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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77화 (276/407)

위기와 기회 (4)

최기석은 회의실을 한 번 훑고서 엠마의 옆자리에 앉았다.

"PCI는 잘 끝냈어요?"

"아주 좋은 경험이었어요. 엠마도 봉합 연습 면제니까 조만간 실습할 걸요?"

"저까지요? 미스터 최만 하는 거 아니었어요?"

"네. 원래 교육과정에 내과 처치까지 포함됐대요."

카타리나의 말을 들려주자 엠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MHC는 정말 만만치 않네요.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요."

"엠마라면 잘할 수 있어요. 저도 했는걸요."

"흐음…… 그 말은 별로 신빙성이 없는데."

엠마가 팔짱을 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드라마 스태프의 설명이 이어졌다.

드라마의 대략적인 촬영기간과 일정 및 협조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긴 설명이 끝나자 배우들이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뭐야. 이건?'

최기석의 시선이 문득 한 배우에게 고정되었다.

그 배우는 바로 라빈이다.

그가 이번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게 됐을 줄이야.

"반갑습니다. 주인공 잭의 멘토 역할을 맡은 라빈 윌리엄스입니다. MHC에는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의사분이 있는데 그분과 같은 공간에서 촬영할 수 있게 돼서 영광입니다."

"……."

"미스터 최. 많이 놀랐죠?"

라빈이 최기석을 향해 손을 흔들자 모두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이번 촬영,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말 안했으니까 섭섭해하지 말아요."

라빈이 웃으며 마이크를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배우 소개가 끝나고 드라마 스태프과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시간 괜찮아요?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물론이죠."

최기석은 라빈과 주인공 역할을 맡은 에단과 함께 1층 카페를 찾았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모양인데요?"

"아, 네. 정말 라빈이 나오는 줄 몰랐어요. 얼마 전에 이번 드라마 기사를 검색했는데 라빈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그럴 수밖에요. 급하게 대타로 들어왔으니까."

라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미스터 최는 건강해 보이는군요."

"저는 원래 건강한 거 빼면 시체입니다."

"하하하. 하긴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가 아프면 여러모로 고달프겠죠."

"라빈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최기석은 그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론병에 대한 후유증과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멘토 역할을 맡으셨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닌데 왜 자꾸 가르치는 역할만 맡기는지 모르겠어요."

"선배님만 한 배우가 없으니까 그런 거죠."

잠자코 있던 에단이 한마디 덧붙였고 최기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를 향했다.

에단은 말 그대로 조각미남 같은 배우다.

전성기 시절의 브래드 피드 같은 느낌이랄까. 외모는 시원시원하며 남자다운 매력이 물씬 풍겼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소개가 늦었군요. 이쪽은 이번 드라마 주인공 에단이에요. 올해 가장 기대되는 신인 중 한 명이죠. 이쪽은 MHC에서 근무 중인 기석 최 선생님이에요. 내 목숨을 살려 주신 명의죠."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최기석은 에단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정말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에단을 보고 있으면 남자인 나도 반할 것 같아요."

"칭찬이 과하시군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에단이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연기력이죠. 하아……."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뭐든지 차근차근 배워 가면 되니까."

"하지만 선배님 저는……."

"굳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 없어. 이번 촬영을 통해 진짜 배우로 거듭나면 된다고."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에단이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저번 드라마를 끝낸 후 연기 못한다고 엄청나게 욕을 먹었어요. 지금도 그때 욕먹은 거 생각하면 밤에 잠을 못 잘 정도에요."

"……."

"얼굴이 아깝다는 말은 애교 수준입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꺼져라는 말도 있었고 발연기의 대가라는 말도 들었어요. 솔직히 이번 드라마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소속사에서……."

"방금 내 말 못 들었어? 괜찮다니까."

라빈이 에단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사람들한테 또 욕먹을까 봐 두렵습니다. 얼굴만 믿고 배우 했다는 이야기도 듣기 싫고요."

"자네는 예전 인터뷰에서 배우가 꿈이라고 했잖아."

"꿈과 현실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 간격을 메우는 건 자네 뜻에 달렸어."

라빈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정말 배우가 되고 싶다면 내가 숙제를 내주지."

"숙제요?"

"그래. 미스터 최. 우선 양해를 구해도 되겠어요? 이건 미스터 최와도 관련 있는 일이라서."

"저는 상관없습니다."

"고마워요."

라빈의 시선이 에단에게 향했다.

"에단. 앞으로 촬영이 없을 때는 미스터 최를 따라다녀."

"닥터 최를요?"

"의사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느껴 봐야지. 그저 대본만 줄줄 외워서는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어."

"선배님 말씀대로 하면 정말 연기력이 좋아질까요?"

"나를 믿어. 내 말대로만 하면 드라마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실력이 쑥쑥 늘 테니까."

"……알겠습니다. 미스터 최,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안 될 이유가 없죠."

최기석은 그 자리에서 에단과 동행 스케줄을 짰다.

그와 헤어진 최기석은 수술실로 향하며 그의 기사를 살폈다.

얼굴값을 제대로 못하는 배우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그의 몇몇 발연기만 따로 모아서 패러디한 영상까지 돌아다니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오픈카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드래곤 연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조롱을 받았다.

[어떻게 이 처운 날씨에 제시가 밖에서 뜰게 만들 수 있어요. 정말 너무해요.]

[제시랑 저. 이혼(the boss/divoce)하겠습니다.]

해당 연기에서는 발음의 천재라는 수식어를 받았다.

여러 가지 악플을 확인하면서 최기석을 깨달았다.

그가 왜 그리 연기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라빈의 충고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술실에 도착했다.

최기석은 G로젯 참관실에 자리를 잡고서 용의 눈을 사용했다.

잠시 후 다른 흉부외과 팀에서 오목가슴 수술이 진행될 예정이다.

잘 녹화했다가 케빈 수술 때 사용하리라.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스태프들, 최기석은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수술 동영상을 몇 개를 촬영한 후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일과가 끝나서 그런지 병동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미스터 최."

복도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찰스가 손을 흔들었다.

"일과 중에는 통 못 봤네. 외래진료는 어땠어?"

"말도 마. 살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분명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도 검사 오더를 냈다니까."

"……."

"게다가 이상한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정말 외래진료보다 병동 일이 나은 것 같아."

"힘들 거라 그랬잖아."

최기석은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예전에 네가 진료했던 환자 있잖아. 그…… 뭐야. 월리엄 증후군에 심장질환 같이 있는 얘."

"제이미?"

"맞아! 제이미. 그 얘 오늘 외래진료 보러 와서 입원시켰어. 주치의는 당연히 너다."

"땡큐."

최기석은 찰스와 대화를 마치고 제이미의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제이미는 사무엘과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이미가 먼저 그를 발견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제이미. 안녕."

"아, 닥터 최. 반갑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럼요."

최기석은 병실을 나와 사무엘과 병동 복도에 섰다.

"닥터 최. 이야기를 듣고 유치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그랬더니 제이미의 행동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고 하더군요."

"……."

"제가 모자랐어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제이미에게 신경을 못 써줘서 이 꼴이 난 겁니다."

"사무엘 잘못이 아니에요. 윌리엄 증후군은 염색체에 문제가 있는 질환이에요. 사무엘의 교육과는 무관해요."

"그래도 용서가 안 돼요. 제이미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무엘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우선 심장 질환을 치료하는 게 우선입니다. 교수님과 상담해서 조만간 수술 날짜를 잡겠습니다. 그리고……."

최기석이 뜸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제이미의 재능을 키워 주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윌리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친구들은 음악적인 재능이나 외국어 습득력이 뛰어난 편이거든요."

"……."

"진로를 잘 정한다면 다른 아이들 못지않게 훌륭하게 성장할 겁니다."

말을 마치고 격려 스킬을 사용하자 사무엘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닥터 최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의사는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니까요. 참고로 잘 알아보면 월리엄 증후군을 앓고 있는 부모들의 모임이 있을 겁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네."

사무엘과의 대화가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한 가지뿐.

똑. 똑. 똑.

야사다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소파에 앉아 있던 야사다가 반대편 자리를 가리켰다.

"안 그래도 방금 카타리나가 다녀갔어. PCI 도중 부러진 와이어를 제거했다면서?"

"네. 카타리나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대처했습니다."

"자네 행보는 갈수록 날 기대하게 만드는 군. 솔직히 이런 기분 처음이야."

야사다가 테이블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런 이유로 자네를 더 괴롭히고 싶은데. 괜찮겠나?"

"저를 묶어 놓고 간지럼을 태우신다거나 매운 음식만 먹게 만드는 게 아니라면 환영입니다."

"잘됐군. 그럼 딜을 보면 되겠어?"

"딜이라면……."

"부탁할 일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닌가? 내가 자네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자네도 내 부탁을 들어 달라는 거지."

야사다는 그의 방문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의 정치력은 5단계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동물적인 감각이 좋았다.

"헤드 치프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오목가슴으로 입원한 케빈의 수술을 집도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오목 가슴 집도라……."

야사다가 턱을 쓸어내렸다.

"쉽지는 않을 텐데…… 접근은?"

"너스 수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케빈의 상태를 생각하면 싱글 바가 아닌 더블 너스바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블 너스바면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건 알겠지?"

"네. 안 그래도 오늘 다른 팀에서 너스 수술하는 것을 참관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조금 응용하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좋아. 해 보라고."

"그럼 헤드 치프께서 부탁하실 일은……."

"아. 그거? 어제 외래에서 식도이완불능증 환자를 받았어. 제임스 홉킨스에서 약물치료를 받아 왔는데 효과가 없어서 MHC에 왔다고 하더군."

"……."

"그래서 그 환자에게 풍선확장술을 할 예정이야. PCI를 해 본 자네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

야사다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알림이 울렸다.

띠링!

[중요 임무, 최기석의 12가지 과업 중 두 번째 시련을 받으셨습니다. 계속되는 과업에 통과하여 실력을 인정받을 경우 특별한 보상이 제공됩니다.]

[첫 번째 과업: 성공적인 VATS 보조/성공!]

[두 번째 과업: 식도이완불능증환자에 대한 풍선확장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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