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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64화 (263/407)

Majo Heart Center (3)

창가에서 흘러드는 빛이 눈을 쑤셨다.

최기석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돌려 햇살을 등졌다.

하루를 꼬박 넘기는 샴쌍둥이 수술을 끝내고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더 쉰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에이……."

벌떡 일어나서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한껏 늘어지고 싶은 마음과 달리 의식이 점점 또렷해졌다.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

기숙사에 복귀한 시각을 감안하면 무려 스무 시간을 잔 셈이다.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 도중 상태창을 띄우고 수술 후 얻은 보상들을 확인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에 의사 판독기 효과가 추가되었습니다. 의료모드로 동료를 살필 경우 해당 의사의 수술 성공률과 라포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눈물 아이템에 추가 스택이 쌓였습니다.

(170/700)]

[최초의 샴쌍둥이 수술 업적에 성공하셨습니다. 100 A.

P를 보상으로 드립니다.]

보상을 바라고 수술에 들어간 건 아니지만 뿌듯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샤워를 마친 최기석은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휴대폰에 불이 나 있었다.

의진대에 흉부외과 동료들, 가족, 그 밖에 여러 지인들이 메시지를 남겼다.

힘든 수술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라이브로 시청 중이었는데 감동적이었다 등등.

메시지를 읽고 있으니 가슴 한쪽이 따뜻해졌다. 자신을 인정하고 걱정해 주는, 환자의 쾌유를 빌어 주었던 지인들이 너무 고마웠다.

마냥 혼자 사는 것 같은 세상이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고 할까.

최기석은 시간을 내서 지인들에게 일일이 답장을 해 주었다.

지이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휴대폰.

통화를 연결하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최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기자님도 잘 지내시죠?"

[저한테는 별일이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별일이 많네요. 하하하.]

박광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박광수는 과거 의진대 시절 인연을 맺은 기자다.

최기석에게 무슨 사건이 생기면 거의 대부분을 기사나 신문으로 내보내곤 했다.

[그건 그렇고 참 어려운 일을 해내셨군요. 저도 라이브로 분리 수술 봤습니다. 하루를 꼬박 넘기고 거의 이틀 동안 로젯에서 살던데. 완전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했던 두피 재건술은 어우…….]

"그렇게 칭찬하시면 저 하늘로 날아가 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멀리멀리 날린 다음 한국에 돌아오게 하려고요.]

박광수가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연락은 못 드렸지만, 최 선생님의 소식은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자살 환자 구조, 총기 사건, 얼마 전 프리드 사건까지 말이죠.]

"……."

[아무리 봐도 최 선생님은 항상 폭풍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동감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기 무서울 정도예요"

[그래도 복귀는 하셔야죠. 최 선생님이 트러블 메이커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끝을 보세요. 사건은 항상 최 선생님의 뜻대로, 아니면 의료계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거나 환자를 위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됩니다. 그게 중요한 거죠.]

"뭐.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러네요."

[네. 그래서 저는 최 선생님이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복귀해서 한국도 다시 뻥뻥 터트려 주세요. 의료계는 그래야 변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통화인데 너무 부담 주시는 거 아닌가요? 제가 의료계의 구세주도 아니고."

[그런가요. 사실 이렇게까지 오버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복귀는 할 거고 그다음에는."

최기석이 말끝을 흐렸다.

"좋은 싫든 무슨 사건이 터지겠죠. 그때는 기자님의 힘을 빌리고 싶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항상 최 선생님 편이니까. 그건 그렇고 권일수 교수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궈…… 권 교수님이요?"

최기석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권일수.

과거 의진대 소아흉부외과 교수로 소아 심장 수술에 권위자다.

장혁필과 흉부외과 과장 자리를 놓고 세력 싸움을 벌이다가 패배하고 종적을 감췄었다.

[제 지인 중에 장혁필 교수 후배가 있어서요. 지인의 말에 따르면 현재 지방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폐인처럼 지낸다고 하더군요.]

"아…… 그럴 분이 아니신데."

[확실히 요양병원에 계시긴 아까운 분이죠. 노우드 수술까지 가능한 분인데.]

박광수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관심 있으면 연락처 알려 드릴까요? 기존에 있던 번호는 바뀌어서 연락이 안 될 겁니다.]

"네. 부탁드려요."

최기석은 박광수와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통화를 끊었다.

잠시 후 박광수가 권일수의 휴대폰 번호를 문자로 남겼다. 문자를 내려다보는 최기석의 눈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함께 수술실에 들어갔던 기억.

자신에게 소아심장 수술의 요령을 가르쳐 주던 권일수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다.

지금부터 권일수를 복귀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리라.

최기석은 기숙사를 나와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샴쌍둥이 아담과 브라이언은 격리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머리가 붙어 있을 때는 한 침상에 같이 있었던 쌍둥이가 이제는 각각 다른 침상을 쓰는 중이다.

각자의 삶을 찾은 쌍둥이를 보고 있자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쌍둥이의 상태를 살폈다.

아담은 건강하고 수술 후 후유증이 없었지만, 브라이언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바이탈이 불안정한 편이며 의증으로 운동장애가 떠올랐다.

"잠시만요."

최기석은 중환자실 스테이션에 있는 컴퓨터로 추가처방을 내렸다.

"닥터 최. 정말 감사합니다!"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가 최기석을 발견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선생님 덕분에 수술이 무사히 끝났어요.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괜찮습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인 걸요. 그리고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으실 단계는 아닙니다. 최소 한 달간 경과관찰이 필요하고, 나중에는 재활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그건 알고 있어요. 신경외과 헤드 치프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이미 루카스 헤드 치프를 보셨군요."

"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라이브 수술 덕분에 모금액도 많이 모였어요. 치료비에 재활치료까지 다 지불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정말 고생 많았어요. 닥터 최."

보호자가 고개를 떨어트리며 흐느껴 울었고, 최기석은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 봤자 그동안 마음고생 한 보호자분만 하겠습니까?"

"……."

"시원하게 우세요. 앞으로는 쌍둥이들하고 웃을 일만 있을 테니까요."

"고마워요. 저 앞으로 매일매일 기도할 거예요. 닥터 최가 하는 일이 다 잘되라고."

"최고의 선물.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시큰해지는 콧잔등이 손으로 훔쳤다.

보호자와 대화를 마친 후 곧바로 신경외과 병동을 찾았다.

"닥터 최. 고생했어요."

"수술할 때 완전 멋있었어요."

"미스터 최 정도는 돼야 진짜 의사지."

최기석을 마주친 스테이션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그를 칭찬하기에 바빴다.

최기석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루카스의 집무실 앞에 섰다.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와. 안 그래도 자네 이야기 중이었는데……."

루카스가 웃으며 반대편 소파를 가리켰고 최기석은 먼저 온 레온의 옆자리에 앉았다.

"더 쉬어야 하지 않나?"

"충분히 잤습니다. 몸이 쑤셔서 더 누워 있지 못하겠더라고요."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쉬셔야 하는 건 오히려 과장님 아닙니까? 제일 고생하신 게 헤드 치프인데."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이 정도는 끄떡없어. 난 인턴 때부터 철인으로 소문났거든. 나라면 한국에서도 100일 당직을 무사히 마쳤을 거야."

루카스의 농담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기석은 루카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난 후 얻은 의사 판독기 효과를 적용시켰다.

[루카스의 수술 통계 분석을 시작합니다.]

[뇌 경막하 출혈]

- 수술 건수: 150회

- 수술 성공률: 90퍼센트

- 수술 후 경과: 양호(80퍼센트)/불량(15퍼센트)/사망(5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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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경색]

- 수술 건수: 100회

- 수술 성공률: 95퍼센트

- 수술 후 경과: 양호(70퍼센트)/불량(27퍼센트)/사망(3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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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스의 라포를 파악합니다.]

- 최기석: 4단계: 신뢰

- 레온: 4단계: 신뢰

- 매튜: 마이너스 4단계: 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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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석은 상태창을 확인하고 만족했다.

수술 통계의 경우 자신이 관리자가 됐을 때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뇌 경막하 출혈 수술을 한다고 치자.

이 경우 수술 성공률과 수술 후 경과가 좋은 의사에게 해당 수술을 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라포의 경우 정치적으로 사용하기에 좋았다.

과거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면 자신과 라포를 맺은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인의 라포까지 확인이 가능했다.

이 경우 타인의 병원 내 인간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누가 누구를 적으로 생각하는지, 동료로 생각하는지를 꿰뚫어 보는 셈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멍해져서……."

"하긴 워낙 긴 수술을 했으니 그럴 수도 있지. 그건 그렇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네."

"좋은 소식이라면……."

"매튜가 의료법 위반으로 구속됐어. 지금 경찰에서 조사받는 중이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갑자기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해지네요."

매튜는 본인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프리드를 능욕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외적인 요인으로 사망한 사람을 병으로 죽은 걸로 둔갑시키려고 하다니…….

그 벌은 무겁게 받아야 한다.

똑. 똑. 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쏠렸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DHV 택배입니다. 루카스 님께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전 배달시킨 게 없습니다만……."

"풀먼 님께서 보낸 물건입니다."

택배 기사가 떠나면서 테이블 위에 포장된 물건만 덩그러니 놓였다.

"이게 뭐지?"

"출간된 에세이 같습니다. 뜯어 볼까요?"

"그러지."

최기석이 포장을 뜯자 열 권의 에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책 제목은 바람의 숨결.

제일 위에 놓인 책 사이에 풀먼의 사진과 한 장의 편지가 껴 있었다. 사진 속 풀먼은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헤드 치프. 풀먼입니다. 본원 척추신경외과에서 꿈을 펼치려고 했던 게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런데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인생은 자기 마음대로는 안 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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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양병원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죽음의 공포는 이제 다 사라졌습니다. 매일같이 꾸던 악몽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겠다는 상실감도 먼지처럼 흩어졌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의연하게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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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외과 스태프 앞길에 항상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도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자를, 아니 사람과 생명을 위하는 고귀한 마음을 항상 지켜가길 바랍니다. 저는 비록 세상을 떠나지만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항상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최기석은 풀먼의 편지를 읽은 후 입술을 깨물었다.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떠나보내는 동료,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가슴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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