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71화 (270/407)

수련 (4)

최기석은 수술이 예정되어 있는 J로젯 앞에 섰다.

집합 시간이 이십 분가량 남아서 그런지 다른 스태프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 오늘 있을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 봤다.

비디오 흉강경 수술 보조는 처음이지만 그 원리는 일반외과에 복강경 수술과 다르지 않았다.

우선 가슴에 작은 절개창을 내고 그 안에 포트를 삽입한다.

포트 안쪽으로 흉강경과 흉강경 수술 전용 도구를 넣어서 처치하는 방식이다.

"먼저 왔네."

왕진평과 레지던트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왕진평은 중국계 써전으로 흉부외과 레지던트 2년 차 과정을 진행 중이다.

"네. 안녕하세요."

"놀라진 않았어? 헤드 치프가 갑자기 수술 보조를 바꿨잖아."

"수술복이 많아서 그러려니 해요."

"뭐.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야사다 헤드 치프랑 보조 서는 거 처음이지?"

"네. VATS 수술도 처음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 야사다 치프는 평소에도 까탈스럽지만 수술실에는 더 까탈스러워. 첫 보조라고 해서 봐주지 않아."

"전 벌써부터 긴장 돼요."

곁에 있던 레지던트 카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수술 참 특이하다."

"어떤 점에서요?"

"아시아계 의사가 세 명이나 모였잖아. 세상에 한.

중.

일이 합작 수술을 하다니. 그런 의미에서 정치가들은 따끔하게 반성해야 돼. 서로 치고 박고 싸우지만 말고 우리처럼 대통합을 해야지. 안 그래?"

"네.

왕진평의 현란한 말솜씨에 최기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대화 도중 야사다가 합류했다.

"혹시 내 이야기 하고 있었나? 귀가 간질간질하던데?"

"네. 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오늘은 헤드 치프께 무얼 배울 수 있을까 후배들과 대화 중이었습니다."

"그놈의 아부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아부라니요. 전 항상 진심입니다."

"됐고. 미스터 최. 환자 브리핑해 봐."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환자는 MHC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통해 폐암 2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 조직은 폐 좌하엽에 위치했으며 조직의 크기는 6센티미터입니다. 수술 과정은……."

"그만하면 됐어. 스크럽하고 로젯으로 들어간다."

스태프들이 나란히 솔로 팔뚝을 문질렀다.

지이이잉.

스크럽이 끝나자 열리는 로젯.

오늘 수술에 집도의는 야사다, 제1보조는 왕진평, 제2보조는 최기석, 제3보조는 카밀이다.

써전들이 각자 자리 잡는 사이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시작했다.

"데미안. 환자 빨리 옆으로 돌려요."

최기석은 인턴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왜요?"

"수술 측와위로 진행하는 거 몰라요?"

"아…… 전 앙와위(똑바로 눕는 자세)인 줄 알았는데. 고마워요, 미스터 최."

인턴이 카밀에게 귓속말을 건넨 후 환자의 체위가 바뀌었다.

야사다의 불호령을 한 차례 피한 것이다.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폐암 2기 환자에 대한 비디오 흉강경 폐암 절제술을 시작한다."

"네!"

카밀이 씩씩하게 대답하고 수술 부위 소독에 들어갔다.

포비돈 솜을 문지르는 그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카밀. 지금 장난하나?"

"아, 아닙니다."

"고작 소독 따위를 하는데 손을 떨어서 어쩌자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 봉합은 제대로 하겠어?"

"죄송합니다."

"혹시 내가 꾸지람을 할까 봐 겁나는 건가?"

야사다의 날카로운 질문에 카밀이 우물쭈물거렸다.

"훌륭한 써전이 되려면 집도의나 동료 눈치를 보지 말고 환자 눈치를 볼 줄 알아야해. 무슨 뜻인지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야사다의 폭풍 지적에 로젯이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다른 써전들이 야사다와의 스크럽을 두려워하고 피하는 이유.

최기석은 그것을 생각보다 금방 깨달았다.

"메스."

야사다가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환자의 피부를 갈랐다.

스으으으윽.

여덟 번째 늑간의 정중 액와선에 10밀리미터.

다섯번째 늑간 후액와선에 4센티미터.

다섯번째 늑간부 전액와부에 10센티미터 크기의 절개창이 만들어졌다.

최기석은 첫번째 절개창에 흉강경을 삽입하고 나머지 절개창에 포트를 설치했다.

포트가 삽입된 장소로 수술도구들이 들어가게 된다.

"준비가 능숙하군. VATS는 분명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일반외과에서 복강경 수술을 집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야."

야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사전 준비가 끝나자 흉강경이 폐의 모습을 환하게 비췄다.

최기석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카메라 포트를 움직여 시야를 조종했다.

그동안 트레이닝 룸에서 수없이 집도를 해 왔다.

집도의에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며 용의 눈으로 인해 최적의 수술 시야를 잡는 데도 도가 텄다.

시야 확보는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N1, N2 림프절 이상 없습니다. 암 조직이 있는 좌하엽을 살펴보겠습니다."

최기석은 수술 시야를 옮기며 자연스럽게 수술 과정을 이끌었고 그의 능숙한 모습을 본 야사다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절제술을 시작한다. 메스."

야사다는 흉강경 전용 수술 도구를 포트로 삽입했다.

치이이익.

초음파 절삭기가 폐정맥 주위에 조직들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야사다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심지어 눈도 깜빡이지도 않았다. 세밀한 관찰 속에 좌하엽의 일부 조직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석션."

"네."

야사다의 지시에 왕진평이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들였다.

"헤드 치프. 이제 수술 도구가 안 닿습니다. 나머지 부근 박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스터 최가 대신 대답해봐."

"펜로즈 드레인을 이용해서 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답이다."

야사다는 펜로즈 드레인과 자동봉합기를 이용해 암 조직과 밀착한 폐정맥 부근을 잘라 냈다.

이어지는 폐동맥과 기관지 주변의 림프절 박리.

야사다의 걸출한 솜씨.

거기에 왕진평과 최기석의 빈틈없는 보조가 더해져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종격동 림프절 절제다. 전이가 쉽게 발생하는 부위인 만큼 완벽한 박리가 필요하다."

"네!"

"절삭기."

야사다가 종격동 림프절 절제에 나섰다.

그런데 처치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도중 야사다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자. 여기서 숙제를 내지. 남은 우측 7번 림프절은 어떻게 절제하면 될까?"

야사다의 질문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남은 림프절은 수술 포트와 어시스트 포트가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심지어 아까처럼 펜로즈 드레인을 이용할 수도 없는 상황.

"아무도 모르겠나? 정확히 30초를 주겠어. 그 안에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야사다가 허리를 피며 스태프들을 훑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너희들이 그걸 알겠어.'

하고 얕보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생각하자. 생각을.'

최기석은 모니터와 포트를 번갈아 응시하며 머리를 쥐어짜 냈다.

써전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이다.

아주 사소한 발상에 전환으로 불가능한 수술이 가능해지고, 열 시간짜리 수술이 몇 시간짜리 수술로 줄어들곤 한다.

그는 지금이 자신의 창의성을 시험해 볼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타임오버! 하긴 너희 레벨에서 그만한 발상을 하는 건 무리겠지."

"자, 잠깐만 기회를 주세요."

"할 말이라도 있나?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해?"

"아닙니다. 헤드 치프가 지적한 림프절을 박리할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야사다가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직접 한 번 해 보라고."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우선 포트 주변과 수술 도구를 소독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위치변경에 나섰다.

흉강경을 삽입하는 포트에 수술 도구를, 수술 도구를 삽입하는 포트에 흉강경을 넣었다.

기존 포트의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처치 자리를 확보한 것이다.

"헤드 치프. 이래도 되는 겁니까? 포트 위치를 함부로 바꾸다니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케이스는 처음 봅니다."

"이래도 되는 게 아니라 이게 정답이다."

왕진평의 말에 야사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포트 위치가 절대 불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안 그래?"

"맞습니다."

"잘했어, 미스터 최. 닥터 송이 괜히 미국으로 데려온 게 아니군. 처치를 계속한다."

이윽고 포트를 위치를 바꾼 채 진행한 림프 절제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보통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수술이 야사다의 손에서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물론 수술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었다.

[첫 번째 과업: 성공적인 VATS 보조를 완수하셨습니다.]

[야사다와 라포를 형성하였습니다.]

NEW [라포 2단계 - 믿음]

[특수 업적 까칠한 써전을 다루는 법을 성취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 A.

P와 200 P.

P를 제공합니다.]

[특수 아이템 레전드 젬이 개방되었습니다. 특수한 임무와 업적달성에 성공할 경우 레전드 젬이 지급됩니다.]

[용의 눈이 3단계로 상승했습니다. 특수 영상모드 입체화가 개방됩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

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면서 나오는 스태프들.

최기석의 시선이 카밀에게 고정되었다.

"카밀. 폐엽 절제술 끝난 환자한테 흉관 삽입하는 거 알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수술 후 일시적으로 공기누출이 생기고 늑막액이 증가하잖아."

"노파심에 한 소리야. 수고."

수술실을 벗어난 그는 야사다와 지하 1층 카페로 향했다.

다른 스태프들은 두 사람과 달리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닥터 송에게 귀에 딱지가 않도록 자네 활약을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야사다가 운을 뗐다.

"VATS 수술이 정말 처음인가?"

"네. 맞습니다."

"하아…… 믿기지 않는군."

야사다는 수술을 떠올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시야 확보할 때부터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긴 했다. 그런데 수술 중에 보여 준 어시스트 능력은 그의 기대마저 초월했다. 최기석을 괴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칭찬 감사합니다."

"그래.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자만해서는 안 돼. 초심을 잃는 순간 써전은 무너진다."

"명심하겠습니다."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헤드 치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제임스 홉킨스 심장 클리닉과 MHC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합니다."

"그건 갑자기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사실 외래진료를 볼 때 트러블이 있어서……."

최기석이 진료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하니 야사다가 얼굴을 구겼다.

"지저분한 자식들. 아직도 그딴 짓을 하다니."

"……."

"MHC가 유명세를 타면서 제임스 홉킨스의 입지는 자연스럽게 좁아졌어. 내가 듣기론 MHC 설립 후 외래 및 입원환자 비중이 30퍼센트까지 떨어졌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헛짓거리에 열을 올리고 있어. 우리 클리닉을 헐뜯는 기사를 내거나 심지어 써전을 빼앗아 가기까지 했지."

"써전을 빼앗는다는 건 스카우트 말씀하시는 건가요?"

"점잖은 말로 하면 그렇고 나쁜 말로 하면 돈지랄이라고 할까?

야사다가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특히 그쪽 헤드 치프가 악질 중에 악질이지. 혹시 클라라라는 이름 들어봤나?"

"아니요. 못 들어봤습니다."

"언제 어떻게 마수가 뻗칠지 모르니 조심해. 잘못 걸리면 의사 생활이 망가질지 몰라."

야사다의 충고에 오히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깊어갔다.

대체 클라라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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