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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73화 (272/407)

수련 (6)

왕진평의 성난 목소리에 세 사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최기석은 메이죠 내에 어떤 레지던트보다 일찍 제1보조에 섰다.

봉합 능력이 발군이라는 것도 증명했다.

문제는 지금 이 순간이 CPR팀의 첫 트레이닝 모임이라는 점이다.

담당 교수가 있는 자리에서 교육이 쓸모없다고 하니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건 당연했다.

"미스터 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요."

엠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최기석에게 한마디 했다.

"아니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네?"

"미안하지만 난 진짜 교육이 필요 없어요."

최기석은 성큼성큼 단상 위로 올라갔다.

"방금 트레이닝에 빠지겠다고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잘못들은 거 아니지?"

"네.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뭐. 메이죠의 목표는 환자 중심과 실력 중심이니까 실력만 있으면 상관없지만……."

카타리나가 팔짱을 낀 채 최기석을 응시했다.

"대신 실력은 확실하게 보여 줬으면 좋겠네."

"뭐부터 하면 될까요?"

"외과 매뉴얼에 있는 봉합, 열 개를 전부 펼쳐 봐. 단 봉합은 다섯 매듭까지."

"알겠습니다."

끼기기기긱.

최기석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쥐고 모형을 내려다보았다.

불현듯 며칠 전에 완성한 영혼의 눈물 아이템이 머리를 스쳤다. 아이템 사용이 적합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 위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영혼의 눈물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초각성 효과가 발휘됩니다.]

[초각성 효과: 일시적으로 외과적 처치 레벨이 3단계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은 반나절이며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에 빠집니다.]

[외과적 처치: 11(8+3)]

아이템을 사용하자 전신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용솟음쳤다.

'이런 느낌인가?'

그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외과적 처치 레벨은 10단계가 한계다.

그런데 지금의 최기석은 이를 한 단계 껑충 뛰어넘었다.

속된 말로 인간을 초월한 셈이다.

"뭐해? 자신 없어? 그럼 지금이라도 돌아가."

"아닙니다. 지금 시작하려던 참입니다."

최기석의 손이 마침내 움직였다.

휘리리리릭.

그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봉합을 지켜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 소리를 들었다.

최기석의 손놀림은 바람과 같았다.

바람이 불면 머리가 휘날리는 것처럼, 그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매듭 하나가 완성되어 있었다.

'뭐…… 뭐지? 이건?'

왕진평은 급기야 두 눈을 비볐다.

봉합을 아무리 대충한다고 한들 이 속도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

그것은 이 와중에도 최기석의 봉합 간격은 균일하며 매듭이 깔끔하다는 점이었다.

단속 봉합이 끝나고 이어지는 연속 봉합, 수평 매트리스 봉합 등등.

한편 최기석은 봉합의 난이도가 올라갔음에도 속도와 정확도를 꾸준히 유지했다.

'대단해.'

제 손으로 봉합하고 있음에도 지금 이 순간이 믿겨지지 않았다. 손이 머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손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시험이 끝났다.

각기 다른 봉합이 열 매듭.

총 50개의 매듭이 고작 칠 분 만에 종료되었다.

"교수님. 이제 됐습니까?"

"……."

"교수님?"

"아. 음…… 그래 통과야. 미스터 최는 봉합 연습에 참여할 필요 없겠어."

카타리나가 꿈에서 깬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 태도를 건방지게 느끼셨다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트레이닝의 목적은 실력향상이고 지금의 교육은 제 실력 상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부득이하게 이런 식으로 나섰으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 지금은 충분히 이해하니까. 미스터 왕."

"네, 교수님."

"미스터 최는 봉합 트레이닝에서 예외야. 대신 자유 시간을 주라고."

"다른 동기들과 형평성의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이건 형평성의 잣대를 들이댈 사안이 아니야. 방금 전 봉합한 못 봤어?"

"……알겠습니다."

왕진평이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스터 최도 알아 둬. 열외는 어디까지나 봉합 연습에만 해당 된다는 걸. 케이스 발표와 다른 팀 활동에는 제대로 참석해야 해."

"네. 감사합니다."

"그럼 미스터 최는 가 봐도 좋아."

최기석은 팀 동료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회의실을 나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지만 나서길 잘했다.

안 그랬다면 수준에 맞지 않는 연습으로 시간낭비를 했을 것이다.

'휴우…… 그나저나…….'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초각성 효과의 부작용인 탈진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용시간은 몇 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아이템을 한계까지 사용하면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질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부르르 몸이 떨렸다.

최기석은 휴게실로 이동해서 휴대폰을 들었다. 잠깐의 신호음이 울리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응. 기석아.]

"설화야.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헤어진 지 2주도 안 지났잖아.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정형외과 수련이 끝나기 일주일 전, 최기석은 포상휴가를 얻어 한국에 넘어갔다.

그때 정설화와 보낸 3박 4일의 달콤한 제주도 여행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선명했다.

[나 한 달 있으면 휴가 받아. 그때는 내가 미국으로 갈게.]

"알았어. 빨리 와."

[우리 기석이. 오늘따라 유난히 응석부리네?]

정설화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어렸다.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평소에는 그냥 참고 있을 뿐이야."

최기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버님은 건강하시지?"

[응. 덕분에. 얼마 전 정기검진 받으셨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 기석이 네가 아빠를 메이죠로 불러줘서 치료가 쉬워졌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에이.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 그리고 나중에 우리 결혼할 때 말이야. 설화 뺏어가는 도둑놈 소리 안 들으려면 마땅히 할 일이었어."

최기석의 농담에 정설화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보고 싶다. 진짜.]

"나도."

[그런데 의진대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바로 어제 조지환 부병원장이 병원장이 됐어.]

정설화가 전해 준 뜻밖의 소식에 최기석은 할 말을 잃었다.

조지환의 정치력과 수완은 인정하지만 벌써 병원장에 오를 줄은 몰랐다.

못 본 사이에 스탯 상승이라도 있었던 걸까.

[조지환 병원장을 두고 의사들 말이 많아. 병원이 개판 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진심이야? 너도 조지환 병원장 싫어하잖아. 흉부외과에 있을 때 일을 생각하면…….]

"그 사람 어쩌면 우리 생각이랑 다른 사람일 수도 있어. 병원장쯤 올라왔으면 슬슬 행동이 달라질 때도 됐는데."

[이상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최기석은 정설화와 좀 더 통화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때마침 송명진이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최 선생. 여기 있었어요?"

"아, 네. 교수님."

"지금은 팀 트레이닝 시간인 걸로 아는데……."

"그게 일이 복잡하게 됐습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에 송명진이 배를 붙잡고 껄껄 웃었다.

"잘했어요. 최 선생 수준이라면 모형으로 연습할 때는 한참 지났죠."

"……."

"괜찮으면 잠깐 이야기 좀 할까요?"

"좋습니다."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 서로를 응시했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MHC에서 수련을 시작한 소감이 어때요?"

"수련환경은 메이죠보다 MHC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야사다 치프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교수님이 저를 위해 직접 교육과정을 짜셨다고……."

"맞아요."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모든 교육과정은 최 선생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혹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말했던 거 기억나요? 미국에서의 수련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주겠다고 한 거?"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연장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는 만큼 그 이상의 성취를 해내겠습니다."

"허허. 그건 좀 곤란해요. 날 너무 빨리 앞서가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송명진이 농담을 던졌다.

"교수님. 제가 말씀드릴 부분은 아니지만…… 집도에서 손을 놓으신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게 아닐까요?"

최기석이 꾹꾹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사실 송명진에게 직접 수술을 배우며 그를 보조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스승이 예상치 못하게 메스를 놓았다.

그 점이 두고두고 최기석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잖아요. 난 그게 맞다고 봅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들을 향한 마음이 줄어든 건 아니에요."

"그럼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할 일이야 더 많아졌죠.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두 가지예요."

송명진이 검지와 중지를 활짝 펼쳤다.

"그중 한 가지는 인공심장 개발입니다."

"인공심장이요?"

"그래요. 지금 사용하는 인공심장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가격이 높은 건 둘째치고 고장이 잦죠. 배터리 충전 시간도 짧은 편이고요. 그래서 4세대 인공심장을 개발 중입니다."

"4세대 인공심장이라…… 대단한 일이네요."

"사실 메이죠에 있을 때부터 추진하고 있었던 일이에요. 아마 몇 개월 안에 시제품이 나올 겁니다."

송명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다만 내가 개발하는 4세대 인공심장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있어요."

"문제점이라면……."

"다른 인공심장보다 이식이 어렵다는 겁니다. 기존 수술과 비교하면 난이도가 2배 이상은 뛰어오를 거예요."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주면 고맙죠. 아무리 인공심장이 좋다고 한들 이식을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니까요."

"추진하고 계신 다른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최 선생을 보자고 한 건 그 때문입니다."

송명진이 숨을 골랐다.

"최 선생. 심부전증 환자에게 심장을 이식하는 이유가 뭐죠?"

"심장이 혈액을 받아들이는 기능 또는 혈액을 펌프질하는 기능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이식술을 합니다. 세이버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주로 심장이식을 받습니다."

"맞는 말이에요. 더 쉽게 말하면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가 이식을 받게 되죠. 하지만 나는 그 범위를 조금 더 넓혀 보고 싶어요."

"그 말씀은 수술로 심장이식을 대신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얼마 전 세이버 수술에서 한 단계 진화한 수술법을 만들었어요."

송명진의 말에 최기석은 놀란 토끼눈을 했다.

세이버 수술을 뛰어넘는 새로운 심부전증 수술이라니…….

그런 수술이 연구되고 있다거나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저…… 정말이십니까?"

"못 믿겠죠?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요."

송명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4세대 인공심장이 저렴하다고 해도 그 가격을 감당하지 못할 환자들은 많을 겁니다. 그런 환자들을 위해서 새로운 수술을 만들었죠."

"……."

"난 그 수술을 최 선생이 완성시켜 줬으면 좋겠어. 최 선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교수님이 직접 진행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은데……."

"배울 게 많은 건 나나 최 선생이나 별반 차이 없어요. 이건 신수술이니까요."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 개발한 수술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으니 같이 일어납시다."

최기석은 송명진을 따라 수술실로 이동했다.

과연 스승이 개발한 신수술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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