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75화 (274/407)

위기와 기회 (2)

인수인계가 끝나고 오전 회의시간이 가까워졌다.

최기석은 흉부외과 스태프들과 함께 지하 2층 대강당을 찾았다.

오늘은 MHC 월례회의가 있는 날.

진료 대기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월례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메이죠에서 들리는 소문이 맞았네. 난 허풍이 꽤 섞였다고 생각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왕진평이 운을 뗐다.

"어제 그 봉합, 어떻게 된 거야?"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하루에 두 시간씩 봉합 연습을 했거든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봉합을 하루에 두 시간씩? 그럴 여유가 있어?"

"억지로 만들었죠, 뭐."

"대단하다, 대단해."

왕진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혹시 병원 근처에 한국 식당 아세요?"

최기석이 화제를 돌렸다.

메이죠를 떠나면서 미네소타에 있는 한국 식당을 갈 수 없게 되었다. 비록 뉴욕에 온 지 하루밖에 안 지났지만 벌써부터 매콤한 음식들이 당겼다.

"병원 인근에는 없고 시내로 나가야지. 나중에 나랑 같이 식사나 하자."

"저야 좋죠."

왕진평과 대화를 나누는데 가운 속 휴대폰이 떨었다.

회의 시작 전이었기에 강당 바깥에서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이다, 두진아. 잘 지내니?"

[네!]

김두진의 목소리가 유난히 씩씩했다.

김두진은 한국에서 유학 온 천재 피아니스트로 메이죠에서 인연을 맺었다. 재활치료 중인 카터에게 후원을 받으며 실력을 키우고 있었다.

"손 아픈 건 이제 괜찮지?"

[네. 치료받고 난 다음부터 아픈 적 없어요.]

"그거 다행이네. 선생님이 화상통화로 다시 연결할 테니까 받아."

최기석은 화상통화로 전환한 후 김두진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 결과 진단명이 떠오르지 않았으며 체력도 양호했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선생님. 저 이번 달 말일에 피아노 콘서트 있어요.]

"벌써 콘서트를?"

[제 단독 콘서트는 아니고 카터 아저씨 연주회에 잠깐 출연하기로 했어요. 카터 아저씨 재활이 끝났거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뭔데?"

[그냥 제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아저씨가 전보다 연주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카터 아저씨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저는 분명 느낄 수 있거든요.]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최기석이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그는 카터와 가끔 영상통화하며 재생의 빛 스킬을 써 주었다.

재생의 빛에는 재활을 이겨 내면 특수한 재능이 생긴다는 옵션이 있다.

카터는 분명 그 옵션을 받았으리라.

[콘서트에 와 주실 수 있죠? 카터 아저씨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럼 당연히 가야지. 안 그래도 선생님이 너한테 부탁할 게 있었거든."

[선생님. 결혼하세요?]

두진이 돌직구를 던졌다.

기특하게도 나중에 결혼식 연주를 해 달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결혼은 아직이고 다른 부탁이야."

[헤헤. 뭐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다 할게요.]

"고맙다."

최기석은 김두진과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김두진의 밝은 모습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예전에 그는 힘든 일을 참으며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또래에 걸맞은 발랄함을 갖췄다.

카터와 최기석의 후원을 받으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막 월례회의가 진행되었다.

식순이 이어지는 가운데 파커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는 강당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MHC에 새롭게 부임한 부병원장 파커입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어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보다 막중한 자리에 책임감을 느끼지만 여러분의 도움을 받으면 잘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파커의 취임사가 이어졌다.

특유의 흡입력 있는 말투에 사람들의 관심이 단번에 쏠렸다.

최단시간 부병원장 승진.

과거 미네소타 주와 함께 진행했던 구조 팀 프로젝트의 성공 등등.

그동안 보여 준 화려한 업적이 후광으로 작용했다.

"이쯤에서 지루해하실 여러분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MHC에서 실행할 첫 번째 프로젝트를 소개하겠습니다."

파커가 손가락을 튕기자 대형 스크린에 한 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미지는 텅 빈 진료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게 뭐지?"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미지를 본 스태프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반면 최기석은 입을 꾹 다문 채 영상을 노려보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파커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라서 더더욱 그랬다.

실제로 미네소타 주와 연계한 구조 팀 활동에 참가한 의사들 몇몇은 망가졌다.

"여러분. 이 화면이 무얼 뜻하는지 아십니까?"

파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제가 바라는 궁극의 진료 시스템입니다. 바로 의사가 없는 진료 시스템이죠. 제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바로 셜록입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로봇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지는 설명.

파커는 외래진료로봇 셜록을 전폭적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졌다. 셜록은 이제 막 상용화되기 시작한 진료로봇에서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능력을 가졌다.

기존 로봇이 백과사전처럼 데이터만 제공했다면 셜록은 직접 환자를 진료 보고 진단명까지 결정한다.

"부병원장님 말씀대로라면 로봇이 의사를 돕는 게 아니라 의사 역할을 한다는 건데. 현재 그럴 만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겁니까?

한 의사가 용감하게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물론입니다. 셜록은 음성인식 기능이 있어요. 문진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데다가 간단한 의학적 검사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합니다."

"……."

"셜록이 도입된다면 MHC의 외래진료는 진일보하게 될 겁니다. 비용 절감은 물론이고 환자의 만족도 역시 상승하겠죠. 로봇은 사람과 달리 불친절하지도 않고 실수도 하지 않으니까요."

"로봇이 오류를 일으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책임을 로봇에게 묻는 건가요?"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병원이 책임져야죠. 환자에게 돈을 주면 됩니다. 셜록으로 인한 수익 절감폭이 오류로 인한 배상보다 훨씬 클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앉아서 내 말 들어요."

파커가 용감하게 나선 의사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분들이 반감을 가지거나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갖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일이에요. 그걸 MHC에서 제일 먼저 하자는 겁니다."

"……."

"셜록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데 몇 개월 여유가 필요하니 앞으로 공론화해서 자주 토론을 가졌으면 좋겠군요. 그럼 제 취임사는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파커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싸늘한 공기가 대강당을 휘감았다.

'파커답네.'

최기석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취임 첫날부터 대형 폭탄을 던진다니…….

문제는 파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셜록의 도입을 추진할 거라는 점이다. 그의 추진력은 메이죠에 있을 때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에.

잠시 후 월례회의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헤어졌다.

파커가 던진 화두 외래진료로봇 셜록,

이로 인해 스태프들이 저마다 말이 많았다.

흉부외과에 복귀한 최기석은 오전 회의와 회진에 참석하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병동 일을 하기 전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트레이닝 룸에 입장하셨습니다(입장횟수3/5)]

[집도 수술로 스승의 신수술을 선택하셨습니다. 스태프 보조 난이도는 상을 선택하셨습니다. 촬영 동영상이 카데바로 진행되었기에 특수효과 실전이 적용됩니다.]

휘이이이이잉.

눈부신 광채가 쏟아졌다.

눈을 뜨자 그는 어느새 수술대 앞에 서 있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술대를 내려다보자 한 남자가 누웠다.

최기석은 수술용 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남자의 피부를 눌렀다.

살아 있는 사람의 촉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좋았어!"

환호를 지르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본래 트레이닝은 용의 눈으로 촬영한 수술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 이유로 최기석은 오프 때 참관실에서 수술 동영상을 촬영했고 말이다.

그런데 어제 받은 보상 중 특이한 게 있었다.

바로 트레이닝 모드에 특수효과 실전이 추가된다는 언급이다.

혹시 그 뜻은 모형이나 시체를 촬영한 영상도 진짜 환자처럼 만들어 준다는 게 아닐까.

혹시나 했던 예상이 운 좋게 맞아 떨어졌다.

'이거라면 충분해.'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데바로 집도할 경우 수술 경과를 살필 수 없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무슨 경과가 있겠는가.

하지만 트레이닝 룸에서 수련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환자의 생사 및 경과, 수술 랭크까지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돌파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샘솟는 희망.

최기석은 가상의 스태프를 소환한 후 신수술 집도에 나섰다.

수술 대상이 시체가 아니었기에 인공심폐기를 연결했으며 처치 중 출혈이 발생하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첫 번째 처치인 관상동맥 우회술이 끝났다.

최기석은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스으으으윽.

심근을 조심스럽게 갈랐음에도 미세동맥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자 가상 스태프가 석션으로 피를 흡입했다.

보조 난이도 상인 스태프는 확실히 처치가 달랐다.

최기석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 절제를 마치고 부분혈관 및 조직이식에 나섰다.

'달려 보자.'

그는 이를 악물고 영혼의 눈물을 사용했다.

[초각성 효과: 일시적으로 외과적 처치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은 반나절이며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에 빠집니다.]

끼기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문합에 나섰다.

초각성 효과로 손놀림이 어제보다 두 배 이상 빨랐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봉합을 지켜봤으면 기절했을지 몰랐다. 고난도 심장 수술에서 이만한 속도와 정교함을 갖추는 건 불가능했기에.

집도가 진행되면서 로젯이 조용해졌다.

끼기기긱.

찰칵.

치이이이익.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와 봉합사 자르는 소리, 피를 흡입하는 소리만이 이따금 로젯에 울렸다.

그렇게 이식을 반쯤 끝났을 때다.

최기석은 한숨 쉬며 수술대와 거리를 벌렸다.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서 탈진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국자로 머리를 휘젓는 것처럼 어지러웠고 팔다리에는 철근이 매달린 것 같았다.

도저히 수술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트레이닝 수술을 종료합니다. 집도를 끝내지 못했기에 랭크를 표시할 수 없습니다.]

알람과 함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최기석은 넋 나간 표정으로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초각성 효과가 있으면 신수술을 빨리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더불어 트레이닝 룸에서 초각성을 사용해도 그 후유증이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다음 번에는 수술 중반까지 실력대로 가고 그 후에 초각성을 써야지.'

최기석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기숙사를 나왔다.

지이이이잉.

병동이 코앞인 시점에서 울리는 콜폰.

최기석은 낯선 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부외과 기석 최입니다."

[미스터 최. 바빠요?]

팀 CPR의 지도 교수인 카타리나가 전화를 걸었다.

"아닙니다. 병동 앞입니다."

[그럼 지금 심장초음파실로 와요. 가르쳐 줄게 있으니까.]

"수술실이 아니라 심장초음파실로요?"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장소가 뜻밖이다.

[오면 아니까 빨리 와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서둘러 심장초음파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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