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67화 (266/407)

Majo Heart Center (6)

이른 새벽.

최기석은 기숙사에서 흉부외과 수술 동영상을 살피고 있었다.

동영상 대부분은 의진대 레지던트 시절 촬영한 것으로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돌이켜 보면 그 짧았던 100일 당직 기간 동안 참 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CABG(관상동맥 우회술)를 집도하고 세이버 팀 활동을 하고.

거기에 흉부외과 내부 파벌 싸움까지 휘말렸다.

'다시 시작이야.'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3년간의 외과 로테이션.

길고 험난한 길을 통과해서 다시 흉부외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도 송명진과 야사다 등의 세계적인 써전들이 있는 MHC에서 말이다.

수련이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감은 충분했다.

흉부외과에서 활약하기 위해 지금까지 몸과 마음의 칼을 꾸준히 갈아왔다.

이윽고 아침이 밝았다.

흉부외과 동영상 복습을 마친 최기석은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아아.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상태창을 떠올렸다.

[특별 임무, '최고를 향해서'가 생성되었습니다.]

[임무 달성 조건]

- 성인흉부외과: 대동맥 수술 성공

- 폐식도외과: 양측 폐이식 수술 성공

- 소아흉부외과: 팔로 4징증 수술 성공

[임무 달성 시 특별한 스킬이 주어집니다.]

송명진의 제자가 되면서 받은 임무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완수하지 못한 임무.

그것이 바로 최고를 향해서다.

흉부외과로 돌아온 이상 임무완성에 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빨리 집도하고 싶어서 몸이 간질간질한 지경이다.

최기석은 방으로 돌아와 평상복을 입고 미리 챙겨 둔 캐리어를 손에 쥐었다.

정들었던 메이죠 클리닉은 이제 안녕이다.

지금부터 MHC(Majo Heart Center)에서 인생의 새로운 막이 펼쳐지리라.

그는 기숙사를 나와서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주자창 한구석에 MHC 로고가 박힌 대형 버스가 있었다.

"미스터 최!"

버스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손을 흔들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엠마.

일반외과에서 수련할 당시 친분을 맺었던 써전이다.

그녀 역시 최기석처럼 최고의 흉부외과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반가워요. 엠마. 진짜 오랜만이네요."

"맞아요. 이렇게 다시 볼 줄은 몰랐는데."

엠마가 웃으며 옆자리를 가리켰기에 최기석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본래 엠마는 최기석보다 일 년 먼저 수련을 시작했다.

일반외과와 성형외과에서는 조기 진급에 실패했지만 다른 과에서 조기 진급하며 최기석과 같이 흉부외과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마지막에 수련했던 신경외과에서 조기 진급이 아슬아슬했거든요. 그래서 미스터 최와 함께 수련을 못할 줄 알았어요."

"괜히 약한 소리 마세요. 나도 들은 게 있는데."

"들은 거요?"

"루카스 헤드 치프는 엠마의 조기 진급을 확정하고 있었대요. 마지막까지 알려 주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미스터 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루카스 헤드 치프하고 친하니까요."

최기석이 웃으며 엠마를 응시했다.

외과 로테이션 기간 동안 활약한 건 최기석뿐만이 아니었다.

엠마는 여자 써전으로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연달아 조기진급에 성공했다.

그밖에 찰스와 제레미, 폴터 등의 레지던트도 조기 진급에 성공했다.

"그랬구나. 미스터 최는 발이 참 넓네요."

"제가요? 신발 사이즈는 270미리밖에 안 되는데요?"

최기석이 끓어오르는 아재 개그의 피를 억누르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에 엠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뭐 이런 게 다 있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흠흠. 미안해요. 저는 엠마가 재미있어 할 줄 알았는데."

"저야말로 미안해요. 너무 정색했죠? 미스터 최가 이런 개그 하는 걸 처음 봐서."

엠마가 뒷수습하며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해 봐요. 미스터 최는 이미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공을 해 봤으니까 모자란 저를 잘 가르쳐 주시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도와드리죠."

최기석은 가슴을 두드리며 그녀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해 보았다.

주요 스탯은 다음과 같았다.

[성향: 환자 중심]

[진단력: 6]

[외과적 처치: 6.5]

[내과적 처치: 3]

[정치력: 2]

[카리스마; 2]

그밖에 봉합에 관련된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이 하나 있었다.

라포를 맺은 이들은 대부분 환자.

환자와 자신의 의료 실력에만 관심을 가지는, 예전의 자신을 떠오르게 하는 능력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엠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최도 전문의 면허증 따고 펠로우까지 할 거죠?"

"물론이죠. 지금은 심장외과랑 폐식도외과, 소아흉부외과 펠로우를 한 번에 따는 게 목표에요."

"다른 사람이 그런 말 했으면 비웃었을 텐데 미스터 최가 하니까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참고로 저는 심장외과 펠로우만 딸 생각이에요."

"어라?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버스 입구에서 세 명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몸이 마른 호남의 남자고 다른 한 명은 산적처럼 덩치가 좋으며 무뚝뚝한 인상을 가졌다.

남은 한 명은 인상이 평범해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도를 걷던 세 사람이 이내 최기석과 엠마 앞에 멈췄다.

"이야. 조기 진급 일등하고 이등이 붙어 있네?"

"……."

"만나서 반가워. 난 찰스. 이쪽은 제레미, 이쪽은 이반이라고 해."

찰스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최기석과 엠마는 세 사람과 간단한 통성명을 나누었다.

이윽고 두 사람의 옆자리에 찰스와 제레미가 그 뒤로 이반이 자리 잡았다.

"미스터 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넌 레지던트인데 벌써 웬만한 교수님보다 유명하잖아."

"뭐. 내 주변이 워낙 바람 잘 날 없었으니까."

찰스의 말에 최기석이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내가 의료 드라마나 만화를 엄청 좋아하거든? 근데 너는 꼭 그런 이야기 속 주인공 같더라. 그동안 이슈가 된 사건을 보자. 으음…… 손가락으로 다 못 셀 정도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 분명 일 터지면 내 탓부터 할걸?"

"그건 네 생각이지. 나도 큰 사건에 강해."

찰스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넌 목표가 뭐야?"

"목표?"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랄까, 꿈 같은 거."

"갑자기 심오한 부분을 파고드네?"

"전례가 없는 괴물 레지던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누구나 궁금해할 걸? 차마 물어보지를 못하는 거지. 안 그래?"

찰스의 시선에 제레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게 좀 그렇지만 난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는 게 목표야. 엠마도 마찬가지고."

"미…… 미스터 최. 나…… 나는 왜 끌어들여요?"

엠마가 당황해하며 손으로 최기석의 어깨를 때렸다.

"예상했던 대로네."

"그러면 찰스, 네 목표는?"

"나는 미국에 썩어빠진 의료계를 뒤집어 버릴 거야.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불행은 계속돼."

찰스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혹시 다라프레이트 사건 알아?"

"모를 수가 없지. 그 개자식들."

최기석이 치를 떨며 대답했다.

다라프레이트 사건이란 미국 최고의 의약품 스캔들 중 하나다.

사건의 발단은 튜터라는 벤처제약회사가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레이트의 판권을 사면서 벌어졌다.

튜터는 다라프레이트를 매입한 후 기존에 13달러가량 하던 의약품 가격을 736달러로 올렸다.

무려 56배에 가까운 폭리를 취한 것이다.

약의 주요성분 원가가 1달러가 채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튜터의 만행은 재앙이다.

"미국 의료계는 변화가 필요해. 그런 놈들이 판치게 두면 사람들은 계속 억울하게 죽어 갈 거라고."

찰스가 이를 갈았다.

잠시 흐르는 무거운 침묵 속에 최기석은 그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찰스의 외과적 처치는 5단계지만 정치력과 카리스마 수치는 각각 7단계였다.

최기석과 같은 수준인 것이다.

'휴우…… 다행이네.'

최기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찰스의 성향은 환자 중심이다.

그가 성공 중심이었다면 흉부외과 생활이 꽤 피곤해졌으리라.

얼마 후 MHC에 배정받은 레지던트들과 교수진들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송명진과 야사다 역시 포함되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최기석은 멀어지는 메이죠 클리닉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그날 오후.

MHC 전용 버스가 뉴욕 중심가를 통과하고 있었다.

"엄청 화려하네요."

"저도 뉴욕은 처음 오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최기석의 말에 엠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재 버스는 뉴욕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타임스퀘어를 통과하고 있었다.

엠파이어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 브로드웨이.

도로 옆으로 늘어서 있는 크고 현대적인 건물들.

뉴욕의 화려한 경관을 살피고 있자니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착한 MHC.

메이죠 스태프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서 버스를 나왔다.

"우와."

최기석은 MHC를 보고 한 번 더 감탄했다.

MHC는 메이죠 클리닉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건물이 훨씬 더 현대적이다. 만약 자신이 진료받으러 왔다면 건물만 보고도 신뢰감이 팍팍 올랐을 것이다.

"여러분. MHC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기 중이었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MHC의 임원 중 한 명이다.

"지금부터 각 과 인솔자와 동행을 하겠습니다. 진료부원장님과 헤드 치프도 오셨군요."

"반갑군요."

"오랜만이에요. 토마스."

송명진과 야사다가 토마스와 인사를 나누었다.

"하하하. 두 분이 와 주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든든합니다. 그럼 같이 가실까요?"

"그래야죠. 최 선생, 우리는 저녁 때 봅시다."

"네, 교수님."

핵심간부들이 먼저 떠나고 의사들이 각 과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흉부외과 스태프들이죠? 반가워요. 난 로버트라고 합니다.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에요."

로버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흐음…… 스태프들이 생각보다 많네요. 한 세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려 일곱 명이라니. MHC에 배정 받았으니 여러분의 실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겠죠?"

"네!"

찰스의 씩씩한 대답에 로버트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기숙사에 올라가서 짐부터 풉시다. 오늘부터 진료하는 건 아니니까 긴장 풀고요."

로버트와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MHC 별관으로 이동했다.

최기석은 배정받은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안을 둘러보았다.

MHC의 기숙사는 1인1실로 침대와 책상들이 전부 새 것이었다. 기숙사를 살피고 있자니 새 둥지를 틀었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잠시 후 로버트의 호출을 받은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별관 회의실에 모였다.

"MHC에 온 걸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MHC가 어떤 곳인지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요."

로버트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MHC는 흉부외과의, 흉부외과에 의한, 흉부외과를 위한 곳입니다. 흉부외과 외의 다른 과가 존재하지만 어디까지 흉부외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죠."

"……."

"각오 단단히 하세요. MHC는 메이죠 흉부외과와 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르니까."

로버트는 손가락을 세 개를 활짝 펼치며 말을 이었다.

"첫째, 메이죠는 레지던트들도 외래 진료를 봅니다."

로버트의 말에 최기석을 비롯한 레지던트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라고?

레지던트가 외래진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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