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89화 (288/407)

끝나지 않은 도전 (3)

"포상금과 유급휴가라네."

파커의 설명에 따르면 포상금은 오천 달러고 유급휴가는 9박 10일이다.

그중 휴가는 며칠 단위로 끊어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번 달 우수 직원 표창은 당연히 자네라네. 참고로 조만간 방송국과 연락해서 인터뷰를 따고 자네 기사도 엄청나게 나가게 될 거야. 어때?"

"네. 감사합니다."

최기석의 대답은 지극히 건조했다.

사실 그에게 돈과 포상휴가는 썩 매력적인 보상이 아니었다.

돈은 통장에 썩을 정도로 넘쳐 났고 휴가가 있다고 해도 쉴 여력은 없었다.

"괜찮으시다면 조만간 코드 블랙 지침을 개편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건 후 지침을 읽어 봤는데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스태프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건은 벌써 진행 중이야. 코드 블랙이 다시 발생하면 미스터 최가 활약할 수 있게 만들어 놨지. 한 번 더 응급실 스타가 되는 거라고."

파커가 껄껄 웃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기석이 운을 뗐다.

"떠나기 전에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말해 봐."

"메이죠와 MHC의 핵심 가치는 환자 중심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부병원장님이 추진하는 사업이 정말 환자들을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파커의 핵심 프로젝트는 크루즈 건강검진과 외래진료로봇 셜록.

이 두 가지다.

공교롭게도 이것들은 환자보다는 금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마추어 같은 생각이군. 내 사업이 정말 환자와 관련 없다고 생각하나?"

파커의 눈빛에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

"진료 로봇은 나중으로 두고 크루즈 사업부터 보자고. 크루즈 사업은 자네 생각과 달리 환자 중심의 결정판이야. 이유가 뭔지 아나?"

"……혹시 V.

I.

P 환자 중심입니까?"

"빙고! 미스터 최는 눈치가 빨라서 좋단 말이지. 요즘 의료계 트렌드는 돈 많은 환자들을 확 끌어오는 거라고. 그러니까 V.

I.

P 환자를 유치하는 사업은 꼭 필요해. 오히려 지금이 늦은 거라고."

"……."

"외래 진료 로봇은 조금 더 간접적이긴 하지. 의사의 인건비를 낮춤으로써 생긴 비용을 환자에게 서비스로 돌려줄 테니까. 뭐. 낙수효과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군."

"제 이해력이 부족한 탓일까요? 부병원장님의 말씀이 제게는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최기석이 표정을 감추며 말을 계속했다.

"크루즈 사업이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인원 공백이 생깁니다. 이로 인해 MHC의 외래 및 입원환자에 대한 진료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

"외래진료로봇 케이스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낙수효과를 말씀하셨는데 절감한 의사 인건비가 정말 환자에게 쓰일 수 있습니까? 환자를 구체적인 안건은 마련해 두신 겁니까?"

최기석의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고 파커는 대답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니까 자네는 내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가?"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고민은 필요 없어."

파커가 딱 잘라 말했다.

"고민은 나를 포함한 윗선에서 할 테니까. 밑에 사람들은 그저 따르기만 하면 돼.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만 가 봐."

파커의 손짓에 최기석이 집무실을 떠났다.

이윽고 파커가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

* * *

파커와의 미팅을 끝낸 최기석은 서둘러 외래진료실을 찾았다.

다행히 대기 중인 환자는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야사다가 그의 환자를 대신 진료했기 때문이다.

"닥터 최. 진료 시작할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은 간호사와 대화를 마치고 진료의자에 앉았다.

MHC에 와서 진행하는 두 번째 외래진료.

그래도 경험이 한 번 있어서 예전보다 마음이 편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말하자 병약해 보이는 남자가 진료 의자에 앉았다.

남자의 이름은 잭스.

피부는 백옥 같은 빛을 띠었지만 몸이 너무 말랐다.

조금 과장해서 해골 뼈다귀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반가습니다. 잭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죠?"

"이틀 전부터 기침할 때 마다 계속 피가 나요."

"토한 피의 색깔은 어떻게 됩니까?"

"빨간 색이고 가래가 같이 섞여서 나와요. 날이 갈수록 토하는 피의 양이 많아져서 걱정돼요. 콜록 콜록!"

때마침 기침을 하는 잭스.

최기석은 양해를 구하며 잭스의 손을 살폈다.

과연 그의 말대로 가래와 빨간 피가 섞여 있었다.

"여기 휴지 있습니다. 손 소독제도 사용하시고요."

"아. 네. 그런데 선생님 저 정말 괜찮은 건가요? 혹시 암이라던가……."

"우선 검사를 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흉부 엑스레이 검사와 피검사 등의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뵙죠."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진료실을 나가는 잭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객혈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의 경우 감염성 객혈을 앓고 있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진단명에 기관지 확장증이 떠올랐기에.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다.

잭스가 나간 후 여자 환자가 들어왔다.

환자의 이름은 실비.

실비는 임신 20주 차의 임산부다.

산부인과 외래진료를 받다가 초음파 상에 이상이 발견되어 흉부외과까지 찾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케이스도 있네.'

초음파 결과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차차 일그러졌다.

실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큰 문제가 있었다.

태아가 선천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케이스는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검사에서 드러난 두꺼운 심장판막, 좁은 입구.

무엇보다 돔형을 그리고 있는 대동맥판막이 가장 큰 증거다.

"닥터 최. 산부외과 선생님이 우리 아이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실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다.

'출산 후에 아이가 심장판막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야 하나?'

그의 머릿속이 갖은 생각으로 넘쳐났다.

처음 경험하는 케이스라서 쉽사리 답변을 내놓을 수 없었다.

"왜 말씀이 없으세요?"

"아주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급한 전화가 와서."

최기석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진료실을 나온 후 전화를 걸었다.

"네, 교수님. 기석입니다."

[무슨 일이야?]

"임산부가 외래진료를 보러왔습니다. 초음파 검사 결과 태아가 선천성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앓고 있는 게 확인됐는데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케이스 제대로 걸렸네?]

카타리나의 말투에 장난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진단명 말하고 입원시켜. 입원 중에 아이 심장을 고칠 거니까.]

"출산 후가 아닌 겁니까? 임신한 상태에서 처치를 하는 건가요?"

최기석이 놀라서 되물었다.

출생아가 아닌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의 심장판막을 건드린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가 싶었다.

[가능하니까 걱정 마. 나 지금 수술 들어가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진료실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검사를 확인한 결과 태아에게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발견되었습니다. 처치를 위해 환자분이 입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 심장에 정말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최기석은 실비를 잘 설득한 후 입원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 시간, 커피를 마시며 이번 케이스를 되짚어 보았다.

태아에게 시행하는 대동맥판막 처치라…….

카타리나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더불어 아직 스스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자각이 들었다.

"선생님. 이번 환자는 특별히 신경 좀 써 주세요."

외래간호사가 환자보다 먼저 진료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인도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왔습니다. 인도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아이인데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아요."

"알겠습니다. 삼 분 정도 있다가 들여보내 주세요."

최기석은 환자가 사전에 등록한 의료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갈수록 어두워지는 그의 얼굴.

오늘 외래진료의 컨셉은 고난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얼마 후 노크 소리와 함께 환자와 보호자가 자리를 잡았다.

환자의 이름은 라훌이고 부부의 이름은 각각 산제이와 라이다.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산제이와 라이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인도식 악센트가 어색했지만 말을 알아듣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라훌이 많이 아파요. 인도에서 진료받았는데 확장성 심근병증이라고 했어요."

"저도 확인했습니다. 라훌의 진단명은 확장성 심근병증이 맞습니다만…… 우선 간단한 검사를 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라훌에게 다가가 청진기로 심음과 폐음을 청취했다. 그리고 부부에게 문진을 하여 라훌의 자세한 상태 파악에 나섰다.

"선생님. 치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라이가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MHC 오기 전에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해줄 게 없다면서 MHC를 추천했어요."

"……그랬군요."

최기석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라훌이 앓고 있는 확장성 심근병증.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심장근육에 문제가 생기고 이 문제가 점점 깊어지면서 심부전으로 발전하는 질환이다.

라훌의 경우 심근병증을 일으키는 뚜렷한 원인이 없었다.

관상동맥이나 대동맥에 문제가 있다는 등, 원인이 뚜렷하다면 그것을 치료하면 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 경우 심장이식 외에 다른 치료가 없었다.

'속셈이 너무 뻔하잖아.'

최기석은 제임스 홉킨스 심장 클리닉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지금은 EOB(Evaluation Of Best heart clinic, 최고의 흉부외과 평가)기간이다.

그래서 라훌처럼 수술 중 사망확률이 높은 환자를 받지 않은 것이다.

소아 심장이식은 공여자를 찾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와 다를 바 없다.

이식 대기 중에 환자가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소아 심장이식 자체의 리스크도 워낙 컸고 말이다.

"지금으로써는 심장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우선 라훌을 입원시키고 상태를 안정화시키겠습니다. 그리고 공여자가 나타나면 심장이식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부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고 최기석은 그들을 지켜보며 쓴 입맛을 다졌다.

확장성 심근병증과 소아 심장이식이라…….

그날 오후.

외래 진료를 끝낸 최기석은 곧바로 흉부외과 의국을 찾았다.

"와우. 뉴튜브 영웅이 왔네?"

"미스터 최는 영상 봤어요?"

찰스와 엠마가 눈을 빛내며 그를 응시했고 최기석은 찰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파커 부병원장님까지 봤어."

"뭐라도 챙겨 준데?"

"포상금이랑 유급휴가."

"부럽다. 부러워. 뉴튜브 스타에 포상까지 받다니……."

찰스가 팔꿈치로 장난스럽게 그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엠마가 입을 열었다.

"내일 메이죠에서 흉부외과 의사가 온대요. 제임스 홉킨스로 간 미스터 왕과 다른 레지던트를 대신해서요."

"잘 됐네요. 안 그래도 크루즈 지원 때문에 인원도 부족할 텐데."

"기왕이면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왔으면 좋겠는데. 혹시 누가 오는지 알아요?"

"그건 모르겠어요."

엠마가 휘휘 고개를 저었다.

드르르르륵.

의국 문이 열리고 카타리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모여 있었네?"

"교수님! 태아 대동막판막 협착증 케이스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 하러 왔어."

카타리나가 빙긋 웃으며 최기석의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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