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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80화 (279/407)

시작이 절반 (1)

'역시 미스터 최야.'

엠마는 최기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흉강경 수술은 일반 수술보다 봉합이 어렵다.

수술도구를 투관침 안으로 밀어 넣은 후 봉합을 진행하는데 시야가 좁을뿐더러 손을 움직이는데 큰 제약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기석의 봉합은 일반 봉합술과 큰 차이가 없었다.

"엠마. 뭐해요?"

"아, 미안해요. 바보같이."

찰칵.

엠마가 가위로 남은 실을 자르자 최기석이 다시 봉합에 나섰다.

계속되는 단순 단속 봉합.

상처를 한 땀 한 땀 꿰매 주는 가장 기본적인 봉합이자 써전의 봉합 솜씨를 알 수 있는 척도다.

"결찰이 좋고 매듭의 간격도 균일해."

잠자코 있던 제레미가 운을 뗐다.

"괜히 봉합 연습 면제를 받은 게 아니었어."

"이해해 줘서 고맙다."

최기석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봉합을 이어갔다.

본래 삼십 분은 걸릴 횡격막 복원술이 단 십 분 만에 종료되었다.

"우측 횡격막은 엠마가 봉합해 볼래요?"

"제…… 제가요?"

"엠마라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속도가 조금 더디더라도 제가 빨리 끝내서 별문제 없어요."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쩌죠? 전 VATS 경험이 없는데."

엠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에요. 기회가 있을 때 미리 경험하는 게 좋을 걸요?"

"……그럼 해 볼게요."

최기석과 자리를 바꾼 엠마가 수술 도구를 손에 쥐었다.

쿵쿵쿵쿵.

심장이 뛰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좁아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긴장하지 말고 마음 차분하게 먹어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본인이 본인을 믿지 못하면 실력 발휘 못해요."

"네."

엠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투관침 안쪽으로 수술 도구를 넣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질적인 과정이지만 마음을 가다듬으며 봉합에 나섰다.

'소질이 있어.'

최기석은 엠마의 안정된 봉합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엠마는 그와 마찬가지로 봉합이 취미다.

그동안 쌓인 봉합 내공은 무시무시했고 이를 실전에서 발휘할 수 있다면 자신의 뒤를 잇는 루키가 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양측 횡격막 복원이 끝났다.

"휴우……."

엠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폈다.

"봐요. 엠마도 잘하잖아요. 제 봉합이랑 별 차이 없는데요?"

"그런가요?"

"골절 부위 고정하면서 마무리 지을게요. 4-hole Sternalock(고정기의 종류)."

최기석은 10번과 11번 늑골에 고정기를 착용시킨 후 수술 부위를 정리했다.

띠링!

[팀 CPR 스탯 중 단결력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엠마와의 라포가 4단계로 상승했습니다.]

[엠마(의료인) - 4단계: 신뢰]

[보통 임무, 첫 번째 비디오 흉강경 수술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 P.

P와 한계의 돌 한 개를 제공합니다.]

알림이 연달아 울렸지만 최기석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너스바 수술을 앞둔 케빈에게 이런 불상사 생겼다는 사실이 그저 아플 따름이다.

"닥터 최! 수술, 수술은 어떻게 됐죠?"

케빈의 보호자가 벌떡 일어나 최기석에게 다가왔다.

"무사히 끝났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이다."

보호자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다 내 잘못이에요. 하필 그때 자리를 비워서……."

"너무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우리 케빈의 오목가슴 수술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금으로써는 확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일단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 우리 케빈이 다른 아이처럼 평범하게 지내는 걸 보고 싶어요."

"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보호자와 대화를 마치고 동료들과 흉부외과 병동으로 돌아갔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의국에서 입원환자 오더를 입력하고 있었다.

일과가 끝날 무렵이라 그럴까.

불같았던 응급실 호출과 병동 일이 줄어들었다.

타다다다닥.

처방 입력을 마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오늘 처음으로 갖는 여유시간이 꿀처럼 달콤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는데.'

최기석은 통장에 있는 파워볼 당첨금을 떠올렸다.

통장에는 평생 낭비해도 모자랄 만큼의 돈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의 목표는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는 것.

무엇보다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돈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으음……."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동생에게 레스토랑을 차려 주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당연하게 진행할 일이며 이후에도 많은 돈이 남는다.

다음으로 떠올린 건 한국에 돌아가서 병원을 차리는 일이다.

지금 가진 돈이라면 충분히 중형급 병원 정도는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가 원하는 게 사업이 아니라 치료 분야라는 점이다.

'자선 사업을 해 볼까? 아니면 의공학 쪽에 투자를 해?'

최기석은 고민하던 중 주식 사이트로 들어가 메이죠의 증시를 살폈다.

흉부외과 수련을 마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오 년.

그중 레지던트 수련이 이 년이고 펠로우 수련이 삼 년이다.

그동안 보험을 들어두고 싶었다.

새롭게 부임한 파커와 맞서기 위해선 비장의 무기가 필요했다.

지이이잉.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도중 콜폰이 울렸다.

"네. 교수님."

[최 선생. 오늘 저녁에 스케줄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잘 됐네요. 야사다와 타임스퀘어에서 저녁 먹을 생각인데 어때요?]

"불러주시면 당연히 가야죠."

최기석은 송명진과 저녁 약속을 잡고 통화를 끊었다.

얼마 후 의국을 나와서 한 병실로 들어갔다.

일과가 끝나기 전 한 가지 할 일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최기석의 인사에 침상에 누워 있던 환자가 힘없이 대답했다.

환자의 이름은 제롬.

12가지 과업 임무 중 두 번째 과업과 관련된 환자로 식도이완불능증을 앓고 있었다.

식도이완불능증.

이는 식도 괄약근이 충분히 이완되지 않아서 음식이 식도 내에 정체되고 동시에 여러 가지 질환이 함께 발생하는 질환이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죽을 맛이에요. 가슴이 답답하고 딸꾹질도 계속 나고."

"내일 오전에 내시경 검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검사 결과 확인 후에 아마 풍선확장술을 받을 겁니다."

"믿어도 되죠?"

제롬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요.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서 완전히 엿 먹었다고요. 그 자식들 약물치료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결국 이 꼴로 만들고 말이야."

"혹시 그쪽 진료 내역 갖고 계신가요?"

"안 그래도 어제 아내에게 부탁해서 차트 떼어 오라고 했어요. 보실래요?"

"물론입니다."

최기석은 제롬이 내민 차트를 차분하게 훑었다.

제롬은 제임스 홉킨스에서 보툴리늄 독소 주입법을 받았다.

보툴리늄 독소 주입 시 일시적으로 하부식도 괄약근 신경을 마비시킬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폐색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보툴리늄 치료가 단기적인 치료라는 점.

그리고 제롬이 치료 중 흉통을 호소했음에도 진통제 처방만 추가했다는 점이다.

"닥터 최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병원마다 질환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독소 주입법만을 고집했던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풍선확장술이나 수술이 더 좋거든요."

"어쩐지…… 처음에만 반짝 좋다 했어."

제롬이 이를 갈았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식도이완불능증 환자는 보통 사람보다 식도암을 앓을 확률이 50배 정도 높습니다. 평소에 몸 관리를 잘하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제롬과 대화를 마치고 의국으로 돌아갔다.

인수인계를 끝내고 MHC 로비에 도착하자 대화 중인 송명진과 야사다가 보였다.

"최 선생. 왔어요?"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식사 장소를 결정하던 중이었어요."

"결정하긴 뭘 결정해. 오늘은 무조건 초밥 먹는 날이라고. 내가 살 테니까."

야사다의 강력한 주장에 저녁 메뉴가 초밥으로 결정됐다.

이윽고 세 사람이 택시를 타고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MHC에 오던 중에도 봤지만 타임 스퀘어는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곳곳에 고층건물들이 늘어섰으며 휘황찬란한 전광판과 광고판을 보고 있자면 눈이 아플 지경이다.

택시에서 내린 세 사람이 한 초밥집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간만에 술이라도 한잔할까?"

"수술에서 손 떼니까 좋지? 술도 편하게 먹고 말이야."

송명진의 말에 야사다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딱 그거 하나 좋더군. 자네랑 최 선생은 반주(飯酒)만 해."

"당연히 그래야지. 별수 있나?"

야사다가 최기석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걸로 아는데. 술 마셔도 괜찮나?"

"반주는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심장이식이 발목을 잡았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맞는 말이군. 하긴 샴쌍둥이 수술할 때는 이틀도 꼬박 샜으니까 말이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음식과 안주가 도착했다.

세 사람은 본격적인 이야기꽃을 피워 나갔다.

"최 선생. 수술 연습은 잘하고 있어요? 카데바가 더 필요하진 않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연습을 천천히 하는 중이라서요."

최기석이 대충 둘러댔다.

사실 트레이닝 룸에서 실전 연습을 하고 있어서 카데바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송명진에게 말할 수는 없는 법.

스승의 도움은 감사하지만 카데바로는 연습하는 척만 할 생각이다.

"그래요. 초반부터 너무 힘 뺄 필요 없으니까 느긋하게 생각해요."

"명심하겠습니다."

"저번에 말한 심장이식 대체 수술. 미스터 최에게 넘긴 건가?"

"수술을 완성시키는 건 나보다 최 선생이 더 잘 어울려. 나는 최 선생만큼 열정적으로 연습할 수가 없잖나."

"마음에 안 드는 군. 내가 알던 자네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사람은 변하는 법이라네. 그렇다고 환자를 향한 내 마음이 변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송명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흉부외과에 사표 낸 레지던트가 있던대? 이유가 뭔가?"

"사표 낸 레지던트가 있었나요? 전 몰랐는데."

뜻밖의 소식에 최기석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사표 낸 레지던트들은 전부 2년 차야. 대화를 해 봤는데 MHC 생활에 불만은 없다더군."

"모순이군. 불만이 없다면 왜 사표를 내지?"

"제임스 홉킨스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으니까."

야사다가 술잔을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쪽에서 연봉을 MHC보다 1.5배까지 챙겨 주겠다고 했다더군. 펠로우 수련기간 단축까지 옵션으로 걸고 말이야."

"사람 빼가기라…… 고전적인 수법인데……."

"고전적인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지. 설득해 봤는데 도무지 먹히질 않아. 조만간 내보내야 할 거야."

"제임스 홉킨스에서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지 모르겠군. 이건 MHC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를 게 없잖나."

"선전포고 맞아. 제임스 홉킨스의 헤드 치프는 관심병자라고. MHC가 생기면서 빼앗긴 지역사회의 관심을 되찾고 싶은 거겠지."

"골치 아픈 일이야. 자네 말대로라면 스태프를 빼 가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텐데……."

송명진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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