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74화 (273/407)

위기와 기회 (1)

"안녕하세요. 진료부원장님."

안으로 들어가자 수술실 수간호사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캐서린. 부탁한 건 준비됐나요?"

"물론이죠. 그런데 수술실에는 웬일이세요? 일선에서 물러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요."

송명진이 피식 웃으며 스테이션을 지나쳤고 최기석이 그 뒤를 따랐다.

스크럽을 끝낸 후 로젯으로 들어간 두 사람.

수술대 위에는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교수님. 이건?"

"그래요. 프레시 카데바(방부처리를 하지 않고 냉동 보존한 시체)에요. 최 선생에게 신수술법을 알려주기 위해 특별히 준비했죠. 오늘은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볼까요?"

"저는 좋습니다."

최기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인공심폐기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실전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카데바를 세이버 수술하기 직전 상태로 만들어 봅시다. 집도는 최 선생 몫이고 난 보조를 하겠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최 선생이 해야 해요. 이 수술을 완성시키는 것도 최종적으로 최 선생이 될 테니까."

"……교수님의 믿음, 꼭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허허.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무 부담 주는 것 같잖아요. 최 선생은 그저 평소처럼 최선을 다해 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대답과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용의 눈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자동으로 최적의 수술 시야를 제공합니다.]

[동영상 모드: on / 입체화 모드: off]

"자. 수술을 시작해 볼까요?"

송명진은 포비돈 솜으로 시체의 흉부를 소독한 후 방포를 덮었다.

이윽고 최기석의 메스가 시체의 목부터 명치까지를 갈랐다.

지이이잉. 빠드드득.

송명진이 전기톱으로 흉골을 반으로 가르고 견인기를 끼워 맞춰 옆으로 벌렸다.

거기서 폐를 살짝 옆으로 밀어내자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는 실제로 관상동맥 협착증을 앓았어요. 실전 같은 연습이 될 겁니다."

"네."

최기석은 차분하게 심장에 있는 관상동맥을 살폈다.

관상동맥은 심장동맥이라고도 불리며 심장근육에 산소와 영양분을 제공한다.

동맥은 1.5밀리미터에서 2밀리미터 사이로 가는 편.

어떤 동맥은 근육 속에 숨고, 어떤 동맥은 심장지방 속에 숨어 있어 접근이 쉽지 않은 편이다.

"교수님. 이쪽 심근 부위에 협착 동맥이 있습니다."

"잘 찾았어요."

"우회혈관은 내흉동맥을 사용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메스를 이용해 근막에 숨어 있는 내흉동맥을 늘어트리고 일부를 떼어 냈다.

'역시 최 선생이야.'

그의 깔끔한 혈관 채취에 송명진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카데바를 통한 연습이라고 해도 최기석의 집도는 거침이 없었다.

과연 과거 의진대에서 CABG에 성공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최기석이라면 신수술을 완성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럼 전 처치를 해 줄게요."

치이이이익.

송명진은 전기 소작기로 대동맥에 작은 구멍을 냈고 최기석은 채취한 혈관을 구멍에 연결했다.

이식혈관에 피가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과정이다.

지금은 카데바 수술이라서 큰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계속 가겠습니다."

최기석은 내흉동맥 한쪽 끝을 늘어트려 협착이 있는 부위 하단부에 갖다 대었다.

이어지는 End to side anastomosis(단측 문합).

혈관 연결이 끝나면서 관상동맥 우회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 정도면 당장 집도 스케줄 잡아야겠는데요?"

"과찬이십니다."

"최 선생은 본인 실력에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내가 인정한 사람이니까."

송명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했다.

"본격적으로 신수술법에 대해 설명하겠어요. 이 환자가 심부전증까지 앓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최 선생은 세이버 수술이 가능한 범위를 어디까지 봅니까?"

"제 생각에는 이쯤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좌심실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세이버 수술의 다른 말은 좌심실 용적 축소술 및 재건술.

펌프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근을 일부 잘라서 활동성을 높이는 게 주된 역할이다.

"범위가 여기까지라면…… 어떨까요?"

송명진이 포셉으로 최기석이 지적한 곳보다 훨씬 더 위쪽을 가리켰다.

"이 정도라면 심장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가리킨 곳까지 절제술을 하면 재건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할 것 같습니다."

"신수술의 목표가 여기까지입니다."

송명진의 대답은 단호했으며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최기석은 스승이 절대로 수술 범위를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교수님이 고안하신 방법이 듣고 싶습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이겁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근 부위를 잘라 낸 후 거기에 세포와 혈관을 이식하는 거죠."

"세포와 혈관이식이요?"

"그래요. 심장이식은 부담스러우니 부분이식을 하자는 겁니다. 절제 후 부분이식을 하면 그 부위가 자라서 새로운 기능을 하게 될 테니까요."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기석이 말을 계속했다.

"맞아요. 수술 난이도로 따지면 심장이식보다 부분이식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심장이식의 경우 주요 혈관만 이어 주면 되지만 부분이식은 미세한 혈관까지 전부 이어 줘야 합니다. 거기다가 이식 후 환자 관리 측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송명진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심장이식 대기기간과 비용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

그들에게 신수술은 한 줄기 빛이 되리라.

"신수술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신수술이 이 정도 범위까지 커버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죠."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말이 통해서 좋네요. 솔직히 최 선생이 수술 범위를 줄이자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교수님과 저는 일심동체 아닙니까?"

최기석의 농담에 송명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준비물을 챙겨 올게요."

송명진이 냉동고로 향했다.

돌아오는 그의 손에 플라스틱 통이 들려 있었다.

통 안에는 다른 환자들에게 기증받은 세포 조직과 혈관들이 담겼다.

"이식 수술을 시작해 봅시다. 준비됐어요?"

"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메스로 목표한 심근을 조심스럽게 잘라 냈다.

카데바 연습이라고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연습에서의 신중함이 실전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법이기에.

송명진 역시 최기석의 의도를 읽고 꼼꼼한 보조에 나섰다.

혈관겸자로 예상 출혈 부위를 잡아 주었으며 절제가 쉽도록 심장을 고정시켰다.

"이식 들어갑니다."

최기석은 혈관 문합으로 신수술에 포문을 열었다.

기존 혈관과 이식혈관의 끝을 연결하는 세심한 작업.

외과적 처치가 8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문합은 쉽지 않았으며 조직을 연결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후아……."

최기석은 허리를 펴고 벽시계를 응시했다.

신수술 처치에 들어간 지 두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절제 부위의 이 할도 이식하지 못한 상황, 영혼의 눈물에 초각성 효과를 빌려 온다고 해도 수술이 쉽지 않을 듯싶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교수님. 전 더 할 수 있습니다."

"최 선생 마음은 다 아니까 이만 끝내요. 의욕이 지나치면 번 아웃이 오기 마련입니다."

"……알겠습니다."

"이 로젯은 일종의 연습실이니까 언제든지 와서 연습해도 좋아요. 카데바와 이식 물품이 모자라면 그때 그때 말하고요."

"네."

두 사람은 뒷정리를 끝내고 로젯을 나왔다.

띠링!

[중요 임무, 'Heart to Heart'가 생성되었습니다. 송명진의 신수술을 완성하여 상용화시킬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신수술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업적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300A.

P를 제공합니다.]

[보상으로 트레이닝 모드에 특수효과 실전이 추가됩니다.]

연달아 울리는 알람.

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의 높은 뜻과 고통받는 환자들의 마음.

이 두 가지를 항상 잊지 않으리라.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가운을 걸치고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MHC에 와서 처음 오프를 얻은 날이지만 마음 편하게 보낼 여유가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수북이 쌓였다.

드르르르륵.

문을 열고 의국으로 들어가자 찰스와 제레미가 사이좋게 봉합 연습을 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

"하나도 좋지 않아. 죽을 맛이라고."

찰스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봉합 모형을 가리켰다.

"이거 때문에 개고생 중이다. 당직은 당직대로 서고 봉합 연습은 봉합 연습대로 해야 한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부러워. 미스터 최."

찰스의 말에 제레미가 한마디 덧붙였다.

"힘들고 지겹지만 분명 도움은 될 거야. 내가 장담할게."

최기석은 두 사람을 다독이며 격려 스킬을 사용했다.

그는 의진대 시절 모형 및 인형으로 처절한 봉합 연습을 했다. 덕분에 고속집도 스킬을 배우고 양손잡이 스킬 레벨을 올리기도 했다.

연습은 두 사람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제 내 욕 한 거 아니지? 회의실 나온 후부터 귀가 간질간질하던데?"

"적어도 우린 아닐걸?"

찰스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봉합하는 걸 두 눈으로 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 카타리나 교수님도 혀를 차시더라."

"뭐. 기분 나쁘게 생각 안 하면 고맙지."

"너 혹시 닥터 최가 아니라 닥터 스트레이트 아니냐?"

"들켰군. 그럼 슈프림 매지션의 위력을 보여 주지."

최기석이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며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하자 이에 찰스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왜 출근했어? 오프 아닌가?"

"오프라도 나와야 돼. 할 일이 많아."

"메이죠 때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구나."

대화가 잠시 끊긴 사이 엠마가 의국으로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안 했네. 엠마도 봉합 연습 면제됐어."

"엠마도?"

찰스의 말에 최기석이 엠마를 응시했다.

"그래. 너만큼은 아니지만 모형 연습은 필요 없는 수준이라고 하더라."

"미스터 최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엠마가 쑥스러운 듯 볼을 붉혔고 최기석은 그녀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녀의 외과적 처치는 6단계로 전공의 수련을 마친 의사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녀 역시 최기석처럼 취미가 봉합이 아니었던가.

외과 로테이션 중 꾸준한 취미생활로 실력을 키운 모양이다.

"엠마. 피곤해요? 눈이 빨간데?"

"어제 늦게까지 외과 매뉴얼을 봐서 그런 가 봐요. 눈이 너무 뻑뻑해요."

엠마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제레미가 가운에서 인공눈물을 건넸다.

이에 엠마가 인공눈물을 사용하고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고마워요. 제레미."

"이 정도야 뭐."

제레미가 수줍은 얼굴로 인공눈물을 받았다.

덩치와 외모는 외국 산적처럼 생긴 친구가 이리 부끄러워하다니…….

그의 반전매력에 최기석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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