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기회 (3)
심장 초음파실로 들어가자 카타리나가 스태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교수님. 저 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혹시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미스터 최는 봉합 연습을 안 하니까 다른 숙제를 내줄 생각이야."
카타리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은 PCI공부를 시켜주려고."
PCI(Percutanerous Coronary Intervention).
이것은 관상동맥 중재술이라 불리는데 카테터를 이용해 관상동맥에 있는 질환을 처치해 주는 시술법이다.
"PCI는 내과에서 하는 거 아닙니까?"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MHC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PCI를 시행해. 내과의는 말 그대로 약물처방만 하는 수준이고. 이곳은 흉부외과의를 만능으로 만들기 위한 장소니까."
"……."
"참고로 페이스메이커 삽입도 흉부외과에서 해."
"의외네요."
"내과 처치까지 배우는 건 과하다 싶지만…… 야사다 헤드 치프가 결정한 거니까 뭐."
카타리나가 말끝을 흐렸다.
"혹시 PCI 참관해 본 적 있어?"
"딱 한 번 있습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 본 건데 정말 있네."
"한국에 있는 애인이 순환기내과에서 근무 중입니다. 그래서 애인의 첫 PCI를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저번 봉합 때도 그렇고 미스터 최는 진짜 못 말리겠다. 우선 환자 차트부터 읽어 봐. 십 분 정도 있다가 PCI 들어갈 거야. 미스터 최는 제2보조로 쓸 테니까 그렇게 알고."
"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의자에 앉아 환자의 차트를 살폈다.
환자의 이름은 줄리아로 나이는 70세.
중증도의 관상동맥 협착증을 앓고 있었다.
협착 부위는 우관상동맥으로 이곳에 80퍼센트 가량의 광범위한 협착이 관찰되었고 우관상동맥 후방에는 폐색까지 일어났다.
나이와 상태를 고려해 CABG가 아닌 PCI가 예정되었다.
"준비됐어?"
"네."
"그럼 바로 들어가자."
최기석은 스태프들과 함께 스크럽을 마친 후 처치실로 들어갔다. 환자를 확인하는 절차 타임아웃, 혈압계 및 심전도 장착, 마취가 차례대로 끝났다.
"천자는 대퇴동맥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렌 테스트를 해봤는데 요골동맥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오케이."
"그럼 소독 진행하겠습니다."
최기석이 소독을 끝내자 카타리나가 간호사에게 유도 카테터를 받았다.
"PCI 시작한다. 다들 긴장해."
스으으으윽.
유도 카테터가 환자의 우측 요골동맥에 파고들었다.
카타리나는 초음파 모니터를 지켜보며 유도 카테터를 더욱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혈관 속으로 카테터를 삽입하는 작업.
이것은 언뜻 쉬워 보일지 몰라도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자칫 실수하면 도관이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혈관이 다치는 문제가 발생한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처치실.
이윽고 카테터가 협착이 있는 부위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우선 폐색이 있는 부위부터 처치한다. 유도철사."
"네."
카테터를 따라 유도철사가 처치 부위에 도착했다.
"약물용출 스텐트 삽입 끝. 기압 맞춰."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우관상동맥의 기압을 14로, 폐색이 있는 부위의 기압을 12기압으로 맞췄다.
그의 재빠른 처치에 제1보조가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기압 맞추는 일은 본래 제2보조가 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초짜인 최기석이 가르침도 받지 않고 깔끔하게 처치하는 것이 놀라웠다.
"미스터 최. 표준 기압 알아?"
"아, 네. 예전에 공부했습니다."
"잡담 금지! 풍선확장술 시작한다."
카타리나의 처치가 계속되었다.
스텐트에 삽입된 풍선이 부풀어 오르자 좁았던 혈관이 점점 넓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 관상동맥과 폐색이 있던 혈관가지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유도철사만 제거하면 되겠네. 제거는 카를이 해 볼래?"
"맡겨만 주세요."
카를이 자신만만하게 카타리나의 곁에 섰다.
그는 심호흡을 한 후 유도철사를 잡아당겼다.
막바지로 접어드는 PCI.
유도철사를 제거하면 풍선과 스텐트만 남아 혈관에 정상적인 혈류를 돕는다.
"교…… 교수님. 유도철사가 빠지질 않습니다."
"철사가?
"네. 어딘가에 제대로 걸린 것 같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카를이 유도철사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유도철사가 뚝 부러져 버렸다.
카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으며 카타리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힘을 주면 빠지지 않을까 싶어서……."
"힘을 주는 건 좋은데 적당히 해야지."
카타리나의 시선이 모니터로 옮겨졌다.
부러진 철사 끝이 폐색이 있었던 우관상동맥 혈관가지에 박혀 있었다.
"수술이 아니라고 PCI를 만만하게 보지 마. PCI 중에도 사고 많이 터진다고."
"……네. 면목이 없습니다."
카를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미스터 최. 이번처럼 유도철사가 박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카타리나가 최기석을 응시했다.
"케이스에 따라 다릅니다. 환자의 상태나 유도철사의 위치를 감안해서 와이어를 내버려 두는 경우도 있고 외과적인 제거를 하거나 경피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번 케이스에서는?"
"경피적으로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와이어 제거를 하고 싶습니다."
최기석의 대답에 카타리나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이렇게 똑 부러지는 답변을 들을 줄도, 직접 철사를 제거하겠다고 나설지도 몰랐다.
최기석의 행동은 그녀의 예상범위를 한참 뛰어 넘었다.
'진료부원장님하고 야사다 치프가 괜히 케어를 하는 게 아니네.'
카타리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 한번 해 봐."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집도의 자리에 서서 손목을 풀었다.
한국이었다면 신규가 나댄다며 욕먹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곳은 미국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 얼마든지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
"그럼 와이어를 어떻게 제거할지부터 들어 볼까?"
"새로운 와이어를 몇 개 투입한 후 이를 꼬아서 올가미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 올가미를 이용해서 박힌 와이어를 빼볼 생각입니다."
"경피적 제거의 정석이지. 좋아. 어디 한번 해 봐."
"시작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카테터를 통해 유도철사를 삽입해 나갔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었으며 손놀림은 신중했다.
처음 하는 PCI라 긴장됐지만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가 두려움을 몰아냈다.
이윽고 첫 번째 와이어가 무사하게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두 번째 와이어 역시 안착.
최기석은 와이어 두 개를 조종해서 혈관에 박힌 와이어와 밀착시켰다. 그리고 이를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서 박힌 와이어를 감쌌다.
단단한 넝쿨을 만든 후 와이어를 조심스럽게 당겼다.
적당히 힘을 주었지만 박힌 와이어는 빠질 줄 몰랐다.
몇 번을 끙끙거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갔다.
"미스터 최. 일자로 당기지 말고 원을 그리면서 빼 봐. 그게 더 나을 거야."
"네."
최기석은 카타리나의 조언을 따르며 혈관에 박힌 유도철사 제거에 나섰다. 원을 그리며 당기자 꼼짝도 하지 않던 유도철사가 슬금슬금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의 작업 끝에 와이어가 빠져나왔다.
텅!
최기석은 곡반에 떨어지는 와이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처음 해 본 내과적 처치를 깔끔하게 끝냈기에.
과거의 정설화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잘했어. 제법인데?"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믿어 주시고 조언을 주신 덕분에 해냈습니다."
"미스터 최 실력이 좋았던 거지. 와이어 박혔던 부위에 출혈이 있으니까 그것부터 처리하자."
카타리나가 나머지 처치를 마무리하면서 PCI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용감한 의사가 처치를 차지한다. 숨겨진 업적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 A.
P를 드립니다.]
[상점에 새로운 아이템 젤리가 개방되었습니다. 젤리는 A.
P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카타리나와 라포를 형성하셨습니다.]
NEW [라포 2단계 - 믿음]
연달아 울리는 알림.
최기석은 새로운 보상을 확인하고 동료들과 휴게실에 자리 잡았다.
"솔직히 미스터 최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카타리나가 캔 음료를 마신 후 운을 뗐다.
"이 정도면 다음에 바로 실전에 들어가도 되겠는데?"
"과찬이십니다."
"빈말이 아니야. 와이어 제거가 가능한 수준이면 일반적인 PCI는 문제없다고 봐야지. 다른 돌발 상황도 어느 정도 대처가 될 거고."
"……."
"조만간 환자 골라서 넘길 테니까 잘해 봐."
"네."
"카를도 너무 시무룩해 있지 말고."
카타리나의 시선이 카를에게 머물렀다.
"와이어가 부러진 게 네 책임만은 아니야.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어."
"교수님 책임이요?"
"그게 왜 교수님 책임이죠?"
최기석과 카를이 동시에 물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우리가 사용한 유도철사 끝이 친수성(親水性)으로 되어 있었어. 병변이 여러 곳에 있을 때 주로 사용하는데 잘 부러지는 단점이 있어. 내가 미리 언질을 줬으면 카를, 네가 힘껏 당길 일은 없었겠지."
"……."
"그러니까 너무 기죽지 말라고 알았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카를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방금 막 끝났던 PCI의 복습, 그 밖에 다른 PCI법을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최기석은 카타리나가 실력 있고 밑에 사람을 챙길 줄 아는 따뜻한 써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외과계열.
그 정글에서 그녀가 지금 위치까지 올라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난 먼저 일어날 테니까 너희 둘은 좀 더 쉬다가 올라와."
"저희도 올라갈 때가……."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둬. 잘 쉬는 것도 써전에게 필요한 덕목이야."
카타리나가 윙크하고 휴게실을 떠났다.
최기석은 카를과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상태창을 띄워서 상점에 들어가자 새로운 아이템 젤리가 눈에 띠었다.
[젤리를 구입하여 일반 아이템에 적용시키면 해당 효과가 발휘됩니다.]
[젤리(레어): 매력+2] / 100 A.
P로 구입 가능.
[젤리(레어): 유머+2] / 100 A.
P로 구입 가능.
[젤리(레어): 운+2] / 100 A.
P로 구입 가능.
[젤리(레어): 이동속도+3] 100 A.
P로 구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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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석은 목록을 살핀 후 볼을 긁적거렸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젤리는 치료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
'뭐.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는 이동속도 젤리를 구입해서 크록스에, 유머 젤리를 구입해서 가운에, 매력 젤리를 구입해서 콜폰에 발랐다.
"닥터 최. 안녕하세요."
스테이션에서 마주친 간호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요. 안나.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예뻐 보이는데요? 이러다가 조만간 진짜 공주 되겠어요."
"아이, 선생님도 참."
여름왕국을 패러디한 농담에 안나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평소 무뚝뚝하기로 정평이 난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유머 젤리의 효과는 놀라웠다.
"그건 그렇고 지금 회의실에 가 봐요."
"회의실은 왜요?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가 보면 알아요."
최기석은 의문을 뒤로한 채 회의실로 향했다.
드르르륵.
안으로 들어가자 회의실이 낯선 사람들로 붐볐다.
ABD 채널에서 새롭게 기획한 의료 드라마의 배우진과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