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 Heart Center (5)
"전신 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의 보고에 핀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부터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에 대한 최소침습 인공관절 대체술을 실시한다."
핀치의 말에 제2보조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그 위로 방포를 덮었다. 이후 최기석이 미리 챙겨온 C-arm으로 수술 부위를 촬영하였다.
"대퇴 경부 위치 확인했습니다. 표시 선을 긋겠습니다."
최기석이 펜으로 절개 부위를 표시하자 핀치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았다.
스으으윽.
메스가 피부를 가르자 대퇴부 바깥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견인기."
"네."
최기석의 말에 인턴과 제2보조가 절개 부위를 견인기로 고정했다.
이어서 진행되는 안쪽 절개.
최소침습 인공관절 대체술의 핵심 포인트인 시야 확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대퇴 혈관하고 관절낭이 보입니다."
"그래. 수술은 지금부터지. 보비(전기 소작기)."
핀치는 전기 소작기로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혈관을 처치했다.
"절골술(뼈를 잘라서 각도와 위치를 맞추는 처치법)은 자네가 해 보겠나?"
"맡겨 주시면 잘해 보겠습니다."
"그래. 마지막 수술이니까 멋지게 마무리해 보라고."
핀치의 오더가 떨어졌다.
"리머."
최기석은 정형외과에서 쓰는 뼈 절개장치를 손에 들었다.
리머가 수술등 빛을 반사하면서 눈부신 빛을 뿌렸다.
지금부터 펼치는 절골술은 인공관절 대체 수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이나 망설임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고난도 처치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했다.
최기석은 선상골절술을 이용해 대퇴골두를 제거하였다.
재접합을 위해 뼈를 반듯하게 잘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난하게 끝냈다.
"시야 확보해 주세요."
"네."
최기석의 지시에 제2보조와 인턴이 바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은 견인기로 비구부(고관절을 끼우는 소켓 부분) 상단부와 하단부를 끌어당겼다. 적절한 견인기 사용으로 수술 시야가 넓어졌다.
"앞뒤로 살짝 더 견인해 주세요. 최소침습이라서 시야가 아직 모자라요."
"알겠습니다."
몇 번의 작업 끝에 필요한 수술 시야가 확보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최기석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인공고관절 수술은 일종의 조립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두 개의 블록이 서로에게 잘 맞도록 붙이는 셈이다.
즉 지금부터 할 일은 두 개의 블록.
소켓의 역할을 하는 비구부와 병든 고관절을 손본 후 접합시키는 것이다.
잠깐의 여유를 가지며 과거에 봤던 수술 동영상을 복기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의식이 느슨해져 갔다.
오랜만에 물아일체가 찾아왔다.
수술 동영상 속 집도의가 빙의되면서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비구컵."
"네."
최기석은 제2보조에게 비구컵을 받아 비구에 맞춘 후 드릴로 비구컵을 고정했다.
차후 대체한 인공관절이 잘 들어맞도록 미리 준비하는 작업이다.
'허허.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핀치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그에게 수술을 맡겼지만 이런 흐름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과장님. 이 이상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여기부터는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런 말을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본인이 다시 집도할 생각이었다. 절골술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기엔 최기석의 경험은 아직 부족했기에.
그런데 최기석은 혼자서 척척 수술을 진행했다.
심지어 지금은 절골술 이후의 파트까지 본인이 집도하고 있었다.
수술 부위에서 떨어지지 않는 눈.
신속한 손놀림.
최기석은 이미 집도에 흠뻑 빠져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볼까?'
핀치는 최기석을 보조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리머."
"인공골두."
"고관절 운동 테스트합니다. 굴곡, 신전, 회전 차례대로 진행할 거예요. 90도 외회전 하에 완전 신전, 20도 내전, 90도 굴곡 이상 없습니다."
최기석은 보조들과 일사천리로 대체술을 진행했다.
"인공골두 정복했습니다. 비구부 삽입물은 어때요?"
"이상 없습니다."
"그럼 바로 접합할게요."
최기석은 대체한 인공관절과 비구부를 맞추자 접합부가 한 친의 오차 없이 들어맞았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미스터 최. 수술을 혼자 끝내 버려도 되는 건가?"
"네? 아. 죄송합니다. 제 영역은 절골술까지인데…… 처치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취해서."
"괜찮아. 힘도 덜 들고 나름 좋았어."
핀치가 최기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이이잉.
뒷정리가 끝난 후 로젯문이 열리며 스태프들이 나왔다 최기석은 뿌듯함을 느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길고 힘겨웠던 외과 로테이션은 이제 안녕. 흉부외과에서 꿈을 펼칠 시간이 찾아왔다.
띠링!
[환자 바라기(+10)효과로 체력을 상당 부분 회복합니다.]
[영혼의 눈물 80 스택이 쌓였습니다. 풀 스택 축척으로 영혼의 눈물 액티브 효과인 초각성이 개방됩니다.]
NEW [영혼의 눈물(유니크)]
-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거짓 없는 마음에서 새로운 기적이 만들어진다.
- 영혼 활성을 완료하면 특수효과 초각성을 얻습니다.
- 특수효과 초각성: 일시적으로 모든 처치 능력치 3단계 상승합니다. 지속시간은 여섯 시간이며 초각성 효과가 끝나면 일시적으로 탈진에 빠집니다.
그의 외과적 처치는 8단계.
초각성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송명진과 야사다급의 집도 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흉부외과 수련에 날개를 달아 줄 비장의 무기라고 할까.
수술실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모처럼 평상복 차림으로 기숙사를 나섰다.
들뜬 마음으로 주차장을 서성거리는데 기다리던 사람들을 발견했다.
"교수님."
"먼저 와 있었어요?"
송명진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곁에 있는 야사다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갯짓을 했다.
"외과 로테이션 끝낸 거 축하해요."
"교수님이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송명진이 말을 계속했다.
"그저 최 선생이 외국에서도 계속 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에요. 세상에 모든 과에서 조기 진급을 하다니…… 메이죠 역사에 이런 레지던트가 있었나?"
"없었지."
야사다가 송명진의 물음에 답했다.
"최 선생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메이죠에 데려온 보람을 느낀다고 할까요?"
"저야말로 메이죠에서 수련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럼 슬슬 저녁 먹으러 가 봅시다. 날이 날이니만큼 좋은 곳을 예약해 뒀어요."
"네!"
최기석이 운전석에 앉고 송명진과 야사다가 뒷좌석에 앉았다.
세 사람을 실은 차가 인근 레스토랑을 향했다.
"외과 로테이션을 끝낸 소감은 어때요?"
"솔직히 처음에는 외과 로테이션이 못마땅했습니다. 흉부외과 전공을 하고 싶은데 다른 과를 다 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수련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요?"
"외과 로테이션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환자를 조금 더 넓게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로테이션의 의도를 잘 이해해서 좋군요."
송명진이 미소 지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야사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결정은 바꾸지 않을 건가?"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네."
"바보 같은…… 난 도저히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군."
야사다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었다.
"자네는 누가 뭐래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심장외과 써전이야. 그런데 벌써 은퇴를 한다니…… 나도 아직 현역으로 뛰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네. 내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 흉부외과를 이끌어갈 사람들은 최 선생 같은 젊은 사람들이지."
송명진은 일주일 전 은퇴를 선언했다.
외래 진료는 보지만 수술실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그로 인해 흉부외과는 발칵 뒤집혔다.
메이죠의 간판 써전 중 한 명이 돌연 메스를 놓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젊은 써전들에게 추월당할까 봐 두렵나?"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나는 말이야. 내가 직접 수술실에서 뛰는 것보다 능력 있는 써전들을 키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네."
"실력 없는 써전 여럿보다는 명의 한 명이 더 아쉬운 시대야. 그걸 모르나?"
"내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을 거야. 최 선생이 아주 좋은 본보기지."
"소귀에 경 읽기로군."
야사다가 체념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가 손 놓는 바람에 내가 골치 아프게 됐잖아. 골치 아픈 헤드 치프 따위를 맡아 버렸다고."
"야사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흉부외과 헤드 치프를 하겠나. 그리고 앞으로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야. 난 어영부영 진료부 원장을 맡게 됐다고. 흉부외과가 아니라 전 진료부를 다 관리해야 한단 말이야."
"그건 쌤통이고."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최기석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두 사람이 마치 톰과 제리처럼 느껴졌다.
"교수님. MHC(Majo Heart Center)가 한 달 전에 완공되었다고 들었습니다. MHC는 어떤 곳이죠?"
"메이죠에서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 중 하나에요. 흉부외과 중심의 진료 센터인데 현존하는 최신설비를 갖춘 곳이죠. MHC를 뉴욕에 지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라고 할까요?"
"……."
"최 선생도 MHC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저도요?"
최기석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되물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내가 MHC에 진료부 원장이 됐으니까 최 선생도 따라가야죠. 참고로 야사다도 MHC로 이동할 겁니다."
"두 분과 MHC에 간다면 정말 든든하겠습니다."
"정말 그럴까?"
야사다가 불쑥 대화에 껴들었다.
"내 밑에서 수련하는 건 쉽지 않을걸? 전공의 중도포기자가 가장 많은 곳이 일반외과고 그다음이 흉부외과라고. 그 이유가 뭔지 아나?"
"아무리 겁주셔도 전 자신 있습니다."
"말만 뻔지르르한 게 그 스승에 그 제자군."
야사다의 농담에 송명진과 최기석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최 선생.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전공 수련 기간이 짧은 거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흉부외과 전공의 수련 기간이 4년이지만 미국에서는 2년이다.
미국에 전공의 수련 시간이 짧은 이유.
그것은 한국에 없는 외과 로테이션 기간 때문이다.
"2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입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예요. 그리고 예전처럼 흉부외과 논문을 보내 줄 테니까 읽고 감상문 제출하고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화는 나누는 사이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코스 요리를 먹으며 앞으로 시작될 MHC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메이죠 클리닉.
야사다가 먼저 기숙사로 올라갔고 최기석과 송명진은 야외 벤치에서 따로 시간을 보냈다.
"최 선생. 갑자기 왜 그래요?"
송명진이 멍한 표정의 최기석을 응시했다.
"이제 메이죠를 떠나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요."
"그럴 만도 하죠. 로테이션하는 동안 정도 많이 들었을 텐데."
송명진이 뜸을 들이며 화제를 돌렸다.
"최 선생. 장담하건대 MHC는 최 선생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소에요.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진료부 원장으로 같이 가는 거고요."
"……."
"내가 가 보지 못한 곳까지 최 선생이 가 봤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바보 같고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믿고 있어요. 세상을 빛낼 수 있는 흉부외과의가 반드시 나올 거라고. 그리고 거기에 가장 근접한 사랑은 최 선생입니다."
송명진의 주름진 손이 최기석의 손 위를 덮었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숨겨진 임무 진심에서 진심으로, 그 네 번째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심장의 지휘자 패시브를 획득합니다.]
[심장의 지휘자 Lv.1]
- 소아와 성인에 관계없이 심장 수술 성공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오를수록 수술 성공률이 증가하며 각종 특수 효과가 부여됩니다.
"교수님의 뜻 제가 이어가겠습니다. 저를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그래요. 믿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사제의 대화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