어서 귀신같은 솜씨로 판막엽과 늘어진 건삭 부위 재건에 들어갔다.

'뭐야? 이건?'

로버트는 최기석의 처치를 도우면서 혀를 내둘렀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심장외과 펠로우를 진행하는 자신조차 할 수 없는 성형술을 최기석이 해내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게 꿈인가 싶었지만 감각이 너무나 생생했다.

콧속으로 파고드는 비릿한 피 냄새, 수술 도구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인공심폐기의 요란한 진동…….

로버트는 야사다가 괜히 최기석에게 수술을 맡긴 것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또한 최기석의 집도의 투입은 단순히 바위에 계란을 던진 것이 아니었다.

헤드 치프 나름의 전력투구였던 셈이다.

"……."

"……."

로버트는 보조 중에 우연히 최기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차가운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역설적으로 환자를 살리겠다는 뜨거운 열정으로도 가득 차 있었다.

이질적인 감각이 살아 숨 쉬는 눈빛.

로버트는 과거에 이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한때 미국 최고의 흉부외과의라고 불리던 올리버의 눈빛이 바로 이랬다.

"로버트. 집중해 주세요. 보조가 반 박자씩 늦어요."

"아. 미안."

찰칵!

로버트가 서둘러 최기석의 실밥을 잘라주었다.

시간이 흘러 폐동맥판막 성형술이 무사히 끝났다.

혈류 테스트를 하자 판막은 전과 달리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훌륭해.'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라와 물아일체를 이룬 채 판막 성형술을 끝냈다.

거기에 매서운 칼날 효과까지 받았으니 경과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저장된 동영상의 경우 shunt 수술이 없었다.

페동맥 분지 협착이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즉 지금부터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수술을 헤쳐 나가야 한다.

"미스터 최. 응급상황입니다. 폐혈류량이 급속도로 증가합니다. 바이탈 비정상적으로 상승합니다."

마취의의 보고에 스태프들이 술렁거렸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불길한 전자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니, 왜! 수술은 완벽했는데."

"수술 시간도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어요. 인공심폐기로 인한 부작용이 올 만한 수준도 아닌데."

로버트와 엠마가 초조함을 드러냈다.

이윽고 동료들의 시선이 전부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누가 뭐래도 이번 수술의 집도의는 최기석이다.

수술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인 만큼 모두가 그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기석아, 천천히 생각해 보자.'

최기석은 그동안 읽은 논문들을 떠올리며 해결책을 강구했다.

어딘가에는 분명 답이 있다. 의진대에 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읽은 논문만 해도 한 트럭이 될 정도니까.

"미스터 최! 빨리 결정을!"

보다 못한 마취의가 커튼 바깥으로 나와 그를 재촉했다.

바이탈과 혈류량이 수직상승하면서 점점 최기석의 목줄을 죄어왔다.

"잠시만 더 시간을 주세요."

급박한 상황과 달리 최기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자신이 허둥대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이 간다는 걸 수많은 경험으로 알았다.

"미스터 최! 정 모르겠다 싶으면 CPR이라도 해요."

"아직입니다. 조금만 더."

"진짜 답답하네!"

칼이 발을 동동 구르며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그럼에도 최기석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제이미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수술은 흠잡을 곳 없이 끝났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상황일 벌어진 걸까.

의문이 점점 깊어지는 가운데 그동안 읽은 논문들이 촤르륵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해 보는 낯선 경험.

띠링!

[심장의 지휘자 스킬의 특수효과 혜안(慧眼)이 발동되었습니다.]

[혜안(慧眼): 30퍼센트의 확률로 응급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릅니다. 해결방법의 구체적인 방법과 다양성은 그동안 읽은 논문에 비례합니다. 발동 횟수는 일일 1회입니다.]

알림과 함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폐혈류량이 증가한 건 판막 수술이 잘 됐기 때문이에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혈류의 흐름이 갑자기 증가해서 급성 심부전증과 고혈압 증상이 함께 온 거라고요. 니트로글리세린 IV로 원 앰플 주고 도부타민하고 이뇨제 함께 주세요."

"네!"

최기석의 지시에 엠마가 재빠르게 약물 처치에 나섰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수술이 일시 중단되었다.

스태프들은 오매불망 환자 감시 장치만 바라보며 경과가 좋아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이십 분이 지나자 제이미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불안정하던 바이탈이 요람처럼 잠잠해졌다.

"휴우…… 십 년 감수했네."

로버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미스터 최. 폐동맥 협착 수술을 하다 보면 이런 케이스도 있나요? 저는 처음 경험하는데."

"저도 처음입니다."

그의 답변에 스태프들이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그럼 어떻게 처치법을 알았죠?"

"예전에 본 논문이 떠올라서요. 제때 생각해 낸 게 다행이었습니다."

최기석이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심장의 지휘자 스킬에 도움을 받아서 그런 걸까.

비록 수술실에 스승은 없지만 스승과 함께 집도 중이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바이탈을 잡았으니 계속 가죠. 다들 지금처럼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스태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윽고 shunt 수술과 폐동맥 분지 협착 수술이 재개되었다.

최기석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처치에 나섰다.

메스와 니들홀더를 쥔 손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응급상황을 잘 이겨 내면서 처치에 자신감도 붙었다.

제이미에게 건강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EOB 평가로 수술을 미룬 벤슨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감정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처치가 빠르고 정확해졌다.

클라라와 물아일체가 끝났음에도 최기석의 후반부 수술은 그녀와 필적할 수준에 올라섰다.

찰칵!

경쾌한 가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지막 매듭을 자르면서 여섯 시간 가까이 진행된 폐동맥 협착증 수술이 종료되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제이미의 상태와 경과는 양호.

수술은 한마디로 깔끔했다.

의술의 신이 나타나도 꼬투리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짝. 짝. 짝. 짝.

뒷정리를 하고 참관실을 올려보자 참관 중이던 스태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다.

들릴 리 없는 박수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느낌.

최기석은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수술실을 떠났다.

모두의 걱정 속에 강행한 첫 무대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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