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84화 (283/407)

시작이 절반 (5)

"헤드 치프께서 참관 오실 줄은 몰랐어요."

카타리나가 눈을 깜빡이며 야사다를 응시했다.

"미스터 최라서 그런 건가요? 레지던트의 처치, 그것도 고난도 처치가 아닌 풍선확장술인데……."

"아니라고는 못하겠군."

"미스터 최에게 기대가 크신 것 같습니다."

"저 친구가 날 기대하게 만들었어. 전담 교수인 자네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을 텐데?"

"동감입니다."

카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규 레지던트들이 MHC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 최기석은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신기에 가까운 봉합 솜씨, VATS의 제1보조, PCI의 부러진 와이어 제거 등등.

그는 이미 레지던트를 초월했다는 게 동료 및 스태프들의 평가를 들었다.

"진료부원장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CABG까지 집도했다는 군."

"CABG요? 미국 의료계가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레지던트에게 CABG를 맡기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한국에서……."

"세이버 팀 소속이었는데 팀의 서포팅이 있었나 봐."

"와우. 갈수록 놀랍네요."

카타리나는 모니터 속 최기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대체 그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앞으로 제임스 홉킨스 쪽을 조심해야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잘 키워 놓은 레지던트를 날름 뺏겨 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면목이 없습니다."

"자네 잘못이 아니야. 클라라가 설마 이런 식으로까지 나올 줄 누가 알았나? 바보처럼 똑같은 수법에 다시 당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안 그래도 교수들이 팀원들 케어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개인면담도 시작할 거고요."

카타리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헤드 치프,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뭐지?"

"얼마 전 부병원장님이 의료관광 차원에서 크루즈 진료를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안건은 정말 통과되는 겁니까?"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어.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있겠지"

야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크루즈 진료.

MHC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의료관광 상품이다.

1박 2일 코스로 유람선이 허드슨 강을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MHC 스태프들이 해외 또는 국내 유수의 인물들에게 건강검진을 하는 방식이다.

"그럼 일정 때마다 스태프들을 빼 줘야겠군요."

"내가 싫은 게 바로 그거야! 안 그래도 인력이 딸려서 죽겠는데 그깟 의료관광에 스태프들을 동원하라니……. 그딴 걸 하고 싶으면 MHC가 아니라 메이죠에 남았어야지."

"MHC에서 크루즈 진료를 하는 건 저도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안건이 통과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 인간이 부병원장이 된 후로 MHC가 거지같이 돌아가고 있어. 외래진료로봇 셜록도 그렇고 말이야."

툴툴거리던 야사다가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미스터 최가 처치를 시작했군."

* * *

'좋아. 잘하고 있어.'

최기석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가이드 와이어를 삽입했다.

PCI를 한 번 해 봐서 그런지 작업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과 삽입을 서두르지 않는 것.

PCI의 핵심은 이 두 가지다.

이것만 지키면 가이드 와이어가 혈관을 손상시킬 일은 없었다.

"와이어가 식도에 도착했어."

"오케이. 확인. 식도협착 부위는 직경 4밀리미터 정도."

"그럼 풍선 카테터는 어떻게 준비할까?"

"직경 20밀리미터, 길이 7센티미터로."

"알았어."

최기석은 가이드 와이어를 따라서 찰스 받은 풍선 카테터를 삽입했다.

경쾌한 손놀림에 풍선 카테터가 탈 없이 식도에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운 상황.

지금부터 닥칠 일이 가장 큰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미스터 최."

"……."

"미스터 최. 왜 말이 없어? 조영제 투입해야지."

"아, 미안. 협착 부위를 살피느라."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다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체력: 3/10

주 증상: 삼킴곤란 / 음식물 역류 / 흉통

아픈 부위: 식도

진단명: 식도이완불능증

현재 상태: 불량

경과: 비응급

과거력: 역류성 식도염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극심한 조영제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랬다.

환자는 조영제 부작용을 앓는 체질이다.

최기석이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풍선확장술을 걱정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조영제란 방사선 검사 시 해당 부위를 잘 볼 수 있게 해 주는 물질이다. 그런데 간혹 환자 중 이 조영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제롬이 해당 케이스에 속했다.

조영제의 일반적인 부작용으로는 호흡곤란 및 부종 등이 있는데 심할 경우 신장 기능 장애,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환자가 사망하는 케이스까지 존재했다.

게다가 최기석을 더욱 긴장하게 만든 것.

그것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알아낸 극심한 조영제 부작용이라는 문구다.

"레이비스트와 생리식염수와 1:1로 섞어서 주입해 줘."

지시를 끝낸 최기석이 다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답답하고 불안했다.

제롬에게 조영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다.

제롬 본인도, MHC의 스태프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심정이었다.

'괜찮을 거야. 전 처치는 충분했으니까.'

최기석은 찰스의 사인을 받고 조영제를 투입했다.

꿀꺽.

마른침으로 목젖이 출렁거렸다.

식도 부분에 하얀 음영이 차오르는 순간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두 눈은 불안하게 모니터와 환자 감시 장치를 오갔다.

"너 답지 않게 왜 이렇게 긴장해? 처치 다 끝났잖아."

"오늘은 느낌이 안 좋아서."

최기석은 환자를 살피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 전 각종 경구약과 주사를 투입한 덕분에 조영제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제롬의 바이탈은 평온한 바다와 같았다.

우려했던 불상사를 피해 간 것이다.

순간 빳빳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확장 시작할게."

최기석은 압력계를 보며 식도에 위치한 풍선을 확장시켜 나갔다. 삼 기압에 약 일 분간 팽창을 유지했으며, 이를 삼 분 동안 반복했다.

처치가 끝나자 식도가 넓어졌다.

풍선이 부풀어 오르면서 식도의 협착 부위를 밀어냈기 때문이다.

"처치는 끝났고. 조영술 한 번 더 해서 합병증 관찰한다."

"알겠습니다."

찰스가 시원하게 검사 준비에 나섰다.

문제없이 끝난 두 번째 조영술.

스태프들이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마무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최기석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또 왜 그래? 확장도 제대로 됐고 식도천공도 없잖아."

"잠깐만."

최기석은 여전히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찰스의 말이 맞았다.

식도 조영술 결과 풍선확장술의 부작용인 식도천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치 전에 느꼈던 심장의 욱신거림은 여전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육감이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체 제롬의 식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고민이 깊어 가는 가운데 해결책이 뇌리를 번뜩 스쳤다.

"미안한데 조금만 더 시간을 주라."

최기석은 용의 눈을 사용한 후 모니터를 보며 입체화 모드를 펼쳤다.

위이이이잉.

귓가에 울리는 이명.

흔들리는 시야.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제롬의 식도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나타났다.

실전에서 처음 써 보는 입체화 모드와 이것이 보여 주는 영상.

그 위력에 최기석은 한순간 넋을 잃었다.

'참 나. 이럴 때가 아니지.'

줌 인 모드로 제롬의 식도를 유심하게 살폈다.

그러던 중 식도 상단부에 위치한 작은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천공은 아니지만 천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부위였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이 이것을 잡아내지 못한 이유, 더불어 육감이 보낸 신호를 이제야 깨달았다.

"간단한 처치 하나만 더 하자."

"처치? 문제가 있어야 처치를 하지."

"나만 믿어. EZ 클립하고 고무밴드 준비해 주세요."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도구를 받은 후 추가 처치에 나섰다. 우선 내시경 도구에 EZ 클립을 설치하고 이를 해당 부위에 위치시켰다.

'얘. 왜 이러는 거야.'

찰스는 손을 놓고 최기석을 지켜보았다.

식도 조영술을 통해 환자에게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처치를 고집하는 최기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찰스. 여기 보여? 작은 홈이 있잖아."

최기석의 검지가 모니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어디? 난 안 보이는데?"

"잘 봐봐."

오만상을 써서 모니터를 응시하는 찰스, 그의 얼굴에 곧 당혹감이 서렸다.

"뭐…… 뭐야 이게!"

"제롬은 식도이완불능증뿐 아니라 역류성 식도염까지 앓았어. 아마 그때 생긴 상처일 거야. 워낙 작아서 조영술로 안 나타난 거지."

최기석은 능숙하게 내시경 봉합에 나섰다.

우선 클립으로 벌어진 조직을 당겨서 붙여 주었다.

이어서 조직 내 공기를 흡입하여 식도 조직으로 구멍을 채웠고 고무밴드 결찰로 봉합을 마무리 지었다.

'휴우…… 끝났다.'

처치 후 제롬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자 상태가 불량에서 보통으로 돌아왔다.

식도천공을 예방한 덕분이다.

띠링!

[일반 임무, 풍선확장술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 P.

P 및 한계의 돌 한 개를 제공합니다.]

[내시경 수술 마스터리가 생성되었습니다.]

[내시경 수술 마스터리(1/1): 내시경으로 진행하는 모든 수술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흉강경과 복강경 및 로봇 수술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함께 상승합니다.]

[환자 바라기(+10) 효과로 체력을 대폭 회복합니다.]

[일반 업적, 먼저 아는 것의 힘 달성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400 P.

P와 평판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쏟아지는 알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뒷정리에 나섰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라운딩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상태창을 띄우고 아이템 창에 있는 한계의 돌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모은 한계의 돌은 육십여 개, 드디어 스킬 돌파를 시도할 때가 왔다.

현재 스킬 돌파가 가능한 스킬은 살려야 한다와 양손잡이.

그는 두 가지 중 살려야 한다 스킬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

영혼의 눈물에 있는 초각성 효과를 이용하면 봉합 솜씨는 얼마든지 상승시킬 수 있었기에.

[한계의 돌을 이용해 스킬 돌파를 시도하시겠습니까? 한계의 돌 오십 개가 소모됩니다.]

휘이이이잉.

고개를 끄덕이자 눈부신 빛이 시야를 휘감았다.

잠시 후 '살려야 한다' 스킬이 '반드시 살린다'로 변해 있었다.

[반드시 살린다 MAX]

- 응급환자, 난이도가 높은 환자를 처치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모든 스탯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 각성 CPR, 각성 T.

A 환자 처치, 각성 산과처치 등의 특수모드를 동료에게 걸어줄 수 있습니다. 버프 지속시간은 두 시간입니다.

- 신규효과 매서운 칼날이 추가되었습니다.

- 매서운 칼날: 모든 처치 정확도와 속도가 두 배로 상승합니다. 처치로 환자를 회복시킬 경우 환자의 회복속도가 세 배 상승합니다. 매서운 칼날의 지속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이만하면 뭐……."

최기석은 설명을 확인한 후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스킬 돌파를 하자 버프 지속시간이 한 시간 더 증가했고 신규효과 매서운 칼날이 추가되었다.

일반 업무에서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겠지만 수술이나 스크럽할 때는 큰 도움이 되리라.

드르르르륵.

갑자기 휴게실 문이 열리고 왕진평이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한참 최기석의 눈치를 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 여기 있었네?"

"아. 네 잠깐 쉬고 있었어요."

"미스터 최가 풍선확장술 중이라서 말 못했는데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 사실 나……."

왕진평이 그의 시선을 피한 채 말을 계속했다.

"제임스 홉킨스에 가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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