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88화 (287/407)

끝나지 않은 도전 (2)

인공심폐기 연결 후 정중흉골 절개술이 이어졌다.

최기석이 목 아래부터 명치 부위까지를 가르자 찰스가 톱으로 환자의 흉골을 절단해 나갔다.

빠드드득. 빠드드득.

"이거 직접 해 보는 건 처음인데. 느낌이 완전 별로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거야."

"뭐. 그래야겠지."

흉골이 절단이 끝나고 환자의 가슴에 스페츌라(견인기의 일종)를 장착했다.

"출혈 때문에 수술 부위가 잘 안 보인다. 석션부터 가자."

"오케이."

치이이이익.

찰스와 제레미가 피를 흡입하자 대동맥과 그 주변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골치 아프네. 드바키 I형 타입이야."

제레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드바키 I형 타입은 상행대동맥에서 시작된 박리가 대동맥궁과 하행대동을 침범한 케이스로 수술하기 까다로운 축에 속했다.

"겁먹지 마. 교수님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클램프."

최기석은 혈관겸자를 이용해 찢어진 혈관 상단 부분을 묶어 주었다.

덕분에 출혈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이탈은?"

"우측 상완에서 80/50mmHg, 좌측 상완에서는 120/70mmHg. 맥박은 양측 요골동맥 모두 분당 46회. 호흡수는 분당 28회, 체온은 37도입니다."

"다행이다. 아직 괜찮네."

인턴의 보고에 최기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어떻게 할 건데?"

"우선 찢어진 혈관을 전부 잘라 내고 거기에 인조혈관을 연결해야지."

"산 넘어 산이구나. 혈관 문합을 우리끼리 한다니."

"메스."

찰스의 푸념을 뒤로한 최기석이 문합을 위해 찢어진 혈관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그 섬세한 동작에 주변 혈관과 대동맥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취의 선생님. 저체온 요법 시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마취의가 저체온 요법에 나섰다.

저체온 요법이란 수술대에 쿨링매트를 깔고 특수냉각관을 혈관에 삽입하여 체온을 떨어트리는 방법이다.

대동맥 치환술을 할 경우 대동맥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는 장기의 혈류가 차단된다.

이로 인해 환자의 뇌와 척수가 데미지를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저체온 요법이 사용한다.

"저체온 요법 타이밍을 잘 아시네요. 미스터 최가 말을 안 했으면 제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대동맥을 치료해도 뇌와 척수에 데미지가 가면 아무 의미 없잖아요. 게다가 주치의니까 더 신경 써야죠."

"믿음직스럽네요."

마취의가 눈웃음을 지었다.

저체온 요법이 끝난 후 본격적인 인조혈관 치환술이 시작되었다.

"4-0 Prolene."

끼기기긱.

최기석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찰스와 제레미가 포셉으로 인조혈관과 기존 혈관을 잡아 주고 있었다.

'나라면 할 수 있어.'

기합을 단단히 넣고 문합에 나섰다.

우선 인조혈관의 끝을 찢어진 혈관의 끝 부분과 연결시켜 나갔다.

혈관이 얇고 가늘었지만 지난 몇 년 간 피나게 수련한 그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손놀림이 둔한 듯했지만 속도와 정확도가 갈수록 올라갔다.

더욱 놀라운 것.

그것은 제레미가 미세하게 손을 떨었음에도 그마저도 예상했다는 듯 문합을 해치워 나간다는 점이다.

'참 나.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찰스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내심 지금까지의 처치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타리나를 기다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건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대동맥 박리에 대한 지식은 부족할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최기석의 문합에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 말이다.

찰칵!

파죽지세로 이어진 인조혈관 치환술이 끝났다.

"땀 좀 닦아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소독간호사가 거즈로 그의 얼굴과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이제 대동맥판막 치환술과 하행대동맥 치환술이 남은 건가?"

"맞아."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바짝 마른 입술과 희미하게 떨리는 손.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를 받고 있음에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행대동맥 치환술의 경우 잘못하면 환자의 신경을 손상시켜 마비를 초래할 수 있었다.

최기석은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지이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카타리나가 허겁지겁 스태프에게 다가왔다.

"환자는?"

"출혈 부위 케어하고 상행대동맥 치환술을 막 끝냈습니다."

"벌써 치환술까지?"

카타리나가 놀란 토끼눈을 했다.

출혈만 잡았어도 칭찬하려 했건만 벌써 처치의 30퍼센트를 끝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환자의 대동맥을 살폈다.

출혈은 완벽하게 컨트롤 했으며 인조혈관 문합은 깔끔하게 끝났다. 최악의 경우 대동맥 파열로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었건만 신규들이 한 건 해낸 셈이다.

"잘했어. 기대 이상이야. 인턴은 그만 가 보고 다들 한 자리씩 내려."

"알겠습니다."

카타리나의 지시에 최기석은 제1보조로, 찰스는 제2보조로, 제레미는 제3보조로 자리를 바꿨다.

"지금부터 하행대동맥 치환술을 진행한다. 5-0 Prolene."

카타리나가 본격적인 처치에 나섰다.

달려오느라 숨이 벅찰 텐데도 문합에는 손톱만큼의 빈틈조차 없었다.

6센티미터의 내막피편 절제과 늑간동맥의 문합.

인조혈관과 하행대동맥의 연결 및 그 과정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elephant trunk 술식까지…….

MHC 최고의 여의사라는 수식어는 과연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동맥 박리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최기석이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피자 환자의 상태는 응급, 경과는 양호로 떠올라 있었다.

"순환정지 80분에, 대동맥 차단시간 100분이면 훌륭해. 다 너희들이 잘 버텨 준 덕분이야."

"수고하셨습니다!"

"배고프지? 의국에서 간식이라도 먹자."

카타리나가 먼저 로젯을 나가고 그 뒤를 스태프들이 따랐다.

여린 그녀의 뒷모습이 최기석에게 순간적으로 거인처럼 듬직해 보였다.

그녀가 좋은 타이밍에 나타났을 때 솔직히 안도했다.

더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집도의가 주는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직 멀었구나. 분발해야겠어.'

최기석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각오를 다졌다.

* * *

다음 날.

오전 회의와 회진이 무사히 끝났다.

모처럼 여유시간이 생겼기에 병실을 돌며 환자를 살폈다.

늑골 골절로 고생하는 케빈은 여전히 경과가 좋지 않았다.

너스바 수술을 받으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싶었다.

반면 식도이완증으로 풍선확장술을 받았던 제롬은 상태가 좋았다.

조만간 퇴원 계획을 세워도 문제가 없을 듯싶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제이미는 내일 수술이 잡혀 있었다.

집도의는 벤슨.

소아심장외과 수술의 전문가로 팀 하트비트의 지도교수다.

최기석은 그의 수술에 제2보조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

낯익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야사다가 서 있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어제 당직이 아주 화려했다고 들었다만……."

"네. 정신없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난생 처음 코드 블랙을 경험하고 대동맥 박리 수술에도 들어갔습니다."

"일복이 넘쳐 나는군. 나와 닥터 송 말고 의술의 신까지 자네를 굽어 살피는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야사다가 껄껄껄 웃었다.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부병원장님이 자네를 찾더군. 어서 가 봐."

"파커 부병원장님 말씀입니까?"

최기석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파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불쾌감 먼저 생겨났다.

그 능구렁이 같은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보자고 하는 걸까.

"전 지금 외래진료 보러 가야합니다만……."

"자네 환자를 잠깐 내 쪽으로 돌려놓으면 돼. 걱정 말고 가 봐."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그길로 부병원장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집무실로 들어가니 파커는 소파에 기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 미스터 최. 단둘이 만나는 건 오랜만이지?"

파커가 씽긋 웃으며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고 최기석은 자리에 앉아서 집무실을 훑었다.

파커의 집무실은 화려했다.

바닥에는 고급 카펫이 깔렸으며 벽에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업무 책상을 비롯한 가구들도 전부 '나 값 비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집무실은 어떤가?"

"이렇게 화려한 집무실은 처음 봅니다."

"칭찬으로 듣지. 좀 더 구경하고 있어. 커피 한 잔 타 줄 테니까."

이윽고 파커가 직접 내린 원두를 최기석 앞에 내려놓았다.

"커피 향이 정말 좋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특별히 수입한 물건이니까."

최기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윽한 향이 온몸에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커피에는 사람을 무장 해제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러면 안 돼!'

최기석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몽롱한 감각을 날려 버렸다.

파커의 집무실은 호랑이 굴과 같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면 어디 한군데를 크게 물릴지 몰랐다.

"내가 자네를 호출한 이유가 궁금하겠지?"

"네. 오는 내내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병원장님 호출을 받는 일이 흔하진 않으니까요."

최기석의 대답에 파커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자네를 잡아먹으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말이야."

"……."

"자네를 부른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칭찬을 하기 위해서야."

"칭찬이요?"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환자는 그렇게 챙기면서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완전 까막눈이군. 이걸 보게."

파커가 휴대폰을 내밀자 뉴튜브 동영상이 나왔다.

"이…… 이건?"

동영상이 촬영된 장소와 등장하는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그래. 이 동영상은 어제 코드 블랙이 벌어졌을 때 우리 응급실을 촬영한 거야. 진료 받은 환자가 하도 신기해서 찍어 봤다는 군."

파커의 설명이 이어졌다.

동영상의 제목은 진짜 의사.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 동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 화제가 될 영상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 판단은 자네가 아니라 영상을 보는 사람의 몫이지. 그리고 어제 저녁에 올린 영상인데 조회수가 벌써 100만이 넘었어. 찍은 환자가 뉴튜브 다이아 버튼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군."

"……."

"더욱 중요한 건 이 동영상의 제목이 된 게 바로 자네라는 점이야. 실제로 동영상 앵글도 환자를 분류하는 자네에게 맞춰져 있지."

"……그렇군요."

최기석은 카터가 호출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다이아 버튼 뉴튜버의 구독자가 천만이니까, 조회수 천만은 깔고 가는 셈이야. 앞으로 이슈가 될 확률도 크지. 미스터 최. 아주 잘했어. 덕분에 MHC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갔다고."

"감사합니다만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파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동영상을 보니 자네의 활약을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자그마한 보상을 할까 해."

"보상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파커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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