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 Heart Center (2)
스으으으윽.
메스가 뇌 조직을 갈랐다.
최기석은 이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하나의 뇌를 절반으로 나누는 작업.
이로 인해 뇌에 일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를 둘 다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치이이이익.
최기석은 한 손으로는 석션기로 피를 흡입하고, 다른 손으로는 포셉으로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양손잡이 스킬이 있기에 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다.
작업이 계속되면서 뇌 조직이 점점 대각선으로 나뉘어 갔다.
"맥박이 조금 상승했습니다. paco2(동맥혈이산화 탄소 분압)도 상승, po2(산소분압) 감소, 뇌압은 20mmHg로 다소 높습니다."
마취의에 중간보고에 루카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알았다는 한마디의 대답이, 작은 끄덕거림이 처치에 영향을 줄 수 있었기에.
'뭐지?'
루카스를 돕던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흡입하고 있음에도 절제 부위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왔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반면 분리에 힘쓰고 있는 루카스와 제1보조 앙리는 이를 그저 단순한 출혈로 보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아무런 지시가 없는 걸 보면 말이다.
[용의 눈 스킬에 줌 인 모드를 사용합니다. 해당 수술 부위를 확대하여 살핍니다.]
최기석은 미세 현미경을 능가하는 배율로 수술 부위를 살폈다.
그 결과 출혈이 발생한 곳은 수술 부위가 아님을 알아챘다.
즉 다른 부위에서 발생한 피가 수술 부위로 흘러들고 있었다.
문제는 그 부위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점이랄까.
"교수님. 잠깐 분리를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루카스가 메스를 거두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까지 출혈이 잡히지 않습니다."
"뇌 조직 분리 중이잖아. 출혈이 발생하는 건 당연해."
"이건 처치 중인 장소에서 발생한 출혈이 아닙니다. 그러니 진짜 출혈점을 찾아야 합니다."
"진짜 출혈점?"
앙리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미스터 최가 찾아봐. 난 도저히 모르겠군."
"네.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최기석은 줌 인 모드를 사용한 채 쌍둥이의 뇌를 유심하게 훑었다. 그러던 중 상대뇌동맥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정맥으로 연결된 것이 보였다.
바로 뇌동정맥 기형이다.
뇌동정맥 기형을 앓으면 동맥의 높은 혈압이 직접 정맥으로 전달되어 정맥 혈관이 터질 위험이 있었다.
쌍둥이의 기형은 검사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범위가 작고 좁았다.
아마 박리 작업 때문에 출혈을 일으킨 모양이다.
"헤드 치프. 이쪽입니다."
최기석의 지적에 루카스와 앙리가 미세 현미경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맙소사. 뇌동정맥 기형이 있잖아."
"뇌압이 높았던 이유가 있었군."
루카스와 앙리가 한마디씩 했다.
최기석이 출혈의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면 뇌압이 계속 상승해서 응급상황이 찾아왔을 것이다.
연습 때와 달리 추가적인 처치가 더해지고, 환자의 경과에도 악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했다.
"잘했어, 미스터 최. 분리 작업 중이라서 출혈을 너무 간과했어."
"아닙니다. 저도 운이 좋았습니다."
"분리는 잠시 중단하고 뇌동정맥 기형부터 해결한다.
루카스는 출혈이 발생한 동정맥을 일단 방치하고, 전기 소작기로 실처럼 얽힌 주변 정맥들을 절단했다.
기형이 있는 주변 정맥들을 처치하지 않으면 다시 출혈을 일으킬 수 있었다.
"혈관 치기는 끝난 것 같습니다."
"그래. 이제 출혈이 발생한 유입 동정맥을 잘라 낸다."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입 동정맥을 마지막까지 방치한 이유.
그것은 혹시 모르는 대량출혈과 뇌부종을 막기 위함이다. 유입 동정맥은 일종의 큰 물줄기인데 이것을 먼저 차단해 버리면 미세 동정맥들에 부담이 간다.
얼마 후 핵심 출혈점을 잡으면서 뇌동정맥 기형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승압제 투여할까요?"
"좋은 지적이다. 에피네프린을 소량으로 써 봐."
최기석이 에피네프린을 투여하자 쌍둥이의 혈압이 서서히 올랐다.
그럼에도 뇌동정맥 수술한 부위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혈관 흐름이 정상이라는 신호다.
수술에 문제가 있었다면 처치한 혈관이 다시 터졌으리라.
잠시 후 분리 수술이 재개되었다.
이번 수술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었기에 처치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루카스가 손에 든 메스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제 한고비 넘겼군."
"땀 좀 닦아 드리겠습니다."
소독간호사가 거즈로 루카스의 목덜미와 이마에 있는 땀을 닦아 냈다. 다른 스태프들도 저마다 몸을 움직이며 잠깐의 여유를 누렸다.
"열 시간이나 수술했는데 겨우 절반이라니."
루카스가 한숨 쉬며 스태프들을 훑었다.
"이제 1팀 교대시간이야. 다들 고생했어."
"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비록 보조는 아니지만, 참관실에서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동안 열심히 해 준 것만으로 충분해. 미스터 최는 교대 안 하나?"
"저는 헤드 치프와 끝까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괜히 고집 피우지 마.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수술이 하루를 넘어갈 수도 있어. 그때까지 체력과 정신력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루카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빛이 감돌았다.
그가 지켜본 최기석은 보조하는 내내 날카로운 송곳과 같았다.
집도의와 퍼스트를 뒷받침하는 처치는 흠잡을 때가 없었으며, 뇌동정맥 기형을 발견하는 쾌거를 올렸다.
시간이 갈수록 반응속도가 둔하고 더뎠던 니콜라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사람의 집중력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닌가.
루카스야 집도 경험이 많아서 정신력을 분배할 수 있지만, 최기석은 달랐다.
그는 아직 외과 로테이션 중인 수련의다.
그런데 이만한 집중력을 보여 주다니…….
"저는 아담과 브라이언의 주치의입니다. 수술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도 참관해."
"싫습니다. 제 환자를 두고서는 어디에도 못갑니다."
"참나. 그놈의 고집은 못 말리겠군. 대신 처치가 흐트러지면 언제라도 교체할 거야. 알았나?"
"네!"
최기석의 씩씩한 대답에 루카스가 미소 지었다.
집도의인 그가 오히려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기석의 존재감은 묵직했다.
남아 준다면 고마울 뿐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앙리와 니콜라이를 대신해서 레온과 저스틴이 역할을 교대했다.
"미스터 최. 오늘도 활약이 대단한데요? 그 상황에서 뇌동정맥 기형을 잡아내다니. 바깥에 있는 사람들 다 뒤집어졌어요."
"운이 좋았죠. 뭐. 그건 그렇고 레온이 왔으니까 이제 제가 활약할 일은 없겠네요."
"또, 또 마음에 없는 소리를."
레온과 최기석이 짧은 농담을 나눴다.
스태프 교체로 생기는 공백을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는 것이다.
"진행 과정과 남은 과정 모두 숙지하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네!"
루카스의 질문에 레온과 저스틴이 대답했다.
"좋아. 수술을 계속한다. 두정엽의 중간 부분을 박리하고, 이후 후두엽 일부를 대각선으로 분리한다. 마지막은 두개골 재건술과 두피 확장술이야. 메쩬."
루카스의 손에 메쩬이 들렸다.
전환점을 맞은 샴쌍둥이 분리 수술.
스태프가 일부 바뀌면서 처치가 물 흐르듯 이어졌다.
교체된 스태프가 체력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서 이전 스태프보다 쌩쌩했기에.
'믿을 수가 없군. 대체 한계가 어디까지인 거야?'
루카스의 시선이 문득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어느덧 수술 시간이 반나절을 넘겼다.
그럼에도 최기석은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처치는 빠르고 정확했으며 할 일이 없을 때는 수술 부위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처치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모야모야병 보조를 했을 때보다 더욱 향상된 모습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불길하게 울리는 전자음과 함께 마취의가 비보를 전해 왔다.
"쌍둥이의 맥박과 혈압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담은 90mmHg에 60mmHg, 브라이언은 80mmHg에 50mmHg 입니다. sp02(산소포화도) 80입니다. 둘 다 정상범위 미만입니다."
"분리 작업 중단하고 호흡기 달아. 바소프레신 원 앰플씩 정맥으로."
루카스의 지시에 최기석이 처치에 나섰다.
하지만 처치 후에도 쌍둥이의 바이탈은 정상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분리 작업 중 뇌신경에 자극이 간 모양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라면……."
레온과 최기석의 시선이 루카스에게 고정되었다.
루카스가 침묵하는 사이 심전도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젠장. VF(심실세동)이야! CPR부터 한다."
"네!"
루카스와 저스틴, 레온과 최기석이 한 팀이 되어 각각 CPR에 나섰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각성 CPR 버프를 본인과 동료에게 사용하셨습니다.]
버프를 받은 스태프들이 삼십여 분간 사투에 나섰다.
VF가 심정지로 발전하면서 쌍둥이가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적절한 흉부 압박과 제세동기로 간신히 심정지를 넘겼다.
바이탈은 여전히 정상에 미치지 못했지만…….
"헤드 치프. 이대로라면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나도 알아.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야지."
루카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수술이 일시 중단되면서 무거운 침묵이 로젯을 짓눌렀다.
참관실에서 수술을 지켜보는 써전들과 라이브로 수술을 지켜보는 이들은 침조차 쉽게 삼키지 못했다.
과연 팀 트윈스는 이 위기를 과연 어떻게 이겨낼까.
"헤드 치프. 저체온 요법을 쓰는 건 어떨까요?"
"저체온 요법이라…… 괜찮을까?"
루카스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저체온 요법이란 체온을 낮춰서 몸의 대사량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2차적인 뇌 손상 예방 및 장기 손상의 후유증을 줄일 수 있었다.
"저체온 요법은 주로 성인에게 사용한다. 쌍둥이들에게는 독이 될지 몰라."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 즉시 처치를 중단하면 되고요."
"레온, 생각은 어때?"
"저도 미스터 최와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지금으로써는……."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팀 트윈스 스태프와 마취의가 저체온 요법에 나섰다.
우선 쌍둥이의 몸 아래에 쿨링 매트를 깐 후 특수 냉각관을 혈관에 주입했다.
서서히 떨어지는 쌍둥이의 체온.
잠시 후 체온이 33도에 도달했고, 스태프들은 오매불망 환자 감시 장치만 바라봤다.
"과장님과 레온은 잠깐 나가서 쉬세요. 아담과 브라이언은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그럴 순 없지. 선장 없는 배를 본 적이 있나?"
"저도 괜찮아요."
루카스와 레온이 최기석의 제안을 물리쳤다.
당장 할 일이 없었기에 스태프들은 특별히 의자를 챙겨와 쌍둥이와 환자 감시 장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2시간 가까이 이뤄지던 저체온 요법이 끝났다.
체온을 천천히 올리자 쌍둥이의 바이탈이 정상범위를 되찾았다. 포터블 영상장치로 살핀 결과 뇌 손상과 장기 손상의 징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저체온 요법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서로를 응시하는 스태프의 눈빛에 희망이 떠올랐다.
"수술을 계속하지.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아이들에게 부담이 클 거야."
"네!"
드디어 재개된 분리 수술.
뇌 조직 박리와 분리가 순풍을 맞은 듯 진행되었다.
"두개골 챙겨 오겠습니다."
최기석은 자리를 벗어나 냉동실로 이동했다.
냉동실 문을 열자 미리 만들어 놓은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두개골 재건술은 본 시멘트로 만들어진 인공 뼈를 사용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3D 프린팅으로 이미 완성품까지 제작했기에.
"좋아. 딱 맞는군!"
루카스는 최기석이 챙긴 두개골을 쌍둥이에게 씌우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나긴 여정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헤드 치프. 두피 재건술은 제가 하고 싶습니다."
"미스터 최가?"
"네. 자신 있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최기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루카스의 체력은 1단계, 9단계였던 외과적 처치가 4단계 감소하여 5단계를 가리켰다.
레온 역시 다르지 않았다.
체력은 3단계, 7단계였던 외과적 처치가 2단계 감소하여 5단계가 되었다.
모든 수치에서 최기석이 가장 나았다.
"한 번 믿어 보지. 레온, 괜찮겠나?"
"저야 미스터 최가 해 주면 고맙죠."
"두 분 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레온과 자리를 바꾼 후 두피 재건술에 나섰다.
최근 8단계로 상승한 외과적 처치와 그동안 수련해 온 양손잡이 스킬.
이 두 가지로 인해 손이 날개를 단 것처럼 춤을 췄다.
본래라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릴 처치건만 그의 손에서 이십 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마침내 끝난 수술.
태어날 때부터 붙어 있던 쌍둥이의 머리가 지금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최기석은 쌍둥이의 머리를 붕대로 감아 주며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끝까지 버텨 줘서."